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제현_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코스모폴리탄①

글: 엄제현

들어가기에 앞서

인용문의 분량이 제법 많아 강조표기를 하여 식별이 용이하게 하였습니다. 미주도 본지에 비견되는 중요함이 있어 참고문헌은 모두 본문에 병기하였습니다. 미주까지 읽어주시면 모쪼록 감사하겠습니다.

들어가며

프로이트의 주장대로 노출증이 타인의 시선을 경유하여 자기-보기를 상상하는 유희라면 올림픽도 그와 유사한 보기를 수행하지 않을까? 지구 전체로 뻗어 나가며 세계인을 축제의 참여자로 포획하는 이 메가 이벤트의 개/폐막식 퍼포먼스는 자국의 문화를 선별적으로 노출시켜 ‘내가 보여지길 기대하는 그 시선대로 보이게 되는 나’에 대한 욕망을 채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의 이목을 움켜쥘 기회는 개최지로 하여금 특정한 부위를 부각시키려는 충동을 심화하지만 동시에 여타의 신체를 주변화하고 은닉하려들기에 수상하다. 가령 서울올림픽은 당시 외국인의 시선1)을 준거로 삼아 퇴거를 정당화하며 도시를 전격적으로 개조하였는데, 무허가촌과 노점상은 그 과정에서 손쓸 도리 없이 쓸려나갔다. 물론 외국인의 시선이란 한 국가의 지배엘리트의 자기-보기의 유희 속에서 창조된 상상적 허구이다. 그러나 남한의 지리적 외부에 실재하는 물리적 객체이며 객관적으로 구조화된 상징적 타자이기에 시선의 위력은 현실을 주무른다. 당최 외국인의 시선에 거슬림이 없는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아마도 그것은 외국의 정경을 모방하고 동화되어 무엇 하나 다름이 없는 세계이리라. 모방의 실천적 목적을 위장, 변장, 위협으로 구분한 로제 카이와를 참조한다면 강제 퇴거를 집행하며 도시경관을 재조정하고 정화하는 일은 특정한 얼룩을 덧입는 위장camouflage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도심의 공간적 재구성은 단순한 원본의 모사가 아닌 짝짓기를 위한 것이다.2) 따라서 변장travesty이라는, 유혹과 관련된 시각성의 논의를 야기한다. 자크 라캉의 주장대로 모방이 그것이 답습하려는 대상을 원본으로 전제하는 한 분명 (원본이 아닌) 무언가를 드러내기에 반음영의 모호함은 이론을 통해 분명해져야 한다.

88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봉송 최종 주자 임춘애 씨가 달리는 모습,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서울올림픽은 특정한 시선을 소유하고자 하는 히스테리를 표출하는 정신병적인 기표이다. 와중에 개막식은 세계의 시선을 조정할 기회가 있다고 믿는 환각적 무대로 차용된다. 따라서 본지는 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의 시각적 연출엔 어떠한 욕구가 내재되어 있었는지보다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흔히들 제3세계의 아시아인의 시점에서 도약하여 제1세계의 시각을 획득한 역사적 사건으로 서울올림픽을 꼽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전환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시각예술적인 선상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이는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많은 경우 서울올림픽은 87년의 민주화에 잇따르며 중산층의 출현을 가능케 한 긍정적 사건으로 파악되거나, 정치권력의 존속을 위한 도구로서 묘사되기 일쑤이다. 때론 전두환 정권 내의 맥락에만 초점을 맞추어 광주민주화운동이 야기한 원죄를 덜고자 하는 고전적인 속죄우화의 틀 안에서 표명되거나, 동양의 상징체계를 통해 세계의 병환을 성급하게 봉합하는 매듭으로 구실한다. 제반의 견해는 부분적으로 옳지만, 고작해야 부분에 그치기에 언제나 불충분한 진술이다. 이와 같은 오류는 올림픽의 글로컬glocal한 특징을 공간상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고려하지 못하고 항상 국가 내부의 사정을 통해서만 사건을 이해하려는 일면적 사고에 기인하는데, 앞서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보다 명철하게 사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림픽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3)

단적으로 말해 올림픽은 세계의 총체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비춰 보일 하나의 은유이고 지표이다. 태동부터 숱한 변천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무수한 의미들을 투과시키고 조바꿈한다. 의미소들의 난류를 올림픽이 제어한다는 말이 아니라 개최지, 이념, 퍼포먼스, 엠블럼, 마스코트, 포스터, 픽토그램, 성화봉송 주자, 봉화의 형식, 선수와 심판들의 선서, 흥행수익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힌트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상황을 올림픽이란 하나의 종합적인 기표 아래서 에둘러 증언한다는 뜻이다. 올림픽은 도시 단위로 개최됨에도 불구하고 상이한 산업발전의 양상과 관계를 문화적으로 반영하면서 지구의 벡터를 송출하는 거대기표이기에 단일 국가에서 어떤 대전환이 이루어졌는지 모색할 수 있게도 하고 (가령 런던올림픽의 가공할 픽션-개막식은 고도로 발전된 산업사회의 문화적/가상적 전환을 구현한다.) 온 우주에 통용될 상징과 의미들을 배태하기도 한다. 상술한 견지에서 88년에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서구 중산층의 시야를 덧입기 위한 내밀한 조작이 가해져 있고, 이를 파악할 기믹들로 넘실거리기에 들여다볼 가치가 충분하다 여긴다. 지금까지 서울올림픽의 개최 과정과 퍼포먼스를 분석하는 일은 남한이 세계의 시선을 빌어 어떤 (폭력적인) 유희를 벌여왔는지를 포착하게 해주면서, 세계로부터 어떤 시선을 건네받고 싶은지 알 수 있게 해주며, 특히 시각예술적인 부분에서 자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고 등재하고자 하였는지 이해할 알레고리 역할을 해왔다. 본지는 이전부터 행해진 숱한 시도의 연속선상에 위치하지 않고, 남한이 서구 경제흐름에 편승하고 그들과 같은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을 획득하기 위해서 겪는 선차적 곤란을 일소하기 위한 전략이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에 속해있다고 기술할 것이다. 기존의 음양, 삼재, 포스트모던 등 종합적 조화나 화합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이어나가며 이미 과포화된 담론 위에 텍스트를 얹어 그 모든 의고적 견해를 배중할 의도는 없다. 외려 근대화 시기의 식민사에 따른 트라우마를 미적인 영역에서 봉합하고 치유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상연하였다는 주장을 펼쳐 보이겠다.

