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헌_등대 위에서

권혜원, The Projectionist, 가변크기, 2018

이양헌 / 미술비평

그 오래된 건물의 문을 열고 처음 들어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아주 희고 넓은 회랑을 기억하고 있다. 19세기 살롱전이 성대하게 치러지던 궁전의 안뜰 혹은 순례자들이 잠시 머무는 수도원의 대합실을 떠올리게 하는 긴 복도형의 공간은 실내 장식이 거의 없고, 열주(列柱)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어쩌면 이곳이 예전에는 갤러리(gallery)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원을 향하는, 아니 스스로 영원을 열망하는 견고한 조각상과 정동과 표지(標識)를 간직한 회화들, 과거라는 거대한 파도로부터 쓸려 나온 고대의 유물들이 잠들어 있는 독신자들을 위한 만신전. 긴 복도를 걸으며 이곳이 시간의 풍화로부터 관조와 묵상을 위한 사물들을 보존하는 거대한 방주이며, 가장 깊은 곳에는 딜레탕트(dilettante)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경이의 방(Wunderkammer)이 있으리라고 상상했다. 세계를 이루는 첫 번째 표상들로 가득 찬 보물선에는, 동시에 기성의 체계로는 분류되지 않는 이국의 사물들이, 아직 역사에 기입되지 않은 것들이 환원 불가능한 계열을 이루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늬를 만들어내기도 했을 것이다. 공상에 잠겨 복도의 끝에 다다랐을 때,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곳은 매우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곳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적막한 어둠이 스스로 출현하기 시작했을 때, 검은 양탄자가 빈틈없이 깔린 바닥 위에 벨벳으로 뒤덮인 천장과 벽, 의자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조용히 잠들어있는 거대한 스크린은 이곳이 텔레비전과 같은 산만함이 틈입할 수 없는 침묵의 장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의) 완벽한 어둠, 오디토리움의 엄격한 분리, 정태적인 관람의 수칙들이 공고하게 작동하는 이 검은 입방체는 오래전부터 어떤 원형적인 우화를 상기시키며 무성한 소문들을 만들어왔다. 피어오르는 불꽃을 등지고 오직 벽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보는 동굴 속의 부동자(不動者). 그는 이미지에 ‘갇힌 자’인가. 아니면 꿈을 꾸는 자인가. 관음증을 앓거나 여전히 상상계에 매혹된 자는 아닌가. 불현듯 영화관이 셀룰로이드 필름과 영사기, 스크린, 객석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동세에 의해 이음새 없이 접합된 구조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곳은 언제나 불온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범죄의 현장이 아니었던가.

