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지_치환과 전환 : ‘미국적 영웅’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는가-‘스타워즈 4’와 ‘엔더스 게임’

전민지

  굳이 수치화하지 않더라도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와 <인디애나 존스(Indiana Jones)> 시리즈는 역사상 최대의 수익을 기록했던 영화계의 양대 산맥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여타 배우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두 시리즈의 주인공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위의 대표작 외에도 다양한 액션 영화의 영웅으로서 일찍이 상업적 능력, 또는 매력을 증명한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1942~)는 ‘가장 미국적인 영웅상을 연기하는 배우’로 평가받아왔다. 일흔 다섯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2017)에서 릭 데커드로 35년 만에 귀환하였고, 1981, 1984, 1989, 2004년에 이어 2020년 <인디애나 존스 5>의 주인공으로 돌아올 것을 밝혔다.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어느 영화에서나 영웅적 면모를 뽐내는 그의 모습은 그를 따라다니는 다양한 수식어에 신뢰감을 불어넣는다. 그렇다면 ‘영웅적’이라는 해리슨 포드의 시간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왔는가? 몇 년 뒤에는 어디를 향하게 될 것인가? 주지하듯이, 생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나면 모든 인간은 오랜 기억을 안은 채 거울 속 주름진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도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변화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름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해리슨 포드에게도 시간의 흐름은 당연하겠다. 다만 해리슨 포드의 필모그래피에서 그의 ‘외적 변화’는 의외로 큰 의미가 없다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곱씹어보던 중, 필자는 각 영화에서 포드가 맡았던 역할들을 묘하게 이어볼 수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30여 년 전 과거의 캐릭터를 다시금 흡수하며 영화사에서 흔치 않은 행운아로 등극하였기에, 새로운 <인디애나 존스>가 돌아오기 전 해리슨 포드라는 낡고도 굳건한 이름을 감히 호명해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본 글은 작품론도, 배우론도 아니며 그저 영화사 속 미세한 맥락을 읽어내려는 – 그리하여 몽매한 – 시도임을 밝힌다. 필자는 각 영화에서 해리슨 포드가 맡은 역할이 겪는 ‘치환’ 과정이 곧 시대별 영웅상의 ‘전환’ 과정이라는 전제 하에, 그의 대표작 중 <스타워즈 4(Star Wars: Episode IV A New Hope)>(1977)1)와 <엔더스 게임(Ender’s Game)>(2013)2)을 다루어 보겠다. 두 작품 모두 머나먼 미래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영웅의 존재를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둔다. 물론 각 영화에서의 치환은 약간의 차이점을 지닌다. <스타워즈 4>의 경우 한 솔로(해리슨 포드 분)가 주인공 루크를 돕는 인물 오비완의 사망으로 인한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엔더스 게임>의 경우 그라프 대령(해리슨 포드 분)이 전술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는 주인공 엔더에게 자신의 역할을 물려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스타워즈 4>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한 솔로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한 솔로로 대체되는 인물인 오비완 케노비에 대한 분석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3) 오비완은 사막행성 타투인(Tatooine)에 숨어 사는 마지막 제다이로, 벤 케노비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그는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적 힘이자 모든 생명에 의해 만들어진 에너지장 ‘포스(Force)’를 강조하며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를 가르친다. 그러던 중 제국군의 다스 베이더에게 살해당하며 육체적으로는 루크의 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죽기 전 그가 말했던 것과 같이 영혼은 살아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루크에게 목소리로 가르침을 전한다. 즉, 그는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 반란군의 승리에 일조하게 된다. 한편 오비완은 루크의 곁에서 육체적으로 존재하며 그의 역할을 대치할 인물로 한 솔로를 얻게 된다. 그러나 한 솔로는 오비완의 포스를 불신하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인물로서, 선술집에서 한 발의 총알로 상대를 제압하는 등 웨스턴적 특징을 보인다. 마지막 시퀀스가 되어서야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는 그는 등장에서부터 육신을 잃을 때까지 정의롭고 도덕적이었던 오비완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무법자와도 같았던 그의 행동 코드가 완전히 뒤집혔다는 점에서 오비완의 정신적 가치가 일정 부분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치환이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왜 오비완을 대체하는 인물이 오비완과 극명히 다른 것인가? 그의 육체가 한 솔로의 육체로 대체되는 것은 미국적 신화의 관점에서 몇 가지 함의를 내포할 것이다. 