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준_4.3 어제 오늘 그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4.3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날 4.3의 위상은 폭동에서 국가의 위령제로 격상되었다. 위령제란 무엇일까? 위령제는 어제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시키기는 매개체이며, 일종의 현대적 제사이다. 제사에는 여러 주술적 행위가 동원되는데, 먼저 참여자들의 정서적 각성을 위한 다양한 수단이 이용된다. 먼저 제사장은 비극의 기억을 소환한 후, 참여자의 정서적 각성을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국무총리나 연예인, 대학교수 등의 권위를 초대한다. 이들은 각자의 ‘연설’이란 주문을 통해, 4.3의 비애를 ‘개인’에서 ‘국가’의 단위로 격상시킨다. 이때, 제사장이 누구인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제사장은 보통 집단 내의 선망받는 장로나 신의 이름을 빌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3 위령제의 제사장은 이 비극의 가해자인 ‘국가 권력’이 그 역할을 대리하고 있었다.

배우 유아인의 절절한 연설이 끝난 후,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이어진다. 수많은 유족들과 참가자들은 일제히 국기를 향하여 애국가를 제창한다.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대형 현수막에 비장히 적힌 ‘4.3정신’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애국정신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국’이란 국가와 나를 동일시하는 일종의 문화적, 정신적 호명이다. 그렇다면, 애국 정신은 4.3을 소환하는 매개로 적절한 것인가? 잠시 애국가 4절을 살펴보자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애국은 말 그대로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토벌대는 빨갱이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킨 애국자들이 아닌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괴로운 일을 감당해낸 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진정한 애국의 실천자들이 아닌가? 4.3은 아직 그 명칭과 정신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제대로 호칭되지 못하고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4.3 정신은 자주독립이라 주창한다. 물론, 자주독립이란 정신이 희생자의 한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애국이란 이름으로 치장된 이 추념식은 4.3과 유족들을 태연하게 기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본 논평은 국가 권력이 어떻게 제사장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유족을 기만하는 일이 가능했는지 살펴보는 시도다. 먼저, ‘4.3의 어제’를 전반적으로 개관하며, 국가 폭력이 어떤 형태로 4.3이란 대량 학살을 가능케 했는지 논의해본다. 다음으로 ‘4.3의 오늘’에서는 71년 전의 국가 폭력의 형태가 동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위장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4.3, 그리고’에서 4.3의 잔인한 대량학살이 한반도에서 더 이상 재현될 가능성은 없는지 짧은 논제를 던지며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논평을 읽어내려가며 국가 폭력이 어떻게 추념식의 제사장이 되어 다시 유족을 기만할 수 있었는지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은 ‘국가 폭력’이 더 이상 눈으로 식별하기 힘든 지경까지 복잡해졌기 때문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아가, 잔혹한 국가 폭력의 양상이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종결된 과거의 유물인지, 미래에는 또 어떤 폭력의 형태가 도래할지 생각해볼 동기가 되길 기대한다.

4.3의 어제

먼저 사건의 전개를 대략적으로 개관하며, 국가 폭력과 잔혹한 학살이 어떻게 그 무심한 본성을 실토했는지 검토해보자. 4.3은 1947년 3.1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 사건을 말한다. 이른바 신탁통치에 반대하며,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원은 24개의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와 대동청년단 등, 우익 단체의 집을 급습한다. 이로 인해 경찰 4명과 민간인 8명, 무장대 2명이 사망한다. (두산백과, 제주 4.3사건) 이 사건은 이승만의 정권 수립에 있어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1948년 10월 17일 소요찬 연대장의 포고문 발표와 함께, 소위 초토화작전이 실시된다. 초토화작전의 범위는 무장대에서 민중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토벌대는 점점 적으로 간주하는 명단(자수자가족, 입산자가족, 도피자가족, 총살자가족)을 체계적으로 규정한 후, 제주도민 전체를 학살하였다. 토벌대에게 제주도민은 ‘인간’이 아닌, 멸족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토벌대는 도민 전체를 ‘빨갱이’, ‘폭도’로 지칭하며 대량 학살을 전개하였는데, 이러한 비인간화 과정은 잔혹한 살인을 정당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권귀숙, 2006, 189쪽)