개막식

개최비용에 대한 부담, 제2세계의 정치적 이해와 관련된 극도의 불안, 거대규모의 스포츠 대회 개최경험 부재에 따른 무능감, 내로라하는 국가-도시들과의 경쟁 속에서 한국의 서울올림픽 유치는 시작부터 위태로웠다. 그러나 올림픽은 80년대의 경제적 성장을 토대로 기존 남한이 갖던 제3세계적 이미지를 쇄신하고 세계 주류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선보일 곡예처럼 인식되어 적극적으로 요청되었다. 폐쇄적인 군부가 전 세계의 시선을 그러모으는 모순은 어떤 내적인 논리에 의한 걸까. 가장 납득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면 자본주의 경제의 강제 섞인 논리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이 숱한 반대에 부딪히게끔 외피 수준에서는 온갖 복잡성을 띠는 정치적 이해나 개인들의 요란한 합의, 또는 산발적인 현상들에 의한 우연의 중첩처럼 여겨지고 전개된다. 서울올림픽 개최 의도에 대한 학계의 지배적 의견이라면 으레 전두환 개인의 취미에 따른 집착, 군부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안적 수단, 문화적 이슈로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덮고 대중의 시선을 돌리려는 술책 등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이 전부라면 종래엔 자신을 붕괴시킬 변화를 자초하는 정치적 결정을 오롯하게 설명할 수 없다.4) 시장의 자유화는 인격적인 지배와 예속에서부터 점차로 해방되며 개인에게 감각적 압력을 부과하기를 그친다.5) 이념 차이가 극명하게 두드러지는 남/북한의 지리적 조건 위에서 남한이 미국식 자본주의/자유주의의 두 이데올로기를 수혈받는 이상 전체주의의 존속의지는 결과적으로 절삭될 것이었고, 행성을 양분하는 대결은 국지적인 정치체가 감당할 수 없는 변화들을 줄소환하면서 민주화를 견인하였다.6)

단일 국가의 정치적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서 올림픽이 개최되어야 했다고 말하려던 참은 아니다. 서울올림픽은 수출중심의 성장을 거듭하며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이 제 자긍심을 만국에 공표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서구부르주아의 시각을 획득하는 역설을 산입하기 위해 설치되어야만 하는 필수적 가도이기도 했다.7) 남한이 서구의 시각을 전유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청산되어야 할 문제로는 제국주의의 맹목적 팽창에 따른 피해의 외상적 기억이 가로놓여있었다. 아버지의 법을 내면화하는 과정은 거세의 불안을 동반하는 폭력적 과정을 거친다. 유럽식 보편주의를 띠는 근대성 또한 유사한 과정을 밟으며 산포되었다. 실제로 동양적인 것이란 말살되었으며,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규명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8) 자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로부터 수탈당했던 세계사적 사실을 도외시하고 그들의 의식을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제가 가한 압제의 기억이 청산되지 않아 시시때때로 촉발되는 남한과 일본의 불화가 그 증거이다. 그와 달리 서구의 관점과 태도를 무리 없이 받아들인 것은 특정한 시점에서 서투르게나마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거듭 말하지만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은 서구의 의식을 표면적인 층위에 안착시키기 위한 의례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시각적인 유희를 통해 다채로운 의미를 방사하며 어느 수준에선 시민을 우롱한 채 정치적 순수를 강화하려 하고, 어느 시점에선 서구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성을 표출하며, 어느 지점에선 제멋대로 타협하고 이내 승화(인체 하는 합리화를)한다.

지금부터는 개막식의 행사를 분석하며 논지를 차근차근 강화하도록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개막식의 전체적 윤곽을 먼저 표기한다. 개막식은 앞마당-공식행사-뒷마당의 삼부로 기획되었으며 상세한 순서는 다음과 같다. (강신표,『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세계의 TV』, Sport, The Third millennium, 1990, 부록 인용.)

앞마당 (시간은 대략적임)

B = 한강 보트행렬 (공식행사 아님)

C 1= 강상제 행렬 (10분) 선박 및 선상행렬

⌜해맞이⌟ (4개 부분. 총 20분)

C 2= 1부 새벽길 (4분) 농민 북꾼에 의한 한국의 민속적 의식인 터씻음

C 3= 2부 용고 행렬 (4분) 용고가 들어오고 세계수로 향함.

C 4= 3부 천, 지, 인 (4분) 한국과 그리스의 선녀/요정들

C 5= 4부 태초의 빛 (6분) 1,500명의 현대 무용단이 들어와 ‘Welcome’이란 글자 만듬.

공식행사

0 6= 올림픽 팡파레 (1분) 트럼펫 연주, 사회자가 개회를 알린다.

0 7= 노태우 대통령 내외의 소개와 입장 (1분)

C 8= 어-서-오-세-요 (5분) 현대무용단이 ‘Welcome’ 상징

0 9= 선수단 입장 (60분, 전체적이며 복합적인 부분)

0 10= 서울올림픽 위원장 박세직의 연설 (2분)

0 11= IOC 위원장 사마란치의 환영사 (2분)

0 12= 노태우 대통령의 개회 선언 (2분)

0 13= 올림픽기 게양. 비둘기 날림 (8분)

0 14= 성화를 들고 있는 주자가 점화 (5분)

0 15= 올림픽 선서, 선수와 심판대표 선서 (5분)

0 16= 한국 애국가 (2분)

0 17= 선수단 퇴장 (15분)

뒷마당

좋은 날 (2부; 총 2분)

C 18= 1부; 강복과 차일춤 (7분) 800명의 무용수들은 운동장 위, 낙하병들은 오륜기 형상 을 만들며 낙하

C 19= 2부; 화관무 (5분) 1,500명의 여자 무용수.

C 20= 혼돈 (5분) Totem Poles와 여러나라의 가면들.

C 21= 벽을 넘어서 (5분) 태권도 시범

C 22= 정적 (1분) 한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간다.

C 23= 새싹 (5분) 아이들이 들어와 놀이를 함.

C 24= 화합 (7분) 고놀이가 행해진다.

C 25= 한마당 (7분) 마스코트와 손에 손잡고를 부른다.

