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산_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②

정강산(독립연구자)

그러나 보편으로서의 생산양식이 특수로서의 부문적 현상들을 통해 개별로서 나타나는 위와 같은 사례들은 당연하게도 비단 예술의 범주에 국한된 진술이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제 분과 영역들에서까지 관측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18세기의 칸트에게 주체와 객체, 존재와 인식, 지성과 감성의 분리는 이미 하나의 대답으로서 제시되었는데, 여기서 각 영역은 마치 “순수 이성”과 “실천 이성”이 그러하듯, 서로 완전히 구분되는 것으로 설정되며, 물 자체; 객체의 본질 혹은 절대자; 자연에 대한 인식은 포기되거나 유보된다. 이는 철학사 내부의 지엽적인 쟁점을 해결하고자 했던 하나의 자율적인 철학적 응답임과 동시에, 그 자율의 조건을 초과하는 대상을 배면에 지님으로써만 나타날 수 있었던 하나의 징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견지에서 일찍이 존 레텔(Alfred Sohn-Rethel)은 칸트의 이원론이, 교환에 매개된 노동 분할, 즉 현실의 상품 교환행위가 재생산하고 또한 교환행위를 위해 필요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라는 현실의 이분법 위에서 가능해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구상과 실행의 본격적 분리라는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은, 칸트의 젖줄이자, 토대이며, 칸트를 역사화 할 수 있는 계기이다.19) 즉 칸트의 ‘선험’은 바로 자본주의를 가리킨다. 신의 죽음에 이어 열린 이성의 공간과 도덕의 위상을 재확립하는 것이 칸트 기획의 전제였음을 감안할 때, 총체적 매개자로서의 신의 죽음은 이미 부르주아적 질서의 출현과 관련된 어떤 현실의 분할 과정에 근거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분할의 실체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이라는 점을 그려 보이는 레텔의 주장은 강한 설명력을 지닌다. 이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는 단순히 나열 가능한 특정한 노동의 성격들이 아니라, 임노동 자체의 발생,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 분화, 교환행위를 매개하는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의 위상 심화, 시장적 평균으로 수렴한 ‘총노동’ 속에서 무차별한 인간노동으로 평준화된 추상노동과 개별 작업장 내에서 수행되는 개별적인 구체노동이라는 노동의 이중성 등의 역사적 결절점을 가리킨다.20)

마찬가지로 19세기 초부터 전개된 헤겔의 변증법은 시민사회와 국가가 대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던, 그러나 서로가 어떤 유기적 통합의 가능성을 내비치던 생산양식의 국면을 지시하는 지표로서 조명될 수 있다. 당시 시민사회는 구체제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헤게모니 투쟁을 하던 근대적 경제인들의 원자화된 세계로서, 국가는 귀족적이고 전제적인 세력들이 장악한 보편적인 힘이자 통합을 종용하는 세계로서 남아 있었다. 이렇게 시민사회의 발생에 따른 이해타산적 주체가 하나의 문제로서 등장하고, 이들에 대한 국가의 위상이 재정립되어가는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은 ‘세계사’와 “세계사적 개인”이라는 헤겔의 표현대로 양자의 힘의 관계를 재배치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이점’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후 농민들의 압도적 지지 속에서 유럽을 통합하며, 봉건적 반혁명의 시도들을 회생 불가능할 만큼 제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을 통해 나타난- 모종의 분할을 연결하거나 전화시킬 강력한 (부르주아적)매개의 계기가 바로 헤겔의 무의식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21) 즉 변증법은 신흥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의 혁명적이고도 폭발적인 힘에 대한 미메시스에 다름 아니며, 그것을 자신의 조건으로 갖는다.

그 힘은 혁명 이후 이런저런 문화와 습속을 공유하던 모종의 주관적인 집합적 군상들을 ‘국민; 민족(nation)’으로 호명하여, 이들을 통합된 도량형과 화폐, 단일한 정책, 통치의 권역으로서의 영토 등으로 조직된 국가(state)라는 객관적인 체계와 일치시키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을 통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근대국민국가의 모습이다. 물론 그것이 확립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전적으로 위와 같은 조건 속에서 헤겔은 모순된 사회세력들의 분리를 무의식적으로 해결하고자 변증법이라는 기획을 발전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실정적 수준에서 변증법 자체는 계몽 이후 분리되어 각각 극단적으로 실체화된 이성(계몽주의)과 감성(낭만주의)의 문제, 절대자에 대한 인식가능성의 문제 등에 대한 협소한 철학사적 개입으로도 독해될 수 있으나, 동시에 그 기저에는 국가가 자본주의적 경제(시민사회)를 포섭해야 했던, 혹은 자본주의적 경제가 국가를 재규정해야 했던 현실적인 분리와 대립상황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이 국민국가가 본격적으로 심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유기체적 질서와 매개하는 힘에 내기를 걸고, 이성이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족, 시민사회를 거쳐 지양되어감으로써 비로소 국가에서 주관과 객관의 가장 높은 형태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예비해야 했던 세력 간 힘 조정 국면을 표지하는 하나의 흔적이다.

