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배드 뉴 데이즈④_장영민: 좀비가 된 몸의 시간들

2017년 11월 23일 발행

<리딩 배드 뉴 데이즈>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배드 뉴 데이즈의 크리틱 프로젝트로 11월 2일부터 12월 7일까지, 매주 목요일 크리틱-칼에 게시됩니다. 6편의 글들은 소책자로 묶여 <배드 뉴 데이즈>전시에 비치될 예정입니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일정은 해당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badnewdayz)를 통해 공지되니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장영민

거울에 비친 몸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을 위한 홍보 전단지에 으레 등장하는 문구는 대개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운동이 보약입니다’, ‘의지박약’, ‘돼지야 운동하자’, ‘지식부족으로 매번 실패를 맛보는 다이어터를 위한…’, ‘아직도 뚱뚱하고 못생기셨나요? 이젠 못생기기만 하세요!’.

자극적인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하기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몸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성장세였던 2000년대를 거쳐 하락세로 접어드는 듯했던 피트니스 산업은 이제 전문 트레이너의 1:1 혹은 그룹 지도를 통해 다시 회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그 종류와 과정을 체계화 시켜 왔다. 일이 바쁘거나 헬스장에 등록하기 귀찮은 이들은 보디빌더 및 헬스 트레이너들의 다이어트 노하우가 담긴 블로그 게시글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으며 헬스자전거를 비롯해 집에서도 운동기구를 갖춰 영상 컨텐츠와 함께 이른바 ‘홈짐’으로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 그나마 미용의 목적으로 관리되던 두툼한 살집은 이젠 성인병을 유발하는 1순위 원인으로서 늘 지목되고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지 못하는 의존적인 모습으로 여겨진다. 이는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없는 자존감 하락의 요인이 될 뿐 아니라 구직자에겐 면접에서 불리한 인상을 가져다주는데도,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느냐는 윤리적 협박으로 이어진다. 이에 예민한 이들은 어쩌다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이 들고 비위가 상해 구역질을 하며 거식과 폭식을 반복한다. 이는 예민한 성격 탓이라기 보단 신체에 각인된 사회의 흔적에 가까울 것이다. 이제 이러한 강박은 역설적으로 ‘간헐적 단식’, ‘1일 1식’ 등의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어 쿨한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저 아픈 곳 없이 생활하는 사람에게 몸짱이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탄력 있고 매끈한 근육질 몸매야말로 모두가 갖추어야 마땅할 건강함의 상징이며 몸의 쳐진 살을 잘못인양 부끄럽게 여긴다. 여기서 나는 단지 문화산업에 의해 미의 기준이 획일화되었다는 클리셰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관심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의 몸이 처해있는 조건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장영민, <54 시간>, Installation, Performance, 20min

셈해지는 신체

살을 빼려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많은 곳에서 저렴하게 2~3개월 동안 단기간으로 속성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등록하게 하고 소수 인원 지도를 홍보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는 과거처럼 단순히 시설만 크게 차리고 많은 사람들을 모으려다가 줄줄이 폐업하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센터마다 각각의 정체성을 갖추려는 전략일 테지만 어떤 점에서 신체가 사회의 요구에 적합해질 수 있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단축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벤치 프레스, 스쿼트 랙 등의 운동기구들에 이어 요가와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구비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인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여러 종류의 피트니스 센터의 광고를 번화가나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편 운동과 더불어 먹는 것에 관한 관심도 상당한데 몸속의 독소를 해독시켜 노폐물을 배출시켜준다는 물 디톡스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 블루베리 디톡스 다이어트, 1일 1식 디톡스 다이어트, 또는 덴마크 다이어트, 원푸드 다이어트, 저 인슐린 다이어트 등의 섭취 방법에 따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구획된 감량법이 제창되고 있으며 각종 보조 식품으로 효과를 본 사람들의 홍보도 넘쳐난다. 이 같이 시중에 나온 많은 프로그램들이 알려주듯이 몸 관리의 기본 사항은 음식조절과 운동이다. 잘 먹고 아프지 않는 것이 지상선으로 꼽히는 오늘날, 하루 일과 중 식사메뉴를 정하는 것이 최대의 고민거리라는 우스갯소리는 그저 농담이 아닌 듯하다. 허나 일만 하기에도 바쁜 사람들이 위 같은 사항들을 일일이 챙기기는 힘들기에 건강해지려는 욕망은 빅데이터를 통해서 이 과정을 자동화시키기에 이른다.

