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제현_공공근로?

엄제현

이효영, <공공근로> 사진, 2018

<공공근로>가 작가 자신이 몸담았던 공공근로사업의 대상을 담아냈다고 해서 이를 성급하게 ‘가난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거나 ‘예술과 노동의 등치’같은 횡행했던 주장들 틈바구니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를 한다면 사유의 태만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유행하는 몇 가지의 언어나 사변으로 대체해 일관되게 서술하려는 노력은 지리한 관념론으로 빠지기 쉽다. 세계의 모순을 겨냥할 인식론의 파산은 우리에게 매번 새로운 언어만을 피질적인 수준에서 이식받을 것을 요구하는데 가령 88만원 세대에서 흙수저로, N포의 점진적이고 병렬적인 연장으로, 북극의 녹는 빙하와 오존에서 미세먼지로 이어지는 말들의 변용이 그것이다. 파국에 가까운 혼란을 은유하는 언어들의 범람은 “그래서 그 다음은 뭔데?”라는 수사적인 호기심을 제한다면 현재를 지칭하는 단어들의 무능만을 나타내기에 말들은 유의어의 수태를 거듭한다. 하지만 언어들의 주기적인 대체와 순환은 객관적 세계가 초래한 재난적인 사태들의 원인을 명백히 가리킬 수 없음에 대한 나름의 대처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이 생산하는 첨예한 쟁점이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할 때 그러한 낱말들은 자발적인 갱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계를 겨누어보려는 몸짓을 취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작업만으론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작가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한다. 거기서 주어지는 업무란 대개 도시의 뒤치다꺼리 같은 것으로서 언제 어떤 업무에 투입될지의 여부가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결정된다. 폐현수막이나 염화칼슘은 작가가 우연찮게 만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구체적인 노동이다. 이것을 오브제로 채택해 <공공근로>라는 제목을 붙일 때 사진은 현상학적인 사실, 물질적인 더미dummy만을 일차적인 수준에서 시현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문제가 녹록지 않음을 실감한다. 이와 같은 매체가 채택될 때 피부 수준의 언어들의 세계에 갇혀버린 주체가 되었단 사실이 감지되었다. 위에서 기술한 언어들의 의도처럼 하나의 현실을 재현하려던 작가의 노력은 재귀적인 감옥으로 굴러떨어진다. 작가의 노동은 염화칼슘이나 폐현수막 같은 구체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가리워져 있는 추상적인 승인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관계들이 표상 너머로 실종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세계를 가늠해보려는 시도는 당장의 직접적인 것들을 담아보려는 충동으로 전치되기 십상인데, 이 탐닉은 불가시성에 대한 가장 원색적인 버전의 반작용일 것이다. 구체적인 것 안에 그것의 원리는 선험적으로 제거되어 있기에 우리는 자기가 보는 것이 자기가 보는 것이 아닌 미친 세계로 진입하였다. (그것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논의는 어떠한 언표도 말하려는 바를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는 포스트구조주의 담론이지 않을까.)

오늘날의 세계가 사회적인 관계가 완전히 추상화된 세계라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기도 하다. 인간 간의 관계가 종식된 세계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죄 시시껄렁한 것이라 누구나 인격적인 것에 대한 기근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공공근로 도중 시민에게 눈길을 돌려 셔터를 누른 결과들은 시민의 삶에 대한 스냅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들에 대한 괴리와 비관계일 것이다. 이를 증빙하듯 근로에 관한 사진에선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데, 그 자리는 인격적인 개인이 되는 것에 대한 불가능이 예견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근로>라는 언표는 그것이 사진에서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한 표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브제들의 불안한 간극을 메우면서 현존하고 있기에 표제의 위치를 차치한다. 언어가 보편적인 추상인 이상 얼마간은 대상을 지시하고 봉합한다. 근면한 사유는 이러한 불일치를 수색함으로써 종래에 이르러서는 불화의 원인을 산출하고 객관화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바로 그 지원’ 작가 매칭 크리틱 일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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