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섭_광주시립미술관의 정유승 작가 검열 의혹에 부쳐

한재섭(미술사)

2019년 8월 26일(월) 저녁 8시에 광주 동명동 I-플렉스에서 광주시립미술관의 정유승 작가 전시배제 사건 집담회가 열렸다. 이 집담회는 8월 20일 작가가 사건의 공론화를 바라며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과정이 공유되고 더불어 참석자들의 자유로운 발언 속에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집담회에 온 광주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제야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껏 작가의 요구에는 입도 벙긋 안 하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지,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엉망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암울할 뿐이다. 사건의 전말과 집담회 관련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기사를 참조하시길.

광주 시립미술관의 작품 검열 의혹을 공론화하기 위한 지역예술가 집담회가 26일 오후 7시 아이플렉스 1층(동구)에서 열렸다, 사진출처

이번 집담회에서 참가자들이 자기 소개를 할 때 스스로를 백수라고 소개를 해서 집담회의 격을 떨어뜨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중에 밀려왔다. 근데 사실 소속이 없는 연구자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도 그렇고 경제적으로도 백수나 마찬가지 상황이니. 집담회에 함께 간 y형, t군과 끝나고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셋의 난상 노가리에서 유일한 공통된 의견은 작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 사건에서 느끼는 것은 검열과 배제의 일상화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사건처럼 굵직한 정치적(경제적 협박과 실행을 가하는)검열만이 검열이 아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가가 예술계 전체에 대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은 예술가들을 꼼꼼히 성실하게 배제시킨 사건이라면, <세월오월> 검열은 지자체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국가의 협박과 이에 알아서 길 수밖에 없는 지자체에 의해 벌어진 검열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런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예산이 삭감되어 다른 작가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광주시립미술관의 초기 입장은 앞서 이야기한 검열의 메커니즘과 똑같다. 광주광역시 예산으로 운영되고, 따라서 운영이야 관장이 하더라도 시장의 지휘를 받는 시 산하기관일 뿐인 시립미술관 입장에서 작가 한 사람 때문에 예산이 휘청할 수도 있다는 발언은, 이미 검열이 기관 전체에 체화된 것이나 다름없음을 증명한다.

뭐 그리 놀랄 것도 아니다. 전국의 모든 공공문화기관들이 광주시립미술관의 상황과 1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이 대놓고 영전하는 것을 보면 문화에 대한 인식은 촛불혁명이라는 지금 정권이나 적폐라는 지난 정권이나 아무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번 사건뿐 아니라 우리는 십 수년동안 아니라 배제와 검열이 일상화된 예술계를 목도하고 있다. 무엇으로? 지원 사업으로.

문체부를 중심으로 아르코, 광역문화재단, 시군구뿐 아니라 국토부 주관의 도시재생사업까지 지원 사업은 모두 국가를 정점으로 한 배제와 검열의 작동원리로 돌아간다. 지원 사업에 통과한 작가와 떨어진 작가, 이게 배제와 검열의 시작이 아닌가? 공공기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립기관들도 모두 레지던시, 문화예술교육, 작가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예산의 대부분이 국가에서 나온다. 이런 지원 사업 시스템이 예술계 전체를 장악했다.

광주시립미술관 전경

여기서 예산을 쥐고 있는 공공기관들은 당연히 존재 자체로 권력이다. 공공기관의 큐레이터(매개자)들이 늘 쏟아내는 푸념과 변명인 예산의 한계, 공무원 조직의 상명하복, 행정 중심 관료사회의 효율성을 가장한 예술에 대한 냉소와 무지, 사고라도 칠까 관리대상으로만 보는 폭력성 등을 작가들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100% 이해한다. 어쩌다 한 번 정말 이건 아니다 싶으니까 목소리를 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지원사업에 떨어진 작가들은 투잡을 쓰리잡으로 바꿔야 하고, 주변인들의 온갖 눈치와 구박을 견뎌야 하고, 자신의 예술적 역량에 대한 좌절뿐 아니라 인생 자체에 회의감을 맛봐야 한다. 이것을 거의 해마다, 사업마다 보릿고개 넘기기보다 더 힘든 상황들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가들도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1부터 100까지 작가를 범죄자 취급할 뿐인 e-나라도움과 예술적 비전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아닌 계량화된 수치로 실적만 증빙해주길 원하는 지원사업을 하청업체처럼 수행해내야 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큐레이팅 자체의 권위가 없어진다. 실제 집답회에 오신 어느 분은 큐레이팅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계셨다. 난 그분의 발언에 심하게 공감이 갔고, 이런 껍딱만 지원 사업이지 속은 입시경쟁 이상의 지독한 경쟁시스템에서 살아가야 하는 작가들에게 큐레이팅? 뭔 얼어 죽을 큐레이팅이야라는 것은 지금의 당연한 정서적 반응이라 생각됐다.