전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 추세와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앞서 언급했듯이 헬스케어 산업은 고속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2020년 전 세계 헬스케어 산업의 규모는 1경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1) 이는 자동차, 정보기술(IT), 조선 등 대형 산업군의 규모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크다. 헬스케어는 의료보다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건강관리와 웰니스wellness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섭취량과 운동량을 매일 기록함으로써 개인의 건강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디지털 웨어러블 단말 기반의 사물인터넷을 도입시켰다. 그 중에 피트니스 트래커Fitness Tracker라는 모델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강사가 지도해주듯이 각종 센서를 통해 생체정보를 수집하고 운동량을 측정해준다. 이것은 24시간 내내 사용자의 생체 정보를 수집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익숙하고 편리한 손목시계 형태로 제작되고 있는데 주로 길을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등의 활동량을 추적하거나 하루에 얼마나 뛰었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칼로리를 소모했는지 등의 운동 데이터를 기록한다. 그 밖에 신체 온도를 측정하거나 맥박, 혈압, 심박동, 혈당 수치 그리고 수면 주기 등을 측정하기도 하며 취침 시 뒤척이는 빈도를 기록하여 수면의 질을 분석해준다. 피트니스 트래커에서 수집되는 모든 정보는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가시화 되며 앱은 피트니스 트래커가 단순히 사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관제탑 노릇을 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요소가 신체이고 세계 경제 속에서 병과 비만이란 곧 부를 축적할 조건의 결핍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늘날 우리가 신체의 생리적 요소들을 알고자하는 것은 한편으론 당연하겠지만, 이러한 풍경은 확실히 초현실적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그저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일까? 디바이스를 통해 신체를 확장하고 관리하는 것은 무한한 자유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네트워크망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이동하기도 어려운 몸을 만들어내며 이런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기계의 부속품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는 정보 값으로 계측된 데이터가 나보다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듯한 아이러니한 상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마치 신용카드 명세서와 신용등급이 인간의 경제적 등급을 분할하듯 생체 데이터를 통해 신체가 보다 철저하게 구획된 영역에서 통제의 대상으로 되어가는 중이라는 점을 나타내지 않을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건강을 챙기는 듯이 이를 운영하지만 실상 끊임없이 자기 계발과 자기 관리를 부추기는 목적으로 스마트 기기들이 쓰인다면 어떨까?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미국의 일부 기업에서 이미 시행중인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이용한 직원 건강 챙기기 프로그램’은 어쩌면 노동자들의 일체의 생체 정보들까지도 사기업이 직접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암울한 세계를 예고하는지도 모른다.2) 그 이면에는 관리되는 사회의 심화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진짜 몸에 대한 탐닉

역설적이게도 신체가 매개되는 정도가 심화됨과 동시에 진짜 몸에 대한 열망 역시 커져간다. 각종 센서를 통해 몸의 추상적인 행위들이 낱낱이 수치화되고 데이터로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맞짝을 이뤄 저항이라도 하듯, 이제 몸의 감각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날다람쥐의 공중활강에서 착안한 윙슈트는 시속200km로 광활한 자연경관을 무대로 하강하는데 이를 즐기는 사람의 과반이상이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일발 상황을 경험했지만,3) 그들은 외려 위험을 통제하고 극복하는 신체적 쾌락으로 인해 그러한 극한적 행위를 반복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고층 빌딩들에 올라 셀프 촬영을 하고 묘기를 부리는 루프탑핑 역시 자칫 발을 헛디디면 쉽사리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이다. 앞서 말한 것보다 그나마 더 알려진 이종 격투기는 종목 간을 융합하여 과거의 많은 제한과 룰들을 최소화 시키고 글러브도 얇게 한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적나라한 육체성을 드러낸다. 얇은 반 손가락 글러브를 착용하고 뼈와 살이 뭉개지는 과정에서 피를 보며 몸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수행하면서 생생한 감각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이 행위들로부터 신체의 실존을 확인하고자 하는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즉 극도로 추상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사물처럼 다뤄지는 신체의 반대편에서, 몸에 가해지는 즉물적인 폭력과 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그 실존을 확인하고 구속감을 해소하는 신체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통제가 되지 않던 하위문화 중 하나인 뒷골목 싸움판은 최소한의 룰을 적용해 스포츠 산업의 틈새시장이었던 MMA로 상품화가 되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최근, 천문학적 대전료로 이목을 끈 복싱과 MMA를 대표하는 선수 둘이 붙었다. 서로 다른 투기 종목 간 선수들의 시합 결과는 차치하면서도 길거리에서 한판 붙는다면 실제 싸움에서 더 우월한 종목이 있다며 끝장을 보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싸우는 격투기팬들의 소동은 이들이 얼마나 실재의 것을 좇는지 증명해준다.

