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김이박 개인전 ‘미모사’ 리뷰: 불안과의 동행

2018년 7월 20일 발행

홍태림(미술비평, 크리틱-칼 발행인)

몇 년 전에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을 통해서 히키코모리(引き籠り), 다른 말로 은둔형 외톨이 개념을 널리 알린 사이토 다마키의 『사회적 우울증』을 살펴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사이토 다마키는 신종 우울증을 주로 다루는데, 근래에 두드러진 이 우울증은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뒤섞이며 발생하는 기존의 우울증에 비하여 훨씬 가벼운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가령 놀 때는 활기가 넘치지만 출근하면 갑자기 우울감, 무기력, 게으름, 무책임함에 휩싸이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신종 우울증은 왜 나타난 것일까. 사이토 다마키는 오늘날 개인이 겪는 불안의 본질이 생존에 대한 불안에서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옮겨간 것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왜냐하면 경제가 어려웠던 지난 세기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쳤지만 고도 성장기에 태어난 세대는 급변하는 사회, 경쟁의 가속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은 과연 가치가 있는가?’ 같은 질문을 되뇌며 존재에 대한 불안(이하 ‘불안’)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들 때문에 사이토 다마키는 신종 우울증이 개인의 병리가 아니라 사회적 병리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확실히 각종 항우울제나 치료법이 계속 연구, 개발되는 와중에도 이렇게 우울증 환자가 해마다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우울증이 개인 차원의 문제로만 국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으나, 우울증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기준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세계 인구가 2005년에 비해서 18.4%나 증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10년 넘게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거머쥔 한국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일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공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진료를 받은 환자의 규모가 2010년에는 51만 6579명이었으나 2016년에는 64만 1987명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물론, 한국이 OECD 28개국 중에서 항우울제 소비량이 두 번째로 낮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내의 우울증 환자는 이 통계치를 훨씬 웃돌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를 따지지 않는 우울증 환자의 증가추세나 무려 신종이라는 단어가 붙은 우울증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우울증은 현대사회의 그림자를 대변하는 병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이토 다마키의 말대로 신종 우울증이 사회적 병리라면 현대사회가 이 우울증의 원인들에 대해서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원인들은 현대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 불가결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신종 우울증의 원인들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감내해야 할 필수 조건이 아닐까. 급변하는 사회, 경쟁의 가속화, 불확실한 미래 같은 것들이 현대사회의 불가결한 파생물이라면 그 파생물들 앞에서 개인이 가장 손쉽고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불안’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행이나 맛집 투어, 영화감상, 쇼핑 같은 소비생활에 몰두하거나 이를 위하여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억제책조차 효과가 없는 상황이 온다면? ‘불안’을 억제할 수 있는 방도가 더 없다면 우리는 결국 원치 않아도 ‘불안’과 대면해야 한다. 그러나 ‘불안’은 우리가 평소 몰두했던 것들에 통해서 얻었던 익숙한 일상에 낯설고 섬뜩한 세계를 계속 밀어 넣는다.

이렇게 신종 우울증부터 ‘불안’의 억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본 이유는 이번에 위켄드에서 열린 김이박 작가의 개인전 《미모사》(2018)와 관련된 작가 노트를 읽고 나름 느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노트를 살펴보면 작가는 작년 여름에 가족사와 창작활동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과도한 누적으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는 일상 속의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쉽게 신경이 곤두서거나 쉬이 가라앉지 않는 분노에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주 휩싸였다. 이처럼 익숙했던 일상이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지고 그것이 공황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김이박이 쉽게 억제되지 않는 ‘불안’과 맞닥뜨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김이박의 이러한 경험담을 살펴보면서도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확실히 급변하는 사회, 경쟁의 가속화, 불확실한 미래 같은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불안’은 예술가라고 비껴가주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가의 창작환경에 대한 정부의 통계자료나 각종 예술관련 공모의 경쟁률만 살펴보면 예술가는 ‘불안’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엄습해오는 ‘불안’을 보통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을 억제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소비와 소비를 위한 노동에 몰두한다면 최소한의 경제 활동조차 경험하기 어려운 대다수 예술인은 창작을 통한 ‘불안’의 상쇄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창작이 ‘불안’ 자체를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혹은 주제 자체에 자아가 함몰되지 않으면서 ‘불안’을 다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불안’은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한데, 마찬가지로 김이박의 마주한 ‘불안’도 사회적 차원의 맥락을 갖고 있다. 김이박의 맞닥뜨린 ‘불안’의 주요한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소위 “그 나이면 그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압박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하고 빚을 내서 집과 차를 장만하여 가정을 꾸린 다음 후손을 남겨 효도한다는 식의 한 번도 합의한 적 없는 사회적 당위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당위는 보편성으로 가장한 폭력이 되어 현대인이 상대적 박탈감이나 허무감에 빠지는 요인이 된다.