즉, 미국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정형화되었던 미국적 정신과 전통적인 미국 신화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의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미국적 정신’은 개인주의, 상황에 따른 문제해결 방식, 그리고 모든 정치적 문제의 비영속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가장 근본적인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혹자는 한 솔로의 대표적 특징인 ‘개인주의’가 신대륙의 개척주의(Frontierism)와 자유주의의 기반이 되는 미국적 가치를 표상한다고 평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회적 규범의 구속력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규범에 대해 냉소적인 웨스턴적 인물은 그 사회의 갈등에 개입해 스스로의 행동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이와 같은 인물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당시 미국 사회가 오랜 시간 겪고 있던 정치적 및 국제관계적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하던 대중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미국적 신화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갈등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영화계는 자국의 전통적 신화에 바탕을 둔 국가적 이데올로기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덕분인지, 영화는 크게 흥행했고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덧붙여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객을 만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1930년대 즈음에 유행했던 ‘할리우드 영화의 미국적 신화 차용’을 1977년 작에 행했던 이유를 추측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다시금 미국적 정신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노쇠해가는 오비완이 아니라 젊은 한 솔로였다. 오비완이 상징하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한 솔로가 대표하는 신세대에서 미국적 신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있어 ‘시간이 흘러도 미국인들은 미국적 신화를 잃지 않고 미국만의 이데올로기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져도 같은 신념하에 현재 봉착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등의 희망적인 메시지와도 같았다. 두 번째로, 당시에는 신인배우에 불과했던 해리슨 포드가 한 솔로 역을 맡았다. 조금은 실험적이었던 캐스팅이었으나, 신세대적 영웅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 포드가 차츰 경력을 쌓게 되면서 미국적 영웅으로서의 특색이 필모그라피에 더욱 강렬하게 부여되었다. 이어서 한 솔로의 성공을 예견했던 감독 조지 루카스가 당시 신작이던 <인디애나 존스> 주연으로 해리슨 포드를 발탁하면서, 포드는 모험가/영웅/해결사 등의 이미지를 강하게 띠게 되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부여받은 영웅의 이미지는 <스타워즈 4> 이후에 더욱 강렬해졌으며, 현재진행형으로도 강렬해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거슬러 오른 필모그라피의 두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타워즈 4>의 가치를 끊임없이 높이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세 번째, 미국적 영웅을 대표하는 웨스턴적 주인공은 본래 무법적이고 야만적이었으나, 이 영화의 한 솔로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어느 정도 수정되고 부드러워진 웨스턴적 영웅의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당시 시대상에 걸맞은 새로운 영웅상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4) 영화가 제작되었던 1977년 당시,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패배의 여파로 사회 각 계의 반전운동이 일어났다. 전쟁에 대한 참회의 목소리를 기다리던 국민들은 한 솔로를 통해 잔인성과 편파성에서 벗어난 신개념 영웅주의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엔더스 게임>은 그라프 대령이 차기 지휘관 엔더라는 인물로 치환되는 싸움을 통해 신구갈등과 과거-현재 세계관의 충돌을 말하고 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여성 장교 로빈슨 소령과 함께 엔더의 부모를 대체하지만, 사실 부모보다는 더욱 보수적이고 강제성을 가지는 인물로 등장한다. 엔더를 키우는 과정에서 소령이 그의 심리상태를 걱정할 때마다 대령은 엔더의 공격성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년’으로서의 엔더는 전혀 걱정해주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 다다르면서 엔더가 자신이 한 종족을 멸망시켰다는 죄책감에 오열하는 것에 반해, 그라프 대령은 처음으로 그를 치켜세우고 지구를 위해 훌륭하게 싸웠다고 칭찬한다.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구세대는 상대를 정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세계관을 심어왔다. 그들에게 있어 포믹에 대한 포비아는 공산주의를 증오했던 것과 동일시되는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아이들에게 심어 그들이 자연스레 타자에 대해 배타적으로 변하는 것을 방관하였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인하여 구세대에게 공존을 위한 행위는 도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실제로 그라프 대령은 신세대인 엔더의 능력을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치관은 철저하게 배격한다. 구세대의 세계관을 답습하라고 강요하는 동시에, ‘공격성’만이 그들의 생존전략이라는 신념을 세뇌시킨다. 