영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크린이 광휘에 휩싸이며 마치 세계를 처음으로 열어 보인 창문과 같이 빛나기 시작했다. 영사기가 투사하는 형상은 스크린에 정박한 채 흘러가는 이미지라기보다 차라리 태초의 광원으로부터 렌즈와 필름이라는 투명한 지지체를 넘어 영사창으로 발산하는 영화 장치의 궤적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영사기가 만들어내는 이 찬란한 파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중세의 수사(修士)들이 카메라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원리를 처음으로 발견한 이후, 굴절과 반사라는 대립적 분화로 전개되어 온 광학의 계보에 관해 생각했다. 그것은 태양과 유리질 광석을 재료 삼아 빛과 어둠의 배타적 지면을 중재하는 연금술로서, 시각성을 강화하는 렌즈와 환상극을 보존하는 거울이 이중의 역학으로 쌓아 올린 유물론적 지층이다. 그러나 질주하는 말의 잔상과 회전하는 유리 디스크,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을 지나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기원으로 하는 영사기에 다다랐을 때, 이 상이한 비전(Vision)은 마술적인 광학기구 안에서 어떤 종합의 계기로 수렴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자연의 빛(lux natural)’이 들어올 수 없는 이 인공의 암실에서 영사기는 우리를 계몽(enlightenment)하는 동시에 현혹하고, 대상을 비추되 그 근원은 감추는 두 번째 태양만은 아니게 된다. 이미지에 현혹된 자들은 절대로 볼 수 없는 투명한 굴절을, 미세한 반사로만 현상하는 표면의 지평선을 잠시나마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빛의 물결이 시작된 수원지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영사창 아래 반쯤 열린 좁은 입구에 들어서자 위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올라간 그곳은 시큼한 초산화 냄새와 함께, 끊어진 필름과 먼지 쌓인 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작은 방으로, 저 멀리 35mm 영사기 한 대가 특유의 파열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여기에 이 영화의 유산들과 함께 늙어갔을 누군가가 있었으리라. 그는 영화관의 가장 오래된 관객으로 그 퇴적의 시간을 견디며 결국 이곳에 일부가 된, 아직 죽음이 드리워지지 않은 서사의 잔상을 이어 붙여 세계를 조망하던 지난 세기의 몽상가였을 것이다. 영사기의 회전운동으로부터 이미지의 리듬을 조율하면서 그가 만들어냈을 빛의 수사학은 산업적인 기술로는 환원될 수 없는 근대의 기억술이자 필름과 핸드휠로 유희하는 율동, 그리고 아무도 본 적 없는 광학의 춤. 그러므로 이곳은 영화관이기 이전에 신체와 극작이 발흥하는 시노그라피(Scenography)의 자리가 되고 수행적인 사건을 예비하는 의고적인 극장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고자 하는 시네필리아의 열망으로 쌓아 올린 무대이기도 한 이곳에서, 그는 또한 무엇이 되는가? 이미지를 운반하는 봉합의 공모자나 은막의 파노라마를 위한 소실점이 될 수 있지만, 그 마지막에서 아마도 이곳에 남은 유일한 맹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로부터 기어이 무언가를 보게 되지는 않은가.

권혜원, 녹색 섬광, 가변설치, 2018

나는 영사실을 나와 다시 나선형 계단을 타고 건물의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이곳이 전시장이나 영화관, 극장이 아니라 어쩌면 출구 없는 미궁의 어딘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단에 끝에서, 고요하게 잠든 원형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자리한 육중한 문 앞쪽으로 커다란 원형의 좌대가, 그리고 그 위에 낡은 오브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는데, 이들은 시네마라는 거대한 은하로부터 탈각된 비-형상의 조각들이었다. 카메라나 음향기와 같은, 그러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초기 기계장치부터 뤼미에르의 경계에서 발흥한 첨단의 디지털기기, 부식된 35mm 필름과 핸드크랭크, 해석되지 않는 다종의 문서들이 무질서한 배치를 이루며, 이제는 기억되지 않는 공백을 향해 웅얼거리는 듯했다. 이 모호하고 낯선 사물들은 기술과 인식(episteme)이 서로 공명하고 또한 길항하는 파토스적 형식을 계승하며, 공인된 기술사(technical history)에 대항하는 원천들을 산출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 이미지의 외존성(exteriority)을 증언하는 상상의(imaginary) 미디어이자 이교적 기원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인공물. 동시에 이들은 누적되는 연속성 속에 새겨지지 않는 진술의 체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아프리오리(a priori)로 실현될 가능성을 예비하고 있기도 했다. 마치 해묵은 세계를 다시 새롭게 하리라는 오랜 수집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듯이.

옅은 소금기 냄새가 잠시 스치는 듯했다. 아마도 저 문 너머에 무언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걸음을 옮겨 문 앞으로 다가가 둔중한 빗장을 열고 앞으로 나아갔다. 태양이 저무는 일몰의 시간이었다. 어두운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풍광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등대 위 어딘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등명기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빛이 저 멀리 아득한 대양의 끝에서 심해의 가장 깊은 곳까지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침잠하는 슬픔들을 비추고 있었다. 한때 가장 찬란했으나, 이제는 선형적인 파도(waves)에 휩쓸려 망각으로 사라진 기계적 메타포와 폐기된 파편들, 쇠퇴한 기술소들이 등대의 섬광으로부터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상실의 표층에서 침강과 융기를 반복하면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잔존하면서, 그리고 다시 그 최초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검은 바다 위로 낯선 역사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 권혜원 개인전 《보이지 않는 영사기사를 위한 매뉴얼》(2018.10.02–10.14, 탈영역우정국)의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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