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아이치 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 검열사태 이후 남겨진 과제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 특별전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사진출처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1.

언론을 통해서 잘 알려졌다시피 카와무라 타카시 나고야 시장은 2019년 8월 2일에 아이치 트리엔날레 특별전에 방문하여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자유, 그 후》의 즉각적인 중지를 주장했다. 나고야 시장이 이처럼 황당한 주장을 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인의 마음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국고가 투여되었으므로 여기에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되면 이 작품을 일본 전체가 인정했다는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 지사는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으로 30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난 마당에 방화 테러 협박까지 받은 전시를 강행하는 것은 관객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라며 《표현의 자유, 그 후》를 중단시키기에 이른다. 《표현의 자유, 그 후》를 두고 이메일로만 770건이 넘는 협박 메일 온데다가 전시장에 휘발유를 살포하겠다는 협박 편지까지 생기는 와중에 시민, 작가, 직원, 자원봉사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여 일단 전시를 중단시킨 것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아이치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이 협박 이메일을 보낸 이들이 모두 특정될 때까지 전시 재개가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올해 안에 전시를 재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여서 안타까웠다. 앞으로도 얼마나 늘어날지 모를 협박 이메일 발송자를 모두 찾아낼 때까지 전시를 재개하지 않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번 검열사태의 돌파구는 2트랙으로 협박 이메일 발송자를 계속 찾아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이른 시일 안에 전시시설의 경비체제를 확고히 갖추고 전시를 다시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일본은 자신들의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모든 표현의 자유와 검열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치 트리엔날레 특별전에서 발생한 이러한 검열을 이리저리 되뇌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월오월>과 <김기종의 칼질>에 가해졌던 검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되었던 <세월오월>이 박근혜, 박정희, 김기춘 등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크게 논란이 되었을 당시에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자 광주 시장이었던 윤장현은 창작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광주시 예산이 들어간 비엔날레에 정치적 성격의 그림이 걸리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윤장현의 이러한 발언과 더불어 광주시도 국비를 받아 기획한 행사일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인 시립미술관에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을 걸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세월오월>을 철수하지 않으면 광주비엔날레 교부금을 회수하겠다는 협박을 덧붙였다. 당시 윤장현과 광주시의 이러한 행태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으나 2016년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예술인 블랙리스트의 베일이 드러나기 시작한 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해괴한 발언들, 그러니까 새누리당의 박대출 의원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작품에 국가 세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것이나 박명진 전 문예위 위원장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예술에 대한 정부의 검열과 배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을 보면서 윤장현과 광주시의 궤변이 예외적으로 튀어나온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어디 한국에만 국한될 문제인가.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 스가 요시히데시 관방장관이 “보조금 교부 결정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확인해 정밀히 조사한 뒤 적절히 대응하겠다.”라고 발언한 것과 나고야 시장의 “행정의 입장을 뛰어넘은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으로, 세금을 써서 해야 할 것은 아니다.” 발언을 떠올려보자. 이 발언들은 정부가 국고를 볼모로 예술작품을 검열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세월오월>을 검열했던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인식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뉴스타파 – 목격자들 29회 “예술, 검열과 파행”,출처

한편 《공허한 제국》에 출품된 <김기종의 칼질>에 대한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의 검열은 어땠는가. 《공허한 제국》은 예술이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는 질문이자 진지한 고찰이며 사회 이면에 켜켜이 쌓여 교차되고 있는 권력관계와 불합리한 구조, 역사의 모순들을 들춰내는 것이라는 전제를 토대로 기획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를 가진 전시에 출품된 <김기종의 칼질>은 어디에도 테러를 옹호하거나 의사(義士)화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은 <김기종의 칼질>에 대한 어버이연합과 언론들의 근거 없는 항의와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작품을 전시장에서 철거했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세미나에서 리퍼트 주한 미대사에게 <김기종의 칼질>이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전시된 것에 대하여 사과하겠다는 발언을 당당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니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러한 행태는 《표현의 자유, 그 후》가 일본의 공립미술관에 철거당하거나 거부당한 작품들을 다루어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용납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는 분명한 기획 의도에 따른 전시임에도 결국 일본 정부와 극우단체들의 압력과 협박으로 검열당한 상황과 유사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 그 후》에 가해진 검열은 <세월오월>과 <김기종의 칼질>에 가해졌던 검열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검열 이후의 양상은 상이한 점도 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세월오월>이 검열을 당했을 때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 17명 중 11명은 홍성담의 <세월오월>을 걸지 않으면 작품을 철수하겠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발표했으며 특별전 감독이었던 윤범모는 광주시의 검열에 항의하기 위하여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특별전에 참여했던 작가들과 감독처럼 정부의 예술 검열에 공식적으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양상은 <김기종의 칼질>이 검열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기종의 칼질>이 서울시로부터 검열당할 때 《공허한 제국》에 참여한 동료 작가들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으며 심지어 전시 총감독은 적극적으로 검열의 주체로 나서기도 했다. 반면 《표현의 자유, 그 후》 기획진은 일본 정부의 검열과 우익세력의 협박에 저항하며 전시 재개를 외쳤으며 본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힘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검열에 저항했다. 한국에서 예술 검열이 발생했을 때도 이렇게 연대가 이뤄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서 언급한 <세월오월>, <김기종의 칼질> 검열에서 알 수 있듯이 근래의 한국 미술계는 권력자와 수구 단체들의 검열과 외압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본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주최한 공개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을 때 한 변호사가 미술계도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왜 피해신고가 이렇게 안 들어오는지 의아하다는 말을 들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이번 아이치 트리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한 임민욱, 박찬경 작가가 <평화의 소녀상> 검열 사태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모습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임민욱, 박찬경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신진, 중견세대 한국 미술인들은 국가의 예술 검열에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했다. 그러나 이번에 임민욱, 박찬경 작가가 이렇게 검열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무기력했던 한국 미술계의 체질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지평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임민욱, 박찬경 작가 그리고 이들처럼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술인들은 한국에서 국가의 예술 검열이 또다시 발생할 때 앞장서서 저항을 위한 연대의 구심점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국미술계도 국가의 예술 검열에 저항할 기초근력이 구축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세계 각지에서 언제 또 반복될지 모를 국가의 예술 검열에 적극적으로 연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찬경, 임민욱 작가가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시 소식지에 쓴 ‘검열에 반대한다’,사진출처

