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예술가는 도시재생을 치장하는 장신구가 아니다

홍태림(미술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 민간위원)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현장소통 및 공론화 소위원회가 기획한 ‘도시재생 관련 예술가 레지던시 실태 토론회'(2019.5.23)에서 발표될 기조발제문 입니다.

2002년, 서울시는 강남과 강북의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강북의 재개발구역 여러 개를 묶어서 정비하는 뉴타운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뉴타운 사업은 2005년에 국회를 통과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서 더욱 본격화 되었다. 물론, 뉴타운 사업에 장밋빛 전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장밋빛 전망의 뒤편에 도사리던 탐욕들은 알면서도 간과했고, 그 미필적 고의는 부메랑이 되어 결국 2009년에 기어이 용산참사 같은 끔찍한 사건을 낳기에 이르렀다. 이명박과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 진행된 이러한 뉴타운 사업의 광풍은 2008년 전후에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난항 속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2년 벽두에 앞으로의 뉴타운 사업을 소유자 위주에서 거주자 위주로 그리고 전면 철거보다는 인간답게 살 권리와 마을 공동체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는 ‘뉴타운·정비사업 新정책구상’을 발표한다. 즉, 이 구상은 뉴타운 해제 지역을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렇게 대두된 도시재생이 오늘날처럼 전국에서 소용돌이치게 된 것은 2013년에 19대 국회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한 것과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5년간 50조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전국 500곳을 지원하겠다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국정과제로 천명하면서다.

2009년 1월20일 경찰특공대의 철거민 농성 진압 과정에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남일당건물 망루 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편으로 뉴타운 사업의 반대편에서 이렇게 대안으로 부상한 도시재생이지만, 당연하게도 도시재생에 드리워진 암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박근혜 정권 때는 여당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도시재생 사업으로 각 지역에 세금을 뿌릴 거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찝찝한 여운이 전국에 스며들었던 것을 떠올려볼 수 있고. 주거복지 실현, 도시 경쟁력 회복, 사회통합, 일자리 창출을 골자로 한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도 서울공화국 현상과 인구감소 및 인구유출로 인한 지역의 공동화, 정치권과 토건족의 결탁으로 난립한 신도시들로 인하여 파괴되는 구도심 문제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과 맞물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어쨌든 이렇게 도시재생 사업이 근래에 계속 양적으로 팽창함에 따라서 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는 상황이니 어쩌면 도시재생 관련 레지던시의 실태를 논의하기보다는 도시재생 사업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가 더 시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시재생에 사업에 대한 문제는 이 토론회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토론회는 부득이 도시재생 사업을 상수로 두고 그 상수 안에서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의 불투명함은 도시재생이 들어있던 괄호에 다른 내용물을 넣어도 다시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번 토론회는 괄호 안에 어떤 내용물이 들어오게 되더라도 예술가의 지위가 법적으로 정당하게 존중받고 그에 따른 대우도 명확해질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는 자리가 될 필요가 있다.

http://www.hansung.ac.kr/web/hsct/3%20(
한성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

이 토론회의 출발점이 된 한성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단의 예술가 레지던시(이하 한성대 레지던시) 사업은 도시재생 관련 예술가 레지던시 사업에서 예술가의 지위 및 대우에 문제가 있었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사안에 대하여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의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예술가의 지위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김영주 의원실이 주최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황승흠 교수가 “예술인이라는 사회적 직업에 따른 권리와 의무의 총체를 말한다. 즉 지위란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적 규율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적 위치다.”라고 말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예술가에 대한 대우는 이러한 지위의 정립을 바탕으로 예술가의 노동이 다른 직업군에서 이뤄지는 노동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을 인지하고 보장하는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를 이렇게 정의해 보았을 때 한성대 레지던시 1기 사업에서 예술가의 지위는 ‘갑’인 한성대 캠퍼스타운 사업단(이하 사업단)이 제공한 일말의 자원을 군말 없이 몇 배로 갚는 ‘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기 한성대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입주기간 동안 활동비 월 30만 원과 협소하고 창작을 하기에 부적합한 입주 공간 제공이라는 대우만으로 매월 15일 이상 이 공간을 사용해야 했으며 사업단의 월 활동비 외 실비 및 장비 지원에 대한 비협조적 태도 속에서 입주기간 동안 1회 이상의 개인전 개최, 건물 외벽 꾸미기 같은 공동 프로그램 진행, 앵커시설과 연계된 오픈 스튜디오 전시 개최, 지역축제 및 행사 참여 같은 의무들을 수행해야 했다. 게다가 1기 한성대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은 이러한 과중한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업단 측의 활동보고서 및 작품에 대한 개입, 홍보물에 입주 작가 이름 누락, 사업의 목표에 반하는 입주 작가와 지역주민과의 접촉 제한, 전시장 작품 방치, 입주 작가의 국제교류 기획의 일방적 변경 및 왜곡 등도 겪어야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입주 작가들이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빚어진 이러한 문제들은 미시적으로 보았을 때 사업단과 입주 작가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을 조정할 예술 전문가가 상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문제들은 바로 예술가의 지위와 그에 따른 대우를 명시하는 체계의 불투명함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투명함 때문에 도시재생 사업단과 예술가 사이를 매개하는 예술 전문가가 최선을 다해도 결국 젖은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상황을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순천시의 도시재생 레지던시 장안창작마당
공주시의 도시재생 레지던시 공주문화예술촌

