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1)

2018년 8월 2일 발행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1. 들어가며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마음이 무겁다. 어디선가 ‘21세기에 무슨 전통이냐?’는 반발이 곧장 터져 나올 듯싶다. 무슨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한 지루한 공방이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또한 뒤따를 것 같다. 하긴 그간 전통/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논의는 혼란에 혼란을 배가한 채 말을 안 꺼낸 것만 못한 상태로 종결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늘날 전지구화의 추세는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 미술 그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기존 개념들로 포획되지 않는 사건들을 양산하면서 연구자들, 논객들의 나날을 긴장시키고 있다. 전통과 관련해서도 사정은 예외가 아니다.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1964)가 이뤄낸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그간 적지 않은 논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가 전통과 오리엔탈리즘을 둘러싼 예의 난맥상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또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에는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서구 문화가 서구와 비서구 모두에서 지나치게 지배적인 현재가 그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 없는 상황에서, 비서구의 전통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한다. 이 글의 목표는 그 가능성의 내실을 탐색하는 것이며 그러는 가운데 이 탐색에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사례를 겹쳐보는 것이다. 다음은 <거대한 뿌리>의 전문이다.

거대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다

나는 이자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정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煥)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위해서는

─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1964. 2. 3.>

시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시인이 1890년대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인 이자벨 비숍Isabella Bird Bishop여사의 글1)을 읽고 그것에 공명하여 전통/역사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깨달음을 토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문단은 시인의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는 고백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시인이 살고 있던 시대의 문화적 혼돈과 불안정을 암시하는 듯하다. (남/북/일본) 또한 이 문단은 문화의 일상적 존재 방식을 예시함으로써 시 전체가 일상에 닻을 내리게 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두 번째 문단은 약간은 숨 가쁜 어조로 진행되며, 비숍이 유례없이 기이하다고 느꼈던 구한말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묘사를 시인이 받아쓰는 형식을 취한다. 세 번째 문단에서는 시인의 깨달음, 곧 예의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는 단언에 집중하여 그 깨달음의 경과와 내용을 추론할 수 있는 시구들이 이어진다. 마지막 두 연에서는 시인이 전통/역사에 대한 자신의 상을 좀 더 구체적, 가시적으로 피력한다. 그는 온갖 이념, 담론, 제도들에 쌍욕을 퍼붓는 가하면 또한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폐물들, 파편들, 흔적들 곧 무수한 반동들에 대한 애정을 표명한다. 연이어 그 반동들로 형성되고 지탱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외경을 드러내면서 시를 마무리 짓는다.

비숍은 물론 애정을 갖고 구한말 조선을 관찰한 이방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제국주의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리엔탈리스트였다. 김수영은 바로 그런 비숍의 글을 읽고 새삼 충격을 받아 스스로 외면해 왔던 전통/역사와의 사랑에 빠져 든다. 이 사태가 내포하는 패러독스는 시인이 타자의 시선을 경과하여 전통과 현재를 긍정하게 되는 것에 있다. 이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 크다. 그 까닭은 그 사태가 식민의 타자/자아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체 형성과 변용의 구조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통, 오리엔탈리즘 뿐 아니라 식민주의, 근대성, 민족주의, 세계화 등 한국 근현대사를 옥죈 담론들이 안팎으로 맞물려 실타래처럼 얽인 회로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담론들 간의 복합적인 착종은 그간 갖가지 가치전도, 오해와 편견을 초래하곤 했다. 그리고 이 지점은 지금 이곳에서 비평의 가치 준거를 찾으려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어려움에 빠뜨리고 방황케 하는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2. 오리엔탈리즘 -전통