엔더의 행동을 비밀리에 관찰하고 분석하던 구세대들이 결국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그를 실제 전쟁에 투입시키는 것은 이와 같은 그들의 신념을 대변한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과거의 퇴행을 거부하고 공존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의 현 상황에도 경종을 울린다. <엔더스 게임>의 역할 치환은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부각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기본적인 가치가 자기 생존인 신자유주의에서는 경쟁을 통해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전략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고, 그 희생은 또 다른 희생을 낳으면서 결국 대다수를 불행의 위험에 빠지게 한다. 어린 소년은 경쟁에서 승리하여 모두가 원했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그 이후 이처럼 갈등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장면들은 경쟁 중심적 신자유주의 체제가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자기반성의 기능을 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리슨 포드의 역할 치환은 각 시기마다 변천사를 겪었던 미국적 영웅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낸다. 한 솔로와 엔더는 공통적으로 영화 내에서 세대교체의 기능을 가지며, 이전의 전통적 영웅상에서 점차 비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영화를 동시에 관통하는 흐름으로 보자면 <스타워즈 4>에서 새롭게 등장한 미국적 영웅과 <엔더스 게임>에서 제시된 미국적 영웅의 표본은 나름의 차이점을 가진다. 먼저 <스타워즈 4>의 경우 베트남전 직후라는 시대적 특수성에 발맞추어 잔인함보다 지혜로움을 선택하는 영웅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새롭게 떠올랐던 영웅 한 솔로 또한 그를 연기했던 해리슨 포드와 함께 40여 년 간 미국의 다양한 정치 및 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2013년의 그라프 대령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 뒤 <엔더스 게임>의 그라프 대령은 경쟁보다 공존을 중시하는 어린 영웅 엔더 위긴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몇 차례 치환된 해리슨 포드는 다시금 전환을 향해 나아간다. 그와 동시에 ‘미국적 정신을 갖춘 미국적 영웅’이 시대에 따라 어떠한 변천사를 거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아이콘으로 승화된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지난 반세기의 미국적 영웅관이 전환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설명해내고 있다. SF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할리우드 영화가 드러내는 아메리카니즘은 보수적이고 공격적이던 과거의 영웅을 뛰어넘어, 함께 사는 법을 중시하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의 영웅을 만나게 되었다. 미국 사회 속 영웅에 대한 가치관 전환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체계로서, <스타워즈 4>와 <엔더스 게임>에서의 역할 치환은 배타성을 포용으로 전환시키는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미술사의 분과를 넘어 이미지의 모음으로 문화사를 구축하고자 했던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의 말을 빌리자면, 시각적 이미지는 ‘이야기’를 하며 사유케 한다. 현재의 인류는 이로써 간과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 세계에서 실현되지 못한 이상이 허구의 이야기 – 장르로는 SF이자 시대로는 머나먼 미래, 공간으로는 우주 – 속에서 실현된 것이다. 70년대 이후로 영웅의 시각적 원형(原型)이 되기에 이른 해리슨 포드가 이 모든 사회적 기억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임은 앞서 톺아보았듯이 꽤나 명백하다. 그리하여 최소한 미국의 역사에서는 의의가 깊은 ‘영웅’의 존재로 역사의 흐름과 사회의 변혁을 살펴보는 것 또한 디스토피아나 사이버 펑크 등으로 현 세대를 돌이켜보는 것만큼이나 유의미하다고 되뇔 수 있겠다. 궁극적으로는 영화의 역할과 배우의 역할이 차라리 이성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요구를, 예컨대 시퀀스의 한 부분에 은신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을 굳이 꺼내어 기나긴 문장으로 풀어내라는 기대를 뿌리칠 수 있기를 바란다.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 속에서 집단적 기억을 꺼내어들고 그 속의 사유를 파헤치려 시도하는 관람객들은 결국 어떤 지평이든지 간에 이 세계를 읽어내는 법을 개척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확장의 범위는 영화(의 크고 작은 모든 부분)에 달려 있다. 앞서 분석한 두 영화가 그러했듯이.

 


1) 편의상 <Star Wars: Episode IV A New Hope>를 <스타워즈 4>라고 칭한다.

2) 해리슨 포드는 이 영화로 제 40회 새턴 어워즈에서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3) 이전 및 이후 시리즈는 제외하고 <스타워즈 4>에서 나타나는 오비완의 모습만을 분석한다.

4) 정통 웨스턴적 영웅과는 사뭇 다른 반전을 통해 단순히 무법자로만 남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웨스턴적 특색뿐만 아니라 오비완의 현명함을 일정 부분 이어받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가능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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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기, <SF 부족들의 새로운 문학 혁명, SF의 탄생과 비상>, 책세상, 2004.

최영진, 「미국적 사회의 관점에서 본 SF영화의 관객성」, 『영어영문학』 제 54권 4호, 2008.

홍원표, 미네르바정치학회, <정치@영화>,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8.

Ray, Robert B, A Certain Tendency of the Hollywood Cinema 1930-1980, Princeton : Princeton UP,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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