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 연대발언문: 홍익대학교 ‘미대의 외침’의 “예술인 선언”을 지지하며

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대위 디자인팀(노현강, 민동인, 박하늘) 제공

「홍익대학교 ‘미대의 외침’의 “예술인 선언”을 지지하며_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 연대발언문」 (2019년 10월 6일)

 

정강산(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안녕하세요, 계원예술대학교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입니다.

8월 28일 결성된 이후 저희는 ‘블랙리스트 공모자 송수근 총장 퇴진’이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기자회견, 성명 발표, 연대서명, 교내 프로그램 조직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블랙리스트 총장 사태 해결을 위해 학생/교협/노조의 3주체 회의를 제안한 상태이고, 마땅한 테이블이 마련되지 않을시, 학생 총파업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운동 기조의 연장에서 저희는 교외로 지지와 연대를 구하여, 학내의 동력을 만듦과 동시에 더 큰 문맥 속에서 본 사태를 맥락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때마침 미대의 외침에서 연대발언을 제안해주셨던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미대의 외침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더 치열한 투쟁으로 이에 호응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우선 저는 오늘 여러분의 동료 예술가이자 동료 시민으로서 저희가 품고 있는 하나의 가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쩌면 예술을 두려워하는 것과 무언가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수렴할 수밖에 없는, 동일한 것의 다른 표현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술에 대한 검열과 탄압은 곧 모든 다른 정체성에 대한 탄압, 모든 다른 지향과 이상에 대한 탄압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것이 저희가 가진 심증입니다.

아시다시피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고 맨 처음 시작한 작업 중 하나는 당대의 전위였던 모더니즘을 비롯하여 나치의 사상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예술들을 탄압하는 것이었습니다. 멘델스존도, 케테콜비츠도, 브레히트도, 파울클레도, 토마스만도, 오토 딕스도 집요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바우하우스, 부조리극, 실험영화, 재즈,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등 우리가 오늘날 빛나는 미적 실험으로서 기념하는 모든 작업경향들이 ‘퇴폐’로 규정되어 금지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이 비단 예술에 대한 탄압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가지고 있었던 예술에 대한 두려움의 이면에는 이미 유대인과 동성애자, 자유주의자,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과 학살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타자, 다른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공포와 공격을 합리화하는 자들은, 당대의 시지각적 환경과 감각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다른 사상과 생각, 모든 다른 인종과 성을 탄압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치 독일이 세계에 남겨준 교훈입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 역시 비슷한 각도에서 예술과 타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첨예한 암시를 던져 줍니다. 독일제국을 건설한 비스마르크는 1878년, 내부의 혁명세력을 누르기 위해 <사회주의자 진압법>을 제정하였고, 또 천황의 통치 체제를 합리화하고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제압하려 했던 일제는 1925년 <치안유지법>을 공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의 사회주의자와 독립 운동가들이 극심한 탄압에 시달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법안을 기초로 하여, 이승만은 4.3 항쟁과 여순항쟁을 비롯한 민중들의 쟁의를 짓밟고 권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1948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수천 명의 고문과 투옥, 수백 명의 사형, 수많은 정당과 단체에 대한 해산, 수많은 시민에 대한 사찰과 감시, 간첩 조작이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알다시피 이는 동시에 숱한 예술가들과 문화적 표현들을 억압하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1987)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작업은 1989년 ‘이적표현물’로서 압수되었으며, 작가를 연행하는 근거가 되었고, 지리멸렬한 법정공방 끝에 결과적으로 작가는 징역 10개월 선고유예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국가보안법 하의 사회주의운동과 민족해방운동, 노동운동 등의 운명은 동시에 예술의 운명이기도 하였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사회주의운동을 비롯하여 노동운동을 분쇄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적 표현을 함께 분쇄하는 기획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술의 운명이 역사적 타자의 운명과 맥을 함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미대의 외침이 2019년 10월 8일에 연 특별기획 포럼 [문화예술 검열의 시대, 변혁을 고민하다] 마지막 순서였던 예술인 선언 광경, 출처

어째서일까요? 어째서 다른 사상에 대한 탄압이 예술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며, 예술의 분쇄가 곧 다른 사상에 대한 분쇄를 예고하게 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금의 세계와 다른 것을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예술의 힘 때문일 것입니다. 예술은 항상 어떤 사회 속에 있지만, 동시에 발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그 사회의 외부를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 지점에서 예술은 다시금 타자의 운명과 소명으로 수렴합니다. 퀴어는 이성애 중심적 사회관계를 넘고자 하고,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넘고자 하며,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관계를 넘어서고자 합니다. 유색인종은 백인 중심의 역사를 넘어서려 하고, 인민과 민중은 지배자들의 역사 외부를 찾고자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기존의 사회적 관계의 배면을 들추고, 새로운 세계를 밝혀 드러내고자 합니다. 다른 것으로서의 예술과, 다른 것으로서의 타자. 다른 것은 그저 다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같은 것들, 동일한 것들을 비판하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아이치트리엔날레에 출품된 소녀상이 이런저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배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술 검열을 비판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단순히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본래 타자의 편에 있을 수밖에 없는 예술의 소명을 지키기 위함이며, 근대 정치 이념의 일종으로서의 ‘자유주의’를 초과하는 자유, 즉 인간의 삶과 모든 사회적 진보의 근간이 되는 독립적 상태로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이때 자유란 지금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내비칠 수 있는 예술의 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때 자유란 일찍이 마르크스가 제시한 바 있듯,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소를 몰고, 저녁식사를 한 뒤에는 문학비평을 하는 자유이며, 그러면서도 사냥꾼도, 어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계원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신보경 제공
2019년 9월 2일, ‘송수근 총장’의 취임식과 함께 진행된 취임 반대집회 현장, 출처

그런 점에서 2008년부터 2017년까지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블랙리스트의 본질은 동일성을 비판하는 ‘다른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좌파적 성향의 예술가들을 각종 지원사업과 사회적 혜택 및 권리들로부터 배제하기 위해 작성되었던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폭로된 청와대-문체부-국정원의 끈끈한 카르텔은 한국의 87년 민주화라는 것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점을 드러냈고, 3권 분립이라는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마저 불완전한 것이었음을 적시했으며, 나아가 지금의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예술의 힘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송수근 계원예술대학교 신임총장은 블랙리스트를 실행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니 동료 예술가 여러분, 동료 시민 여러분. 우리 사회가 자유로운 예술적 실천들이 요동치는 곳으로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사상과 이상들을 보전할 수 있도록, 예술적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맙시다. 예술가를 탄압하는 작업에 공모했던 자를 위한 역사의 자리는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예술가로서 블랙리스트 공모자 송수근에 반대하는 동시에, 다른 사상과 생각, 다른 인종, 다른 성을 비롯한- 타자에 대한 공포와 공격을 합리화할 수 있는 자들을 막기 위해 시민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예술에 대한 공포와 타자에 대한 공포는 사실상 동일한 것의 양면입니다. 송수근의 블랙리스트 공모는 민주주의의 파괴와 동의어입니다. 계원학원의 송수근 임명과 시민윤리의 파괴는 동의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술가로서도, 시민으로서도 블랙리스트 공모자 송수근의 취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 송수근이 퇴진할 때까지, 나아가 기존 사회의 타자로서의 예술의 소명이 다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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