단색화가 미술 제도에서 성공한 것은 그것이 단지 미술권력의 핵심 고리(대학)를 장악하고, ‘전통의 현대화’나 ‘동서의 만남’ 같은 당대의 미학 이데올로기를 활용해 미술시장의 흐름에 능란하게 대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 작업들은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장식적이며 친근한 분위기를 제공했고, 이 점에서 서양의 추상화와는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고급 아파트 거실에 고가구나 조선백자와 함께 놓으면 그럴싸한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았을까? 더구나 단색화가 표방한 ‘무위자연’은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욕망조절의 어려움과 긴장감에 시달리던 중산층 컬렉터들에게 나름 치유제로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노장사상을 아나키즘적이라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고 보면, 요사이 단색화가 현실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느니 하는 생뚱맞은 주장도 뭐 전혀 억지라고 하기는 힘들 듯 싶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단순히 위악僞惡이 아니다. 수없이 제기된 혐의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의 틀 속에 기꺼이 머무르는 작업 혹은 그것을 활용하여 미술관과 미술시장 그리고 글로벌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작업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산출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그 표식을 확인한다거나 비판한다고(탈신화화, 이데올로기 비판) 사라지는 허위나 신화가 아닌 것이다.

탈신화화나 이데올로기 비판의 방법은 그간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지나치게 손쉬운 비평을 양산해왔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을 실제로 넘어서는 일은 간단치 않다. 이는 오리엔탈리즘을 재생산하는 제도와 담론, 관행이 여전히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구문화에 대한 선망과 식민의 외상이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현대=서구’라는 인식 틀의 강력한 작동이 전통에 대한 강조를 곧바로 민족주의나 시대착오와 연결되도록 만들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 동양, 아시아 등과 관련해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계화의 지형 속에서 탈식민적 실천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논점이 부각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전통은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영어 ‘Tradition’을 번역하여 만들어낸 말이다. 원래부터 있었던 용어가 아니라 ‘근대’로 접어들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따라서 전통의 의미, 곧 전통을 전통으로 인식하는 일은 근대의 지평에서만 가능했다. 근대 자체가 과거(전통)와의 단절 혹은 계승이라는 새로운 시간관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전[傳]해 내려오는 [선택적] 계통[通])이라는 말과 그 의미가 가능했다는 것이다.2)

그러나 식민을 통해 근대와 대면한 한국인들에게 이 같은 전통 개념은 심각하게 굴절된 채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매개한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서양은 자신의 정체를 확립하기 위해 타자를 상정하고는(동/서양 이분법), 그 타자에 대해 자신들의 우월함과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여러 속성들을 부과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억압하고 배제해 버린 것 혹은 자신이 결여한 것들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이 이분법을 구체화했다. 예를 들면 문명/야만, 합리/비합리, 이성/광기, 정상/비정상, 발전/저발전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문명/야만의 이분법이 결정적이었으며, 이는 근대 한국인의 자의식에 깊은 상처(열등감, 수치심=식민의 외상)를 남겼다.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전통의 단절과 계승은 그야말로 극단화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즉 전통은 전적으로 타기해버려야 할 부정적인 대상이 되었는가 하면 동시에 역으로 기필코 계승해내야 할 강박적 욕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중구속’3)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분열이야말로 이곳에서 오리엔탈리즘이 내면화되는 방식4)이었다.

그런가 하면 동양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 역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신비로움, 기이함, 예지).5) 사실 오리엔탈리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타자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타자를 특정한 방식으로만 고정시켜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때문에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은 변화하는 삶의 현실로 출현하지 않는다. 여기서 동양은 항상 문화 혹은 미학의 층위에서 나타나며,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기원이나 신화 같은 것으로 발견된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이 같은 동양관은 한국의 전통 이해 방식에 그대로 내면화되었다.6)전통은 여기서 정신(동양정신, 얼, 은근과 끈기, 한)과 아름다움(한국미, 멋) 같은 미학적 문화적인 성격의 고정적이며 본질적인 속성으로 이해되었다.7) 곧 야만적으로 평가 된 전통문화는 억압, 배제되고, 서구의 환상에 부응하는 속성들이 일정한 조율을 거쳐 전통의 징표로서 선험적으로 고착되었다. 이러한 선험적인 규정은 후대인들로 하여금 전통을 그것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연속성을 체득하는 살아있는 과정의 양식이 아니라 부정해 버리거나 강박적으로 살려내야 할 물신 같은 것으로 취급하게끔 만들었다.8) 한국의 경우 해방 전후에 단초를 보인 이 같은 전통 이해방식이 이후 결국 관제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전통에 대한 개발논리로 이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새 역사를 창조하자”9)).

