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민중미술과 기독교에 대한 소고

2018년 6월 10일 발행

홍태림(미술비평, 크리틱-칼 발행인)

한반도에서 기독교는 1880년대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후로 지배층으로부터 억압받는 민중에게 위로와 해방의 기운을 불어넣어왔다. 이를테면 일제강점기에 독립선언문에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은 개신교 목사였으며1) 시장세 반대운동, 국채보상운동 등도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것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2) 해방 이후 6.25전쟁으로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도 남한의 기독교는 군사독재의 압제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나아갔다. 예를 들어, 1979년 11월 15일에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기독청년민주화선언을 통해서 유신독재체제의 종식, 모든 민주세력을 망라한 내각 구성, 긴급조치 9호 해제, 종교의 자유와 언론 및 학원의 자유3)를 주장했다. 물론,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외에도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 실천 협의회 등을 통해서도 군사정권 시기에 남한의 기독교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서 얼마나 활발히 움직였는지 재확인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1985년에 창립된 민족미술협의회4)(이하 민미협)라는 울타리를 경유하여 민족·민중미술(이하 민중미술)이라 호명되는 흐름과 기독교 사이에 교차점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령 1988년에 통일염원 범국민 평화대행진 추진위원회는 ‘통일염원 범국민 평화대행진: 분단을 넘어 통일의 기쁨으로’를 대학로와 임진각에서 3일간 열었는데, 여기에 민미협이 기독교 도시 빈민 선교 협의회, 기독 여민회, 천주교 사회 운동 협의회, 한국 기독 노동자 총연맹, 한국 기독 학생회 총연맹, 한국 기독 청년협의회, 조국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가톨릭 청년 학생 위원회 같은 단체와 함께한 것5)이 그러한 예들 중 하나다.

이인철, <교회가 있는 풍경>, 1988
황재형, <광부 십자가> , 1985

그렇다면 민중미술의 흐름과 기독교의 교차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현 단계에서 가능한 경로들을 통해서 추려보니 홍성담6)의 <내게 강 같은 평화>(1990), <오월 예수 14처>(2006)7), 황재형의 <광부 십자가>(1985), 두렁이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준비위에서 의뢰를 받아 제작한 걸개그림 <해방의 십자가>(1983)8), 김봉준의 <의병 십자가>(미상), 이인철의 .<불꽃으로 다시 살아나>(1989), <교회가 있는 풍경>(1988), <우리 시대의 십자가>(미상), <In the paradise>(2018), 권순철의 <예수>연작, 최민화의 <분단국의 예수>(1981) 등을 우선 꼽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박불똥의 작업 중에서는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기를 원하네>(1985), <세기말 서울 야경>(1985), <핫라인 골드>(1985), <사과밭이 있는 들판에서 아담과 이브 姦通하다>(1985), <자화상-십자가>(1992), <지저스라텍스-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져라>(1996)를 기독교와 관련지어 꼽아볼 수 있다. 또한 주재환의 경우에는 <행복에 관한 명상-블라디보스톡에서>(1982), <신은 존재한다>(1986),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1993), <한강다리로 오신 예수>(1994), <소주와 성경>(1995), <최후의 도박>(1998), <하나님의 똥은 무슨 색깔인가?>(2006), <무제03>(2014), <구세주>(2015), <예수vs안티 예수>(2016), <존레논, 이매진>(2017), <무제08>(2017), <곡선의 토속신 vs 직선의 유일신>(2017), <노숙자와 예수>(2017), <정희성 시『책』>(2018) 등 19점 가량을 헤아릴 수 있다.

