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VR과 AR의 현재와 미래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되뇌어보면《GDF2019: Tech & Art Festival》은 VR(Virtual reality)과 AR(Augmented Reality)을 동시에 다뤘지만, 전반적으로 AR작업보다는 VR작업이 더 많은 전시였다. 아무래도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1인용 HMD(Head Mounted Display)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VR작업이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감상자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 AR작업으로 분류되는 <블랙 라푼젤>이나 <Desent> 등은 한 번에 여러 관객을 큰 무리 없이 수용했지만, VR작업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정해진 시간에 예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측면은 막상 전시를 관람할 때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VR이 AR에 비해서 여전히 여러 측면에서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이왕이면 VR작업을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기 때문인 거 같다.

평소에 VR과 AR을 자주 접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 언론, 정부, 산업계에서 VR과 AR을 뜨겁게 다루면서 누구든 이 두 가지에 대하여 작은 호기심 정도는 안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AR이 기업이나 상업용으로 활용도가 높다보니 실용성이나 시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대중은 VR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현 단계에서 VR이 HMD의 장벽만 넘는다면 AR보다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더 다양하고 더불어 AR보다 더 높은 몰입감과 현장감을 제공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2017년에 ‘포켓몬GO’ 열풍이 불었을 때는 AR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높았다. 그러나 그 열풍도 이제는 지나갔기 때문에 현재의 AR은 ‘홀로렌즈’, ‘매직리프 원’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더 발전되어 상용화되거나 혹은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기술과 콘텐츠가 개발되지 않으면 당분간 VR만큼의 대중적 관심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포켓몬 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근래에 VR, AR이 5G, 고성능 스마트폰의 일반화, 디스플레이, 랜더링, 인터렉션 기술 등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대중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과정에는 HMD를 출시하는 다양한 기업들의 치열한 기술경쟁과 가격경쟁도 많은 역할을 했다. HMD에 대한 치열한 경쟁은 근래에 일이지만, HMD 개발은 이미 1960년대에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가 그 원형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사양 정보처리 기술이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술이 부재했던 탓에 HMD는 이후 몇십 년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1995년에 닌텐도가 ‘버추얼 보이’라는 스탠드형 게임 HMD를 내놨지만, 형편없는 사용성과 붉은색으로 도배된 저화질 디스플레이, 높은 가격으로 금방 흑역사가 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기술적 한계와 흑역사를 하나씩 털어내고 있는 근래의 VR, AR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언론, 예술, 영화, 국방 등 다양한 분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이번 전시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보여서 나름대로 출품된 작업들의 카테고리를 대중문화, 언론, 예술, 영화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었다.

닌텐도의 흑역사 중 하나 ‘버추얼 보이’

대중문화 카테고리로 분류 가능한 작업등 중 관객의 호응이 많았던 작업은 감성놀이터의 <바람의 대화, 죽녹원>이었다. 그 이유는 이 작업이 전남 담양군에 위치한 죽녹원을 심리학을 기반을 한 스토리텔링과 3D 입체 사운드로 녹여낸 VR에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안마의자까지 연동시켜냈기 때문이다. 한편 <바람의 대화, 죽녹원>의 VR을 살펴보면서 이 작업이 지체장애 때문에 죽녹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대안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감성놀이터가 앞으로 이러한 측면까지 고려하여 사업을 펼쳐나간다면 <바람의 대화, 죽녹원>은 분명 지체장애인의 문화향유권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대화, 죽녹원>, 사진제공: GDF2019
<新신사임당>, 사진제공: GDF2019

<바람의 대화, 죽녹원> 다음으로 언급해볼 작업은 (주)다이브 코어의 <新신사임당>이다. 이 작업은 분명 아날로그 작품과 VR을 접목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차원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아날로그 작품과 VR의 접목이라는 과제에 몰두하여 정작 작업에 담긴 내용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작업의 음성해설에서는 신사임당이 초충도로 잘 알려졌다는 음성해설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해설은 정확한 해설이라고 할 수 없다. 신사임당은 16세기에 산수와 포도를 잘 그리는 여성화가로 알려졌으나, 정작 초충도를 잘 그렸다는 내용이 담긴 당대의 문헌은 발견된 바가 없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 미술사학계는 신사임당의 초충도 중 16세기 작업이라고 불려온 작업은 많으나 18세기에 신사임당의 모본(摹本), 안본(贋本)이 상당히 많이 만들어져서 현존하는 신사임당의 어떤 초충도도 진작이라고 확언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新신사임당>이 이러한 난맥을 충분히 검토했다면 초충도에 대한 음성해설도 지금과는 다르게 제작되었을 것이다.