이에 근거하여 리얼리즘 이후 모더니즘 예술의 전체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가 예비적으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의식의 전개를 중심으로 조직된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에서 보이는 것처럼, 혹은 재현과 순수한 표현을 이분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또는 회화 자체의 물질성과 표상을 대립시킨 그린버그의 자기지시적 회화론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절대성과 불멸의 진리에 대한 추구와, 상반되는 두 항을 전제하는 심층모델22)의 시대로서 특징지어지는 모더니즘시기의 문화 생산물들은 금과 연동되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가동되었던 태환 화폐 체제와 매개된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생산양식 내부의 일정한 시퀀스들을 규정하는 세부적인 작인을 고려함에 있어, 상품 교환이 매개되는 방식으로서의 화폐 및 그 형태는 가장 결정적인 정수로서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 즉, 피에르 빌라르가 말했듯, 화폐 현상이 “무엇보다 복잡하고 심원한 현상들에 대한 징표나 표지 혹은 정보 제공자”라면23), 우리는 특정한 문화의 발생과 그 양상이 어떤 화폐거래 방식 속에서야말로 필연적으로 그 나름의 독특한 자율적인 공간을 지니게 되며, 그 형식을 자신 내부에 각인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 세계적으로 19세기의 후반의 통화제도는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하여 은행권(지폐)의 태환으로 조직되었는데, 여기서 화폐는 귀금속이라는 현실의 상품에 단단히 정박되어있으며, 일정한 금의 가치를 재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지시대상과 그것에 대응하는 가치표지는 상호 간에 모종의 심층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으레 모더니즘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셈해지는 이원적 심층; 이원론은 당대 화폐질서의 환유이며, 그것이 지닌 절대성에 대한 확신은 바로 금 화폐체제의 안정성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모더니즘의 기획 전반이 지시대상과 재현체제를 둘러싼 각축 속에서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찍이 페르낭 브로델은 귀금속이 화폐의 역할을 수행했던 시기를 추적하며 금의 이동과 국가 간 헤게모니의 이동 사이의 연결에 대해 의미심장한 진술을 남긴 바 있다.

“(…)16세기 초에 수단의 금은 이미 포르투갈인들에 의해서 지중해로 가는 직통 루트로부터 새로운 길인 인도양 방향으로 빼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처럼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는 시들고 쇠퇴해버렸다. (…)30년 후에 아메리카 귀금속이 세비야를 통해서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마찬가지로 우연처럼 스페인의 권세가 확립되고 만개했다. (…)스페인의 주화가 지중해 전체를 정복하고 그 번영을 17세기 중엽까지 연장시켰다. 그 후 은은 마닐라 방향으로 돌려지거나 아니면 아메리카에 의해 현지에서 흡수되어 더 이상 지중해에 은이 충만한 사태는 사라졌다. 그 때문에 유럽에도 더 이상 은이 넘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쇠퇴이며 퇴락이었다. 18세기 직전에 화폐용 금속의 새로운 유입에 의해서 치유되기까지는 이러한 쇠퇴에 대한 해결책은 없었다. 브라질 금, “미나스 제라이스”의 금 유입이 그 해결책이 되었다. 이처럼 세계사의 장들은 동화와 같은 금속의 리듬에 따라서 춤을 추었다.”24)

여기서 브로델은 특정 지역으로의 귀금속의 이동에 따른 경제권역의 확립과 그에 따른 권세의 흥망에 착안하여 경제적 문제와 국가적 융성함의 문제가 결정지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할 따름이지만, 그 함의는 보다 심원하다. 우리는 위와 같은 브로델의 진술에서, 일정한 권역으로의 화폐의 유입은 문화의 융성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문화의 출현 가능성을 조건 지으며, 나아가서는 우리가 자연스레 행위하고 사고하는 방식을 아우르는 특정한 문화가 나타나는 형식을 규정한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26)

오늘날의 철학적 이데올로기를 경유하는 것은 이 점을 보다 명백히 해줄 것이다. 언젠가 바르트가 말했듯, 봉건적 질서에 조응하는 문화적 실천으로부터 부르주아적 질서에 조응하는 문화적 실천(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은 곧 지표(index; indice)에서 기호(sign; signe)로의 전환을 의미한다.27) 이러한 전환은 주로 귀금속과 주화, 기타 현물과 같은 상품화폐(index)가 통용되던 전근대의 봉건적 교환행위에서, 상품화폐가 교환의 배면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표상하는 약호들의 체제로서의 가치표지(sign)가 전면화 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즉 실재적 근거이자 토대로서의 ‘실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얻은 (금/은 등의 귀금속 본위제에서와 같은)화폐체제는 그 실물의 한계가 허락하는 한에서 제한적으로 자유롭게 운용될 수 있는데, 이는 지시대상에 대해 규제적이고 우연적인 관계만을 맺는 기의와 기표의 기호(sign)체제가 인식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런 점에서 소쉬르는 19세기 초부터 시작되어 온 화폐질서에서의 전환을 언어학이라는 분과를 통해 표지하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28) 즉 지시대상과 분리된 기표와 기의의 기호체제의 등장은 다음과 같이, 일정한 가치를 표지하는 화폐의 역할을 실물로부터 본격적으로 분리시켜내는 역사적 조건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29): 거듭된 수입과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국제수지 적자와 통화가치절하에 시달리던 영국은 평가절상을 위해 통화개혁을 단행하는 연장에서, 1816년 일정 금액의 금 지불을 명시하는 가치표지로서의 은화토큰을 도입하고, 1819년의 필 법안(Peel’s bill)을 통해- 1797년 일시적으로 제한시켜놨던 금 태환을 1821년까지 재개시켰으며, 본격적인 금 본위제로의 이행을 준비했다.30) 1871년 독일이 영국에 이어 금본위제로 전환함으로써 19세기의 4분기에 이르면 거의 모든 유럽 지역과 일본까지도 금본위제를 채택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은 2차 대전 이전까지 지속되어온 당대 세계의 통화체제의 원형이 되며, 이어 달러에 일정한 비율로 금의 무게를 연동시켰던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도 금환본위제로서 그 모습을 바꾸어 유지되는 것이다.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브레턴우즈 회의’ 장면_사진출처