홍성담, <오월 예수 14처>, 2006
김기창, <예수의 생애: 승천>, 1952-53

앞서 열거한 홍성담, 황재형, 두렁, 김봉준, 이인철, 최민화의 작업들은 주로 억압받는 이들의 고통, 분노, 저항, 희생, 환희를 증언, 기록, 표현하며 민중을 위로하고 해방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에 무게추를 두고 있다.―다만, 이인철의 작업 중에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긴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어머니와 자식 옆에 만 원 지폐가 벽인 교회가 서있는 <교회가 있는 풍경>(1988)과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다룬 포스터를 배경으로 성경 위에 칼이 꼽혀있는 <In the paradise>는 예수정신을 망각한 세태에 대한 비판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미술과 기독교 요소가 마주치는 전형성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사례다.―확실히 민중을 위로하고 해방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을 지향하는 작업들은 예술가의 사회참여와 비판성 측면에서 예수의 고난이 한민족의 비극과 유사하다는 단순한 관점9)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김은호의 <부활 후>(1920년대), <기독상>(1962)이나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1952-53) 연작 30점에 비하면 현실과 마주하는 태도와 호소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가령 홍성담의 <오월 예수 14처>가 예수, 예수의 제자, 시몬, 베로니카, 예루살렘 부인들의 자리에 전두환의 계엄군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한 광주 시민들을 내세운 후 강렬한 색과 구성으로 표현한 것을 떠올려보자. 이러한 강렬함을 통해서 드러나는 호소력은 갓을 쓰고 두포자락을 휘날리는 예수를 중후하게 표현한 것에 그친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보다 메시아, 절대권력, 권위주의, 선민의식 등을 거부하고 생명사랑을 추구하는 예수정신10)을 더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두렁, <해방의 십자가>, 1983

그러나 이러한 지향성은 민중미술과 기독교 요소가 마주치는 전형성이기도 하다. 여기서 전형성이라 칭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민중운동에 대한 내용과 기독교 요소를 직접적 혹은 단순히 연결시키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형성은 작품의 내용과 의도가 예기치 못한 해석 가능성에 덜 방해받고 있는 그대로 감상자에게 전달될 여지를 높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도 일종의 종교화라는 측면에서 두렁의 <해방의 십자가>가 기독교장로회 측으로부터 ‘성스러운 교회에 울긋불긋한 웬 절 그림 같은 그림이냐’, ‘기장에 빨갱이 해방신학이 들어온 명백한 증거다’ 같은 해석 가능성에 노출되며 논쟁11)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신학적 차원을 덜어두고 보면 일반적으로 감상자가 이러한 논쟁을 감상보다 먼저 내세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박불똥, <지저스 라텍스-죄없는 자 먼저 돌을 던져라>, 1996

반면 박불똥과 주재환은 이러한 전형성과 상대적으로 거리를 둔다. 그리고 이러한 거리 두기는 민중을 정치적 올바름과 평등, 정의를 추구하는 초월적인 존재로만 환원하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성찰함과 동시에 1987년 체제 이후 사회주의 이념이 자유주의 이념으로 밀려난12) 한국사회에 대한 독해의 장을 여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사용하는 기독교 요소는 종종 도발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불똥의 <지저스라텍스-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져라>는 십자가의 절반이 아래에서부터 콘돔으로 씌워져 있으며 <세기말 서울 야경>은 교회건물이 사치스러운 목걸이들로 바뀌었다. 주재환의 경우에는 예수상의 다리가 소주병에 꽂혀있는 <구세주>, 예수가 구제 불가능인 한국사회를 개탄하며 한강에서 자살하는 내용이 담긴 <한강 다리로 오신 예수>가 그러하다. 확실히 박불똥13)과 주재환이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 요소를 다룬 것은 한국 기독교, 특히 대형교회의 세속화와 타락 그리고 나아가 분단의 역사를 토대로 반공주의와 친미주의를 앞세우며 극우적 정치개입을 일삼는 종파들이 득세해온 것을 떠올리면 납득 가능한 지점이 있다.

박불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기를 원하네>, 1985

이처럼 박불똥과 주재환은 전형성과 거리를 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 공통점 안에서도 서로 미세하게 상이한 점이 있다. 박불똥은 기독교 요소를 주로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무겁고 그로테스크하게 다루지만, 주재환은 전반적으로 해체와 편집이 과감하게 이뤄진 구성 위에 해학성을 충만히 드러날 수 있게 다룬다. 물론, 주재환의 작업 중에서 차갑고 황량한 황무지 같은 어딘가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이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상황과 이런 이들이 구원되길 바라는 산자의 애절한 바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엄숙하게 구성된 <행복에 관한 명상-블라디보스톡에서>,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14)는 예외로 두어야 할 것이다.