0: 올림픽 의식, B: 방송국 추가부분, C: 문화적 행사

KBS에서 아나운서를 맡은 이창호는 “하늘의 축복받으며 땅의 영광을 위해 우리 모두가 정성스레 준비한 인류 최대의 화합의 마당 전진의 장.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되는 한마당 잔치. 우리는 모두 하나 되기 위해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하나의 지구 위에 우리 50억 인류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예쁜 곡선의 우리 선조들이 빚은 백자를 닮은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바로 이곳이 새로운 역사 새로운 화합의 힘을 품은 울타리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올림픽 사상 최다의 참가. 최상의 화합. 최고의 성과. 최대의 절약. 최적의 안전과 봉사를 목표로 제24회 서울올림픽 대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곳은 바로 우리 땅, 우리 고장, 세계를 하나로 묶는 젊음의 광장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세계인은 모두, 세계는 모두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체육뿐 아니라 문화, 예술, 학술 모든 것이 우리 땅 대한민국, 우리 고장 서울로 모아지고 있습니다.”라며 개막식의 운을 뗀다.

이에 호응하듯 기존 국내에서 올림픽의 퍼포먼스를 분석한 논문들 또한 동양적인 상징을 통해 개막식의 화합과 조화의 측면을 강조한다. 강신표의 경우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문법의 논리를 빌어 서구의 이분법적 구분과 달리 동양(중국)의 철학에선 “두 개의 상보적이고 대립적인 요소가 위계적 질서로 상호 조화를 이룬다. 음과 양으로 표현되는 두 개의 극은 상호작용하면서 조화를 만든다. 이러한 이원적인 대립은 인간과 우주, 하늘과 땅, 존재와 비존재, 남자와 여자, 자아와 타자, 이와 기, 이성과 감정, 지식과 행동, 일과 다, 선과 악 등등으로 나타난다.”고 기술하며 이러한 세계관은 이데올로기의 이원성이 한국의 문화부호 안에서 예가 아니오로 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화합과 전진’이란 서울올림픽의 이념에서 상보적 짝을 만들어내며 화합을 공간적/공시적 층위로, 전진을 시간적/통시적 층위로 나누어 양자를 음양의 논리로 치환한 뒤 한국과 세계의 균형과 종합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고 정의한다. (강신표,『서울올림픽과 바르셀로나올림픽 비교연구』, 인문사회과학 논총 제 4권 1호, 1997, p.89.)

이어 박정진의 경우는 “서울올림픽의 문화적 의의는 기본이념인 화합과 점진에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①누구를 위한 것인가 ②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③어떻게 할 것인가로 나누어 생각되었다. 첫 번째 질문에 답은 화이부동이고, 두 번째 답은 사해동포, 세 번째 답은 홍익인간으로 대신할 수 있다”며 개폐회식 행사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전통 미학의 형식원리를 바탕으로 해체주의⦁탈중심주의의 기본 이념을 응용하였다. 말하자면 이성과 합리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 억압받아온 감성과 불합리에 주목함으로써 다른 것의 포용과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를 지향하였다. 이것은 이분법적 사고의 전면 부정보다는 여러 차원의 이분법과 함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성취하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각종 이분법은 표면적으로는 구조주의 이분법을 준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가 겹치는, 혹은 이중적이며 상호의존적인 성격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이분법은 ‘대립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통일을 기다리는 대립’이라는 편이 옳다.”라고 주장한다. (박정진,『굿으로 본 서울올림픽의 의례성』,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p.89.)

위에 적은 강신표와 박정진의 글귀들은 제각각 설득력을 지닌다. 허나 박해남의 주장대로 “자신이 보여짐을 알고, 자신을 보고 있는 이들을 역으로 보면서, 포스트콜로니얼한 주체들은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하는 연출적 행위를 할 가능성을 갖게 된다.” (박해남, 『서울올림픽과 시선의 사회정치』, 사회와 역사 제110집(2016년) 한국사회사학회, 1988, p.364.) 스스로를 연출할 가능성의 상황에 직면할 때 남한은 자신의 역사와 전통 내부에서부터 토대의 근간을 탐색하며 동시에 현대적으로 개작하고 내보일 전략을 도모하게 된다. 전통을 재발견하고 구조화하는 단계에서 상징화가 일어날 때엔 당대의 지식이 선제적으로 연루되어 전통의 의미화가 이루어지는 문법 일체는 현대의 지식 안에서 마름질 된다. 그렇기에 음양, 천지인,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개/폐막식의 의미작용이 재해석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다. 나아가 옳기까지 하다.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개폐회식 국장 이기하 교수는 한국일보에 다음과 같이 인터뷰하였다. “‘국가와 국가. 이념과 이념. 민족과 민족. 남자와 여자.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이 종교와 저 종교. 자연과 인간. 인간과 기계’ 등 인위적 벽을 넘어서 한마당 잔치가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올림픽의 기획 의도와 사후에 게재된 아카데미의 해석들은 하모니를 이루며 하나의 성과를 무한하게 미화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들은 언제나 부분적인 관점에서의 일치를 이루는 데에 그치며 사회적 사실과 덧댈 때면 부정교합임을 증명하는 파열음을 그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전설적인 다큐멘터리로 회자되는 ⟪상계동 올림픽⟫을 보고도 화합, 전진, 음양, 상보, 다양성 속의 통일성, 상호의존 따위의 수사를 들이댈 수는 없다.

