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균_혼종적 공동체와 타인의 얼굴 – 조은지 개인전: 두 지구 사이에서 춤추기

윤태균 타자와 공동체 타자성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타자성은 절대적인 특성이 아니다. 라캉의 편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상징계로의 진입과 동시에 그에 대한 반정립으로 발생한다. 비-자아로서의 타자성인 것이다. 이때 주체가 자기-타자, 나-너를 구분짓는 기준은 자아와 함께 형성된 상상적-상징적 두 세계의 실금일 뿐이다. 하지만 상상계적 타자가 아닌 존재하는 ‘타자‘는 우리의 외부에 명료하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

조재연_김학량 개인전 ‘바다와 나비’ 리뷰: 바다 알러지 잠수함

조재연(미학) 1 엄마는 기다리라는 말을 많이 했다. 세상의 어른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다음에’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럼 나는 시계 앞으로 가, 시곗바늘만 빤하게 쳐다보았다. 째깍째깍 뚝뚝 끊어지며 가는 초침보다는 친구 집에서 본 부드럽게 움직이는 초침의 시계가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집에는 그런 시계가 없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시계를 »

이민주_‘먹방(Mukbang)’에서 충동과 욕망의 문제

이민주 먹을 것은 늘 가장 큰 화두다. ‘맛집’따라 정해지는 행선지와 요리법, 먹는 방법 등 식사에 관한 예절로 인간의 행동양식이 규격화되는 정황을 보면, 인간에게 음식은 단지 영양 공급의 수단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가치, 혹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굶주리고 있다는 건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며, 인간의 경제적 지표가 »

김은호_영화 기생충 리뷰: 침팬지를 그린거죠? 아뇨 자화상이에요.

김은호 이제 와서 다시 영화 기생충에 대해 글을 쓰려는 이유는 오히려 필자가 이 영화를 관람했던 때보다 지금 더 이 영화에 대한 말들이 많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다시 비평하기에 앞서 참고해야 할 여러 요소들이 있다. 이 영화가 최근에 각종 영화제에서 이룬 쾌거와 국내 코로나 사태를 비유적으로 풍자하는 »

조재연_주신 게 허무라니요┃서찬석 개인전 ‘오류를 지나’

조재연(미학) 1 몸을 기울이다 결국 불에 닿은 것처럼 혹은 누가 모르게 얼음을 등 뒤에 넣은 것처럼 느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따위의 말을 들을 때면. 당신은 나에게 그렇게 의미에 관해 묻곤 했다. 그것은 얼마만큼의 화폐를 벌 수 있는지와 어느 정도의 쓸모를 가질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아주 상냥한 물음에 속한 것이었고, 좁은 »

홍승택_라캉 돌려 말하기

홍승택 “분석 경험에 관한 보고서에 합당한 문체가 이론의 모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체가 언표들-분석 경험은 이에 따라 운용된다-이 은유 효과와 환유 효과, 즉 우리 주장에 따르면 프로이트에 의해 무의식의 메커니즘으로 기술된 메커니즘이 실현되도록 해주는 언표 행위의 뒷걸음을 자기 안에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한다.”1) 돌려 말하기란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숨기고, »

전대한_그럼 저는 갓난아이인가요?

전대한(대중음악비평) 재미공작소에서 펴낸 책 『씬의 아이들』의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홍대-인디-씬’을 보고 꿈을 키웠고, ‘씬’ 안에서 성장했으며,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5명의 이야기를 에세이와 인터뷰로 엮은 책”이다. 나는 이러한 『씬의 아이들』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 음악가(몬구, 연진, 전자양)와의 인터뷰나 한 비평가(김윤하)와 한 기획자(하박국)의 에세이는 아마 누군가에게는 이미 »

