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_청년예술가의 어떤 생사를 너머

2018년 9월 4일 발행

1. 어떤 죽음

2011년에 있었던 한 개인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촉망받던 청년 예술인의 가빈과 병사는 이후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출범을 이끌었다. 그러나 재단이 규정한 예술활동증명 요건은 활동실적 증빙이 어려운 예술인을 복지 사각에 내몰며 망자의 넋을 위로하지 못했다. (“최고은법, 최고은은 예술가 아냐”, 노컷뉴스, 2014.04.12)

2016년, 서울시는 청년유니온의 제안을 수용하여 청년의 자활을 돕는 청년수당 사업을 시작한다. 서울에 주소지를 둔 미취업 청년의 미취업 기간, 가구소득, 활동계획 등을 고려해 월 50만 원씩 6개월간 총 300만 원을 지급하는 이 사업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출범직후 시작한 예술인창작준비금 사업과의 유사성을 상당 부분 찾을 수 있다. 예술인창작준비금은 일정 중위소득 범위 이하, 고용보험 미가입, 예술활동증명이 완료된 자를 대상으로 300만 원을 일시급 지급하는 사업이다. 예술활동으로 인한 수입과 소위 ‘실적’으로 일컬어지는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서울시 거주 청년예술가가 서울시 청년수당에는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가 이듬해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시작한 서울청년예술단과 최초예술지원사업도 그렇다. 활동경력이 적어 아직 전문예술인으로 자립하지 못한 청년을 위한 사업으로 일각에서는 청년수당의 예술인 버전으로 불리운다. 이들은 청년의 실상이 고려되지 않은 정부 사업의 빈틈을 지방자치단체가 극복할 수 있었던 상황으로 읽을 만하다. 실제로 우리사회에 예술인 복지 이슈를 촉발한 사건과 더불어 같은 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및 재학생의 자살 이슈가 수차례 불거졌음에도 청년세대의 문제와 대책은 정책의 주안 뒤로 밀려나 있었다. 미생(未生)의 삶에 드리워진 혹독함을 주시하기보다 기성의 일률로 바라보며 그들의 ‘권리보장’을 ‘실적’과 교환가치로서 요구한 데 그쳤었던 것은 아닐까.

때문에 사건 발생 뒤 5년이 흘러, 청년세대의 자발적 요청으로 이루어진 청년수당 사업은 뒤늦게나마 청년의 삶을 위로하고 복지 사각지역에 빛을 비추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서울시 청년수당은 그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위기를 맞는다. 청년수당은 정부와 협의해야 하는 사회보장사업이라는 이유를 든 보건복지부가 청년수당은 자치단체 고유의 사무라는 입장의 서울시와 대립한 것이다. 서울시는 보건복지부와 세 차례 협의를 통한 수정안을 제출하고도 끝내 ‘부동의’ 통보를 받았으며, 결국 2천 8백여 명의 청년에게 1차 청년수당을 지급하며 위기 속에 사업을 이행한다. 이에 복지부는 직권취소로 사업을 중단시키고 지급된 청년수당을 환수하라는 통보를 내린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날선 갈등은 대법원에 상호 제소되어 해를 넘겨 계속되었다. (“서울시 “청년수당 직권 취소 정지” 대법원에 제소”, KBS뉴스, 2016.08.19)

2. 어떤 생존

“청년들에게 대학입시나 취직은 그 자체로 완결된 성공이 아니다. 그것은 더 높은 경연장으로 나아갈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 생존한다는 것은 이제 ‘살아남았다’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생존과정의 영구적 연쇄가 불투명한 미래의 어딘가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김홍중,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 -마음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사회학자 김홍중은 오늘날 청년의 세대의식을 ‘생존(survival)’으로 보고, 살아있는 존재로서 응당한 생존에의 열망이 ‘주의(ism)’와 결합해 집합적 지향 가치가 된 한국의 청년사회를 무거운 눈으로 들여다본다. 생존주의는 평등과 도덕, 사랑과 평화 같은 생존 너머의 가치, 사회적 당위로서의 이상이 붕괴된 징후의 것이다. 철학자 한병철이『피로사회』에서 말한 자기착취적 질병이 이같은 생존주의와 결합할 때, 주체는 피로와 체념으로 가득한 병리적 상태로 매 순간 호흡을 도전하고 연명해나갈 따름이다.

