리딩 배드 뉴 데이즈②_이민성: 생식SF

2017년 11월 9일 발행

<리딩 배드 뉴 데이즈>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배드 뉴 데이즈의 크리틱 프로젝트로 11월 2일부터 12월 7일까지, 매주 목요일 크리틱-칼에 게시됩니다. 6편의 글들은 소책자로 묶여 <배드 뉴 데이즈>전시에 비치될 예정입니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일정은 해당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badnewdayz)를 통해 공지되니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리딩 배드 뉴 데이즈②_이민성: 생식SF

글: 이민성

최근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전작에 이어 우주 식민지 확장에 사용될 노동력 제공을 위해 유전학으로 만들어진 인조인간 레플리컨트(replicant)를 찾는 ‘블레이드 러너’(폭동을 일으킨 구형 레플리컨트들을 사냥하는 인조인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지구에 남은 레플리컨트를 잡기위해 고용된 블레이드 러너 ‘K’는 사냥 중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수명이 짧고, 생식능력이 없던 레플리컨트 중 생식이 가능했던 레플리컨트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한 여성 레플리컨트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은 곧바로 경찰에 보고되고 인류의 대혼란을 막기 위해 ‘K’에게 이 일을 덮도록 지시한다. 한편 우주 식민지를 넓히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점차 증가한다. 그러나 수요에 맞춰 레플리컨트를 생산하지 못하는 월레스(그는 일찍이 도산한 타이렐 사를 인수하여 신형 레플리컨트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생식능력을 가진 레플리컨트를 생산하기 위해 고전하던 중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명목으로 레플리컨트의 재생산 능력 비밀을 가진 아이를 찾으려한다.

전편과 다른 서사 전개의 중심엔 “생식”이 있었다. 재생산 능력을 실험하는 실험체 여성 레플리컨트와 유일하게 아이를 낳았던 레플리컨트의 몸을 통해 영화 속 미래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는데, 이 속에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잉태하는 여성의 재생산 기능은 인간임을 가장 근본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요소이자, 경제적 발전과 번영에 필수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굳이 이 영화를 언급한 까닭은 임신과 출산, 생식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위와 같은 SF 영화의 재현이 보여주듯, 터무니없는 믿음과 상상이 투사되고 상연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비롯하여 여타의 설화, 과학 실험 등이 상정하는 생식의 테두리는 ‘생물학적인 자연의 성’에 근접해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적 성을 둘러싼 이야기와 사건들은 현실 속에서 그 자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여느 소설들이 그러하듯, 당대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굴절되고 변형되어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1억 년 전 지구에 나타난 인류 종의 번식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부터 아담과 이브의 창조에 이르는 신학적 관점에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이와 같이 저마다 믿고 있는 사실의 세계 속에서, 생식을 둘러싼 여성의 몸은 어떤 방식으로 보이고, 그 믿음이 그리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들은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을까? 이들을 일별해보는 것은 우리가 재생산에 투영해왔던 환상들을 조망하게 해줄 것이다. 이하의 연표들은 그에 대한 짦막한 단상들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이사야 7:14-15)

‘탄생’의 이야기로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예수일 것이다. 마리아는 기원전 18세기 갈릴래아Galilee의 나사렛 출신의 유대인 여성이자 예수의 어머니로서, 신약성경에서 그녀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질 수밖에 없는 원죄 없이, 성령의 의해 메시아를 처녀 잉태한다고 기록된다. 마리아가 낳은 아이는 강생한 성자로서 구약과 신약을 나누는 중요 지점이다. 한편 예수의 탄생은 인간이 가진 욕정의 한계를 벗어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순결한 임신이 이뤄졌다는 서사에 근거한다. 이는 인간적인 모순과 제한을 뛰어넘는 신성을 담보하는데, 왜냐하면 구약의 아브라함에서부터 대대로 가부장제를 이어오던 당시 유대민족에게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의 임신은 금기인 동시에 반대로 하느님의 아들인 메시아의 출산이라는 모순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서사는 신에 의한 임신을 통해 인간 간의 섹스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예수를 신의 자손으로서 위치 지운다. 이때 상상되는 여성의 몸은 무엇일까?