<관할 아닌 관할>, 사진제공: GDF2019

예술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는 작업 중에는 안성석의 <관할 아닌 관할>과 문준용의 <Hello, Shadow>가 기억에 남았다. 먼저 안성석의 <관할 아닌 관할>은 201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0년에 물난리가 났던 광화문 공간과 작가가 미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후 눈에 들어왔던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들, 광복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다루는 뉴스가 방송되는 라디오 타워 등을 VR로 엮어낸 무료배포 게임이다. 그래서 HMD를 착용하고 이 작업에 접속한 플레이어는(최대 15인 동시접속 가능) 게임 속 경찰 중 한 명이 되어 미대사관 보이는 광화문 공간을 활보할 수 있다. <관할 아닌 관할>은 작가가 미국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던 경험에서 시작되었으나, 2013년에 정권이 바뀐 후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지속되며 공권력과 시민들 사이에 긴장감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는 점만 떠올려 봐도 작가의 개인적 경험으로만 수렴되기 어려운 작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관할 아닌 관할>은 패치만 꾸준히 이뤄진다면 꽤 오랜 시간 당대성을 가진 작업이 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광화문은 2013년 이후로도 한미 관계의 본질, 대의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등과 같은 가치가 긴장감 속에 뒤섞이는 공간으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Hello, Shadow>, 사진제공: GDF2019

문준용의 그림자 증강현실 작업 <Hello, Shadow>는 그의 2010년 작 <Augmented Shadow>보다 감상자의 개입과 그에 따른 작업의 반응속도를 향상시킨 작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Augmented Shadow>는 책상 위에 배치된 정육면체에 비친 빛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들이 핵심인데, 이 그림자들은 책상 위에서 사람, 새, 나무, 집으로 표현된다. 정육면체의 움직임에 따라서 변화하는 이 그림자들은 다양한 움직임과 변화 그리고 연결성을 만들어 낸다. 다만, 책상 위의 정육면체는 이동이나 회전에 따라서 그림자들을 작동시키기 때문에 감상자의 신체적 개입은 정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Hello, Shadow>는 감상자가 조명을 들고 작업이 설치된 공간의 중앙에 서 있는 직사각형 구조물을 비추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서 그림자에 해당하는 건물, 전봇대, 인물의 원근과 상하좌우 움직임이 즉각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변하는 작업이다. 또한 <Augmented Shadow>의 그림자는 감상자가 탑다운 뷰로 내려다보며 변화를 관찰하지만, <Hello, Shadow>는 조명을 든 감상자의 능동적인 이동에 따라서 사이드 뷰 형식의 그림자가 상하좌우뿐만 아니라 원근까지 달리한다. 더불어 이렇게 원근변화가 있다 보니 건물 속을 배회하던 유령같은 인물들은 확대될 때 관객에게 손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사실 <Hello, Shadow>를 예술 차원에서 읽어낼 부분은 유령같은 인물들의 손 인사일 것인데, 이것이 어떤 예술적 해석가능성을 내포하기보다는 향상된 그림자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소스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령 같은 인물들이 감상자와 상호작용하는 기술 때문에 분명 <Hello, Shadow>는 전작들보다 예술의 문맥 위에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생긴 것은 사실이다.

<시리아, 꿈꾸는 아이들>, 사진제공: GDF2019

다음으로 언급해볼 작업은 스토리텔링 VR 저널리즘을 표방한 주식회사 알틴코의 <시리아, 꿈꾸는 아이들>이다. VR 저널리즘의 효시는 뉴욕 타임즈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뉴욕 타임즈의 <The Displaced>(2015) 때문이다. 이 작업은 시리아, 수단,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경험케 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난민이 처한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객관적으로 담아냈다. 따라서 이러한 콘텐츠는 기존의 뉴스나 다큐멘터리에 비해서 감상자가 타인의 고통에 더 가깝게 마주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촉발시킬 가능성도 일부 가지고 있다. 반면 <시리아, 꿈꾸는 아이들>은 감상자의 개입을 강조하여 기승전결이 분명한 현실기반 서사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The Displaced>와 달리 유희성이 강조된 작업이다. 그렇다 보니 <시리아, 꿈꾸는 아이들>은 죽음과 폭력으로 점철된 내전의 참혹함이 사랑, 평화, 희망으로 봉합되어 기존의 뉴스 형식보다 감상자를 더욱 여행자적 시점에 안주시키는 문제에 빠질 여지가 많아 보였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가상을 통한 재현은 폭력과 죽음에 둘러싸인 당사자들의 현실과 결코 등가교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윤리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고려를 제외한다면 <시리아, 꿈꾸는 아이들>은 분명 VR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기 위한 좋은 시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1995

한정된 지면에서 이번 전시에 출품된 모든 작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앞서 언급한 몇 개의 작업만으로도 VR과 AR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VR과 AR은 분명 상승세 위에 있지만, 이 두 가지 영역이 아직 초기시장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과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있을 것이다. VR과 AR이 초기시장 단계를 넘어서 주류시장으로 이동하려면 기술적 보완 및 표준화가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기술적 보완과 표준화는 머지않은 시기에 지금보다 많이 진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VR과 AR은 점진적인 개선의 수준이 아니라 근본적인 혁신이 성취되었을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령 개선의 차원은 HMD의 디스플레이, 크기, 배터리, 네트워크, 가격, 멀미 등의 문제가 개선되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혁신은 아예 HMD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단계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단계는 아마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처럼 인간이 두뇌에 스마트폰과 HMD를 넣은 것과 마찬가지인 전뇌화가 보편화된 시대가 도래할 때 가능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전뇌화의 문제를 공상과학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VR과 AR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종착점은 결국 전뇌화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VR과 AR을 단순히 기술, 산업적 측면에서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VR과 AR의 미래를 어느 단계까지 나아가게 할 수 있으며 특정 단계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마다 제도적 차원과 인문적 차원에서 어떤 쟁점이 발생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경기도의 ‘글로벌개발자포럼’ 같은 VR, AR관련 행사는 논쟁적인 전시 혹은 학술대회를 꾸준히 만들고 널리 공유하여 우리가 미래에 구축할 기술문명과 정신문명에 대한 청사진을 쌓아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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