저들만의 회합을 벌이는 듯한 행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발이라면 오자은의 사유를 꼽을 수 있지 싶다. ⌜올림픽의 무의식, 1987년 6월 항쟁과 88년 서울올림픽 사이⌟라는 논문은 앞서 열거한, 이론상의 딩동댕을 연발하는 언문들과는 달리 서울올림픽이란 행사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달성하기 위해 희생된, 제 스스로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말할 수 없는 주체들의 사태를 다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애쓴다. “1987년 6월 항쟁은 중산층 샐러리맨의 대거 참여라는 대오의 확장에 힘입어 민주주의를 향한 범국민적 열망을 실현한 정치 혁명으로 탄탄히 의미화되었다. ‘중산층의 반란’, ‘넥타이부대의 승리’라는 명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6월 항쟁에서 중산층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인식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6월 항쟁을 지지한 중산층이 제도적 민주화라는 목표가 달성되자마자 빠르게 보수화되었다는 비판적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이러한 복잡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87년에서 88년으로 이어지는 시간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발전적이고 자연스러운 서사로 읽힌다. 이듬해 1988년의 서울올림픽이 실제로 너무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혁명 공간이 만들어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줬다는 식의 발전 서사가 대내외적으로 승인될 수 있었다.” (오자은, 『올림픽의 무의식, 한국근대문학연구』, 2018, p.79.) 오자은은 87-88년으로 이어지는 상식에 가까운 역사관을 재차 대질한다. 이후에 그가 문학작품으로부터 채취하는 온갖 죄의식, 신경증, 울분, 호소들은9) 화합과 전진 따위의 치장을 무책임하게 남용하고 변주하는 지적 태평함이 올림픽의 개/폐막식 퍼포먼스를 우화 내지는 자위처럼 다루어 우익적 서사에 가담한다는 혐의를 씌울 오랏줄이 된다.

오자은은 위 논문의 결론부에서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5공화국의 군사 정권의 개발주의 담론이 6월 항쟁의 민주적 요구를 한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군사독재 체제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정치적 오명을 벗는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6월 항쟁의 뿌리에 있는 혁명적 민주주의의 담론을 약화시킬 수 있었고, 이처럼 민주화의 담론이 개발주의 담론 속에 흡수 통합됨으로써 사후적으로 구성된 것이 저 매끄러운 발전의 서사, 직선제 개헌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서사인 것이다. 반면 소설적 서사는 이데올로기적 서사가 이질적인 것들을 통합하고 흡수하면서 은폐하고 억압한 것, 통합의 과정에서 미처 제거하지 못한 균열의 흔적에 주목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표면적인 발전의 서사 심층으로 들어가 올림픽의 무의식을 재구성하고자 한 이 글의 시도는, 발전적 서사가 상쇄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가 너무 빨리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경고하는 소설들의 윤리적 발화와 그 의미를 같이한다.” (오자은, ibid, p.116.) 며 끝을 맺는다.

자본주의가 내미는 가장 달콤한 환상 중 하나는 아마도 중산층일 것이다. 3저 호황과 맞물려 연간 10%를 상회하는 GDP상승률을 뽐내며 중산층이란 계층적 질서가 자본주의 동학 안에서 성립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던 80년대는 급기야 87체제에서 ‘넥타이부대의 승리’, 연이어 88년의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한껏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들어서며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가 혼융되어 있던 중산층은 양극단으로 찢겨나가며 사회적 불안을 점차로 가속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상대적 빈곤은 점증할 것이라던 마르크스의 분석을 증명하듯 글로벌 경제 수준에선 중산층의 추락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예외 없이 발생하고 있고 규모뿐 아니라 소득마저 감소세를 띠며10) 그 계층적 신기루가 여지없이 붕괴되어가고 있음을 알려오고 있다. 서울올림픽의 선전구호들은 한때 그 모든 이상들이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세대적인 착란의 부호이다. 이제 학문에겐 강신표나 박정진 등이 보여준 정본적인 해석을 걷어차고 오자은과 같은 태도로 모순을 적출할 임무가 주어졌다. 그가 소설의 증언들을 빌려 몽롱하게 물든 집단적 환시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면, 우리는 올림픽 퍼포먼스에 대한 해석 자체를 이질적인 차원에서 제시할 작정이다.

88올림픽 <강상제>

올림픽의 개막 행사는 <강상제>를 필두로 개괄된다. 개회식이 주경기장 바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올림픽 사상 최초의 시도로, 개막식 첫 무대인 한강은 세계의 다섯 바다가 올림픽의 도시로 이어지는 화합의 강, 기적의 길이 되었다며 457척의 대 선단은 세계가 하나 되어 주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상징적 모습을 나타낸다고 이창호는 언설한다. 박정진은 “기존의 개막식이 메인스타디움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안과 밖의 분할 고정 개념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유동 공간을 창출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잠실주경기장의 대형 전광판과 한강의 대형 멀티비전은 경기장 안과 밖을 서로 동시에 바라보게 함으로써 종래의 경기장 안(=성聖), 경기장 밖(=속俗)이라는 이분법을 무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성속이 하나 되는 올림픽 초유의 광경을 연출하였던 것이다.”라며 상호 연관되는 주장을 유려하게 이어나간다. (박정진, ibid, p.94.) 공간적 경계를 허문다는 의미의 포스트모던한 시각으로 <강상제>를 바라볼 때 이후 파라슈트의 고공낙하 순서와 맞물려 강력한 해석적 설득력을 갖게 한다. 그러나 올림픽이 권력엘리트들이 외국인의 시선을 상상하며 가시권/비가시권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도시를 치장했다는 사회적 사실에 비춘다면11) 포스트모던한 해석에는 정치와 문화, 또는 현실과 현실로 표기하려는 것 양자를 절합하는 척추가 부러졌음을 보게 된다.

왜 누구도 <강상제>의 배 행렬이 그저 세계인이 잠실 주경기장으로 몰려들고 있음을 단적으로 시각화한다는 해석을 넘어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관련되어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던 걸까? 역사적으로 ‘배’는 제국주의 시절의 강렬한 야욕을 성사시킬 폭압적 오브제로 기능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하는 그 배들은 ‘이양선’이라 불리며 각국에서부터 도착한 정체불명의 배들을 통칭하는 데에 쓰인다. 제너럴 셔먼호, 운요호, 병인양요, 신미양요, 남연산 묘 도굴에 이르기까지 배는 폭력과 약탈의 이미지, 거주민의 일상을 뒤흔드는 항거불능의 정벌-이미지로 작동하면서 피압제 국가의 역사를 파괴하고 유린하며 잇단 변화를 일으켰다. 한 시대를 장악한 파멸적 무기가 올림픽에서 최초로 등장할 때 기이함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주경기장 밖의 뚝섬에서 바라보는 시민들이 선단의 행렬을 열렬하게 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에 대한 인식적 전복이 국가적 차원에서 수행된 것에는 어떤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걸까. 박정진의 경우처럼 단순히 퍼포먼스와 그 주변의 상징만을 연결하여 해석을 마칠 때 배가 드러낼 수 있는 잠재적 힌트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배를 환영하게 만드는 모습은 이양선에 대한 조선 후기의 배격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한강으로 들어오는 배는 단순히 세계인의 서울로의 입장이 아닌, 세계(의 문화, 문물, 인식)에 대한 수용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효과를 은연중에 예기한 건 아니었을까. 서울올림픽의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상호교환적인 캐치프레이즈는 우리의 의심을 더욱 짙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던한 시각, 즉 닫힘-열림의 이행은 단순히 도상학의 영역에 머무를 게 아니라 외부에 대한 자국민의 태도를 반전시키려는 일체의 전략 안에서 재고해볼 수 있다. 당장의 주장이 터무니없어 보일지 몰라도 뒷마당에서 이어질 행사들은 본 해석에 단초가 되어 더욱 강화된 논지를 연성할 것이다.

