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배드 뉴 데이즈⑥_김나영: 여행자가 여행을 마치고 보는 시간의 풍경

2017년 12월 5일 발행

<리딩 배드 뉴 데이즈>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배드 뉴 데이즈의 크리틱 프로젝트로 11월 2일부터 12월 7일까지, 매주 목요일 크리틱-칼에 게시됩니다. 6편의 글들은 소책자로 묶여 <배드 뉴 데이즈>전시에 비치될 예정입니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일정은 해당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badnewdayz)를 통해 공지되니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리딩 배드 뉴 데이즈⑥

여행자가 여행을 마치고 보는 시간의 풍경

글: 김나영

몇 년 전부터 매해 여름에 경주에 간다. 그 곳에서 옛날 왕들의 무덤들을 보고, 적당히 보수되고 적당히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들을 보곤 한다. 나에게 이 여행은 혼자 수학여행을 가는 심산으로 매년마다 치르는 일종의 행사 같은 것이다. 대형 유스 호스텔과 넓은 주차장에 줄줄이 서있는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내리는 친구들, 두어 시간 후에 매표소 앞에서 모이자는 선생님처럼 주로 앞사람의 뒤통수를 재촉하는 발걸음이 떠오른다. 학창시절에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에 대한 인상과는 달리, 나중에 혼자 여행을 간 경주에서 느낀 건 시간을 여행한다는 느낌이었다. 현재로부터 먼 시간의 흔적들이 경주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 ㅣ 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노라

‘나라의 흥함과 망함이 운수에 달려 있으니

멸망한 고려 왕궁 터인 만월대도 쓸쓸히 가을 풀에 덮여 황폐했구나.

고려 오백 년의 왕조 업적은 이젠 한낱 목동이 우는 구슬픈 가락에나 담겨 불리고 있으니,

해지는 저녁녘에 이곳을 지나가는 길손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구나.’1)

시조 <흥망이 유수하니>의 지은이 원천석은 멸망한 고려 왕조를 그리워하며 옛 도읍지를 찾아갔다. 옛날 호화롭던 왕궁 터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우거졌고, 목동의 피리소리만이 망한 국가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 덧없음과 망국의 슬픔에 젖은 애상을 읊은 것이다. 예로부터 폐허를 찾아가 애잔한 시를 한수 읊는 것은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문학의 소재였다. 멸망한 장소들이 주는 감각은 ‘애상‘이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현재에서 과거의 흔적을 내다보는 느낌이 퍽 쓸쓸하면서 예상치 못한 울림을 줄 때도 있고, 오직 풍경만으로 시간에 대한 성찰을 하기에는 텅 빈 유적지만큼 좋은 곳이 없다.

일 년 전, 나는 짧은 홍콩 여행을 계획했었다. 여행의 목적은 구룡성채가 있었던 터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구룡성채는 홍콩의 주거 밀집 단지로, 홍콩이 영국령이었을 때 양 국가 모두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 특수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가는 월경지로서 무허가 건축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빈민촌과 치외법권 지대가 형성된 곳인데, 시루떡처럼 층층이, 켜켜이 쌓여져 있는 그곳은 한때 평 방당 인구밀집도가 세계 최고에 달했었고 어두컴컴한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어 입구와 출구를 알 수 없는 사이버 펑크물의 배경이 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김나영, <부루마불>, 1ch video, 8 min

그러나 구룡성채의 터는 입구 정도만 조금 남아있고, 나머지는 1987년부터 6년에 걸쳐 다 헐려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공원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악하게 재현해놓은 구룡성채의 미니어쳐 뿐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여행의 결심은 공중으로 흐지부지 흩어졌다. 나는 원천석의 마음으로,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장소의 멸망 앞에서 피리라도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구룡성채는 장소자체로도 그 곳에 갈 원동력이 되는 곳이었지만 구룡성채에 매료되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더 있었다. 사실 폐허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묵시록적 시간은 내가 경주여행에서 본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풍경을 보는 것과는 제법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구룡성채가 풍기는 세기말 분위기에 휩싸여 멜랑콜리를 느끼는 동시에, 그곳이 재현하는 폐허의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묘한 쾌감을 탐닉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스틸컷_구룡성채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됐다

사이버 펑크 장르와 폐허의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은 멸망한 장소를 좋아하는 내 취향의 연장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속에선 낮이 찾아오지 않는 대도시에 빼곡한 마천루, 동양풍의 광고가 3D 홀로그램으로 나오고 있고, 거리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모노레일이나 자기부상열차가 종횡으로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다. 최근에 개봉한 어느 SF영화에서도 미래의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을 묘사하는 방식은 위 풍경을 복사해서 붙여 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사실 이런 사이버 펑크 이미지들은 클리셰가 된지 오래다. 사이버 펑크 장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AKIRA>, <공각기동대>에서 다뤄지는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암울한 묵시록들이다. 이 장르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건 1980~90년대로, 주로 세기 말 때이다. 막상 실제로 찾아온 미래는 그동안 우리가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시시했기 때문일까. 세기말 시대의 케케묵은 사이버 펑크는 2017년에도 여전히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로 귀환하는 듯하다.

폐허나 파국의 심상이 객관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현재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에 대한 상상이 종말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연원하는 게 아닐까. 어떤 측면에서, 파국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지우고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열어보여 주기 때문이다. 미래를 상상할 수 없을 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파국을 상상하는 것이니 말이다. 모든 것이 다 폐허가 되어버린 터, 모든 것이 멸망하는 결말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파국적 이미지들은 확실히 그 자체로 매혹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폐허의 이미지를 취향 하는 내 열정이 식어버렸다. 모든 게 불가능해져버린 폐허의 잔해들 속에서 리셋만이 답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의 기능은 우리를 도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무지 그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다시 말해 역사성이나 미래가 없는 비유토피아적 현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갇혀있는 체계의 폐쇄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2)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처럼, 유토피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라기보다 거울처럼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부정적인 방식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폐허, 파국을 소비하고 있는 징후에 주목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 징후들이 미래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현재의 맥을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현상들을 더듬어보고 뜯어보면서 현재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반추해 본다. 그 다음에 어느 지면에 발을 디뎌야 할지의 몫은 온전히 내 몫이다.

어쩌면 고집스레 과거의 유물들과 폐허가 된 역사의 잔해들을 찾고자 했던 것은, 변화의 시간을 감지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시간적 흐름의 티끌이나마 확인하고 싶었던 퇴행적인 몸짓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주에서 옛날 유적지들을 보며 풍경에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현재에서 과거를 내다보며 넋을 놓기 위함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찾기 위한 시도가 되어야했다. 그 풍경 자체가 현재의 시간이고, 과거의 시간이 도달하길 기다렸던 미래였던 것처럼 말이다.

김나영은

공간에서 공간으로 움직이는 행위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의 풍경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작업으로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역사와 기억에 서로 영향을 주며, 장소의 시간 복원 가능성을 실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My own castle>(2016) 이 있다.


1) 시조 <흥망이 유수하니>, 원천석

2) 프레드릭 제임슨, “유토피아의 정치학”, 백승욱, 진태원, 홍기빈 편, <뉴레프트리뷰>, 김철효, 신현욱, 정병선, 정재원, 홍기빈 역, 길, 2010(2), pp.352-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