허나 실재의 것으로, 어떤 통제도 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내밀한 것으로 가정되는 신체는 이미 스펙터클에 잠식된 지 오래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업은 그들을 통해 회사의 도전정신을 홍보하거나 건물 상공의 우월한 뷰를 뽐낸다. 근본적인 몸 자체로 향하려는 충동은 오히려 단독성을 나타내는 환상적인 이미지로서 기업들에 의해 전유되며, 전유된 이미지들은 다시 숨 막히는 일상 밖의 출구처럼 자유로운 몸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도록 해준다. 이제 사람들은 고된 업무 강도와 하루하루 챗바퀴같은 일상을 끝내고도 쉴 시간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체육관에 가서 감량을 하거나 몸을 조각하고 즉자적인 폭력과 생생한 것처럼 여겨지는 감각들에 더더욱 매료된다. 이것은 미약한 실존과 생기를 느끼며 온종일의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나서야 그나마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사막과도 같은 몸의 우울한 숙명이다.

포획된 몸

한편 많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근대 이래로 심화된 이성중심주의가 정신과 이분법적으로 대척되는 껍데기로서 몸을 다루어왔음을 성토했다. 이 속에서 정신의 학문을 대표하는 수학과 기하학과는 달리 몸의 감각은 항상 왜곡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을 통해 지배해야 할 공간이나 기계처럼 여겨져 왔고, 이렇게 이성과 야만이라는 모순적인 두 얼굴을 가진 계몽의 역사는 법원과 경찰, 병원, 감옥 그리고 학교 등의 국가권력기관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연장에서, 20세기에 들어 권력은 직접적인 기관과 체제로부터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모세혈관처럼 우리 몸에 낱낱이 작용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미시적 수준에서부터 존재한다는 점이 폭로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훈육과 규율의 대상으로서의 신체가 탐구되고 해명된 이후로 신체를 저항의 장소로서 상정한 기획들이 범람해왔다. 다시 말해 신체성과 감각은 이성의 수동적 대상의 위상에서 격상되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자 자유를 위한 새로운 문으로서 여겨진 것이다. 이 속에선 몸이야 말로 감각과 직관의 총체이며 잊고 지냈던 올바른 실체인 것으로 기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포스트구조주의와 신좌파 운동, 마약과 섹스를 신봉했던 히피를 비롯한 68운동의 쾌락주의적 경향은 이 지점에서 느슨한 협의를 이뤘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한편 1960년대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신체를 통한 경험적 측면에서, 즉 일상생활의 측면에서 도시적 감각과 그 풍경들을 규탄하고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성에 대한 비판을 행했다. 요컨대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균질한 풍경에 충격을 주기 위해 전복적 상황을 구축함으로써 일상생활을 비판하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소비주의 생활방식의 대안을 기획한 것이다. 상황주의자들은 예술적 수단을 통해 진정한 욕망을 실현하기 적합한 환경을 창조하는 것을 ‘상황의 구축’이라 불렀다. 속된 말로 한량이라 부를 수 있는 산보객flaneur은 표류derive를 통해 자신들의 기획이 가질 수 있는 전복적인 측면을 강조하는데, 이는 도시 속에서의 방황을 통해 환경 전체가 수행자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재코드화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평소에 다니던 고정된 루트에서 이탈함으로써 도시를 비일상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경험함으로써 주어진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이 연장에서 그들은 대중문화의 광고나 매체를 변용detourement하여 지배문화의 요소를 탈 가치화한 후 혁명적 목적을 위해 그것을 재가치화 하는 것을 상황주의적 사용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68운동의 자유주의적 경향이 암묵적으로 가정했던- 해방의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신체가 가능하던 때는 지난 지 오래다. 과거의 억압은 자유를 부르짖게 하던 힘이었지만 오늘날의 억압은 억압하지 않은 채 억압한다. 자유를 위해 저항했던 이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들의 유산인 표류와 변용은 체제 유지의 요소로 흡수되어 장려되는 국면에 이르렀다. ‘젊을 때 반항하고 엇나가며 많은 실패를 해봐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처럼, 오늘날엔 학교에서부터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강요하는 다양한 체험학습들을 권장하며, 이미 여러 기업들에 의해 철저히 개발된 경험들이 전례 없이 심화되었다. 소비자에게 유일무이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산업의 주요 목표가 되는 추세라고 강변하는- 경험경제를 둘러싼 담론들은 이러한 심증에 확신을 굳혀준다. 더욱이 그들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 외치던 ‘변화’는 상품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되어 이젠 시장 뿐 아니라 개인의 스펙competence으로 등급이 나뉘어 평가되는데, 다각도로 상황에 적응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처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며 도태되는 것이다. 섹스를 허가하라는 과거의 발칙한 구호는 의무가 되어 더 이상 금기시 되었던 가장 내밀한 생리적 쾌락이 아니라,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로서 강조된다. 그 맞은편에선 이에 지쳐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으려는 금욕주의적 전환이 이뤄지며, 섹스리스 커플의 비율은 매년 높아져 간다.4)