청년세대에 팽배한 생존주의가 ‘스펙경쟁’의 시장에서 한걸음 나아가 순수예술의 경로에까지 이르렀던 단적인 일화로 2014년 3월부터 6월간 CJ E&M에서 기획되고 방영된 서바이벌 TV예능 프로그램 를 회상할 수 있다. 시각예술 청년작가 15인이 참가해 평론가, 기획자, 교수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평가를 통해 최종 1인이 우승하는 경연프로그램으로 방영 전부터 각계의 이목을 끌었다. 큐레이터학과 교수 심상용은 당시의 현상 논란을 다룬 글「’아트스타코리아는 길인가?’」에서 ‘경쟁’에 대한 에티엔 드 라 보에티(Étienne de La Boétie)의 정의를 인용한다.

“승리는 군주에 대한 최후 복종의 보상이며, 트로피와 상금은 패자들이 차례로 벗어나는 족쇄에 마지막까지 묶여있던 것에 대한 기만의 선물이다.”

심 교수가 이어 역설한 “시대의 위기를 견뎌내는 사람, 예술가로서의 행동방식을 영위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고 살아남는 예술가가 역사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예술가상”이라는 데에는 반론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지금 여기, 떠밀려오는 암울과 고통을 삼키고 사활의 과업을 짊어진 청년 당사자에게 기성사회가 요구할 태도이자 위로가 이에 그치고 말 수 있을까.

3. 어떤 다른 것

청년수당과 관련해 갈등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던 서울시와 복지부는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 의혹이 제기된 직후인 2016년 10월, 극적인 전환기를 맞는다. 복지부가 사회보장위원회의 조정 안건으로 청년수당을 안건으로 상정하고 대통령 탄핵 후인 2017년 3월부터는 실무협의가 진행되는 등 변화에 탄력을 받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약 4개월 후이자 복지부 장관이 교체된 지 한 달 여 만에 서울시와 복지부 간 취해졌던 소는 취하되고 마침내 갈등은 종결된다. 2018년 현재까지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는 누적 1만 5천 명에 이른다.

한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2018년 5월, 홈페이지를 통해「한국예술인복지재단, 블랙리스트 책임에 대한 사과문」을 게시한다. 박근혜 정부 재임 당시 블랙리스트 가동을 통해 현장예술인교육지원사업·예술인맞춤형교육지원사업 폐지, 예술활동증명 심의위원·비상임 이사 검열 등의 부당한 행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예술인의 권리 확보를 위해 저항하기는 커녕 그에 순응하고 내면화시킨 점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블랙리스트 책임에 대한 사과문」“(…) 그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차별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서 다수의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이 유형, 무형의 불이익을 당하였고 예술위, 영진위 등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청와대나 문체부로부터 받은 지원 배제라는 위협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업적 양심에 반하는 업무를 고통스럽게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앞서 4월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의 판결문은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이 받았던 고통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생존 너머의 가치, 사회적 당위로서의 이상이 무너진 문화예술, 공공과 복지의 영역에서 생존을 볼모로 잡혔던 암울의 시기였을 것이다. 이 시기를 ‘청년’의 이름으로 마주했던 이들의 초상을 사회는 어떤 용기로 위로하고 요구할 수 있는가.

서울청년의회

지난 9월 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와 서울시, 서울시의회의 주최로 가 열렸다. 청년 당사자가 정책을 직접 제안하면 서울시가 이를 경청하고 논의하는 민·관협치의 선례로 2015년부터 매해 개최되고 있다. 이날 설자리(문화)분과청년의원은 서울청년예술단 사업의 규모 확대와 최초예술지원사업 대상자의 연령 구분을 서울시에 제안했다. 청년예술가의 다양한 현안에 따른 구체적 지원방법의 모색으로 이어지기는 어떤 다른 차원의 것이 필요할 것이다.