그렇다면, ‘빨갱이’는 어떻게 집단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었을까? 이승만은 국가보다 왕조, 국민보다 민족에 익숙했던 한반도에 ‘국민 국가(정부)’를 수립하며 ‘국민화’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국민화’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연대를 의미한다. 연대는 타자를 외부로 분류함으로써, 나를 집단의 내부로 결합시키는 일이다. 이때, 분류와 결합을 위한 매개가 필요한데, 이것은 불가변적일수록, 더 확고한 연대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이승만은 강력한 매개를 찾아야 했고, 민족주의는 충분히 매력적인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거의 반세기 동안, ‘국가부재’ 상태였고, 조선인들에게 ‘민족’은 그 이론적 토대가 너무나 빈약했다. 때문에, 민족주의와 함께 조선인들에게 ‘공동체’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이 필요했고, 그것은 반공주의였다. 기어코 1949년, 이승만은 일제의 반사회주의, 반공산주의, 반자유주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일민주의(민족적 반공산주의)’를 제창하게 된다.

이렇게 반공주의는 국민화 과정과 함께 한반도의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고, 4.3의 잔혹한 대량학살의 원동력이자 기폭제가 되었다. 토벌대들에게 ‘빨갱이’를 살해하고, 연좌제란 이름으로 마을 전체를 멸족하는 일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영웅주의적 행태로 합리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파시즘적 이데올로기가 공포스러운 집단주의의 동기라지만, 어떻게 ‘합리적’인 인간이 그 잔혹한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말이다. (물론, 이승만에게 제주도민은 국민이 아니었다.) 이 매정한 국가 폭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동력을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정당성의 획득이다. 즉, 공권력은 일반 대중을 강제할 힘을 갖는 동시에, 그들의 동의를 통한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 여기서 ‘정당성’이란 단순한 민주적인 다수결의 논리가 아니다. 일반 민중은 생물학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권력은 민중으로 하여금, 강력한 헤게모니로 작동할 수 있었다. 테리 이글턴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헤게모니란 특정 주체가 보편적인 법의 명령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편적인 법의 명령에 동의하는 것이다.”(테리 이글턴, 2011) 즉, 국가 폭력은 다수결 따위의 ‘합리성’이 아닌, 나의 존재로서 ‘본능’의 이름으로 대중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때문에, 폭력은 더욱 매정하고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정당성은 국가가 혼란스럽고, 사회적 안전망이 느슨할 때, 더 강력해지며, 인간의 합리적 판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보된다. 왜냐하면, 나의 존재를 지키는 일은 ‘합리’가 아닌 ‘본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생물학적 본능을 위협하는(정확히, 그렇다고 망상하는)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더 잔혹하고 매정해지며, 국가 권력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활개치기 시작한다.

둘째는 이데올로기의 속성과 지리적 특성의 관계를 살펴보자. 민족주의든, 반공주의든, ‘주의’는 적과 나를 분류하는 일종의 허상의 공동체다. 즉, 그 작동 원리나 궁극적인 목적성은 같다. 하지만, 왜 반공주의였나? 이것은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대외 관계에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경우는 주변 아랍국가에 포위된 지리적 특성상, 민족적 대립 구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민족의 ‘통합’은 그 어떤 이념적 대립도 중재할 수 있는 강력한 공동체의 논리가 된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는 민족적 대립이 아닌, 이념적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민족보다 이념의 논리가 공동체 결속에 더 적합했던 것이다. 즉, 한반도의 빈약한 민족주의는 이념 대립이 대량 학살로 확산될 때, 그 중재자 역할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김동춘, 2000, 27쪽) 이러한, 국가 폭력의 두 가지 동력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논리로 적용되고 있다. 이 논리가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작동하는지 다음 ‘4.3의 오늘’에서 검토해보겠다.