Mark Fisher_뱀파이어 성에서 탈출하기

글: 마크 피셔(Mark Fisher) 번역: 이여로 올여름,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했다. 과로에서 오는 탈진으로 생산적 활동이 불가능했던 나는, 늘어나는 피로와 우울 속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표류하고 있었다. ‘좌익(Left-wing)’ 트위터는 종종 비참하고 낙심한 지역(zone)일 수 있다. 올해 초 트위터에서는 몇 가지 이슈가 큰 화제였는데, 좌파(left)로 인식되는 사람들 몇몇이 ‘호명’ »

박시내_광장에 대한 단상: 뒷면에 대해 이야기하기

글: 박시내     조슈아 웡은 홍콩의 민주화에 대한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무지에 호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따금 1980년의 광주와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곤 한다. (가끔 그 레파토리는 16년도 겨울의 촛불시위까지 나아간다) 더 구체적으로 그가 언급하는 것은 <1987>영화이다. 1987년의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홍콩 사람들이 이번 시위를 준비하는 데 있어 큰 »

김동균_배너(banner), 복수의 화신

작가 이현호에 대한 비평과 그의 2019년 개인전에 부치는 글 B 글: 김동균(작가)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들, 그 옆을 일렬로 메운 가로수, 전봇대 따위에 버젓이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보인다. 선착순 특별분양, 명품아파트, 350세대, 프리미엄을 누려라…같은 무미한 문구들. 불법이기 때문에 적발되거나 신고가 접수되는 대로 잘려 없어지는 출력물의 무기력한 말로는 어쩌면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 »

김동균_이지부스트(easy-boost)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화가

작가 이현호에 대한 비평과 그의 2019년 개인전에 부치는 글 글: 김동균(작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별명인 ‘yeezy’. 이 별칭에 예수를 뜻하는 ‘jesus’를 섞어 ‘yeezus’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던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전세계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뮤지션이자 셀러브리티이다. 2009년, 그는 나이키(nike)와 협업해 만든 이지 에어(yeezy air)라는 스니커즈 시리즈를 출시한다. 이 이름 »

안준형_게임의 정치성을 생각하기: 미술 이야기도 함

글: 안준형 키워드: 게임, 재현, 가상,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 GTA, 콜 오브 듀티, 사이버펑크2077, 강정석, 김희천, 정여름, 블리자드 홍콩사태, 몰입, 능동성 게임 디자이너 ‘로버트 쿠르비츠’는 소설이 더이상 청년을 반항적이게 만들 힘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청년을 반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게임을 만든다고까지 주장한다.1) 그의 말처럼 요즘은 더이상 청년을 반항적이게 만들고, 독자의 의식을 »

권태현_양윤화 ‘두 개의 터널을 지나서 본 태양 그 옆에 쌍무지개’ 리뷰: 움직임의 영도

글: 권태현(미술비평) 양윤화가 이번에 엮어낸 작업들은 하나의 시도에서 출발한다. ‘엄마’라는 낱말의 뜻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읽어보는 것이다. 그는 ‘엄마’라는 글자를 내려놓고 “제로 직진 아니면 좌회전 가로로 긴 창문 세로로 긴 창문 다시 직진 아니면 우회전”이라고 읽는다. 아니, 본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나도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먼저 ‘엄마’라고 써놓고 »

강보원·이여로_긴 끈을 위한 주석

최대한 익명의 움직임에 의한 책 강보원 (문학평론가) 오규원은 『현대시작법』의 초반부에서 “시는 공적 언술이다”라고 쓴다. 그 책에는 시에 대해 또 다른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문장이 그 책을 요약하는 하나의 문장이며, 또 시의 조건과 한계와 가능성 전체를 요약하는 바로 그 문장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시가 공적 언술이라는 말 자체는 »

이종찬_ 바른쪽 가슴에 평화의 조각을: 신동엽 文人史 기획전 ‘때는 와요’

이종찬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신동엽이 있다.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그것은 바깥으로 향한 외향성의 목소리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다른 한편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때는 와요”라며 목소리를 낮춘 또 하나의 신동엽이 있다. 유작 「좋은 언어」의 신동엽, 그것은 안으로 향한 내향성의 목소리였다. 우리에게는 낯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