한편 국토부의 도시재생 선도사업과 관련된 각 지역의 도시재생 관련 레지던시를 살펴보면 한성대 레지던시보다 안 좋은 조건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가령 공주시의 도시재생 문화예술촌은 예술인의 경제수익성 제고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레지던시지만, 2016년, 2017년 기준 공고문을 보았을 때 따로 입주 작가에게 흔히 창작지원금 혹은 활동비라 불리는 사례비 지급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레지던시 공간의 전기료, 수도료 등 기타이용료도 입주 작가가 부담한다는 기조로 운영되었다. 게다가 이 레지던시에 원서를 넣으려면 심사결과에 대해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써야 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러한 내용이 어떻게 버젓이 공고문에 포함될 수 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순천시의 도시재생 관련 창작예술촌 레지던시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나아서 입주 작가에 대한 창작지원금이 2017년 및 2018년에는 50만 원으로 책정되어 지급되었으며 2019년에는 소폭 상승하여 60만 원이 지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순천시의 도시재생 레지던시의 창작지원금도 입주 작가에게 부과되는 여러 의무사항을 생각하면 결코 충분한 금액이 아니며 개인으로 입주하든 팀 단위로 입주하든 창작지원금이 동일하게 60만 원이라는 점에서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이처럼 같은 도시재생 사업에서 파생된 예술가 레지던시 사업들이지만, 매월 15일 이상 입주 공간 상주, 시민참여 커뮤니티 프로그램 운영 및 참여, 오픈스튜디오 및 결과발표회 개최, 지역축제 연계 등과 같은 의무사항들은 거의 동일하면서도 사실상 입주 작가의 노동에 대한 사례와 다를 바 없는 창작지원금은 0원, 30만 원, 50만원, 60만 원을 오가고 있으며 개인/팀 단위에 따른 창작지원금의 조정도 고려되지 않거나 창작지원금 외의 실비나 장비 지원 문제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도시재생 선도사업 지역 지정현황(13개 지역: 2014): 도시재생을 긴급하고 효과적으로 실시하여야 할 필요가 있고 주변지역에 대한 파급효과가 큰 지역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을 중점 시행함으로써 도시재생 활성화를 도모하는 지역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의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을 살펴보면 전국의 3,488개의 읍·면·동 지역 65.9%가 쇠퇴 중이고 이러한 쇠퇴 지역에 예술가가 개입하여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조에 따라서 도출된 세부안들은 기존의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되어 예술가가 개입하게 될 때 예술가와 지역주민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업기간을 예술가가 지역조사와 사전작업을 할 수 있도록 다년도 사업으로 개편하며 지역거주 작가가 사업 주체가 되도록 유도하겠다는 내용 등이 있다. 그런데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이 중장기안에는 정작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현 정부가 도시재생과 뉴딜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고 이러한 중장기안에서 창작에 대한 공정한 대가체계 형성, 정부지원 사업과 고용보험을 연계한 예술가의 일자리 확보를 논하면서도 정작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예술가의 지위 및 대우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에서 예술가의 지위가 어떻게 법적으로 어떤 지위에 도달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각종 예술분야의 창작대가 보상 기준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따라서 도시재생 뉴딜과 예술가가 어떻게 정당하고 가치 있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금천문화재단의 <빈집프로젝트 (BE-IN HOUSE)>