이런 전통 이해방식은 예술 영역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강제된 ‘전통’과 ‘고유성’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은 ‘한국적인 것’(혹은 ‘전통과 현대의 만남’,‘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공허한 탐구로 이어졌다. 한국적인 것을 기원까지 소급하여 하나의 정체로 선규정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구현하려는 노력들(동양의 자연관, 문인정신, 멋, 한국미, 무위자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셀프-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10) 은 바로 이 같은 정황으로부터 출현한다.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식민성의 필요에 부응하는 형식을 취하는 예술적 전략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의 시선에 맞춰 스스로를 연출하듯, 스스로를 서구의 시선에 맞춰 유혹적인 동양으로 내보이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발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11) 오랜 기간 동안 이곳의 예술가들은 서구 예술계를 겨냥하여 의식 무의식적으로 이 같은 전략을 즐겨 사용해 왔다. 김수영이 비숍의 눈을 빌어 전통에 접근하는 시적 구조를 활용한 까닭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의식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은 허위나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라는 역사적 시공간에서 민족, 지역 간 불균등 발전이라는 엄연한 물질적 토대에 근거하여 형성된 문화 헤게모니 체제의 한 발현양식이다. 그것은 ‘부분적 진실’을 바탕으로 수세기 동안 학문적으로 축적된 방대한 지식체계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재생산과 변용을 거듭하면서 동서양 사람들 그 누구랄 것 없이 모두에게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그것이 쉽게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상에 무지하거나 곡해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오리엔탈리즘은 감성과 취향의 층위까지 삼투돼 지금 이곳의 문화 전반에서 작동하고 있는 담론적, 제도적 실체인 것이다.12)

‘한국화’13)는 전통/오리엔탈리즘과 관련한 이런 논점들이 가장 착종되어 나타나는 장르다. 때문에 근자에 이런 논점들을 의식하고 작업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한국화(동양화) 영역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보민, 이은실, 김지평 같은 작가들이 그 주목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한국화를 장르로 성립케 하는 매체적 요소들(재료, 기법, 지지대, 구성방식 등)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어딘가 기존 한국화와 다른 느낌을 준다.

[도판 1] 김보민, <재동>, 모시에 수묵담채, 테이프, 80x100cm, 2010

김보민의 경우는 일종의 ‘부정합의 풍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재동>[도판1]은 서울의 도시풍경을 약간은 의고擬古적으로 재현해낸 그림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한국화 풍경을 낯설게 한다. 낯설음을 유발하는 요인은 오른쪽 상단의 산을 그린 부분이다. 이 산은 옛 산수화의 고답적인 기법을 활용해 그린 것인데, 이것이 상대적으로 현대화된 한국화 기법으로 그려진 도시 풍경과 병치되면서 일종의 불일치 혹은 부정합을 발생시킨다. 이 불일치, 부정합은 일단 시간적 격차에서 유래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시간적 격차가 내포하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일단 이것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현존을 가시화 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즉 현재 속에 작동하는 과거의 현존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산을 현실 속에 혼재하는 과거의 흔적보다는 상념 속에서 불쑥 떠오른 과거의 잔상에 가까운 것으로 느낀다. 낯선 것의 귀환, 혹은 잠재된 것의 표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의 귀환이고 무엇의 표출인가? 아마도 한국화라는 장르 배면에 자리 잡고 있는 미처 해명되고 처리되지 않은 무엇(선규정된 동양미학)의 시각적 표상일 수 있다. 또는 배후에 남겨져 제대로 죽지 못해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념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화면 속의 산은 잇달아 수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한국화(가)는 무엇을 그리는가? 현실, 가상, 현재, 과거? 그것을 그려내는 이 기법 상의 현재와 과거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작동하는가? 도대체 이러한 재현관습으로 현실과 대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다. 나는 이 작업을 질문에 가득 찬 그림 혹은 질문을 제기하는 그림으로 읽는다. 오늘날 산수화(한국화)의 존립 근거와 재현관습, 동양화 미학 그 자체를 회의하는 질문들 말이다.