“강물의 순환성/연속성은 세계인의 화합과 세계가 서울로 오는 그 전진의 길을 향하게 된다.”는 이창호의 음성, 이어서 박정진의 “강상제는 한강의 흐름을 통해 세계가 수평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하는 세계 관람자로 하여금 가슴에서부터 하나가 되는 지구촌의 미래와 시대정신을 느끼게 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바다처럼 넓은 한강의 물결을 유유히 타는 크고 작은 배들은 대항해시대를 넘어 정복과 지배의 패권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올림픽 주경기장이 지척인 잠실 선착장에서 닻을 내린다. 이는 올림픽이야말로 세계의 동서남북이 하나가 되게 하는 축제로서 ‘세계는 하나’라는 사실을 식전 행사의 첫머리에서 자리매김하며 예축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박정진, ibid, 94p) 는 주장은 여러 가지를 재고하도록 한다. 올림픽이 평화를 희구하는 동안 점차로 달성되고 있다는 일체의 기대는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 속에서 항상 불발로 그친다.12) 물리적인 측면에서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발생한 72만 명의 철거민, 베이징올림픽 부지선정을 위해 약 125만 명의 퇴거가 집행되어 쫓겨난 이주민(COHRE의 연구에 따름), 지역예술가들과 협업했다는 대외적 광고의 배면에선 동런던의 빈곤한 뉴햄지역을 재개발하며 기존의 거주자들의 생활상을 파괴한 런던올림픽 등 행사를 위해 언제나 누군가의 평화는 파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권일의 주장대로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는 세계의 불행과 무관하게 순수하고 정정당당한 축제가 가능하다는 신화를 유포한다는 점에서 궁극의 길티 플레저다.” 박정진의 순진무구한 견해는 성과 속의 경계를 오히려 암울하게 도색하며 올림픽의 모순적 신화를 배가하는 미신 섞인 모호함만을 제공한다. 당장 세계의 물길을 자기 논으로 대려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보더라도 정복과 지배의 대항해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구상은 영미 중심의 유통 질서를 교란하고 새로운 유통구조를 창건하려는 중국의 대對경제 투쟁이다. 문명의 해류를 뒤틀려는 이 초거대 프로젝트는 중국 공식 통계상 인구 44억을 겨냥하며 중국이 유라시아, 북극해, 미국까지 연계할 수 있는 새로운 파도를 생성해내려 한다. 이러한 전복적 기획은 물길로 은유되는 불균형한 물류 흐름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세계가 수평적으로 하나라는 독해는 엉뚱한 낭송임이 드러난다. 설령 행사가 평화를 위해 ‘물길’에 위와 같은 상징을 부과하려 하였더라도, 학문은 그에 동조해선 안 될 것이다. 잠깐 스크린이 제시하는 가상의 평화를 수용하도록 하는 일은 학문의 할 일이 아니다. 학문은 현상에 대한 메타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지평을 열어야 한다. 다시, 개막식이 강물의 연속성/순환성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입하려는 인식은 다름 아닌 작금의 세계질서이다. <강상제>는 상선약수의 자연법칙을 빌어 역사를 자연화하려는 지배의 수작에 이바지한다. 당대의 흐름이 시대적 경향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역사의 인위적 일부가 아닌 자연적 사실이라 주장하려는 듯 굴며, 사유에 대한 사유를 가로막고 동시대의 질서에 별말 없이 따르기를 요구한다. 시민들은 선단 행렬을 뚝섬에서부터 바라보며 끊임없이 연호한다. 그들의 열렬한 환영은 세계로부터 불어오는 파고에 순응하고 동일시하여 제3세계 변방의 아시아인이 제1세계의 시각을 전유하며 코스모폴리탄이 되겠다는 화음조의 서곡이다.

카메라의 시점은 잠실주경기장 내부로 옮겨지며 <해맞이>13) 순서가 시작된다. 해맞이는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소주제는 <새벽길>, <용고행렬>, <천, 지, 인>, <태초의 빛>순으로 전개된다. 유교적 절차와 굿의 성격이 결합되어 있는 길놀이라는 민속의식은 <새벽길>로 개작되어 터를 씻고 올림픽이 열리는 잠실주경기장을 신성한 공간으로 천명한다. 본래 길놀이는 대동놀이가 시작되기 전 놀이패들이 마을을 지나가면서 사람을 끌어모아 분위기를 조성해서 시작하는 것으로, 개막식 전체를 하나의 판굿으로 상정함을 나타낸다. 이때 제정적인 요소들이 개막식을 지탱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잠실주경기장을 인간들의 제례를 통해 신성화하면서 대우주의 원리를 압축 체현하는 소우주의 공간으로 명명하고 이어질 행사들을 선보이면서 형식 속에 내재된 정치적 효험들을 시청자에게 부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전지구의 관람자들은 단순히 개막식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주적 원리를 대리표상하는 세계의 형상을 보는 망막적 세례를 받는다. 제례의 메시지가 곧 우주적 순리와 결부되는 초월적 핍진성을 내재한다는 점에서 이종의 우주관을 설파하는 정치적 위력을 행사할 것이다. <태초의 빛>에 다다르면 잠실주경기장의 시간은 우주가 창조된 첫날로 돌아간다. 경기장이 우주의 원년으로 회귀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의 비의 대부분은 이러한 최초의 시간을 반복한다. “고대의 의례는 특수한 주체가 신화적 재현의 역할을 수행하며 최초의 사건에 담긴 창조적 원천을 부활 시켜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의미를 가졌다. 집단의 존속을 위해 공통의 시간을 복기하며 우주의 운행에 대한 새로운 힘을 획득하는 고도의 정치적 종합이었고, 시공간의 축을 세움으로써 세계의 작동 원리를 터득하는 인식론적 행위랄 수 있었다.” (엄제현,『질환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시각적 안내문』, 크리틱-칼, 2018) 서울올림픽의 역사적 시간을 무로 환원하는 전략은 특수한 주체가 신화적 재현의 역할을 수행하지도, 창조적 원천을 부활시키지도 않는다. 또한 피지배의 경험을 표백하고자 하는 단순한 백일몽에 그치지도 않는다. 그것의 목적은 한발 더 나아가 전 인류가 바라보는 가운데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함이다. (계속)