가령 도시재생 뉴딜과 예술가의 접점과 관련하여 금천구 독산로 일대의 빈집들을 청·장년 예술가의 작업 공간으로 바꾸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금천문화재단의 <빈집프로젝트 (BE-IN HOUSE)>를 참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은 프로젝트 공간에 입주할 예술가의 직책을 기간제 근로자로 정한다. 따라서 입주 예술가는 입주공간에 상근하며 공간 관리, 공간 리모델링 협업, 주민 네트워크 형성 및 관리, 커뮤니티 프로그램, 오픈 스튜디오 등을 기획하거나 참여해야 한다. 또한 입주 예술가는 입주공간에서 주 5일, 주 40시간 근무해야 하며 고용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이 적용되고 월 급여는 주휴수당, 교통비, 통신비, 식대가 포함된 2백만 원을 받는다. <빈집프로젝트 (BE-IN HOUSE)>의 성격이 예술인 복지사업보다는 도시재생 뉴딜에 더 가깝다는 점과 그에 따라서 예술인의 창작활동과 고용보험도 연계되고 적정한 급여까지 지급된다는 점에서 방향성만큼은 정부, 지자체, 도시재생 레지던시 운영 주체들이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다. 물론, 국회, 정부, 예술가가 머리를 맞대고 도시재생과 관련된 예술가 레지던시에 대해서 다양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나간다면 전술한 사례보다 더 좋은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출된 대안들은 도시재생 관련 예술가 레지던시를 넘어서 문화자원을 활용해 고령화와 산업구조 변화로 쇠퇴해가는 지역들을 위한 문체부의 ‘문화도시 사업’ 안에서 예술가 레지던시가 운영될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 토론회 보도자료

○ 도시재생 관련 예술가 레지던시 실태 토론회: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를 중심으로”
○ 일시: 19.05.23(목) 10:30~12:30
○ 장소: 대학로 예술가의집 예술나무카페
○ 주최/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원회)에서는 예술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장 의제를 받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공론화 절차를 통해 정책으로 실현 시킬 수 있도록 2018년부터 현장소통 및 공론화 소위원회(이하 현장소통소위)를 신설했다. 이를 위해서 현장소통소위는 ‘예술계 제도 개선 공론화 제안 플랫폼「아르코 현장소통(sotong.arko.or.kr)」’을 2018년 12월부터 운영 중이다.

□ 현장소통소위가 주관하는 본 토론회는 2018년 8월에 서울시의 도시재생 모델 중 하나인 ‘캠퍼스타운 조성사업’에 선정된 한성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단의 ‘2017년 예술가 레지던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고충이 현장소통소위에 전달되어 안건으로 접수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서 현장소통 소위는 1기 한성대 레지던시 작가들과 2018년에 두 차례의 내부간담회를 진행했다.

□ 현장소통소위는 내부간담회를 거친 결과 한성대 레지던시 안건을 더 포괄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여 전국에서 진행 중인 도시재생 관련 예술가 레지던시의 실태를 검토한 후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기로 의견을 모았다.

□ 이러한 기조로 2019년 5월 23일에 예술가의 집(예술나무까페)에서 열리는 ‘도시재생 관련 예술가 레지던시 실태 토론회: 예술가의 지위와 대우를 중심으로’는 한성대 레지던시 안건을 담당한 홍태림 현장소통소위 민간위원이 기조발제자 및 사회자를 맡았으며 토론자로는 홍수만(성북마을살이연구회 대표), 최지이(순천시 도시재생 선도사업 예술가 레지던시 전 입주작가), 임재일(사회문화예술연구소 오늘 소장, 국립공주대학교 객원교수), 이윤숙(조각·설치예술가, 수원 행궁동 레지던시 총감독, 대안공간 눈 대표, 마을기업 행궁솜씨 대표)이 참여한다.

□ 이번 토론회는 현장참석과 현장소통위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groups/2430672940308410/)에서 라이브 방송을 통한 참여가 모두 가능하다. 더불어 토론자들의 토론문 발표가 끝나면 토론회 현장과 현장소통위 페이스북 페이지 라이브 방송 양쪽에서 자유로운 토론 참여가 가능하다.

□ 예술위원회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서 도출된 내용들을 공식적으로 서울시 도시재생사업단과 국토부 도시재생과 등에 전달하여 실질적인 정책변화가 생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