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지_아카이브/앤솔러지/트리엔날레/도큐멘테이션? ‘롯본기 크로싱 2019’

전민지

전시를 아우르는 키워드가 분명히 존재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을 전시의 전면에 세워두더라도 한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그룹전은 하나의 주제나 서사로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 개최 목적은 “최근 몇 년 간 일본 동시대미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향후 국제무대에서 성장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와 같이 붕 뜬 문장으로만 요약되곤 한다. 심지어 두 손으로도 모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작가/팀이 참여하는 전시라면, 그 다양성을 뜨개질하여 한데 펼쳐놓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룹전’이라는 이름에 당연히 따라오게 되는 위 속성은 어쩌면 전시의 주체가 매번 봉착하게 되는 한계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간 1년, 2년, 또는 3년의 시간을 기록하고자 했던 기관들의 시도를 숱하게 마주해왔다. 지난 5월 26일까지 모리미술관에서 개최된 제 6회 《롯본기 크로싱(Roppongi Crossing)》을 가장 최근의 예시로 들어보자. 미술관 개관 15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2000년대 이후 일본 미술계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또 한 번 묶어낸 이 전시는, 모리미술관이 동시대 일본 미술계에서 선점하는 위치를 고려했을 때 꽤나 상징적인 것이었다. 국내의 유사한 전시로는 1981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19회를 맞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이나 (2018년엔 만나볼 수 없었지만) 격년으로 개최되었던 리움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등을 들 수 있겠다. (두 사례와 같이 참여 작가층을 청년/신진 작가로 내세우지는 않았으나 서문에 드러나 있듯 금년 《롯본기 크로싱》에 함께한 대부분의 작가는 1970-80년대 생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1-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국내 미술관의 그룹전 제도를 떠올린다면, 모리미술관이 《롯본기 크로싱》을 3년에 한 번 선보인다는 점은 급변하는 동시대미술의 동향에 대해 상당히 더딘 응답으로 느껴진다.1) 지난 3년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전시 작품을 선별하고 논의했을 세 명의 큐레이터들은 무엇을 기록하고, 어떤 의미를 남기고자 하였는가.

한편 금년 전시의 제목은 “Connexion”으로, 연결(Connection)이라는 단어에 교차를 의미하는 ‘x’를 넣어 철자를 바꾼 것이었다. 그렇다면 관건은, 이전의 다섯 전시와는 차별화되는 방식/성격을 취하면서도 곳곳에 흩뿌려진 (최소) 3년의 시간을 엮어 ‘성기지 않은 연결’로 풀어내는 과정일 터였다. 필자는 본 전시의 동선을 따라 작품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첫 문단에서 전술한 한계에 전시의 전반적 양상을 더하여 간단히 논하려 한다. 서문에 따르면, 전시는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 등 기술 발전의 문제에 방점을 두어 이를 각 작품이 갖는 사회 참여적 성격과 결부시키고 이질적인 존재를 관계 짓는 시도였다. 모리미술관의 2017-2019년 전시였던 《재난과 예술의 힘(Catastrophe and the Power of Art)》, 《선샤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동남아시아 동시대 미술(SUNSHOWER: Contemporary Art from Southeast Asia 1980s to Now)》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전자의 경우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후자의 경우 하나의 지정학적 범주 내에서 발생한 과거와 현재의 상황으로써 동시대를 두루 살피려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흡사한 주제를 다룬 전시가 그간 국내외 타 기관에 상당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본 전시가 다루고자 하는 바를 두고 모리미술관 또는 모리미술관 전시의 정체성이라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본 동시대미술을 돌아보려 했다는 주제는 사실 지역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전지구적 상황을 반영한 결론이었다.