이 국면에서 각국의 환율은 고정환율제였고, 화폐의 액면은 현실의 일반적 등가물에 정박되어 있으며, 동시에 화폐는 그 자신의 근거가 되는 상품으로부터 벗어난 자율적인 가치표지기능을 본격적으로 수행한다. 미국에서 1863년과 1864년에 걸쳐 통과 및 시행되었던 국법은행법(National Bank Act)과 더불어 정착된 지급준비제도(reserve requirement system)는, 예금된 화폐의 보유 비중을 규정함으로써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예금과 대출의 비율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게 하여 현대적 은행의 기틀을 다졌고, 이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데, 이는 금본위제 하에서 가치 표지 기능이 분리되어가는 과정을 가속시켰다.31) 그러나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과 함께 세계의 통화체제는 발본적인 단절을 겪게 되고, 이에 연동되어 있었던 기호 체제 역시 동시에 발본적인 단절을 겪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특정한 기호의 체제에 기대고 있었던 모더니즘의 시퀀스가 돌이킬 수 없이 종언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금본위제가 1820년대부터 1971년까지 유지되었던 것과, 모더니즘이 1840년대의 리얼리즘에서부터 1970년대의 미니멀리즘까지 유지되었던 것은 필연이다. 보편 없는 특수가 공허하고 특수 없는 보편이 추상적이듯, 양자는 서로를 통해서만 모더니즘이라는 전체 속에서 개별의 작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지반에서 형성된 문화의 기호적 체제 위에서, 재현대상(지시체)과 재현의 체제(기호)의 분리32)를 인식하고, 이 분리를 문제시하거나(초현실주의, 다다이즘, 구축주의, 생산주의), 분리를 가속시키고자 했던(인상주의, 큐비즘,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 모더니즘 특유의 실천이 그 자율의 조건을 획득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어 나갔던 것이다. 다시 말해, 클락이 요약한 바 있듯, ‘기호라는 사회적 실재를 인지하도록 관객을 인도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운동이 거의 파괴해놓은 세계/자연/감각/주관성의 기저로 기호를 되돌리려는 꿈을 꾸었던’ 모더니즘의 모순적 특징33)의 조건은 바로 그 시기 상품교환을 매개했던 방식에 있었다. 이때 지시체-기호, 재현대상-재현체제의 분리에 대한 인식은 한편으로 삶(실재)과 예술(기호)의 분리에 대한 인식이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추동력이 되었던 이러한 인식은, 아방가르드가 근본적으로 모더니즘적 기획이었다는 점을 반증한다. 즉 양자는 근대의 물화; 분리 경향이라는 동일한 문제적 상황에 대한 다른 방식의 대답들이었다.34)

이 장에서 전개된 주장은 예술이라는 부분을 생산양식의 단면이라는 보편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예술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 자율의 조건을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로 간주되어야 한다. 세계를 없애 가지는, 즉 세계를 사생하는 동시에 전유하고 품어내는 예술의 생산적인 미메시스적 능력을 긍정하는 아도르노의 주장에 기대어 말하건대, 예술을 비롯한 문화적인 것들은 인간들의 삶의 실천이 조직되는 축으로서의 생산양식의 주요 단면들을 미메시스 하기에, 예술은 본질적으로 예술 아닌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논리를 닮는 동시에 그 논리로 환원 불가능한 충동을 보존하는 예술의 정치적 무의식이 성립하게 되는 지점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35) 그러나 동시에 양자는 기계적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품화폐-귀금속 본위제- 불환 지폐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때그때의 역사; 생산양식의 국면에서 어떤 자본의 동역학이 전개될 수 있는 토대이자, 특정한 동역학의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특유의 안정성으로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케인스주의의 물적 조건으로서 기능하며, 그것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양상과 비슷하다. 나아가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 실물에 대한 화폐의 우위의 국면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변동환율제 하에서 어떠한 본위로부터도 자유로운 불환지폐 체제 및 그 하위 범주로서의 전자화폐 체제와 논리적으로 조응하며, 그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기호; 예술의 형식이 자연스럽게 통용될 수 있는 역사적인 제 1원리가 된다. 

