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_이재석 작가 비평 : 조립된 현실의 이질감과 상흔의 도상

오정은 이재석(b.1989)의 회화를 보고 우리 몸 안에 분절되고 접합되어 있는 생리 구조를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특별히 매번 의식하지는 않고 살아가는 인체 역학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도록 한다. 군대에서 사고로 발목을 다쳤던 작가는 조각난 뼈에 보철물을 삽입하고 나사로 박는 수술을 했던 경험, 당시 겪었던 신체 내부의 이질감, 통치적인 »

홍준영_의사가 치료하지 않을 때 : ‘검찰관’과 문학의 임무

홍준영  의사는 치료하지 않는다. “자연 상태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치료에 더 좋다는 것이죠. 값비싼 약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단순해서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기 마련이고, 나을 사람은 낫기 마련이니까요.” 판사는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난 벌써 십오 년 동안이나 재판석에 앉아 있지만, 서류만 들여다보면 골치가 아파서 두 손을 내저을 수밖에 없다고. 그 서류에서 »

시원한 형_‘활동형 니트’를 통해 보는 부캐 담론이 지닌 위험과 한계

‘활동형 니트’1)를 통해 보는 부캐 담론이 지닌 위험과 한계 시원한 형 ‘사회비행자’2)에서는 니트(NEET) 담론이 가진 한계(니트 문제를 노력이나 의지 부족, 성격 등의 개인의 문제로 한정)를 지적하기 위해 ‘활동형 니트’3)라는 개념을 창출해 냈다. 활동형 니트란 쉽게 설명해서 ‘일하는 백수’이다. 일하는 백수라니 모순적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자율적이거나 공공적인 일, 혹은 그 »

안준형_오픈월드 게임에서 슬라임 잡는 asmr을 듣는다

안준형 ‘샌드박스‘라 불리우는 독특한 게임 장르가 있다. 샌드박스(sand bax)란 말 그대로 ’모래 상자’, 우리들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모래성 쌓기 놀이’가 어원이 된 말로, 어린아이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모래사장 위에서 그저 자유롭게 모래성을 쌓고 부수며 유희하는 것처럼, 샌드박스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또한 자유롭게 주어진 게임 공간 내에서 자율적으로 유희하는 것을 원리로 한다. 그와 같은 플레이어의 게임 속 자유를 위해 샌드박스 »

Elaine Showalter_베일, 그리고 여성

글: Elaine Showalter 번역: 양지민 ‘가려진 여성(The veiled woman)’은 19세기 말의 데카당파의 예술가들과 문학, 정신 분석 및 철학, 그리고 시네마적 맥락에서 ‘베일’이라는 주제가 지니는 시학을 연구하던 이들에게 다양한 뉘앙스와 의미를 지녔다.[1] 베일과 여성성, 이 두 요소를 연관시켰던 이유는 무엇인가? 관능적인 이 동상은 19세기 Paris Medical Faculty 건물의 복도에서 의료·과학의 비전을 »

Erika Balsom_여성적 응시를 찾아서

글: Erika Balsom 번역: 이광호 밋지(Midge)가 안경을 쓰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에서, 바바라 벨 게디스의 캐릭터는 지적이며, 그래서 남자 주인공 스코티(제임스 스튜어트)에게서 절대 로맨틱한 관심을 이끌 수 없는 여성이다. 그 역할은 회색 정장을 입은 스핑크스와 같은 매들린(킴 노박)에게 주어진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 속 마릴린 먼로를 빌리자면, 고전 할리우드 »

조한울_미술노동자와 비엔날레

조한울 올해 4월 1일에 개막하여 치러진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두 번의 전시 연기 등 우여곡절 속에 개최되었고, 기존에 비해 단축된 전시 기간 탓에 일찍 폐막하였다. 여느 행사와 마찬가지로, 전시 결과에 대한 평가나 전시 관련 소개는 여러 매체, 전문가, 개인 관람객을 통해 다양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광주비엔날레가 생산한 결과물에 대한 논의가 »

안준형_게임의 물리적 인터페이스에 따른 게임적 체험의 이야기들: 컨트롤러, VR 그리고 뉴럴링크?