1) 서울올림픽의 개최를 위해 도심부 재개발, 주택개량 재개발, 한강종합개발, 도시녹화 사업등 대대적인 개조가 이루어진다. 김화영은 당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스라친다. 다음은 1983년 6월 2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화영의 글 일부 발췌이다. “왜 언제부터 우리들의 판단 기준은 사소한 일에서까지 외국인 쪽에 가있는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이토록 우리들 스스로의 독자적 판단능력을 상실해 버렸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시시각각 감시하는 듯한 눈을 가진 ‘외국인’은 어느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일까? 때때로 나는 그 외국인이 혹시나 상상력과 독자적 판단력을 상실한 한국인 자신의 망령이 아닐까 하고 부질없는 걱정을 하곤 한다.”

2) 서구의 문화와 자본이 침투하는 상황에서 동양은 형태상 난자에 가까운 수동성을 띠며 결과적으론 친탁으로 기우는 이종의 접합자를 배태하는데, 이때 정액의 산포와도 같은 자본의 방류를 독점하기 위해 시선의 경제는 맹렬하게 작동한다. 올림픽공원 내부에 위치한 서울올림픽 기념관의 ‘번영의 장’ 전시관에선 서울올림픽의 성과를 선진사회로 도약할 기틀을 다진 경제발전의 측면에서 부각한다. 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경제 발전에 대한 선전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사후적으로도 흑자올림픽이란 발표가 이어졌다.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박세직은 서울올림픽의 총수입 8,410억원, 총지출 5,890억원으로 2,520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대회였다고 말한다. 정찬모는 “올림픽 투자사업은 관광, 스포츠 레저, 전자통신 등 관련 산업 발전과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무역⦁외환거래⦁주식시장 등의 대폭 개방은 국제적으로 한국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특히 한국의 이미지 고양으로 서울올림픽 이전의 미 수교 국가들과 무역 대표부를 설치하여 적극적 교역을 함으로서 한국상품들에 대한 신용도를 높여 수출이 증대되었으며 올림픽 참가국들과의 경제협력과 교류 기회가 증진되고, 이에 따라 외화 수입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어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전환점이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정찬모,『서울올림픽과 한국의 국가 발전』, 체육사학회지 제7호, 2001, p.3.) 실제로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남한의 중소기업에 대한 해외투자는 87년 대비 45.2%의 증가가 이루어졌다. (김규창,『88서울올림픽 이후 중소기업의 해외투자전망』, 「마케팅」23권 2호, 1989, p.73.) 허나 5공의 바램대로 만사는 형통하지 못했다. “1989년을 정점으로 무역수지 적자와 경제 불황 국면을 맞이하여 노사갈등의 심화로 생산현장의 비효율, 임금의 상승 등으로 한국 상품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제조업의 상대적 위축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으로는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되었고, 외국 퇴폐문화 유인과 소비풍조가 확대되었으며, 정서적 반미의식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정두영,『전두환 정권의 엘리트스포츠정책에 대한 미시적 접근』, 석사학위논문, 2014, p.35-37) 일각에서 박보현은 흑자올림픽이란 선전 자체의 허구를 드러내고 비판한다.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와 KDI보고서에서 지출에 관해 자의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며 반발하는데, 올림픽을 위한 경기장 건설에 지출된 비용을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박보현,『스포츠 메가 이벤트의 경제발전 담론: 19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을 중심으로.』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21(4), 2008, p.789. )

3) 올림픽에 대한 부실한 견해는 지역적인 맥락만 고려되는 공간적 오류뿐 아니라 문화가 자신의 종별적인 역사 안에서 특수한 시기의 분절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 시간적 오류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이학준의 ⌜근대올림픽 패러다임의 전환⌟이 대표적인 예로, 그는 올림픽이 제 스스로를 역사적으로 구성할 씨실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빗나간 사변만을 이어나간다. 그가 제시한 네 가지 패러다임은 3기 경제올림픽의 규정을 제외하고는 훌륭한 헛다리지만 시간상 한 테마만 답파하고 지나가겠다. 이학준은 평화올림픽(1896~1932년)이란 패러다임의 준거를 평화와 번영에 대한 쿠베르탱의 관심사와 올림픽 헌장에서 찾는다. 하지만 한 개인이 주창한 평화라는 추상적 관념이 제국주의가 창궐하던 세계의 이해관계를 능가할 수는 없다. 이런 사유는 쿠베르탱이 1889년 파리박람회의 영향을 받은 시대적 조건이나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할 정치적 필요 등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마는 데에 있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역사적 조건 일체를 거세한다. 1900년 파리올림픽은 19C 국제박람회의 부속행사로 운영되었으며, 1908년 런던 대회는 영불박람회의 일부로써 개최되었다. 박람회와 올림픽이 동시적으로 개최되었다는 건 양자가 유사한 이념을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김석기,『근대올림픽 부활에 있어서 19C 박람회와의 이념적 관계』, 한국체육철학회지, 2015, p.37.) 박람회가 경제, 과학기술, 문화적인 경쟁을 바탕으로 한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며 자국의 경제적 헤게모니를 과시하는 제국주의적 야망의 문화적 재현이라면, 그리고 열강들이 앞다투어 박람회 시대를 개괄하던 것을 참작하면 그와 동시적으로 펼쳐진 올림픽은 어떤 필요를 보완하였을까. 만박의 인기에 편승하여 올림픽을 세계적 행사로 만들고자 했던 야심에는 물론 자국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인종주의적 충동이 포개어져 있다. 박람회가 서구중심의 시각으로 세계를 재편하였다면 올림픽은 민족적 정체성의 형성을 보조하며 신체라는 가장 외설적인 매체를 통해 인종적 분획을 점차로 가시화할 수단을 마련하였다. 이때 신체에 대한 박물관적 욕망은 인종주의적 시각을 보유한 채로, 또한 유전학적 낙인을 찍을 잠재적 수단으로도 작용하면서 세계평화라는 관념을 영원한 가상으로 몰아넣는다.

