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_지박령과 싸우는 예술가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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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이던 몇해 전 나는 ‘복도갤러리’에서 나를 포함 몇 명의 작가를 모아 전시를 기획하고 있었다. 복도갤러리는 공모를 통해 기획전시를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문자 그대로 건물 복도를 전시 갤러리처럼 만든 장소였다. 강의실과 학과 사무실, 교수연구실을 연결하고있는 대학건물의 여느 흔한 복도지만, 천장에 할로겐 조명 레일이 있고 흰 가벽이 본벽에 덧대어 있으며, 항상 그곳을 지나는 학생과 교수님에게는 ‘이쯤에서부터 저쯤까지는 갤러리’라는 공공연한 합의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전시 오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복도갤러리의 벽면에 대문짝 크기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건물에 엘레베이터를 놓는 설치공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사전에 공지되지 않은, 담당 조교도 몰랐다는 일이었다. 나는 외벽까지 뻥 뚫려 바람이 내부로 숭숭 들어오는 구멍이 초래한 난관을 해쳐나갈 방법을 급히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허공에 난 씽크홀 같은 그것과 이를 임시로 막아놓은 얇은 비닐을 활용해 장소특정적으로 작품을 설치하고, 이 상황을 기록하면 흥미로운 이슈를 첨가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묘안으로 떠올렸다. 그런데 그것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공사가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이튿날 구멍이 메워지고 엘레베이터 설치가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허무한 일이었다.

결국 복도갤러리에서의 전시는 원안대로 실행되고 마무리되었지만, 화이트큐브와 같이 장소의 무색무취를 지향하는 애씀과 이에 대조적으로 장소 고유의 특성이 부각되고 그것이 작업에 결부되면서 전에 없던 풍경을 만들어내는 상황에 대한 나름의 생각 고리를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복도갤러리는 실은, 구 안기부 건물이었다가 국립예술학교가 된 건물의 동선이 활발한 2층 중앙층계 왼편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장소의 상흔과 더불어 미술학도로서의 어떤 책무가 더해진 무거운 공간이다. 공간의 분위기는 특유의 학풍과 더해져 어딘지 가학적인 공포감까지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사용 불편감과 볕이 들지 않는 시설의 차디찬 냉기가 주는 추위, 단지 그것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묘연하고 깊은 음습함이였다고 증언할 수 있을까. 학교 안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인근의 의릉 묘지 때문이다, 안기부 시절 자행된 고문으로 명을 달리 이들의 한 때문이다, 미술 전공자 특유의 성향 때문이다 등으로 저마다의 해석을 달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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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난 내가 예술인복지현장을 돌아 현재 정착한 곳은 서울시 혁신파크 일대에 내의 건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취임당시 시정철학으로 내세웠던 ‘사회혁신’의 비전이 공간에 체화된 곳. 한편으로는 1960년 국립보건원, 질병관리본부로 쓰였던 건물과 토지를 활동가의 사무실과 시민을 위한 공원 등으로 바꿔 나가는 중의 곳이다. 나는 모교 건물보다 규모상으로는 작지만 공간의 나이와 구조를 꼭 닮은 건물 2층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곳 역시 특유의 공간 기운이 있어 그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과거 의학실험으로 사망한 동물이 지박령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폐쇄병동구조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설… 그런데 이곳을 근무지로 하는 활동가·노동자 특유의 성격적 경향성이나 조직문화 같은 것 때문이라는 설은 없다.

​“터의 기가 쎄서 예술하는 기 쎈 애들이 감당할 수 있대.”