주재환, <최후의 도박>, 1998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주재환은 기독교 요소를 엄숙함보다는 해학성을 바탕삼아 다룬다. <한강다리로 오신 예수>는 어찌할 방도가 없을 정도로 한국사회가 엉망이라 예수도 포기하고 한강다리에서 투신을 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예수가 자살한다는 설정은 타인의 생명이든 자기의 생명이든 창조자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신학 입장에서 죄악시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도계도 자살을 사회적, 병리적, 심리학적 문제로 바라보는 입장을 고찰하고 있다.15) 따라서 이 작업은 신학전인 차원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사회적인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한강다리로 오신 예수> 속 예수의 자살은 신학적인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인 자살이다. 이처럼 주재환은 예수를 한국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자살에 도발적으로 접목함으로써 감상자가 통렬한 사회비판이 담긴 해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오죽하면 예수도 자살하러 한강 다리에 가겠냐!”고 외치면서 말이다.

주재환, <소주와 성경>, 1995

주재환의 작업에서는 예수 외에도 성경이 등장할 때도 많다. 가령 <소주와 성경>은 성경 위에 예수도, 천사도, 성인도 아닌 소주병이 광배(光背)를 두르고 올라와 있다. 이는 성스러움 혹은 예수정신을 상징하는 성경이 세속을 상징하는 소주병보다 못한 세태를 은유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소주병은 소주 한 병을 비우고 한강에 투신자살한 누군가에 대한 서글픔일 수도 있고 예수정신을 잊고 탐욕과 폭력을 반복하는 기독교계를 풍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독교 요소와 소주병의 접목은 앞서 언급했던 <구세주>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주재환의 설명에 따르면 <구세주>는 원래 미완성 상태로 머무른 캔버스 작업과 함께 놓일 것이었지만, 아직 두 작업이 조합되어 전시된 적은 없다고 한다. 이 미완의 캔버스 작업은 양측에 녹색의 세로 줄무늬가 있고 가운데에 노란색과 붉은색 세로 줄무늬가 있다. 그리고 오른쪽 녹색 줄무늬에는 “신비의 마약이 첨가된 술 ·구세주·를 마시면 사람의 몸이 소주병 크기로 축소되어 지구면적은 10배 이상 늘어나 무한 소비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라고 적혀있고 왼쪽 녹색 줄무늬에는 사랑의 마약이 첨가된 술 ·구세주·를 주식으로 공급하면 누구나 나누어주기 경쟁에 늘 취해있기에 인류사 최초로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구세주>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대해 체념하면서도 서로 사랑하며 인류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상상력이 해학적으로 표출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이 해학적 상상력이 예수상의 하반신을 소주병에 꽂아 넣어 구세주(救世酒)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구세주> 역시 <소주와 성경>과 마찬가지로 예수정신을 망각한 기독교계에 대한 예술적인 도발과 경고를 담고 있기도 하다.