1500’s: 치마바위

이는 치마 모양의 바위나 여성의 생산성을 상징하는 바위에 얽힌 전설로, 치마 모양의 바위에서 기도하고 아들을 낳았다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 바위는 장군이나 장수, 대지모신의 자취가 있는 곳인데, 마을사람들이 여기에서 신신제나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전설”, <한국민속문학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2016. 참조.).

고구려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 중기까지 이어진 일종의 데릴사위 제도인 ‘남귀여가혼’은 가족 내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발언권을 보장하였으며, 이 외에도 당시의 제도는 재혼 및 재산상속에 관해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였다. 허나 조선 중기를 거치며 점차 주자학을 비롯한 유교전통이 공고해지고 상황은 서서히 반전된다. 급기야 성종에 이르면 여자가 재혼할 경우 그 자식은 과거에 지원할 수 없게 되는 등의 조치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즈음 시집간 며느리에게 가장 큰 죄는 떡두꺼비 같은 사내아이를 못 낳는 것이었다. 큰 죄는 오랜 치성과 성실로 극복해야 할 그녀의 숙명이며, 이러한 설화는 하늘이 며느리의 정성에 감동하여 삼신 할매를 통해 아들을 점지해주는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 설화의 교훈을 지침 삼아 많은 여성들은 매일 같이 수많은 바위들에 돌을 쌓고, 달에게 기도를 올리기도 하며, 백팔배를 드리는 수련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정성과 고통의 감내는 아이를 갖지 못 할 경우 며느리는 친정으로 쫓겨나거나, 씨받이를 들이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며느리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연의 신비스러운 힘을 믿고 따를 수밖에.

1500‘s-1700’s: 마녀 사냥

칼뱅과 루터를 비롯한 여러 종교 개혁적 흐름이 형성되고, 정통 로마 가톨릭은 서서히 힘을 잃었으며, 신흥 계급의 합리적 세계관과 계몽주의의 여명이 밝아왔던 근세에, 종교적 광기는 외려 마녀 재판을 통해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마녀 사냥은 신교도와 가톨릭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으며, 마녀 감식법과 관련된 서적들은 당시 유럽에 지성의 빛을 밝혀준 구텐베르크 활자 혁명을 통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지역별로 양상은 다양하나 대체로 여성에 대해 이뤄진 마녀 기소는 갖은 고문과 테스트를 감내하며 본인이 스스로 마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했고, 가임기가 지나 생식능력을 상실한 늙은 여성, 많은 남자들을 홀리거나 기가 드센 여성은 으레 마녀 재판의 희생자가 되곤 했다.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여성이 피임을 통해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던 중세에 비해, 근세로 넘어오며 마녀사냥이 외려 극심했던 까닭은 바로 초기 산업의 발전에 따른 성별 분업으로 인한 성적 위계화와, 자본주의적 축적에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되는 노동력의 공급을 위해 여성이 본격적으로 재생산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그녀는 다음과 같이 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비난했던 마녀사냥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노동규율에 순응하여 가족 내에서의 재산상속과 출산을 위협하거나,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하게 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을 범죄화 하는 광범위한 성생활의 재구조화를 위한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p. 288.) 이어 그녀는 18세기에 이르러 마녀사냥이 잦아들기 시작했던 이유는 마녀 재판이 이성에 의해 철저히 반성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마녀 재판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여성의 생식에 대한 통제와 성별 격차가 이미 확립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주장대로 정말 마녀 재판은 자본의 시초축적이 이뤄지던 시기의 필연적인 산물일까?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한편으로 근대 국가의 발전 과정이었고, 이는 곧 인구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 이때 재생산의 문제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그녀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근대의 법률체계가 재판 과정을 치밀하게 확립하고 개선하기 이전까지 마녀사냥은 유럽 전 지역을 휩쓸며 대략 18세기 초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렇다면 이미 17세기부터 태동했던 계몽주의가 그 자신의 빛으로 밝힌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920: 낙태법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세계 최초의 낙태법은 1920년 11월 소련에서 제정되었다. 이로서 여성에게 임신을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공표된 것이다. 반면 당시 유럽사회 전반은 과학적인 가설에 따른 ‘수정설’(이에 따르면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생명을 가진 인간의 단위로 간주할 수 있다)의 규범에 따라 낙태를 불법으로 제정하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 혁명은 여성 자신의 해방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혁명의 지도자 니콜라이 레닌은 “우리는 수백만의 여성을 우리 편에 끌어들이지 않고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없이는 공산주의 건설에 착수할 수도 없습니다.” 라고 하여 일찍이 여성의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볼셰비키들은 처음부터 여성의 해방을 위해 가족계획으로 가족의 규모를 어느 정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20년 11월 낙태법이 공포되었고 이로써 소련은 낙태를 합법화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아가 전통적 가정의 경제적 토대인 남성 상속권을 폐지한 것 또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여성 지도자인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ksandra M. Kollontai, 1872~1952)는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여러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투쟁을 지도하여 주부와 어머니로서의 틀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장수한, <그래도 희망의 역사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역사 읽기>, 신국판, 2009.)