이은실의 작업은 얼핏 보기에 전형적인 동양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희미하게 그려진 화면을 뚫고 그림에 다가가 보면, 그곳에는 흔히 동양화에서 기대하곤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서사가 펼쳐진다. 예를 들면 그곳에는 노골적인 성적 암시나 음험하고 부패한 역사의 이면을 드러내는 이야기 혹은 짐작하기 힘든 잔인한 사건이 벌어진 후의 잔여 같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이들은 주류 동양화의 미적 이념(자연, 무위, 공, 등)과는 화합이 불가능한 그야말로 그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온 감성, 사건, 서사들이다. 여기서 그 미적 이념은 내부로부터 전복된다.

[도판 2] 김지평, <관서팔경(關西八景)>, 장지에 안료와 금니, 각 53x33cm, 2014

김지평의 경우는 또 다르다. 그녀의 최근작들은 주류 동양화에 의해 천박한 것으로 억압, 배제되어왔던 또 다른 전통, 예를 들면 불화나, 니금泥金산수화, 무속화에서 쓰이는 기법이나 재료, 양식, 도상을 전면적으로 활용한다.14) 물론 그간 채색화 계열의 한국화가들 역시 유사한 재료, 기법, 양식, 도상 등을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장르의 관습을 반복하거나(화조화, 십장생화), 자신의 장르와는 이질적인 주류 동양화 미학의 이념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이거나, 해당 장르를 현재화한다는 명목으로 통속적인 주제를 채택한 뒤 기법과 재료의 특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등의 진부한 관행들을 되풀이 해왔다. 하지만 김지평이 주목하는 것은 이들 장르화들의 재현 관습보다는 이들 관습을 이끌었던 재현의 욕망이다. 그녀는 이 욕망 즉 이들 불화, 무속화, 니금산수화의 등에 내재한 이상향, 꿈속 세계, 승경에 대한 희구를 현재의 필요에 따라 차용하여 재해석한다. 즉 오늘날 자신이 현실에서 갈구하는 꿈과 이상,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욕망을 과거의 재현관습에 의탁하여 가시화한다.

각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공히 일종의 ‘장르의 자기반성’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 즉 나름으로 한국화의 재현 관습을 구성하는 핵심 기제를 찾아 작품을 매개로 그것들을 개념적으로 전복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것은 전통미술 특히 한국화와 관련된 지식의 내용과 가치기준, 이해 방법 등이 이미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상황, 때문에 전통 계승이라는 목표가 현실의 삶에 녹아들지 못하고 표어나 구호 혹은 당위성으로 포장되어 박제화 되어있는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몸짓들이다.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결국 한국(동양)화가 그 시작부터 갖가지 변용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고수해왔던 동양주의15) 미학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이는 동시에 오리엔탈리즘의 작동 체계를 의식하고, 그 신화에 균열을 내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의 전략은 일정정도 대타의식 즉 동양화에 대한 자의식에 묶여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제안은 기존 한국화의 재현관습에 질문을 제기하는 도상적 요소를 배치하거나, 서사를 전복하거나, 또 달리는 억압된 전통의 내실을 이끌어내 차용하는 방식으로 탈주선을 모색한다. 하지만 이는 또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미학적 층위 모두에서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과 굴절된 전통을 전복하려는 시발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 이영욱, 박찬경의「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은 2016년 10월 20일부터 11월 13일까지 인디프레스에서 열린《앉는 법》(기획: 이영욱) 도록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은 1주일에 한 편씩 총 4회에 걸쳐 크리틱-칼에서 연재될 예정입니다.


1) 김수영이 읽은 책은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rs: A Narrative of Travel, with an Account of the Recent Vicissitudes and Present Position of the Country, F. H. Revell Co, New York, Chicago, Toronto, 1898이다. 한국어 번역으로는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살림출판사, 1994와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집문당, 2000이 있다.