 

3. 법정화폐와 변동환율제 그리고 텍스트(text), 자유낙하의 실체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물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어떨까? 오늘날 기호체제의 작동은 생산양식의 변동을 어떻게 자신 내에 구조화시키고 있으며, 생산양식의 논리는 또 어떤 부문을 통해 자신을 실현해가고 있는가? 닉슨의 1971년 불태환 선언 이후 몰락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1973년에 이르러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며, 이로서 금본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어떤 실물적 근거로부터도 자유로운 불태환 화폐, 즉 국가의 법 이외에는 통용 가능한 근거를 갖지 않는 법정화폐의 국면이 열리게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순수한 가치표지기능만을 수행하는 통화체제로서의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이는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조건이 되는 것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형성된 국제적 자본이동의 통제에 대한 관리기조는,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자본투자 및 자금조달을 위해 자본이동을 자유화하는 경향으로 이행되었고, 90년대까지 체계적으로 이뤄진 이 과정에서 각국의 금융세력은 전에 없던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더불어 애초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고 전후 경제를 재건하려는 목적 속에서 설립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의 기구 역시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기관으로 변모했다.36)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유지되어왔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기능분리는 이 시기에 다시금 와해되는데, 99년 클린턴 정부에서 상업은행으로 하여금 증권업 겸업을 허용했던 것은 금융자본의 부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변동환율제에서 금융자유화에 이르는 위와 같은 일련의 흐름이 의미하는 것은, 나노초 단위까지 고려해야 할 만큼의 잦은 자본의 유출입에 따른 경제적 속도감의 편재37), 국가 간의 경쟁적 환율조정에 의한 환율 변동성 확대이며, 국민국가 단위의 규제와 사회안전망을 사문화시키거나 파괴하는 축적체제의 성립이다. 지주형의 표현대로, 이는 자본이 “투자한 나라의 세율, 이자율, 인건비, 노동규제 등이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38)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제1세계의 초국적 기업이 보유한 제조업 시설들은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이나 규제가 약한 국가 혹은 기타 지리적, 경제적 이점을 가진 지역들로 생산 라인이 분할 이전되기 십상이었고, 노동자들의 쟁의는 명확한 책임주체를 설정하기 어려워졌다. 그 연장에서 초국적 기업과 대기업을 비롯한 규모 있는 법인의 경우 일국 단위에서도 인건비를 비롯한 산업재해 등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외부의 하청업체39)와 하도급계약을 맺어 위험을 외주화하는 동시에, 이러한 하청을 사내에서 적용하거나(사내하청), 동일한 사업장 내부에도 파견 도급직, 계약직, 일용직, 시간제 근로 등 여러 형태의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저임금의 장시간 불안정 노동을 방기한다. 이들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 등의 불안정성과, 금융시장에 매개된 국제유가, 이자율, 금리 등의 변동성이 야기하는 ‘리스크’에 대한 대응으로서, 근본적으론 기업의 고이윤을 위해 합리화된다.

이 과정에서 강화된 주주들의 권한은 기업으로 하여금 경영악화를 빌미로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를 통해 배당금의 파이를 키우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도록 만들었으며, 그 연장에서 경공업, 중공업, 전자공업 등 제조업 산업부문에서조차 금융수단을 매개로 이뤄지는 축적이 점차 확대 및 심화되어 왔다. 이는 결국 산업경영보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금융차익을 노리는 축적이 선호된다는 것, 온갖 실물의 상품에서부터 채권, 통화, 미래 수익, 심지어 날씨까지도 재산에 대한 증서로서 가공하여 금융상품으로 거래하는 규모가 증대한다는 것 등을 의미한다. 금리가 낮은 곳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곳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40), 약세 통화를 사두었다가 해당 통화가 강세를 보일 때 되팔아 차익을 얻는 외환투기 역시 대표적인 사례일 텐데, 예컨대 오늘날 하루 외환거래량은 연간 국제무역량의 수십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며41), 이런 정도로 활성화된 금융시장에의 투기 자본의 유출입은 일국의 경제 전체를 초토화 시킬 정도로 통제를 벗어나 있다. 1992년 유대계 금융자본가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투기 자본이 영국의 파운드화를 사재기하여 달러를 매입함으로써 파운드화의 가치를 폭락시켜, 결국 타 기축통화들에 비해 낮아진 화폐가치로 인해 영국 기업의 원자재 수입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물가 상승과 경상수지 적자 심화 등을 야기하며 영국 경제에 치명적인 중상을 입혔던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리스크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러한 금융시장의 리스크와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 등장한 파생상품은 이제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금융상품이 되어 엄청난 시장 규모를 갖게 되었다. 파생상품은 원자재와 농산물을 비롯한 실물에서부터 채권, 증권, 주식, 날씨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그 특정의 기초자산을 어떤 시점에서 일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것(선물), 특정의 기초자산을 어떤 시점에서 일정한 가격으로 거래할 권리를 거래하는 것(옵션), 어떤 시점에 일정한 환율과 금리 등을 거래 당사자 간 서로 교환하는 것(스왑) 등을 통해 수백 수천의 복잡한 조합으로 형성될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서, 말 그대로 ‘본래의 자산으로부터 파생된’ 상품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리스크의 통제 자체가 다시금 리스크에 기반한 이윤의 원천이 되며, 시간 역시 미래의 손익이라는 명목 하에 그 자체 순수한 상품으로 전화된다.42) 단적으로 한국의 경우만 해도, 세계은행(WB)에 의해 집계된 2018년 명목 GDP는 1조6천194억 달러이나, 2018년의 장외파생상품거래 규모는 약13조9천535억 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다.43)