4.3의 오늘

4.3 추념식을 다녀온 후, 동세대 사람들은 4.3의 오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졌다. 포털사이트의 기사와, 베댓, 친구들의 단체 카톡을 종합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유아인이 빨갱이가 되어간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4.3은 없었다”,”문재앙이 국방부와 경찰도 빨갱이로 만들었다”,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 “6.25도 북한에 사과해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의견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문재인, 군경, 이낙연, 김용옥, 유아인은 전부 빨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에게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문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 국가와 민족의 사활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즉, 우리에게 사회의 위기, 정치의 위기, 가족의 위기, 여자친구(혹은 남자친구)의 위기, 키우는 강아지의 위기는 전부 ‘국가의 위기’인 것이다. 국가란 무엇일까. 국가는 왜 우리의 삶 전반을 잠식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4.3의 오늘을 해석해보기에 유용한 힌트가 될 것이다.

4.3은 국가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준 잔혹한 과거의 역사다. 하지만, 우리가 4.3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국가 폭력의 작동을 논하는 일 임에 다르지 않다. 따라서, 4.3은 오늘의 역사이기도 하다. 잔혹한 대량 학살은 ‘민족주의적 반공주의’란 한반도 특유의 이데올로기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영웅주의적 정당성을 등에 업고 폭력을 합리화했다. 폭력의 실체는 대부분 군대와 경찰이었고, 군경은 국민은 지켜야 할 집단으로 오늘날까지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군경은 과연 대외적인 전쟁에서 국민과 국가를 지키는 ‘민중의 수호자’로 착실히 기능하고 있는가? 71년 전, 4.3은 민중의 수호자란 무지한 환상이 어떻게 총칼이 되어, 주인의 목을 내려 치는지 또렷이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공권력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폭력은 언제나, 당시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지배층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폭력의 실체는 결국 군대와 경찰이며, 이들의 역할은 ‘안보’일 것이다. 하지만, 안보는 전쟁과 지역 갈등 같은 대외적인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재산권의 수호자로도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폭력의 이데올로기를 한반도에서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91년 전후까지 4.3의 폭력을 정당화한 냉전 이데올로기와 97년 이후의 글로벌 자본주의의 질서가 성문화된 신자유주의 체제의 공권력이다. 먼저, 1948년 4.3과 여순의 역사 이후, 임시적 국가보안법은 토론과 검토 과정도 없이 통과되었고,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국회 외의 조직에서 반공법이 통과되었다. 또 1980년에는 신군부에 의해 역시 국회 외의 초헌법적 조직에서 국가보안법이 통과되었다. 특히, 이 시기의 공권력과 민중 간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은 1993년 비대의기관이 통과시킨 법안들이다. 제헌의회 이후, 1993년 9월 30일까지 통과된 법률 4580건 가운데 국회가 아닌 비대의기관에서 통과된 법률이 무려 1467건에 달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주로 제정된 안기부법, 노동관계법 같은 억압적 법률 등은 국민 일반을 압박하는 업청난 물리력으로 작용하였다.(김동춘, 2000, 39쪽)

이렇게 한반도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국민화 과정의 잔혹한 학살이란 구체적 폭력에서 ‘국가보안법’을 필두로 한 국민 통제의 형태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된 후, 국가 질서를 통합하는 수단으로써 반공주의는 힘이 많이 빠지게된다. 이렇게 국가 권력과 민중 간의 관계는 점점, 지배 계급의 재산권을 지키는 자본주의적 질서로 노골적인 전환을 꿈꾸기 시작한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은 이러한 정경유착의 이면을 선명히 보여주었다. 우리는 역진세, 부채탕감, 규제의 포획, 이익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보조금, 자본의 선거기금 기부 등이 자본과 함께 어떻게 민간을 기만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 2014, 205쪽) 이렇게 국가 권력의 횡포는 ‘학살’이라는 극단적이고 구체적인 전근대적 폭력에서 법치와 자본이라는 논리로 깊숙이 민중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론적 당위성은 여전히 민중의 자발성을 토대로 한다.