8월 26일, 한 예술인은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대한 비판을 담아 공개한 바 있다. SNS 공유를 통해 급격히 공론화된 이 글은 후속 개설된 “예술인복지재단 가치말살팀 갑질 대책 논의 중”이라는 날선 오픈채팅방 이름과 “활동보고서 조작? 예술인 200명 한 달치 임금 미지급 논란”,”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참여예술인 200여 명에게 활동비 지급 유보 논란”과 같은 언론보도 제목만 보더라도 치솟은 이슈 정도를 가늠할 만하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예술활동증빙에 관한 이견은 비단 근래에 촉발된 갈등이 아니다. 이것이 고질적인 병폐라면 당사자성에 근거한 논의의 장이 활발히 마련되고 기관에 제안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당사자의 생존을 담보로 일방에서 통보될 것은 마땅히 아니다.

“요즘의 예술가 삶을 보고 ‘관노비’, ‘좀비 예술가’라 일컫는 말이 있습니다. (…) 그러므로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주체 스스로가 정의한 ‘청년’을 듣고 싶다고. 그렇지 않으면 선배 세대와 등 돌리기를 고집해 스스로 뿌리 없는 식물을 자처한 젊은 세대, 오직 주류가 인가한 범위 내에서의 비주류 예술, 미술 내 방언으로써만 성취를 이룬 허울의 액티비스트, 그리고 강사를 육성하거나 자본시장에 공헌할 뿐인 본말전도의 예술가 지원사업만 확장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설익은 청년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당신은 청년입니까 -청년예술가 담론에 대한 소고-」

정부는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의 전국화 실행 의지를 갖는 ‘청년구직촉진수당’을 2019년부터 정규예산에 편성했음을 공표했다. 경기도와 성남시가 이미 유사한 사업을 시행 중이고, 광주, 목포, 창원, 제주시도 사업계획 중에 있다. ‘최고은 없는 최고은법’으로 비판받았던 법이 지나치고 간 청년, 노동자, 여성, 그리고 그 밖에도 인간 존엄의 인식밖에 여전히 존재하는 그늘을 조금씩 거두어갈 내일로 생각하고 싶다. 생존주의 너머의 마땅한 가치추구가 정부나 지역, 혹은 정치의 편향이나 기성과 청년이라는 세대 한편에 일임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가 생존한 최고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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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김홍중,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 -마음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한국사회학』 49집, 한국사회학회, 2015. 179-212쪽.

신현두, 「갈등관리와 거버넌스 : 서울시 청년수당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행정학회 학술발표논문집』, 한국행정학회, 2017. 391-408쪽.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

심상용, 「’아트스타코리아는 길인가?’」, 『예술경영』 254호, 2014.04.10.

http://www.gokams.or.kr/webzine/wNew/column/column_view.asp?idx=1288

“최고은법, 최고은은 예술가 아냐”, 노컷뉴스, 2014.04.12.

http://www.nocutnews.co.kr/news/4005740

“서울시 “청년수당 직권 취소 정지” 대법원에 제소”, KBS뉴스, 2016.08.19.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31356&ref=D

“활동보고서 조작? 예술인 200명 한달치 임금 미지급 논란”, 조선일보, 2018.08.2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8/2018082800092.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참여예술인 200여 명에게 활동비 지급 유보 논란”, 뉴스페이퍼, 2018.08.29

“청년들에게 정책결정·운영권한 부여한다”, 내손안에서울, 2018.09.03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178046?tr_code=snews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블랙리스트 책임에 대한 사과문, 2018.05.23

http://www.kawf.kr/notice/sub01View.do?selIdx=7554

2018서울청년의회, 라이브서울, 2018.09.02

http://tv.seoul.go.kr/new/src/onair/vod_about.asp?cid=122801

오정은,「당신은 청년입니까 -청년예술가 담론에 대한 소고」, 『크리틱-칼』, 2017.09.04

http://www.critic-al.org/2017/09/04/8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