그렇게 오늘날 우리는 잠시 안락사되었던 금리생활자가 다시 무덤에서 돌아온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물 경제의 성장이 동반되지 않는 이러한 금융의 팽창은, 결국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 기초한 실물부문의 잉여가치의 확대재생산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한에서 항상적인 위험을 극복하지 못할뿐더러, 외려 위기를 초래한다. 2007년-2008년의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는 2000년대부터 과열되어 온 부동산 버블에 기대어, 은행이 낮은 신용등급을 가진 이들에게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금융상품(서브프라임 모기지)을 공급하고, 금융회사들이 이 대출들을 묶어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을 비롯한 파생상품들을 발행함으로써 거품이 점차 과열되다가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함께 미국의 대형은행 및 금융회사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던 과정이었다.

물론 이러한 금융부문의 전지구적 심화와 발달; 금융세계화로의 전환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몰락에 따른 자동적인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결과이기에, 그것이 온전히 이해되기 위해서는 이행과정에 작용한 계급적 작인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가 지적하듯, 이러한 금융의 헤게모니를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자본의 수익성위기에서 심화된 1970년대의 구조위기로부터 연원한 것으로서, 상위계급의 고소득보장을 위해 사회경제적 제도를 정비하고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관철되었으며44), 그 본질은 기업 활동에 무차별적인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발국가들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체 국민소득에서 이윤대비 임금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어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지점을 잘 보여주는데, 마찬가지로 여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견주어 임금상승률은 한참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46) 그런 점에서 정부의 공공/재정지출 축소, 노조의 권한에 대한 공격, 국영 기업의 민영화, 소득세의 누진성 약화, 자본규제 철폐, 금융시장의 육성 등의 정치경제적 기획으로 나타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는 그러한 전체 이행의 한 국면에서 벌어진 계급투쟁의 결과를 표지하는 것으로서, 이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라 할 법한 것은 돌이킬 수 없이 문화와 상부구조에서 관철되고, 기입되며, 전 세계에 강제되는 정언명령이 된다. ‘1대 99’라는 월가 시위의 구호가 주목했던 압도적인 양극화 경향은 이미 전지구적 수준에서 진행되어 온 것으로, 그 결과 우리는 어느 때보다 풍족해 보이지만 유사 이래 가장 빈부격차가 극심한 단계의 자본주의에 접어들었다. 금융세계화란 결국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자신의 내용으로 가지며, 주주와 투자자들, 대기업과 초국적 기업의 높은 이윤을 위해 항상적인 리스크와 변동성 위에서 이뤄지는 금융 자유화 이후의 축적체제이자 마르크스가 언급한 바 있는 순수한 물신형태(M-M’)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롤랑 바르트(1915~1980)