주재환, <하나님의 똥은 무슨 색깔인가?>, 2017

<하나님의 똥은 무슨 색깔인가?>(2006)16)도 생존, 갈등, 탐욕, 폭력이 난무하는 비참한 세상에 대한 주재환의 가벼우면서 무거운 통찰이 잘 드러난다. 이 작업은 주재환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하느님이 똥을 쌌느냐 안 쌌느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이다.17) 실제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보면 똥과 신은 양립할 수 없으며 또한 인간이 신의 모습을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의 인류학적 근본 명제가 지닌 허약성을 깨달았다는 내용과 그노시스(Gnosticism)파의 대가 발라탱이 예수는 먹고 마시지만 절대 똥은 싸지 않는다고 단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18) 니체의 영원회귀로 시작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오직 한 번뿐인 삶을 살기 위해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이 불확실성 위에서 계속 결정을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실존적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쿤데라는 이러한 문제를 통해서 가벼움(무의미)과 무거움(의미)이 계속 마주치며 만들어내는 삶을 있는 그대로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하느님과 똥을 두고 갑론을박을 하는 것은 절대적인 신념을 내세워 인간의 온전한 삶을 은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신과 똥에 대한 주재환의 입장은 무엇일까? 주재환은 김남수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님의 똥은 무슨 색깔인가?>를 두고 “하나님이 인류사를 내려다보면 다 자기 아들, 딸들인데, 사람들이 사는 게 얼마나 복잡해요. 그래서 똥 색깔이 복잡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 이렇게 풍자한 거죠.”19)라고 말한 바 있다. 따지고 보면 김선우의 시 <여전히 반대말놀이>20)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재환이 예수가 똥을 싸는가 안 싸는 가를 따질리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주재환이 <하나님의 똥은 무슨 색깔인가?>에서 예수가 똥을 싼다고 전제한 것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 맹목적인 이원론에 대한 반항심을 내세우기 위함일 것이다. 물론, 이 반항심은 종이 파레트, 헝겊, 알록달록한 물감, 주재환의 장난스러운 글씨를 통해 표현되었기 때문에 감상자에게 친숙하고 가볍게 다가온다. 그러나 주재환이 인류의 생존, 갈등, 탐욕, 폭력에 대한 성찰 위에서 이 작업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친숙함과 가벼움은 짓궂게도 어느 순간 무거움으로써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재환의 작업에 내재된 이러한 해학성은 갈등, 탐욕, 폭력이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통렬히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주재환의 해학성은 지옥도의 해학성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보성 대원사의 <오관대왕 지옥도>21)를 떠올려보자. 이 지옥도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나타나자 판관과 옥졸이 지장보살의 눈치를 보는 모습과 잔인한 화탕지옥 형벌을 기다리던 죄인이 긴 담뱃대를 양팔에 끼고 지장보살을 맞이하는 광경이 담겨있다. 이처럼 지옥도는 지옥의 끔찍함을 묘사하며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교훈을 강렬히 드러내면서도 압력밥솥의 김 빼기 같은 해학성을 놓치지 않는다. 주재환이 기독교 요소를 다룰 때도 드러나는 해학성은 이런 점에서 지옥도의 해학성과 닮았다. 그리고 이러한 해학이 요청되는 이유는 우리가 지옥과 비견될만한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사랑과 실천이라는 묘목을 서서히 그리고 거대하게 키울 여지를 조금이라도 만들어나가기 위함일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와 관련된 한반도의 근현대 역사와 기독교와 관련지어 볼 수 있는 민중미술 계열에 속 하는 작업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재환의 작업들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앞으로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는 기독교 요소를 더욱 입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이 보충되어야 할까. 고구려 고분벽화, 신라 불상, 고려 불화, 이조시대 도자기, 진경산수화, 민화, 탈춤, 무속화, 부적, 문양, 장승, 서낭당, 신화, 설화 같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중국 대륙 등지에서 건너와 한반도의 풍토에 맞게 변용된 것들이 상당수이므로 한, 중, 일의 미술사를 비교 연구하여 상호 영향 관계를 밝혀내야 한국미술의 특성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는 측면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이러한 측면은 민중미술 계열에 속하는 작가들이 사용하는 기독교 요소와 관련된 퍼즐조각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에도 대입될 수 있다. 따라서 차후에는 기존에 확보된 자료에 대한 검토 및 보충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기독교와 미술이 어떻게 마주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앞서 민중미술의 흐름과 기독교의 교차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업들을 계속 발굴하고 각 작업들에서 고유하게 드러나는 내용과 형식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1) 권혁률, 「유감, 3.1절 구국기도회」, 『새가정』, 새가정사, 2017, p.100 참고

2) 이경숙, 손운산, 정용석, 박경미, 양명수 『기독교와 세계』(제4개정판),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7, p.186 참고

3) 김동원 외 10인 편, 『5·18 광주 민주화운동자료 총서』 1권, 광주광역시 5.18사료 편찬위원회, 1997, p.367 이 책은 다음의 e-book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http://www.518archives.go.kr/books/ebook/1/#page=1