​재학시절 들었었던, 그리고 이후로도 변주되어 들리고는 했던 이 말은 예술가의 사회적 소임을 너머 어떤 미신적 효험까지도 신망하는 세간의 의식이 내포된 듯하다. 예술의 신비하고 숭고한 미의식과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메커니즘이 동반해 이룬 역사를 짚는 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나, 예술이 전략적이건 필연적이건 수취해왔던 인식의 지평을 잠시 보류하고 동시대 예술가에게 봉헌된 삶의 단면을 언술하는 것은 새로운 각성을 위함이다. 이는 예술가의 공간에서 경험했던 가학적인 공포가 추억에 그치지 않는 감각으로 끊임없이 내성화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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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디외는 『예술의 규칙』(1992)에서 예술에 대한 사회의 집합적 신념, 무의식적인 공모를 종교에 비유했고, 예술의 재화가 탈상업의 순수를 옹호할 때 역설적으로 획득 가능하다는 ‘증여의 이중적 전략’ 기제를 밝히며 예술이 스스로의 자율성을 방어하기 위한 토대를 경제적 시각에서 환원했다. 그런데 브르디외가 예술을 경제적 환원주의로 사유한 논제의 허점을 보완하며, 다시 말해 예술의 규칙을 해독하기 위한 독립변수로 예술을 점거하는 경제의 위계를 수평으로 내려둔다면, 경제 역시 사회의 유동적 결과물이며 예술의 언어로 소명될 수 있는 주관적 지층이 된다. 자넷 월프가 『예술의 사회적 생산』(1981)에서 보인 관점 “예술작품은 닫혀있고 자족적이며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생활하는 명확한 사회집단이 행사하는 특정한 역사적 실천행위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에는 그 사회집단의, 그리고 그들의 대변자격인 개개 예술가들의 사상과 가치와 존재조건이 각인되어 있다.”, 이는 예술이 번역할 수 있는 사회의 층위를 확장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상수로 서게 하는 초석이 된다. 이에 따라 예술가는 은둔한 외톨이와 샤먼의 지위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에 개입하는 실존 주체로서의 역할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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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을지로에서 열린《박원순 개인전》(2019.3.8-24. 상업화랑)은 심승욱, 오세린, 일상의 실천, 정용택, 차지량, 최황, 한정림, CMYK 작가가 프로젝트팀 ‘서울-사람’으로 연대 기획한 전시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개발사업을 풍자했다. 전시는 을지로 세운상가 일대를 둘러싼 도시재정비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공론화된 시기 직후 개연성있게 등장한 만큼 화제를 끌었다.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시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했다가 보상금 지급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계획과 금융위기 여파로 장기 표류된 바가 있다(2006-2011). 이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 철거계획을 무효화하고(2012), ‘세운재정비촉진지구사업’으로 도시재정비에서 도시재생의 방향으로 사업을 변경했으며(2014), 세운상가와 상가군 양옆일대를 묶어 ‘세운재정비촉진지구’사업에서 제외된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하고(2015), ‘다시세운프로젝트’사업을 통해 세운상가를 재단장했다(2016-2017). 그러나 여전히 재정비지구로 남아있는 공간에 드리워진 철거 윤곽이 선명해진 2018년 11월, 일대 상인과 예술가, 시민단체의 반발이 불거졌다.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 는 보다 조직적으로 의견을 규합한다. 이에 서울시는 2019년 1월, 변화된 지역 생태계와 여론을 수용해 계획안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으로 입장을 표명했고 이에 논란은 전보다 한층 소각된 상태다. ​

《박원순 개인전》에서 박원순의 어시스트, 전시의 코디네이터로 자신을 명명한 작가 차지량은 작가노트를 통해, 2019년 1월 시작된 본 전시기획과정을 설명하고 2008년 서울 동대문 운동장이 철거되던 때에 공사장 위장취업으로 여러 관계자들을 만났던 과거의 경험을 역행한 뒤, 주체적 개인을 만났다는 것으로 그간의 행위를 서술한다. 이같은 설명과 전시홍보과정은 페이스북 ‘박원순 개인전’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지난 포스트 민중미술의 어법이 되돌이표되는 도시 속 사건과 일련의 과정 속에서 신생공간세대 작가의 변주된 태도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의 주체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위치지으려 하며, 감각적 작용으로 그것을 다른 개인에게 전이시키는 데서. 이들의 실천이 교육 워크숍이나 저널리즘 리서치에 기반한 방식을 벗어나 인터넷 기반의 이슈 확산을 도모하며, 따라서 이전까지의 지리적 범주를 뛰어넘는 데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박원순 개인전》은 박원순 시장 개인을 전시에 호명하는 것을 필두로 예술가와 기자, 상인과 활동가, 관객에 이르는 각 개인을 초대한 효과를 거두고 ‘우리’가 아니라 ‘나’로 연대한 일시적 플랫폼으로서의 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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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 낙후시설과 퇴색업종을 철거·철폐하고 그 자리에 신식빌딩을 증축하는 식의 도시개발과 오랜 골목 특유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개·보수하는 도시재생은 서로 다른 예술적 태도를 요청한다. 소위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감각에 비유할 만한 낡고 오래된, 멜랑콜리하며 노스텔지어적인 모티브는 도시개발보다는 재생을 대하는 미감에서 발견되며, 이는 재생의 어젠더가 그 자신의 존립을 위해 예술을 호출한 여러 실례에서 드러나는 미적 감각을 통해 확증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적 시각에서 진단한 도시공간의 병증을 예술에 대한 감상적 접근에서 처방을 구하고자 할 때이며, 이때 예술가가 처할 수 있는 위기; ‘예술가는 배고파야 한다.’식의 무의식적 공모가 집단의 미적-도덕적 가치로 내면화될 때이다. 사실, 브르디외의 설명처럼 예술은 ‘사심없음의 전략’으로 순수를 옹호할 때 역설적으로 자본에 근접할 수 있으며, 이는 신생공간 작가가 제도권 안에 빠르게 엑세스된 것을 언급한 비평서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예술에 대한 경제의 상급을 전제로 할 뿐, ‘배부른 예술가가 사회를 살찌우는’ 가능성을 말하지는 못한다.

​예술가의 창작환경으로서 사회가 응당 배분해왔던 도심의 빈 공간. 그곳에 기거하는 예술가는 주체적 자기를 구하기 위한 세입자이며, 공간을 점령한 유령과 싸워왔다. 몇 년 전 전시를 앞두고 복도갤러리에 뚫렸던 구멍은 의릉 혹은 지하 고문실에서부터 나타난 유령이 낸 흔적이었을 수도, 아니면 시설 측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달라진 공간에도 즉각 범용되는 장소특정적 창작력을 조언했던 누구의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지, 당시 은폐되었던 가학적 공포를 서술하는 것으로 오늘의 세운상가와 예술인 창착존, 문화재생지구를 경유한 개인들의 감각을 모아보는 것이다. 이는 도시공간을 주무르는 유령에 대하여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단의 자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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