위와 같은 상황에서 기호 체제는 보다 자유로워진 형식으로 탈바꿈한다. 우리가 으레 ‘텍스트’라 부르는 것은 그러한 전환의 지표이다. 이 기호 체제의 전환은 결국 어떤 근거로부터도 해방된 화폐의 자유에 대한 미메시스로서, 경제 전체가 실물로부터 벗어난 듯한 착시를 구조화하는 금융의 헤게모니에 의해 심화된다.47) 이 국면에서 기표는 마치 오늘날의 법정화폐가 그러하듯, 혹은 금융자본이 그러하듯- 어떤 지시체 혹은 심층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채, 그 자체 자율적인 수준에서 끊임없이 파생되고 미끄러지며, 다른 무수한 계열들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일찍이 금본위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위협을 받는 60년대 말의 상황에서부터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서서히 가시화 된 바 있다. 68년의 에세이 “차연(La Différance)”에서 데리다는 그 개념이 63년 처음 언급되었던 수준을 넘어, 지시대상은 물론이고 어떤 최종적인 기의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기표의 유동성을 전제하고, 그리하여 어떤 본질의 현전과도 관계하지 않는 기표의 연쇄를 주장했다. 이 테마는 입말, 육성이 전제하는 모종의 ‘실체’(“충만한 현전”; 혹은 ‘금(gold)’)를 비판하고 텍스트 자체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던 직전 작업에서도 반복되었던 것이었다.49) 한편 바르트 역시 63년의 “사라진느(Sur Racine)”에 이어 『S/Z』(1970)를 통해 구조주의에서 포스트구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업을 수행했고, 『텍스트의 즐거움』(1973)에 이르러선 완연히 텍스트의 운동에 대한 분석으로 선회했다. 여기서부터 그는 상호텍스트성50)과 텍스트에 개입하는 유희(jouissance)를 통해 의미를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데에서 이성과 과학에 대한 비판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다.51) 바르트는 기호의 등장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포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침잠한- 부유하는 기표들의 연쇄망으로서의 ‘텍스트’ 자체가 역사적인 범주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데리다를 위시한 포스트구조주의의 수용이 통화체제의 변동을 주도했던 70-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여기서 포스트구조주의는 전환된 경제 질서를 기호와 담론의 수준에서 이해할 만한 것으로 재맥락화 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자신이 이미 전환된 실재의 질서에 대한 효과이기도 했다. ‘세계화 이후 자본의 외부는 없다’는 진술과 ‘텍스트의 외부는 없다’는 진술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제임슨이 지적했듯, 모더니즘적 물화의 국면에서 소쉬르를 통해 나타난 ‘기표-기의-지시체’의 삼각 모형에 대한 발견이 모종의 심층을 전제하는 재현/실재에 관한 원형적 심상을 제공했다면52), 포스트모더니즘적 물화의 국면에서 나타나는 것은 M-M’의 논리에 조응하는- 자기 충족적인 기표의 ‘무한한 연쇄’의 차원인 것이다. 실로 오늘날 화폐란 그 어느 때보다 종이 위에 쓴 약호에 불과하며, 그 자체 자율적인 행위자로서 팽창하고 증식되는 듯한 외양을 띠는데, 이것이 바로 후기구조주의적 텍스트성의 근간이 된다.53) 따라서 60년대의 미적 실천들에서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 특유의 차용(appropriation)의 전략과 혼성모방(pastiche)이 당대의 ‘텍스트’와 논리적으로 조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더니즘적 저자성과 독창성에 맞서는 차용이든, 특정한 맥락 속에 놓여있었던 미적형식들을 그 외양만을 취해 절합하는 공허한 패러디로서의 혼성모방이든, 이들이 특정한 형식을 그 ‘역사’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는 것은 기표가 ‘지시대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상황을 전제하며, 결과적으로 ‘텍스트’와 포스트모더니즘적 전략 양자는 본위와 근거로부터 해방된 화폐를 필두로 한 자본주의적 물화의 국면에 기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인즈적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금융세계화’로도 불리는)로의 전환이라는 실재 속에서 사회의 제 부문들을 비롯한 예술의 양태를 살피기 위해서는, 금환본위에서 불환지폐로의 전환, 산업자본의 헤게모니에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로의 전환 등을 그 지표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지표들이 보여주듯, 상품교환을 매개하고 조직하는 방식의 변화는 어떤 근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적인 기호체제를 촉진하고, 산출한다. 그것이 산출하는 효과는 항상적인 불안정성에서부터 착시감, 유동성, 일회성, 단발성, 일시성, 즉각성 등에 대한 감각이다. 경험 전체가 어떤 실체에도 정박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듯한 상태로서, 히토슈타이얼이 말한 ‘자유낙하’의 심상이 비롯되는 곳, 동시에 더 이상 자유낙하 할 수 없는 지면이 자리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문제는 그러한 ‘근거의 부재’가 바로 아직 우리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역사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3편에서 계속)

*본 원고는 엄제현의 「서울올림픽 개막식과 코스모폴리탄」(1편2편)과 함께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에 선정된 기획입니다.

* 연재 링크

  1.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①
  2.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②
  3.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③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전문 다운로드 링크


19) 알프레드 존 레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황태연, 윤길순 역, 학민사, 1986. pp.30-32, 101-103. 여기서 레텔의 기본적인 관심은, 계몽 철학자로서 칸트가 인간의 과학적 판단 가능성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선험적 종합판단의 근거로 정신의 영역을 상정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칸트의]‘자기의식의 선험적 통일’이란 그 자체가 교환 추상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하나, 즉 화폐의 통일과 사회적 통합의 통일에 근거하고 있는 상품 교환가능성의 형식의 지적 반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 이에 대해서는 특히 위의 책, p.103을 참고하라. 한편 마르크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선의지(good will)”, ‘의무’, ‘정언명령’ 등의 범주들로 조직된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이, 혁명적 기류 속에 놓여있던 프랑스 및 산업 혁명과 식민지 건설을 통해 팽창해가던 영국에 비해 철학적 의식 이외에 나아갈 곳이 없었던 18세기 후반 독일의 불모적 정세를 반영하고 있으며, 선의지의 실현을 세계 너머로 넘겨둔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칸트의 선의지는 독일의 부르주아 시민(burgher)의 불능, 침체, 불행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의 프티 부르주아적 이해는 절대 한 계급 공통의 전 국민적 이해로 발전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다른 모든 국가들의 부르주아들에게 계속해서 이용될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Marx and Engels, “A. Political Liberalism” in “III 5. “Stirner” Delighted in His Construction”, German Ideology, 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5/german-ideology/ch03d.htm

21) 헤겔이 청년기 때부터 프랑스혁명에 열광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헤겔은 없었을 것이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다. 이때 프랑스 혁명은 지배 계급의 정치적 권력 교체라는 협소한 장에서 이뤄진 사건이 아니라 생산양식의 재조정 과정과 전환의 사건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22) 제임슨은 일찍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안과 밖의 해석학적 모델”, “본질과 현상에 대한 변증법적 모델”, “잠복(latent)과 현시(manifest) 혹은 억압에 관한 프로이트적 모델”, “진정성과 비진정성에 관한 실존주의적 모델”, “기표와 기의 사이의 기호학적 대립”의 사멸이라 주장한바 있다.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niversity Press, 1991. p.12, p.156.