김이박의 ‘불안’은 그가 식물을 중심으로 창작을 이끌어 나가는 점 때문에 의도치 않게 가속된 측면도 있다. 김이박은 타인의 식물을 치료하며 의뢰자, 식물, 작가의 정서적 유대와 상호영향을 더듬어가는 식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이처럼 김이박이 식물을 창작의 중심축으로 삼은 것은 그가 화훼디자인을 전공하고 플로리스트로 활동했던 이력에서 연유한 것도 있지만, 그것만큼 또 중요한 이유는 식물이 소란스럽고 번잡한 대인관계에 비하면 고요하며 피로감이 적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의 이유는 김이박이 평소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런데 후자의 이유도 창작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그 빛이 바랜다. 왜냐하면 창작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수많은 관계 맺음을 필요로 하는데 의뢰자, 식물, 작가의 관계 성립이 특히 강조되는 식물 프로젝트는 더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창작을 이끌어 나가는 호흡을 잘 조절한다면 관계 맺음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거나 적절히 중화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김이박은 2017년에만 서울, 수원, 제주, 대구, 파주 지역을 넘나들어 들어온 요청으로 단체전 12회와 개인전 1회를 치러내야 했다. 집안의 우환까지 극에 치달았던 시기에 포개진 이 살인적인 일정은 김이박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세웠다. 사실 김이박도 자신에게 내제된 ‘불안’을 쉼 없는 창작을 통해 상쇄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한 해에 13개의 전시를 치루는 강행군을 하며 창작에 몰두해보아도 억눌렸던 ‘불안’은 기어이 그의 마음속을 다시 비집고 나왔다. 따라서 김이박이 작가노트에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 작가, 예술처럼 예술과 관련된 언어들조차 불편해서 배제하고 싶었다고 적은 것도 이러한 심리상태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예술로도 ‘불안’을 상쇄할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미모사》는 시작되었다. 김이박은 예술조차 불편하고 배제하고 싶어진 상황에서 이번 전시를 예술적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가능한 덜어내고 단지 자신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단순하면서도 진솔한 방향으로 과감히 직진했다. 그리고 그러한 직진 속에서 시작된 이번 전시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모사와 무초가 중심축을 잡고 있다.

외부의 작은 자극만으로도 이파리를 오므리고 줄기까지 숙여버리는 예민한 미모사나 날카로운 소리에 반응하여 이파리를 움직여대는 무초는 김이박의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존재다. 특히 이번 전시의 미모사는 전시의 중심축이기도 하지만 식물을 매개로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서 의미의 층을 쌓아 올리는 것을 지향하는 김이박 특유의 태도가 잘 녹아든 작업이기도 하다. 전시장 배치된 미모사들은 몇 달 전에 작가가 지인들에게 분양한 것들이다. 그런데 작가는 왜 굳이 미모사를 분양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한 것일까. 그 이유는 자신이 분양해준 미모사를 통해서 지인들이 그 식물이 어떻게 반응하고 자라는지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어떤 이들은 분양 받은 미모사를 쾌적한 장소에서 훌륭하게 키워냈지만, 또 어떤 이들의 미모사는 서투른 관리나 무관심 때문에 쉽게 죽어버리기도 했다. 김이박은 이처럼 지인들이 분양받은 미모사를 키워내는 양상들을 보며 누군가의 고통을 대하는 타인들의 태도를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미모사를 분양받은 지인들은 미모사를 정성스레 보살피는 시간 속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김이박의 심정을 깊게 이해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처럼 김이박은 단순히 자신의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과 예술과 관련된 요소조차 배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물론, 전시장 양옆에 걸린 드로잉들은 이러한 김이박의 의도에 꽤 부합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미모사 분양 작업은 그가 평소에 식물을 매개로 다루던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감수성이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예술의 자장 안에 녹아들었다. 따라서 김이박은 결국 심신에 각인된 예술의 언어를 쉬이 털어내지 못한 셈이다.

자신의 ‘불안’을 상쇄조차 못 하는 예술에 대한 그의 복잡한 심경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예술 자체를 배제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불안’에서 도망칠 수 없다면 우리는 ‘불안’과 효과적으로 마주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령 철학이나 예술 같은 것들은 인간이 ‘불안’과 효과적으로 마주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불안’은 인간이 아무런 것도 손에 쥐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기에 가혹한 무언가다. 그러나 그 가혹함을 유연히 감아낼 수 있다면 ‘불안’은 죽음을 향한 존재인 인간이 생존이 아닌 삶의 의미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현재 김이박이 ‘불안’ 속에서 갖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술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마음속을 비집고 나온 ‘불안’과 효과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도구로써 예술이 가진 가치를 새로이 발견해 나가야 한다. 만약 김이박이 그럴 수 있다면 그가 이 시점에서 맞닥뜨린 ‘불안’은 그의 삶, 나아가 그와 관계를 맺는 이들의 삶들이 끝없이 재발견되고 재창조될 수 있도록 추동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