2) 이병수, 「한반도 근대성과 민족정신의 변형」, 『시대와 철학』, 23권 1호, 2012, 317쪽 참조

3) 인류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메시지가 그 메시지를 부정하는 메타메시지와 동시에 주어지는 상황을 ‘이중구속’이라고 개념화한 바 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인간을 정신분열증에 빠지게 만든다고 보는데, 이 경우 분열증에 빠져든 환자는 하나의 메시지(예를 들어 전통)를 부정해도 처벌을 받게 되고 그것을 긍정해도 처벌받게 되면서, 그 메시지들과 관련해 소통을 통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

4) 전통 계승에 대한 강박은 오리엔탈리즘이 아닌 옥시덴탈리즘Oxidentalism으로 보아야 하지만, 옥시덴탈리즘은 결국 오리엔탈리즘의 역반응이라는 점에서 이 글에서는 옥시덴탈리즘을 오리엔탈리즘이 내면화되는 한 양상으로 이해한다.

5)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지적 도덕적으로 열등한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에는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타자를 그저 과학적 대상으로 업신여기는 것과 미적 대상으로 우러러 보는 것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 『네이션과 미학』, 도서출판 b, 2009, 155쪽.

6) 이런 전통 이해 방식이 제국주의자들이 비서구의 타문화를 대했던 방식의 반영이라는 점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서구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던 문화인류학은 비서구의 문화를 ‘저기 바깥’에 놓인 시간성을 상실한 정지된 상태의 문화로 간주하고 민족지를 통해 타문화를 표준화하는 글쓰기를 시도했다. 이후 이 같은 문화 절대주의가 문제시 되자 그것을 비판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도입했지만 제국에 의해 변형된 비서구 문화 혹은 비서구 문화에 의해 변형된 제국의 문화의 실상을 간과한 채 개별 문화의 총체라는 단위만을 주목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리 스스로 전통을 마치 서구가 타문화를 대하듯 취급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현미,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 또 하나의 문화, 2005, 49~53쪽, 참조할 것.

7)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한국의 미(예)술사 서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그가 조선의 미를 다름 아닌 ‘비애미’로 규정한 것은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조선미’라는 고정적이며 본질적인 범주로 한국의 전통예술의 특징을 규정했던 방법론이 한국 미술사 서술에 미친 영향력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충분한 비판과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조선령은 야나기의 이 같은 영향력과 관련하여 라깡Lacan의 거울 단계 이론을 원용하여 해명을 시도한 바 있다. 그녀에 따르면 야나기의 영향력은 그가 조선과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자아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보여준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공백을 채우고 균열(전통의 단절, 말살)을 메울 수 있는 상상적 대상에 대한 필요가 민족 고유의 동질적인 미의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을 낳았고 야나기가 그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가 ‘비애의 미’처럼 부정적인 것이냐 긍정적인 속성을 가진 것(구수함, 멋, 신명)이냐는 그리 중요치 않다. 조선령, 「야나기 무네요시와 한국미학이라는 상상적 대상」, 미간행 논문, 2015.

8) 이런 성격의 전통 개념이 탈정치적인 현실정치 옹호논리로 기능하는 것과 관련해서 채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양적인 것은 서양에 의해, 혹은 서양에 대응하는 원리로 발견되기 시작한 순간 이후, 불변의 기원이자 비생산적인 원류로서만 즉 탈정치적인 ‘미학적 원리’로서만 현실에 안착할 수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양적인 것을 역설하는 논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정치를 옹호하는 논리로 변환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구체적 사례로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이 ‘아시아는 하나다’를 외치며 동양을 미적으로 정체화하려 한 것,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太郞가 불교에서 근대 초극의 원리를 찾았던 것을 사례로 든다. 채운, 「모더니즘 기획과 오리엔탈리즘」, 『한국문화와 오리엔탈리즘』, 보고사, 2012, 98쪽.