허나 1936년부터 1955까지 소련은 다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인구 성장에 대한 스탈린의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본주의 국가들과 생산성 경쟁을 통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관철하기 위해서는 출산을 장려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과 함께 승인되었던 자궁에 대한 여성의 통제권은 국가의 목적에 의해 다시금 오랜 기간 박탈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주의적 유산은 곳곳에 남아있는데, 예컨대 북한, 중국, 몽골, 베트남, 쿠바,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 국가들은 현재 임산부의 요청시 이유를 불문하고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wikipedia, “History of abortion”, (27 September 2017, at 19:14.),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abortion#Liberalization_of_abortion_law>), 10, 30, 2017. 참조.)

1924: 다이달로스 또는 과학과 미래 Daedalus, or, Science and the Future

홀데인(J. B. S. Haldane)은 근대 초기 생물통계학을 정립하고 집단유전자학과 진화론의 수학적 이론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진화생물학자이며, 공산당원으로서 과학의 대중화 영역의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그는 이 논문에서 과학이 만들 미래로서 인공자궁의 출현을 예측한 바가 있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어 ’ecto(바깥)’와 ‘genesis(출생)’이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모체외발생(ectogenesis)이라는 과학 용어를 만들었는데, 그에 따르면, 2074년 까지는 모체 없는 인공자궁에서 출산이 일어나며, 인간 출생의 단 30%만이 자연적인 출생이 될 것이라고 한다.

1970: 성의 변증법 The Dialectic of Sex: The Case for Feminist Revolution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은 캐나다 태생의 미국의 급진적인 페미니즘 이론가로서, 최초의 급진주의 여성 그룹인 뉴욕 래디컬 우먼(New York Radical Women)등을 조직하며 급진적인 정치운동을 함께 펼쳤다. 1960-7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 제2물결 속에서 파이어스톤은 역사적으로 여성이 ‘생식’이라는 과업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인 성에 의해 차별과 압박을 받아왔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그녀는 여성이 양육과 생식으로 말미암은 성적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구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성의 변증법>에서 여성이 생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가족의 압제로부터, 공동양육을 통해 양육의 의무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파이어스톤의 주장은 이후 급진적 페미니스트 그룹 FINRRAGE(feminist international network of Resistance to reroductive and genetic engineering)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들은 재생산 신기술을 통해 재생산의 권력이 남성과학자에게 넘어가게 된다면 여성이 가졌던 어머니의 지위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특히나 체외수정과 같은 기술은 여성 신체에 대한 의학적 탈취의 치명적 발전으로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신체적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 예측했다.

1978, 7/25: 루이스 브라운 Louise Brown

영국 올덤(Oldham)의 종합병원에서 세계최초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이 제왕 절개를 통해 태어났다. 이 탄생은 유럽 전역에 생중계 되었으며, 이 아이는 12년 동안 100여 차례에 걸친 시험관 시술의 실패를 다시금 인류 생식(번식)의 희망으로 돌려주었다. 어쩌면 이 날 브라운의 탄생으로부터 우리는 동정녀 생식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당시 로마 카톨릭은 인간 생명의 인위적 생산이라는 비판과 함께 우려를 표명하였다. 아무튼 이로서 브라운의 엄마 ‘레슬리(Lesley)’의 몸은 과학이 만든 최초의 마리아의 위치로 안착하였다.

그리고 2007년, 29살의 루이스 브라운은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에 “그동안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해왔지만 이제는 단지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브라운의 아기가 최초의 시험관 아기의 2세는 아니다. 브라운의 동생 나탈리 또한 시험관으로 태어났으며, 그녀는 이미 1999년 딸을 낳았기 때문이다.(박희정, “시험관 아기 1호 “엄마 됐어요” “, <한국일보>, 2007.01.14.에서 인터뷰 인용.)