2.

<평화의 소녀상>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대협은 단체 이름에 위안부가 아니라 정신대를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투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곳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여전히 대다수의 시민들은 위안부와 정신대의 규모와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최근 정대협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통합하여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로 거듭났다. 정대협은 분명 1990년부터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길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대협이 공론화한 위안부 문제가 민족주의와 결부되며 시민들의 관심과 연대를 이끌어 낸 긴 시간동안 우리 모두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많이 못 기울이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정의연은 정신대라는 명칭을 빼고 일본군성노예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강제징용 문제도 종합적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더불어 한편으로 이러한 종합적인 관심이 구축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갈등과 적대를 지속하는 길이 아니라 진정한 사죄, 치유, 화해, 평화, 상생의 길로 나가기 위한 손에 잡히는 일들을 모색하고 추진하는 것에도 힘 써주면 좋겠다.

이런 측면에서 소녀상도 한국과 일본이 갈등과 적대를 지속하는 길이 아니라 진정한 사죄. 치유, 화해, 평화, 상생의 길 위에 올려져야 할 것이다. 사실 소녀상은 원작자의 말대로 반일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를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소녀상은 민족주의에 기대어 일제는 어리고 연약하고 순결한 소녀를 성노예로 삼은 파렴치한 가해자라고 외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도 소녀상을 앞선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분명 이것은 일본인들의 오해지만, 작가가 가진 의도가 수용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라는 법은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소녀상이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해석가능성의 지평 위에서 이러한 오해를 얼마든지 수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녀상은 해석가능성의 지평을 넘어서 한국과 일본의 사이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정치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물론, 정치적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고 해서 소녀상의 존재 자체가 거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협의를 국가가 진행할 권리가 없다는 점과 국회의 동의와 비준도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불가역적 조약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조약 같지도 않은 것을 들이밀며 양국이 소녀상의 존재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소녀상의 정치적 역할을 제거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소녀상의 정치적 역할을 인정하다면 소녀상은 오랜 시간 덧씌워진 정치적 맥락들을 국가의 경계를 넘은 공감 위에서 재창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재창안될 소녀상은 한일 간의 민족문제를 넘어서 국가와 결부된 평화와 폭력, 젠더, 계급 문제로까지 나가야 할 것이다.

3.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전쟁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 그리고 산업과 노동의 패러다임이 격변하는 이 중대한 시기에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소년만화에서나 등장할 선악 개념을 내세우며 일본과의 무조건적인 갈등과 적대를 지속하는 길로 나가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격변하는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도태되지 않을 것인가에 서둘러 역량을 쏟아야 한다. 물론, 한일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한일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국내에서부터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최근 KBS에서 ‘눈을 의심했다…명동 한복판 건물 현 소유주는 조선총독부’라는 기사를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자국에 남은 적국(민)의 재산’을 뜻하는 일본의 적산 상당수가 원칙대로 국유화되어야 했음에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이 명의를 돌려 은닉하거나 미군정을 통해서 친일파들에게 불하되었다는 점과 현재 옛 일본 정부와 일본인 소유로 되어 있는 적산이 서울시 중구에서만 1,100여 건 넘게 나왔기 때문에 전국 단위로 확인되지 않은 적산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들이 빼돌리거나 불하받은 적산을 환수해야 하며 이를 위하여 필요한 기구와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산재해있는 적산 중 정부 매각이나 불하가 없었던 것은 국유화를 진행하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본의 명의를 지우고 현 소유자의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한국 정부가 환수한 적산을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것을 골자로 일본 정부와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추가 협의를 진행해 본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상관없이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한국 대법원의 2018년 판결이 다른 피해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일본의 대외 자산이 몰수될 위험을 국제사회 위로 노출시키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고 합의될 수 있다면 한국은 자연스럽게 일본 총리 혹은 일왕의 유의미한 사죄를 받고 일본과 격변하는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상생의 길을 모색해 나갈 가능성도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2019년 8월 22일 문화연대가 주최하는 토론회 ‘위협받는 예술, 위기의 민주주의: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 검열사태를 중심으로’를 위해 준비한 토론문입니다.

<위협받는 예술, 위기의 민주주의 – 아이치트리엔날레 검열사태를 중심으로>

* 일시 : 2019년 8월 22일(목) 14:00
* 장소 :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20호
* 주소 : 서울 중구 정동길 9 2층
* 주최 : 문화연대
* 문의 : 02-773-7707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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