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균: 우리는 디지털 양의 꿈을 꾸는가? : 펜데믹과 디지털 리터러시 그리고 웹 전시

윤태균 (예술학) 1. 지금은 ‘코로나-이후’인가? 이전의 모더니즘은 스스로의 가치를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것에 두었다. 모더니즘의 지향성은 과거에 대한 성찰이 아닌 미래와 예술에 있었다. 미래주의와 모더니즘에서 보이듯, 미래는 모더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쫓아야 할 종착지였던 것이다.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와의 연계점을 찾는 모더니즘의 시도들은 자신의 시간을 곧 서술될 역사의 한 부분에 배치하고자 했다. »

조재연_기억을 딛고 얻은 망각_남지연: Story(story)story))

1 기억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흐르는 구름과, 눈을 껌뻑일 때마다 쏟아지지 못해 기우는 달이 있는 밤들이라면 망각은 기억을 쉬이 앞질러 갈 터였다. 그러고도 믿지 못하여 낡은 서랍 깊숙이 넣은 사진을 조각조각 내어 버렸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숨이 남아있을지 모를 심장을 태우는 일이었다. 심장 타는 냄새가 새벽 »

엄제현_거식증을 앓는 세계

엄제현 먹방의 범람은 어떤 사회적 징후일까? 단지 구강기적 시기로의 퇴행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퇴행은 결과적인 표현태이지 그것을 초래하는 원인이라 볼 수 없으니까. 먹는다는 행위는 개체의 생식을 넘어선 범주로, 청소년기에 흔히 있는 단식투쟁이 이를 뒷받침할 예랄 수 있다. 얼핏 보기에 단식을 통한 부모에 대한 반항은 그들을 직접 겨냥하지 »

서운_오민수 개인전 ‘전기는 흐른다’ 관람기: 불투명한 소음을 통해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서운 예측 가능한 사실이 다가오고 있다. 예측이 실현되는 순간 예측은 사라지고 현실로 다가오는 공포가 있다. 그것이 어떤 절망의 한 조각일 수 있고 어둠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죽음에 집중하는 고통을 짐작하기 어렵다. 특히, 그것이 보이는 현실 공간에서는 고통이 희석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노동의 신성함을 주장하지만 숨어 있는 노동자의 »

박동수_영화와 게임의 스침: 영화적 체험과 게임적 체험의 교환 가능성

박동수   2019년 최고의 영화를 묻는 『인디와이어』의 설문에서 루카 구아다니노는 코지마 히데오의 콘솔게임 [데스 스트랜딩]을 꼽았다. 같은 설문에서 봉준호가 데이빗 핀처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헌터> 시즌2를 꼽은 것처럼, 게임이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와 게임(여기서 게임은 PC 및 콘솔게임으로 한정한다)의 관계는 점점 영화와 »

김선호_페드로 코스타를 보며 유아사마사아키를 떠올리다

김선호(만화평론가) 유아사마사아키의<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영화는 페드로 코스타의 <용암의 집>이었다. 그 이후에는 곤 사토시의 <천년여우>가 떠올랐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이것들은 본능적이고 시원적(始原的)이라는 점에서 정합하는 부분이 있다. 먼저 포르투갈의 명장에 대해 말해보자. 우리가 알다시피 페드로 코스타는 <용암의 집>의 도입부에 ‘솟구치는 용암’을 정말로 보여주었다는 실수*를 저질렀다.(*마노엘드올리베이라.) 물론 »

강보원_아주 조금 있는 문학

강보원(문학평론) 1. 데리다는 한 텍스트에서 “문학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조금 있다”1)고 쓴다. 데리다가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썼는지와는 별개로, 이 말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 문장에서 그가 문학의 정의를 양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 특히 가시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대상을 양적으로 표현할 때 생기는 이점은 그것을 실제로 눈에 보이고 공간을 »