공개된 공모 절차도 누가 심사위원으로 들어왔나부터 의심하는데 당연히 비공개로-이 말도 웃기다- 진행되는 큐레이팅을 작가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세금을 공평하게 배분하고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공정성에 대한 요구는 계량화된 수치와 실적만을 남게 만든다.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 외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 예술씬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누가 시작했을까? 당연히 국가다. 예산대비 관람객 수, 즉 예산 대비 몇 명의 사람들에게 세금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갔느냐를 국가가 공공기관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이것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소수의견은 묵살된다. 공공성, 그것은 사실 경제적 효율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또는 많이 봐줘야 구색 갖추기 들러리 정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국가-지자체-매개기관-작가의 수직구조가 만들어진다. 예산의 공정성과 효용성이 아닌 오직 경제적 효율성만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갑과 을, 하청의 하청의 하청구조가 자리 잡는다. 위험의 외주화처럼, 예술씬은 계량화할 수 없는 일을 헐값에 수행하며-근데 결과는 계량화된 수치를 제시해야 하는-열정페이로, 아름다운 재능기부로, 다음 전시엔 같이 해보자는 밑도 끝도 없는 약속으로 돌아가고 있다.

또, 공공성을 가장한 경제적 효율만 따지면서 무감각해지는 예술씬에서 큐레이터와 작가의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도 별로 없다. 자신들이 쥐고 있는 권력에 대한 성찰을 바라지도 않는다. 권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들이 털어놓는 푸념과 고충에 감정이입이 안 되는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전시 배제 사건은 이런 예술계의 일상화된 검열과 배제에 대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그리고 정유승 작가의 이 대단한 용기가 미술씬에서, 예술씬에서, 지역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다리 건너면 사돈의 팔촌 배우자의 조카까지도 뒤져낼 수 있는 지역에서 이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좁은 미술씬에서 일상으로 마주쳐야 하는 선배 후배 교수 친구들과 자칫 척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일차적으론 지역의 미술씬이 작가의 문제제기와 공론화에 동참하고 함께 풀어나가야 된다. 그리고 공공기관은 작가들의 갑이나 적이 아니라 작업하는 내내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다. 그래서 사실 작가들도 미술관 직원들의 처우개선이나 제도개선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자기영역 외 미술씬 전체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큐레이터고 작가고 다 같은 씬에 있는 구성원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제기와 공론화를 껄끄러운 잡음으로 인식하지 않고 문화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전향적 태도로 미술관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책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관을 관리하는 시의 문화정책과 실행이 미술관의 전문성과 독자성을 보전해주어야 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아니 민주주의가 별것인가. 아니면 아니라고 자기의견을 말 할 수 있는 것이 전부 아닌가? 왜 그리도 이런 반응에 공공기관들은 벌벌 기는지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관료주의의 끝판왕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언제부터 행정이 그렇게 일을 잘했고 완벽했다고. 다 안다고. 거기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것을, 평상시엔 가만히 있다가 사고만 터지면..

하여튼 공공기관 내부직원들의 고충을 더 듣지 않게 미술에 대한 애정과 공공기관에서 근무한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예산 몇 푼 던져준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갑질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예산은 시민들의 세금이다. 또, 궁극적으론 미술관 운영에 미술씬이 개입해야 한다. 비판적 인사들 잠재우기와 원로들 체면 차려주는 운영위원회니 자문위원회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미술관 정책과 예산에 대한 심의 및 의결기구에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공허한 것이 설사 이렇게 된다고 해도 몇 문장의 사과문과 매뉴얼 정비에 그칠 것이고, 운영권에 참여한다 해도 운영위 선출부터 자기사람 심기 잡음이 터질 것이고 결국엔 거수기로 운영될 것이고, 그러니 지원 사업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전환과 성찰의 필요성을 꺼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그래도 이 사건을 계기로 무언가 생산적 논의로 발전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더욱더 정유승 작가를 보호해야 한다. 이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는 문제를 제기한 작가이므로, 말 한마디 한 것 때문에 앞으로 작업하는데 유무형의 불이익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선배, 후배, 교수, 친구들이. 즉 미술씬이 작가를 보호해야 한다. 근데 광주에 씬이란 것이 있나 하는 생각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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