4) 당시 정치엘리트들이 수많은 지역을 철거하며 도시 풍경을 재조직하기 위해 동원한 외국인의 눈은 87년에 이르러 그들의 숨통을 끊는다. 후기전체주의와 달리 전체주의적 지배 는 억압적 권력이 은폐를 행사하지만 항상 폭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영웅적인 드라 마를 통해 붕괴될 단초를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전두환 정권은 세계에 노출되고자 하였다. 80년의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은폐의 전략과 완전히 대조적인 행보는 어떻게 파악되어야 할까? 단지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세계의 시선을 부른 어리석은 정치적 결정일까? 정녕 이리 잡으려다 범 부른 격의 사례로만 사태를 파악해야 하는 걸까. 6월 항쟁에 대한 계엄 선포는 전두환에겐 이미 불가능한 시도가 되었는데, 올림픽 이전에 사태가 유혈진압 된다면 각국은 보이콧을 선언할 것이 분명했을 뿐더러, 남한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며 공산권을 견제하려던 미국의 입장에서 계엄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전두환을 지속적으로 압박하였다. 또한 올림픽 중계를 위해 외신 기자들이 사전에 대거 방한한 터라 정권은 6월 항쟁 진압을 포기한다. 강신표는 ⌜서울올림픽과 바르셀로나 올림픽 비교연구⌟ 라는 논문에서 이 역설적인 지점을 역사의 심판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권선징악이라는 미신 섞인 테마를 역사 일반에 적용해 구체적 분석을 도외시하게 만들고 내적인 인과를 규명하는 일을 간과해버리는 지적 실수이다. 서울올림픽의 정치적 패러독스는 자본주의 발전도식 전개에 따른 정치적 곤란이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 근무하던 김성익은 2007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이 잘못되면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가 나빠지고 북에게 지는 것이며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경제발전을 기초로 세계사회에 편입하며 자국의 이미지를 브랜딩하고 코스모폴리탄의 의식으로 전환하려는 시대적 사유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인 대결의 양상에서 승리하려는 상부구조 상의 적나라한 욕구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전두환 정권의 시간은 억압적 정치권력의 지배가 자신의 무능이나 교활함의 말로로 패망한 역사가 아닌, 다시 말해 전 지구적 경제의 역동은 직독직해되지 않으며 국지적인 정치의 차원에서 쉬이 독해 불가능한 자율적 사건처럼 현상한다는 증거로 읽혀야 한다. 본 미주는 올림픽의 유치 결정에 대한 원인이 아닌, 계엄선포를 하지 못하고 물러난 정권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원인은 자본주의적 변증법의 논리이다. 상보적인 설명을 원한다면 《김경필,『1987년 이후 재벌 자본축적 방식의 전환: 공간, 형태, 노동의 유연화』2018》를 필독하라.

5) 신자유주의로 이행한 세계의 지배는 아이러니하게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였다가 나중엔 소련 치하의 지배가 종식되자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되는 전설적인 인물인 바츨라 프하벨의 텍스트에서 뚜렷하게 정의된다. 그가 기술한 ⌜힘없는 자의 힘⌟이라는 저서는 전체주의와 후기전체주의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기 전체주의 체제는 특정 정부의 선도적인 정치적 노선이 아니라 복잡하고 장기간에 걸친, 아주 교묘해진 <사회의 자기 침해>로 첫째, 구식 독재의 권력은 국지적이나 후기 전체주의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치기 때문에 무소부재한 듯 보인다. 둘째, 후기 전체주의의 역사성은 그것에 저항하는 운동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셋째, 세속화된 종교처럼 매우 융통성 있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유지된다. 넷째, 후기 전체주의의 권력 행사 기술에는 빈틈이 없다. 다섯째, 구식 독재정권에선 영웅주의, 혁명의 기운, 압제자와 피압제자 사이에서의 가시적이고 드라마틱한 투쟁이 구현되었지만 후기 전체주의 아래에선 그런 것들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하벨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지배를 근대정치와 효과적으로 대비시켜놓은 듯 보인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정치가 감히 관여하고 조정할 수 없는 원리처럼 작동하며, 제재는 ‘초감각적 지배’라고 부를 만한 형태로 나타난다. 개인에게 즉각적이고 감각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를 거부하려는 주체를 점진적인 몰락의 과정으로 언도하며 그가 면밀히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그의 삶을 재단한다. 신용도, 보험료, 이자로 표상하는 세련된 카르마는 감각적인 차원을 이미 아득히 떠나 있다.

6) 위의 주장이 직선제 개헌 단행을 위해 피 흘렸던 수많은 정치적 투사들의 희생을 무시하는 것처럼 읽힌다면 무척 애석한 일이다. 6월 항쟁 없이는 직선제 개헌 요구에 직면한 군부가 6.29선언을 발표할 일도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다만 87이후 혁명적인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투쟁들과 제 스스로 자신이 처한 위기를 말할 수 없는 주체들을 대신하여 항변하던 노력들이 쇠잔한 국면에는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남는다. 다음은 2006. 6. 7일자 오마이뉴스에 방학동 도깨비시장 김아무개씨의 인터뷰이다. “80·90년대는 저항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그 힘마저 없어요.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변할 것은 변해야 하겠지만 지금의 상계동은 가난한 사람이 소리조차 못 지르는 현실로 변했어요. 그렇다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어차피 그들의 땅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7) 1980년 11월 1일 출범하여 1989년 2월 28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회정화위원회는 당시 정권에 반발하는 이들을 제거하고 체제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국민의식개혁을 목적으로 하며 사회정화운동을 실시하고 주도하였다. 사회정화운동은 사회를 불결한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정부가 개입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재정렬한다. 이는 제 보기에 흡족한 질서를 수립하려는 신의 욕망과 동형이다. 새로운 사회 질서를 수립하려는 시도는 기존의 생활상을 야만으로, 국제질서는 문명으로 대비시키기에 가능하다. 당시 정부는 합리적이고 질서 있는 선진 산업사회의 생활 풍토를 내면화할 것을 요구했고 국민의식을 국제화된 시민의 의식으로 전환하려 힘썼다. 야만으로 지정된 개소주, 보신탕, 토룡탕, 뱀집 영업 등은 대로변에서 금지당하고 노숙자는 형제복지원으로 감금당한다. (노숙자의 존재는 자본주의의 증상인데도!) 이런 시도는 비단 남한의 일만은 아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개최를 준비하는 동안 중국 정부는 중년 남성들이 배를 까고 옷을 올려 입는 ‘베이징비키니’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당시 사용된 구호는 “문명의 겉옷을 입으라.”로, 이때도 동일하게 시선의 타자를 의식한 국민의 생활과 인식의 개조가 나타난다.