안준형 인터페이스는 사람과 기기 사이의 경계면을 의미한다. 이 경계면의 형태, 이른바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기기가 작용하는 복잡한 원리에 사람이 조작을 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허용치를 알기 쉽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시각적 인터페이스’와 ‘물리적 인터페이스’로 나뉘어 나타난다. ‘시각적 인터페이스’는 스크린 상에서 재생되는 게임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시각 정보상의 구성 및 배치를 비롯한 시각적 디자인 전반으로 이해할 »

정강산_지성계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증상으로서의 김지훈

정강산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푸른 것은 삶의 황금 나무라네” -J. W. 괴테 “(…)비평가의 주된 임무는 대중의 문화적 해방에 참여하는 것이다(…)” -T. F. 이글턴 무주공산으로서의 미술 혹은 간/탈 학제의 보루 70년대 이후 미술은 간 학제의 원류와도 같았다. 그것은 작품생산에서부터 작품분석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관측되는 것이었다. 요컨대 작가는 이런 저런 »

이이환_풍선 같은 대중문화 속 쓰디쓴 비체의 탐정 게임: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의 ‘언더 더 실버 레이크’

이이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The tragedy of your times, my young friends, is that you may get exactly what you want. – 밥 라펠슨, <헤드> (1968)”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의 2018년작 <언더 더 실버 레이크>는 감독의 전작하고 이질적인 영화다. <아메리칸 슬립오버>나 <팔로우>에서 미첼은 미시건 주 교외의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하지만 <언더 더 »

홍태림_백색검열에 대한 입장문

이 글은 PONG과 크리틱-칼에 동시에 게시된 엄제현 님의 글 <백색검열>에 대한 크리틱-칼 발행인 홍태림의 입장문입니다. 엄제현 님의 글 <19) 망가F타로의 죄와 벌 독해>와 관련하여 저에게 지적해 주신 3가지 측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을 드립니다. 또한 답과 함께 차후 크리틱-칼의 운영계획도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1. 저작권 문제와 관련한 도판 삭제 도판 저작권 »

엄제현_백색검열

엄제현 *이 글은 웹진 PONG에 게시된 글을 재게재한 것입니다. 눈엣가시가 최상의 확대경이다. ─테어도어 아도르노─   글쓰기가 자신의 존재를 건 투쟁을 역사 내내 지속하는 동안, 검열은 한켠에 도사린 채 호시탐탐 글쓰기를 베어 먹으려 했다. 소음 없는 세계를 향유하려는 욕망은 검열로 둔갑해 초인종을 누른다. 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인가? 당신이 속한 »

조남혁_도시 경관과 보행자

조남혁 공업 풍경은 도시 외곽에 있다. 중심가에서부터 밖으로 난 길목엔 벗겨진 페인트와 바닥에 둔 파이프, 알 수 없는 공업재가 목격된다. 공장이 쏟는 이미지다. 도시의 정돈된 이미지에 비해 날것이다. 공업 이미지는 음산한 풍광이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도시 미학은 보편적으로 수용된다. 문래동의 철공단지, 공업재들 사이엔 개인 사업장 카페가 있다. 대체로 이들 카페는 매뉴얼로 »

오혁진_침묵의 장르, 워드리스노블

오혁진(만화 평론가) 그래픽노블의 기원으로 알려진 ‘워드리스노블(Wordless novel)’은 글 없는 목판화 이미지로 구성된 이야기다. 20세기 초에 등장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이 형식은 만화의 잃어버린 고리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70년대 워드리스노블은 새로이 복권되는데, 윌 아이스너를 포함한 그래픽노블 작가들이 책의 물성과 진지한 주제에 주목해 워드리스노블을 만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

윤아랑_자신을 자신하지 않으면서 자신하기

윤아랑 아래는 지난 2020년 8월 27일에  “작가이면서 인플루언서이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한편》 2호 연계 온라인 북토크를 위해 준비한 메모들을 어느 지인의 요청에 따라 하나의 글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엔 북토크 당시엔 시간 상의 문제로 생략되거나, 반대로 즉흥적으로 내뱉은 몇몇 말들을 추가했다.   오늘 토크를 준비하며 《한편》 측에서 제안한 주제가 “작가이면서 인플루언서이기”인데요, 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