23) 피에르 빌라르, 『금과 화폐의 역사 1450-1920』, 김현일 역, 까치, 2000. p.20. 이렇게 화폐는 초월적인 제1작인이 아니라, 역사적인 제1작인으로서 조명될 수 있다.

24) F. Braudel, “Monnaies et civilisations: De l’or du Soudan à l’argent d’Amérique”, Annales, 1(01), 1946, p.22 위의 책, p.14에서 재인용.

25) 이러한 관점은 전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상이한 민족;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이라는 협소한 차원을 넘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요컨대 2차 대전은 일제의 중화민국 침략, 혹은 나치의 폴란드 침략이라는 국지적 현상으로 나타났으나, 그 기저에는 타 열강들에 비해 식민지를 갖지 못하고 경제블록을 건설하지 못했던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의 후발 산업 국가들이 상품을 수출할 경로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식민지 건설에의 요구가 있었다.

26) 예컨대 오늘날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과 브로커들의 높은 마약 복용율과 퇴폐적인 음주문화는 매초마다 정신없이 변동하는 주식시장과 환시장의 그래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그들 업무의 기능적인 특징으로부터 연원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변동성과 위험이 일상화된 후기 자본주의 속에 놓인 주체가 비정상적 신경 각성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반응하며, 산만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로서 독해될 수 있다.

27) 롤랑 바르트, 『S/Z』, 김웅권 역, 연암서가, 2015. pp.124-125. 한편 제임슨은 전(pre)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기호체제를 구획하는 바르트와 달리, 리얼리즘-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과정 전체를 자본주의적 발전 국면에서 설명한다. 할 포스터는 한 에세이에서 제임슨이 주장한 기호의 물화과정에 착안하여, 70년대 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을 설명하는 두 가지 모델- 기표들의 유희로서의 알레고리적 충동, 지표적인 것으로의 전환-을 검토하며, 이를 포스트구조주의의 탈 중심적 전략에 조응하는 것으로 조명하고, 이들 모두가 후기자본주의의 추상화 과정에 빚지고 있음을 논한다. 할 포스터, “거친 기호: 70년대 미술에서 나타난 기호의 분열”, 조정훈 역, 앤드류 로스 외 저, 『포스트모던의 문화 ˙ 정치』, 배병인 외 역, 민글, 1993.

28)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는 1906년과 1911년 사이 제네바 대학에서의 강의에 근거하여 소쉬르 사후 제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1916년에 첫 불어본이 나왔고, 최초의 단독적인 금본위제는 19세기 초 영국에서부터 시행되었다.

29) 혹자는 최소한 중상주의 체제에서부터 이미 실제의 귀금속들을 가치표지와 어느 정도 분리시킨 복본위제 및 신용화폐가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설명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복본위제에서는 여전히 가치표지로서의 화폐와 상품은 금본위제에서의 강도 이상으로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예컨대 복본위제 하에서 은화는 특정한 은의 무게가 포함된 상품에 가까웠으며, 이는 금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토큰은 18세기 말 이전까지는 위조의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19세기 초의 금본위제 이전까지 화폐의 가치표지기능은 상품으로서의 화폐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으로 분화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기수, 『국제통화금융체제와 세계경제패권』, 살림, 2011. p.30.

30) 한편 영국에서는 18세기부터 애덤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비롯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나타나는데, 영국이 산업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정교하게 완성시킨 선두주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치가 노동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역설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주로 영국에서 나타난 것은 필연이다. 그들은 노동 가치를 통해 점차 구체화되어가는 자본주의의 작동을 인식할 수 있게 된 미네르바의 올빼미였다. 반면 마르크스가 했던 작업은 노동가치가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노동과 구체노동의 분리라는 노동의 이중성에 근거한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이었다.

31) Joshua N. Feinman, “Reserve requirements: history, current practice, and potential reform”, Federal Reserve Bulletin, issue Jun, 1993. pp.569-589. 미국의 국법은행법의 시행은 자체적인 단일 통화시스템을 확립하고 내전에 이은 재정 위기 앞에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현대 은행이 조직되는 기본적인 원리를 확립함으로써 초기 산업 자본이 안정적으로 금융을 조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 이전까지 각기 다른 민간 은행이 발행하여 국지적인 영역 내부에서만 유통 가능한 화폐가 통용되는 식이었다면, 국법은행법 이후 화폐는 단일화되고 보편화된다.