4) 원래 1980년대에 한반도의 현실과 사회 참여를 지향하는 미술운동은 각자 상이한 지향점을 추구한 소집단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던 중 1985년에 서울미술공동체의 기획으로 아랍미술관에서 열린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7.13~7.20)展이 광주항쟁과 노동 운동에 대한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정부의 공권력으로부터 작품 압수 및 작가 연행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겪는다. 그러자 이를 계기로 정부의 탄압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낀 현실과 발언, 광주자유미술인협회, 임술년, 두렁, 서울미술공동체 같은 소집단들은 1985년 11월 22일에 민족미술협의회라는 울타리로 결집했다. 최태만, 「1980년대 한국사회와 민중미술-대중소비사회의 시각이미지와 비판적 리얼리즘의 재고」, 『미술이론과 현장』, 2009, p.10 및 김정헌, 안규철, 윤범모, 임옥상 편, 「1980년대 사회변혁론과 민중미술Ι」,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 현실과 발언 30년』, 현실문화, 2012, pp.23-47 참고.

5) 「통일염원 법국민 평화대행진 개최에 관한 건」, 통일염원 범국민 평화대행진 추진위원회, 1988.6.24, pp.1-3 이 자료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최열 콜렉션’ 중 MC2012.01/Ⅱa/10044’에 해당한다.

6)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2

7) 2006년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의뢰로 홍성담이 남동 5.18 기념성당에 걸 작품이었으나 담당사제로부터 전통적인 성화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거를 단행하여 홍성담의 안산시 작업실 수장고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80호 크기 캔버스 14개로 구성되었으며 제목은 정확히 확인을 하지 못해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2

8)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64&ref=kko 및 미술과 생각(http://m.blog.daum.net/drshin1/15381067)

9) 서성록, 「한국 기독교미술의 전개와 과제」, 『신앙과 학문』, 가독교학문연구회, 2016, p.154

10) 조현 ‘지금 한국 교회는 ‘예수 정신’을 망친 바울을 믿고 있다‘, <한겨레>, 2015.5.18,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691796.html

11) 김봉준, ‘오늘도 잃어버린 그림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김봉준의 붓그림 편지 9’, <프레시안>, 2006.2.24,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64&ref=kko

12) 이택광,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 시대의창, 2014, p.45 참고.

13) 박불똥은 필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기독교 요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한 바 있다. “우리나라 개신교, 특히 대형교회들의 속성과 행태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성전이 곧 복마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종교 이데올로기와 분단 이데올로기가 연리지처럼 착종된 한국사회의 모순구조를 독해하고 비판하다 보니 자연히 종교적 기표나 기의가 작품 속에 자주 인용되는 것 같다.” 박불똥, 홍태림, ‘박불똥 인터뷰’, <크리틱-칼>, 2016, 2, http://www.critic-al.org/wp-admin/post.php?post=546&action=edit

14) 주재환은 2016년 학고재 개인전을 앞두고 조형적인 차원에서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의 붉은 십자가들을 대부분 지운 후 <밤길>로 제목을 바꾸었다.

15) 김중은, 「자살문제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접근」, 『장신논단』 제38집,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 문화연구원, 2010, pp.15-17 참고.

16) 주재환은 2017년에 같은 제목으로 흰 테두리의 액자에 파레트를 올리고 그 위에 물감을 가득 짠 후 ‘하나님의 똥은 무슨 색깔인가’라는 붉은 글씨가 적힌 휴지를 올린 작업을 하기도 했다.

17) 주재환, 김남수, 「지금이 아이디어의 전성기인 작가 주재환과 만나다」, 『판』, 2013, 공연예술네트워크 판, 2013, p.76

18)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1999, p.282

19) 주재환, 김남수, 「라운드테이블01: 주재환, 김남수 이매망량」, 『2014 예술로 가로지르기 섬머 아카데미』, 경기문화재단, 2014, p.264

20) 이 시는 2017년 5월 4일 목요일 중앙일보 27면에 실렸다.

21) 권중서, 「지옥 속에 숨어 있는 해학」, 『문헌과 해석』, 태학사, 2014, p.196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