우리는 어제의 4.3의 폭력이 오늘날 어떻게 자본과 협공하여 가장 힘없는 민중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하고 있는지 보았다. 1948년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국가 폭력은 국가를 독점하여 이득을 취한 소수 집단의 횡포였고, 그 폭력을 감당한 자들은 가장 취약하고 무고한 민중이었다. 결국, 모든 무차별한 폭력은 이익 집단의 잔인한 이기심과 힘없는 민중의 비극을 토대로 한다. 이런 폭력의 논리는 그 어떤 역사에나 동일했다. 단지, 가시적인 형태만 달라졌을 뿐이다. 일제가 조선을 점거했을 때도, 영국이 인도를 지배했을 때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도, 베네수엘라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도, 폭력은 이익 집단에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폭력은 ‘학살’이란 구체적인 형태만큼 우리 피부에 잘 와닿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국가 폭력의 구체적인 실체는 이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가와 자본의 폭력은 가끔 우리 눈앞에 나타나 자신의 정체를 뻔뻔스럽게 실토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기오염과 생태계 파괴, 해양과 토양의 오염이다. 그리고, 여전히 환경 파괴로 취한 모든 이득은 권력이 가져가며, 불가피한 피해는 무고한 민중이 온몸으로 감당해내고 있다. 한반도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미세먼지는 가장 대표적인 자본과 국가 폭력의 결과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폭력의 형태에 대해 논의해보았다. 1948년, 토벌대의 폭력은 ‘적’의 형태에 따라, 전략과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권귀숙, 2006, 173쪽) 물론, 사건 후기에는 더 이상의 구별 없는 초토화 학살이 시작되었지만, 적과 아군은 사투리, 복장, 나이 등의 실체적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오늘날, 권력은 더 이상 자신의 실체를 가시화하지 않는다. 아무리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권력의 기만은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4.3, 그리고..

마지막으로, 71년 전 잔혹한 학살을 주도한 악랄한 폭력의 유령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을까? 아마, 학살의 유령은 구천을 헤매며 다시 그 실체를 증식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 모른다. 역사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갈등은 엄밀히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이익 집단과 계급의 갈등이었다. 즉, 역사 발전의 방향성이란 측면에서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갈등의 양성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것이다. 과거의 진보는 개화파이며, 보수는 수구파였다. 하지만, 이제 진보는 반미와 민족의 자립을 외치며, 보수는 친미를 외친다.(탁석산, 2004, 121쪽) 따라서, 한반도의 진정한 냉전이 끝나면, 자본의 포악함 아래, 힘을 잃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유령들이 다시 부활을 꿈꾸지 않을까? 그 중에서 한반도의 연대를 끌어갈 핵심 사상은 아마 ‘민족주의’가 다시 호명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명실상부한 민족주의가 다시 한반도에 소환되면, 민족의 역사적 사명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이끌어갈 추동력을 얻으려 할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민족의 이름으로 죽여야 할 적이 될 것이다. 71년 전, 학살의 유령은 이 땅에서 정말 사라진 것일까? 만약, 다시 한번 한반도에 잔혹한 피바람이 분다면, 어떤 모습으로 다시 신적폐를 가려낼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4.3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며 국가 폭력이 어떻게 대량학살을 가능케 했으며, 오늘날 국가 폭력은 어떻게 그 실체를 변화시켜 감추어 왔는지 살펴보았다. 당분간은 국가권력이 뻔뻔하게 민간을 기만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자본은 그 악랄할 내재적 성격상, 더 많은 무산계급을 만들어낼 것이다. 소유자는 자신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늘어나는 무소유자의 숫자에 비례한) 공권력을 육성, 유지할 것이며, 국가 권력은 동조할 것이다. 자본 아래, 국가주의는 있어도 국가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권력의 이면을 어떻게 선명히 가려낼 수 있을지, 나아가, 근본적인 저항이 어떻게 가능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고 문헌)

두산백과, 「제주 4.3사건」

테리 이글턴, 프레드릭 제임슨, 에드워드 W. 사이드 (2011) 「민족주의, 식민주의, 문학」, 인간사랑

권귀숙 (2006) 「기억의 정치, 대량학살의 사회적 기억과 역사적 진실」, 문학과지성사

김동춘 (2000) 「근대의 그늘」, 도서출판 당대

데이비드 하비 (2014) 「자본의 17가지 모순」, 도서출판 동녘

탁석산 (2004)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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