크리스토프 타르코스 인터뷰: 두 태어난

번역: 홍승택 버트란드 버디에가 크리스토프 타르코스를 인터뷰하다. 1996년 11월 3일-파리 13구 버트란드 버디에(이하 버디에): 당신의 최근 글, 행동시학에 있는 하나, 니오크에 있는 다른 하나, 두 개의 글은 당신의 발전을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그래』의 독해를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그래』를 시작하는 “바깥의 시” 안에 있는 “말반죽의 이론”에 관해서요. 크리스토프 »

조재연_실수가 개와 늑대의 시간┃김학량: 벽화

조재연(미학) 1 말해져 왔듯이,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현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존재는 삶도 사유도 함유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들은 어긋나지 않지만 살아있는 것들이라면 도무지 어긋나게 된다. 주어진 세상의 형편과 질서를 따를 때 그는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 흐르는 것이라면 고랑을 따라갈 것임을 알고, 만유에 해당된다면 인력에 끌릴 것을 »

박동수_‘퀴어한 신체’의 불완전한 계보┃정은영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박동수 지난 5월 8일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귀국전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가 열렸다. 전시에는 남화연, 제인 진 카이젠, 정은영 작가의 작품이 선보였다. 세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은영 작가의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이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여성국극(女性國劇) »

마이너리그 리포트 : 작가 희키를 만나다

인터뷰를 기념해 희키 작가에게 짤막한 축전을 부탁했다. 그림의 제목은 <숲속 친구들과 참치>이다. 그렇다면 ‘숲속친구들’이란 무엇인가. 희키 작가의 단편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본래 정확한 명칭이 없었지만, 작품이 주는 교훈을 따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어대는 군중’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물론 이는 필명인 ‘숲속의 참치’와는 무관하다. 다만 ‘숲속’이라는 키워드는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염두에 »

김지율_토마스 루프 작가론: 암실을 벗어나 웹(Web)으로, 사진 너머의 사진을 향하여

글: 김지율 이미지와 사운드가 있다. 이것은 픽셀과 주파수로 구성되며, 다시 한 번 0과 1로 분해된다. 형태를 해체하여 들어간 가장 안쪽에서 우리는 0과 1이라는 단순한 부호를 마주한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작은 부호들을 추적함으로써 큰 세계를 읽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토마스 루프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실의 다층적 구조를 파악한다. 현재 뒤셀도르프에 »

김선호_카연갤에 올라오는 자전적인 만화에 대한 고찰

김선호(만화평론가)  1. 작가 지망생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아마도 입봉이다. 대학원생에게 졸업논문이 연구자로서의 첫 발걸음을 뜻하듯이, 작가에게 입봉작이란 앞으로의 자신을 어느 정도 예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입봉작은 신중하게,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게 옳다. 하지만 당장 살아가는 게 고달픈데 어찌 먹이를 가릴 수 있을까. 많은 작가들이 그런 고민에 빠진다. 소위 말하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

윤태균_새로운 비평형식을 위한 몇 가지 서술

윤태균 1. 혹자가 비평의 위기를 말할 때 나는 비평의 해체를 제안한다. 2. 비평의 위기라는, 다소 긴박해 보이는 이 상황은 지난 수년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이것은 비평만의 위기라기 보다는 비평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 조건의 위기이다. 이제는 너무나도 진부해진 이 위기라는 상황에는, 당연하게도 미술계 내부의 제도적인 측면, 미술 경험방식의 변화, 대중의 비평 수용 »

정민재_영화적 충돌에 관하여: 바이올렛 에버가든 외전: 영원과 자동수기인형

정민재 ▽▽영화적 체험에 관해서—그것이 지면에 올라가는 한 편의 글이든, 아니면 신문에 올라가는 짧은 글이든, 그것도 아니면 한 권 분량의 책이든 상관없이—글로 서술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영화적 체험 그 자체가, 다시 말해서 내가 무엇을 영화 속에서 체험했는지를 서술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즉, 영화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