타케가와 노부아키(Takekawa Nobuaki), <Cat Olympics>, 2017

실제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본타로 도쿠야마(Bontaro Dokuyama)의 <Over There>(2015)와 <My Anthem>(2019), 타케가와 노부아키의 <Cat Olympics>(2017) 등을 통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및 그로 인한 방사능 유출 사건, 2020년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 이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다. 특히 타케가와 노부아키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이 운영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피하지 못했듯이2), 일본을 벗어난 곳에서는 그저 긍정적으로만 비추어질 도쿄올림픽 개최 소식이 실제 일본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이처럼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사건이 그야말로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모리미술관은 “사회를 관찰하는 것”이라 뭉뚱그려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에노모토 코이치(Enomoto Koichi)의 <In the Rain>(2016)은 신화적 내용과 대중문화를 결합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그려내고, 하야시 치호(Hayashi Chiho)의 <Artificial Lover & True Love>(2016/2019)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써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

에노모토 코이치, <In the Rain>, 2016
하야시 치호, <Artificial Lover & True Love>, 2016/2019

큐레이팅의 많은 산물이 그러하듯 《롯본기 크로싱 2019》이라는 이름의 결과물은 미술계와 일본 사회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약하게나마 근과거를 반추하게 하며, 근미래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크기와 범주에는 한계가 있으나, 전시는 방대한 주제를 기치로 하여 일종의 ‘아카이브’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나 “Connexions”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하고도 미약한 서사를 온전히 연결하지 않는 구성은 방해물이 되어 돌아왔다. 일례로 모리나가 쿠니히코(Morinaga Kunihiko)의 패션 레이블 Anrealage는 어떠한 연유로 3년의 시간을 요약하는 자리에서 적합성을 지니게 되었는가? 히라카와 노리미치(Hirakawa Norimichi)의 <Datum>(2018)은 어떤 측면에서 현 세대 기술 비평의 가능성을 담보하는가? 이들은 그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새로움’을 제시하는 오브제로서 복잡다단한 전시장에 틈입했을 뿐이었다.

Anrealage, <A LIVE UN LIVE>, 2019

이쯤에서 첫 문단의 한계 – 하나의 주제나 서사로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를 재소환해보자. 이 전시의 구동 방식을 ‘완벽하지 않은 아카이브’, ‘마이크로-아카이브’ 등으로 포장하더라도, 통일되지 않은 디스플레이를 앞세운 《롯본기 크로싱》은 전시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다. 데리다는 『아카이브 열병(Mal d’archive)』을 통해 아카이브에는 틀이 필요함을 역설한 바 있다. 결국 이 틀이 아카이브가 미래에 낳게 될 텍스트와 리서치, 그리고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겠다. 즉 큐레이터가 각자의 주관을 투영한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여 일련의 규칙으로 배열한 순간, 전시는 역사가 될 채비를 마친다. 물론 명확히 제시된 단일 주제 하의 전시가 아니라면 수많은 작품의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술’과 ‘사회 참여적 성격’의 ’이질성‘을 다루겠다는 방대한 목표가 실제 구현된 전시에 비해 과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미사여구와 효과적인 수사학이 한 끗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놓인 시대에 추동력을 잃은 자동차는 과연 직선 방향으로 달릴 수 있는가? 자본과 인력을 모두 갖춘 대형 기관으로서, 모리미술관은 전시로 무엇을 이루고자 했으며, 무엇을 이룰 수 있었는(데도 실패했는)가?

마지막으로, 이는 비단 모리미술관에만 국한된 문제인가?

(완벽하지 않은) 아카이브/

(아카이브인 체하는) 앤솔러지/

(규모와 목적을 모두 잃은) 트리엔날레/

(전시라는 미명하에 단순 기록에 그친) 도큐멘테이션

 


1) 이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아이치 트리엔날레,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트리엔날레 등 일본에서 개최되는 다른 미술 행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비엔날레’라는 제도가 과하게 급한 것일 수도 있겠다.)

2) 평창올림픽반대연대는 올림픽을 비롯하여 다양한 “메가 이벤트의 실상”을 논해왔다. http://noolympic2018.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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