저항하는 몸

그렇다면 신체를 포기하고 일체의 경험적 계기들에 희망을 거는 일에 냉소를 보내야 할까? 신체가 포획되고 점차 고도로 정밀한 기술들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 신체의 단독적 실체성이라는 환상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몸과 그 경험을 폐기해야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신체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직되게끔 하는 조건들을 탐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시금 신체를 유일하고 충만한 경험의 장소로 되살려야 한다. 그것만이 완전한 거부를 택함으로써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속세와 단절하고 산속에 들어가 현존을 회복하거나, 고통과 쾌락을 통해 신체의 극한에 천착하여 실존을 승인받는 듯한 가짜 처방들과 달리, 몸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신체의 각 부분들에서부터 세포 하나하나마저도 잠식된 상황이 문제를 미궁처럼 꼬아 놓는 듯하지만, 나는 그 실마리 중 하나가 집합적 몸의 시간을 회복하는 것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별적 신체에 가해지는 통제와 계측, 자본에 의해 제작되고 구획된 경험을 지양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집합적인 신체들의 경험이며, 그것은 여전히 실낱같이 신체에 남아있는 불복종의 가능성이다. 예컨대 우리는 몸을 둘러싼 상상력들을 키워 질서를 제정하는 광장의 몸, 점거하고 연대하는 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축적하여 분류하는 처리의 알고리즘을 민주화하고 소수의 대기업이 점유하는 네트워크 플랫폼을 재사회화하거나, 더 나은 매개를 통한 경험을 누리는 등의 일은 그러한 집단적 신체가 자기를 조직하는 시간의 절대 값과 비례할 것이다.

장영민은

신체성과 경험이 조직되고 사유되는 방식들에 관심을 두고있다. 퍼포먼스가 동시대 미술뿐 아니라 사회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며 효율적인 수행성을 나타내는 척도로서 불릴 때, 몸은 어떻게 포획되는지 탐구한다. 가상화된 몸과 진짜 몸이라는 모순을 몸소 체험해가며 작업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참고자료

1) Rebecca George, “2017 Global health care sector outlook”, <Deloitte>, 2017.

2) Ivan Manokha, “Why the rise of wearable tech to monitor employees is worrying”, <INDEPENDENT>, Wednesday 4 January 2017 11:05 GMT.

3) Mei-Dan O, Carmont MR, Monasterio E, “The epidemiology of severe and catastrophic injuries in BASE jumping.”, <NCBI>, 2012.

4) Lucas de Jong, “Modern life ‘turning people off sex’”, <BBC>, 26 Nov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