1984: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전문병원

현재 한국의 차병원그룹은 차광렬 회장이 1984년 차산부인과를 설립하며 시작되었다. 이들은 1986년 민간병원 최초 시험관아기 출산 성공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 그리드를 사용한 인간 난자의 유리화 동결 보존법 개발, 세계 최초 유리화 냉동 난자 아기 출산 등 9개의 세계 최초 기록 등을 세우며 난임 생식의학센터로서 국제적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다(차여성의학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한편 이 병원의 ‘불임치료’는 ‘여성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성별특정적인 전문성을 내세운다. 어디서 본 듯한 이 광경은 무엇일까? 어쩌면 조선시대의 치마바위는 2017년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들의 ‘불임’은 이제 치성을 드려 자연의 신비로서 낫는 것이 아니라, 불임치료에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의사의 처방으로 점지되는 것이다. 허나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재생산은 여성의 과업이며, 여성의 몸은 여전히 수많은 고통과 노고에 원천적으로 묶여있다. 한때 페미니즘이 생식과학의 발전에 걸었던 유토피아적인 기대는 진작 배반당했을지도 모르겠다.

1985: 시녀이야기 The Handmaid’s Tale

마거릿 애투드(Margaret Eleanor Atwood)의 이 소설은 21세기 중반, 전 지구적인 전쟁과 환경오염, 성병 등으로 생식능력이 떨어지며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한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 때를 틈타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한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가 일어나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데, 길리아드는 특히 여성들을 여러 계급으로 분류하고, 단순한 생식기계로 간주한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 기계가 되는 디스토피아적 소설을 집필한 애투드의 비관적인 시각은 다소 섬뜩하나, 어떤 측면에서 이미 현실이 그녀의 디스토피아를 뛰어넘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1992: 인간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men

영국의 추리소설 전문 작가였던 필리스 도러시 제임스(P.D. James)가 뜬금없이 SF소설을 발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작품이다.이 소설의 배경은 2021년의 영국이며, 그 서사는 전 인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이라는 재앙을 맞게 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 이뤄져있다. 인구 재생산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남자주인공과, 인류가 종말을 맞게 된 상황 자체에 권력을 두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부, 반정부 단체에 소속된 여성의 임신을 줄기로 전개되는 디스토피아적 소설이다.

2017: 이바타 evatar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온라인 판은 28일(현지 시간), 미국 노스 웨스턴 대학 산부인과 전문의 테리사 우드러프 박사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여성의 인공 생식기관인 ‘여성 생식 시스템 온 어 칩(female reproductive system on a chip)’ 발명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브(Eve)’와 ‘아바타(avatar)’의 합성어인 ‘이바타(Evatar)’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직사각형 상자 형태로 한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다. 이 안에는 나팔관, 자궁, 자궁경부, 난소, 간 등 살아있는 조직이 개별적으로 담긴 작은 방들이 있다. 연구팀의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들의 줄기세포로 개인별 인공 생식기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앞으로 음경과 고환으로 구성된 남성의 인공 생식 시스템 ‘듀드큐브(DudeCube)’도 제작할 계획이다. (조은아, “세계최초 인공 여성생식기관 ‘이바타’ 개발”, <동아일보>, 2017.3.30.일자.)

우리에게 생식의 과정이라는 이미지는 과학책에 나오는 수정란의 삽화, 혹은 뱃속의 태아가 자라는 초음파 사진 정도였다. 그러나 아래 사진에 보이는, 작은 플라스틱 칩으로 이루어진 이바타는 생식의 과정을 육안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생생함은 그간 여타 장비를 통해 관찰해왔던 꿈틀대는 세포 단위의 형태들을 넘어, 즉각적으로 인지될 단상들이다. 이 작은 칩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꿈꾸었던 방식으로 여성을 생식으로부터 해방하는 도구가 될까, 마리아와 치마바위의 연장에 안착하게 될까?

 

이민성은

‘여성’과 ‘해방’이라는 두 간극에서 고민하며, ’페미니즘 과학 유토피아’ 서사를 통해 여성을 둘러싼 신체적이고 물질적인 토대 위에 남겨진 ‘믿음’의 자리를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