9) 1968년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의 본문에서 따옴. 한국의 경우 서양 오리엔탈리즘으로 인해 생겨난 전통 계승에 대한 강박은 옥시덴탈리즘적 경향을 띤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의 동양주의 담론의 차용으로 좀 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다가 점차 민족주의와 결합해 나간다. 이 전개과정과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정용화, 「한국인의 근대적 자아형성과 오리엔탈리즘」, 『정치사상연구』, 10권 1호, 2004.

10) 셀프-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인들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부과된 지식과 관점, 어휘들 안에서 자기 자신들을 인식하고, 그 체계 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 내며, 서구 오리엔탈리즘이 그들을 재현하는 식으로 자신들을 재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지연, 「내셔날 시네마의 유통과 ‘작가’ 감독의 브랜드화」, 『영화연구』, 30호, 2006, 259~260쪽.

11) 이 같은 타자의 시선이 이곳의 문화 현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구체적 사례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이후 이곳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서 확인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노벨상 현상), 국내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던 작가가 국외에서 인정을 받을 경우 주어지는 평가의 반전(관객동원을 위해 영화제 수상을 개봉에 앞세우는 영화계의 전략), 혹은 처음부터 작품의 설득력이 작동하는 장소를 로컬과는 무관하게 설정하는 작업 관행 등.

12) 박소현은 여러 글들에서 신기한 물건을 약탈하고 헐값에 수집하려는 제국주의의 오리엔탈리즘적 욕망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투사됨으로써 식민지 시대 고려자기에 대한 열광이 시작되었으며, 원래의 환경으로부터 유리된 이런 사물들이 박물관 제도에 의해 미적 가치를 지닌 사물로 변신함으로써 오리엔탈리즘 취향이 한국인들에게 내면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박소현, 「‘고려자기’는 어떻게 ‘미술’이 되었나?」, 『사회연구』, 11호, 2006, 「‘아시아’의 미적 소비: 제국주의적 문화예술정책의 原-풍경」,『문화과학』, 53호, 2008년 봄, 참조.

13) ‘한국화’는 일제시대 이래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양화’라고 불렸다. ‘동양화’는 단적으로 말한다면 러일전쟁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자신의 근대화와 근대 국가 수립, 서구 간섭의 배제, 아시아에서의 선도적 위상 등을 가능케 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했고, 이런 배경 속에서 소위 ‘동양사’를 발명했다. 동양화라는 장르 혹은 용어는 이런 맥락에서 출현했고, 조선미술전람회가 이를 채택함으로써 정착되었으며, 해방 후 한국의 주요 대학에 동양화과가 개설되면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4) 여기서 제1부 동양화, 제2부 서양화 및 조각, 제3부 서예의 3개의 공모부문을 기본으로 한 조선미술전람회의 설립이 이때까지 이어져온 수많은 형태의 전통적인 미술행위들(불교미술, 무속미술, 규방미술, 민화, 기타 민속미술 등)을 억압, 배제, 주변화하면서 이루어진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5) 동양주의는 서양의 동점 및 오리엔탈리즘에 대항하여 동양의 연대와 서양에 대한 동양의 문화적 우위를 주장하는 사상적 경향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서구 백인종의 침략에 대한 동아시아 황인종의 공동 방어라는 인종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중국에서는 이 동양주의가 중화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발현되었고, 일본에서는 자신들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했으며, 한국에서는 전통문화의 복권과 계승에 방점을 찍는 문화적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동양주의의 유행은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통해 서구의 위기를 체험하면서 동양지식인들 사이에서 정신적 측면에서 동양의 우위를 주장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문예영역에서 동양주의는 1930년대 초 무렵부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미술로 국한한다면 한국의 경우 동양전통의 범주를 주로 중화문화의 유산에 한정시켰고, 문인취향에 입각하여 주제와 양식을 취하는 경향을 보였다. 해방 이후에도 이 동양주의는 문예영역에서 오랫동안 그 영향력을 지속해 나갔다. 김현숙, 「한국 근대미술에서의 동양주의 연구」, 『한국근대미술사학』, 10호, 2002, 7~19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