8) 중국은 그에 대한 해답을 자기 안에서 찾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남한은 서구란 이 름의 아버지적 형상을 내면화하고 동일시한다는 해법을 찾았다.

9) 올림픽의 서사를 낭만화하는 틈에 묵살되는 이들의 외침은 오자은의 논문 속에서 김중태 ⌜당신들의 축제⌟, 현기영 ⌜위기의 사내⌟, 박태순 ⌜밤길의 사람들⌟, 김남일 ⌜명동 부르스⌟, 장남수 ⌜빼앗긴 일터⌟, 이명순 ⌜길⌟, 김한수 ⌜성장⌟, 박완서 ⌜여덟 개 의 모자로 남은 당신⌟, 박완서 ⌜꽃을 찾아서⌟와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한 말씀만 하소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등등의 작품들과 함께 온갖 증상을 간직한 채로 87-88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중산층 서사, 민주적 제도화의 서사를 전복할 물꼬를 튼다.

10) 이에 대해서는 연합뉴스의 다음 기사를 참고.(https://www.yna.co.kr/view/AKR20170125219400009)

11) 더 나아가 선수촌아파트는 올림픽 이후 폭발적으로 가격 상승을 이루며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확연하게 구분한다. 다음은 서울특별시가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백서⌟에서 밝힌 분양방침이다. “올림픽 선수촌⦁기자촌의 아파트 분양은 제 24회 서울올림픽 대회기간 중 선수단⦁기자단 숙소로 사용하고, 대회 후 일반분양자가 입주하는 조건으로 분양되었다. 일반분양은 대회 후 입주조건으로 올림픽 기부금부 입찰제로 선매분양하였으며, 특별분양은 사업지구 내 건물 및 토지소유자 중 협의보상자에게 한하여 분양하였다.” 경제적 기준으로 분양을 허용하는 것은 가진 것이 없어 쫓겨난 자들의 삶과 비참한 대조를 이룬다. 인천공항에서 잠실로 이르는 올림픽대로를 건설하고 도로 위를 달리는 외국인들이 주변 정경을 볼 때 눈살을 찌푸리지 않도록 광명, 목동, 사당, 철산, 상계, 잠실에 이르는 지역들에 아파트를 건축하여 72만 명, 48,000가구를 폭력적으로 내쫒은 사실은 비극을 더욱 극화한다.

12) 올림픽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대개의 슬로건은 ‘하나’를 주장하며 통합을 지향하지만 경쟁과 메달의 수여를 통해 배타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형식과의 불화로 인해 어긋난다. 그럼에도 올림픽이 내세우는 평화의 염원을 무턱대고 거부할 수는 없다. 근대의 보편적인 주체의 탄생이 ‘만인은 평등하다’는 거짓된 선언으로부터 출범했지만 그 언표를 달성하려는 보편적인 정치의 준거가 되었듯이 올림픽이 주장하는 평화는 세계인의 가슴 속에 평화에 대한 염원을 주기적으로 갱신하고 환기하기 때문이다.

13) 천지인의 삼태극이 그려진 용고는 왕의 행렬을 재현하며 세계수로 향한다. 수목신앙은 세계 어느 시원적 신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엘리아데에 따르면 “우주목은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우주목의 뿌리는 지하 세계로 뻗어 있고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우주의 세 영역이 하나로 통합된다고 여겨졌다.” (Mircea Eliade, Histoire des croyances des idées religieuses, 1976, p.76.) 세계수는 세계에 대한 시공간적 우주축으로도 기능하는데 공간적인 측면에선 세계의 지리적 중심을 형성하며 공간에 대한 인식적 좌표계가 되어 주고, 시간적인 측면에선 계절에 따른 순환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면서 순환성을 나타내는 지표적인 역할을 담지한다. 용고의 행렬에 맞추어 울리는 북은 타악기가 은유하는 원시적 의미까지 연결되며 시간적 역행을 일으킨다. 이때 제례에서 타악기가 담당하던 기능, 즉 심장의 고동과 공명하면서 점차 격렬한 리듬을 만들어내어 제례의 구성원들이 엑스터시를 경험하도록 이끄는 기능은 십분 발휘되어 긴장감을 고조한 뒤 일순간 모든 소리가 멈추며 세계수를 성화대로 탈태시킨다. 이후 ‘태초의 빛’에선 무용수들을 통해 잠실주경기장에 새로운 빛이 비추고 있음을 알린다. 이때 인류는 태초의 시간으로의 회귀를 목도한다. 이제껏 유추한 신화적 은유는 아마도 애초의 기획의도와 일치하는 해석일 것이다.

*「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코스모폴리탄」에서 엄제현은 ‘화합과 전진’이라는 서울올림픽의 테마와 마찰 없이 전개된 서울올림픽 개막식 해석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이 과정에서 엄제현은 87년 민주화와 88년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중산층 변혁서사에 내재된 불화를 탐색하며, 남한이 세계에 상연되는 자아를 연출하는 적극적 기회로 삼아 제3세계 국가로서의 자기-이미지를 갱신하였다는 기존의 도식적인 이해를 넘어, 그와 같은 전환을 이루기 위해 선결적으로 요구되는 근현대사 시기의 민족적 외상을 미적으로 청산하는 시도를 강구했다고 주장합니다.

*본 원고는 정강산의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1편, 2편, 3편)과 함께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에 선정된 기획입니다

  1. 엄제현_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코스모폴리탄①
  2. 엄제현_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코스모폴리탄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