32) 상기했듯 이러한 분리는 통화체제에서의 분할에서 가장 순수하게 표현되며,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분할, 문화와 자연의 분할, 인간과 사회의 분할 등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분할은 상품경제의 편재라는 공시성 속에서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정교화 되는 각각의 계기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루카치가 제시한 ‘물화reification’란 바로 이러한 분리의 현상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실체화 될 수 없는 것들이 그러한 분리 속에서 구획 가능한 외양을 띤 채 나타나는 착시를 가리킨다.

33) T.J. Clark, Farewell to and Idea: Episodes from a History of Modernism, Yale University Press, 1999. pp.9-10; 한편 서동진은 제임슨을 경유하여 “(…)모더니즘의 등장은 바로 현실이 표상된 것이라는 자각”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서동진, 『동시대 이후』, 현실문화연구, 2018. pp.252-253.

34) 이 점은 모더니즘과 대중문화에 대한 제임슨의 분석을 통해서도 이해될 수 있다. 제임슨은 “대중문화에서의 물화와 유토피아”에서 모더니즘과 대중문화는 모두 동일한 실재·모순을 마주한 상이한 두 표현양식이라 주장한다. 즉 우리가 모더니즘과 대중문화를 분리된 항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신과 봉건적 유대관계 속에서 형성된 유기체적 질서에 조응하는- 각 사회집단의 습속에 깊게 통일된 예술로 하여금 그러한 질서의 체계로부터 벗어나도록 한 실재의 변화 덕분이라는 것이다. 즉 학문분과의 심화, 개인화, 생산과 소비의 분리 등을 아우르는 (근대의) 물화과정에 따라 예술이 삶으로부터 벗어난 순간, 모더니즘과 대중문화의 분화는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즘은 사생(寫生)의 대상이 되는 요소들을 통제하고, 즉각적으로 실체화되지 않는 (모순에 대한) 내재적 보상구조를 갖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문화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고 유기체적 조화의 상태를 실체화함으로써 보상의 구조가 전면화 되며, 외려 실재를 억압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실재로서의 역사에 맞서 모순을 상상적, 상징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수렴한다. 이에 대해서는 프레드릭 제임슨, 『보이는 것의 날인』, 남인영 역, 한나래, 2003. 1부 1장을 참고하라.

35) 이런 관점에서 예술은 궁극적으로 역사; 실재의 모순(혹은 불완전함)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피동적이지만, 그 모순을 상징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동시에 능동적이다. 그러한 모순은 보편적이라는 점에서 집단적이고, 정치적이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36) 이에 대해서는 지주형의 훌륭한 정리를 참고하라.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2011. pp. 31-32, 60-69.

37) ‘지금-여기’ 이외에 역사, 과거, 미래 등의 범주를 고려하지 않는 담론적 시간성으로서의 ‘동시대성’이 그 자신의 조건으로 요청하는 시간감이란 바로 이와 같은 속도감일 것이다.

38) 지주형, 앞의 책, p.63.

39) 한편 일각에선 그러한 수직적 산업구조가 갖는 위계적 질서를 덮어 가리기 위해 ‘하청업체’를 ‘협력업체’로 부르자는 주장도 종종 제기 된다. 이는 노동자를 ‘근로자’로, 혹은 심미화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자 하는 시도의 연장에 있는 것으로, 가히 언어의 계급투쟁이라 할만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배상복, “’하청업체’가 아니라 ‘협력업체’”, 중앙일보, 2017년 8월 14일 01:00시 등록. 2019년 11월 4일 오후 10시 접속. https://c11.kr/bwz9

40) 지역 은행에서 빌린 돈을 타 지역; 타 국가로 이전 사용하는 행태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정해야한다는 주장은 상당부분 이러한 캐리 트레이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41) 지주형, 앞의 책, p.70 참고.

42) 장외 파생 상품(Over-the-counter(OTC) derivatives)시장의 규모는 1998년 6월 72조 1,340억 달러에서 2008년 6월 672조 1억달러로 10년간 9배 증가하였다(지주형, 앞의 책, 같은 곳). 한편 국제결제은행(BIS)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10주년이 되는 2018년엔 550조 달러 전후로 변동 폭을 유지했다. 혹자는 금융위기 이후로 세계 파생상품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2008년의 규모를 초과하여 700조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에 도달했던 2011년의 급격한 상승폭과 2013년의 다소 완만한 상승폭을 볼 때 파생상품시장의 영향력약화를 예단하긴 어렵다. 여기서 ‘장외’란 비표준적인 금융상품이, 중앙 집중화된 공식 주식/증권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주로 중개인을 통해) 거래 당사자들 간에 이뤄지는 상태를 일컫는다. BIS, OTC derivatives statistics at end-December 2018, 02 May 2019를 참고하라.

43) 자본시장감독국, “2018년 금융회사 장외파생상품 거래 현황”, 금융감독원, 2019. 4. 30.

44)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김덕민 역, 후마니타스, 2014. pp.42-46, 372. 한편 지주형은 미국의 연준, 재무부, 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초국적 자본가-엘리트들의 정보네트워크 등으로 그 작인을 제시하고 있다. 지주형, 앞의 책, pp.74-86를 참고하라.

45) 사이먼 데아킨, “신자유주의 이후의 노동법”, 『국제 노동 브리프』 11월호, 한국노동연구원, 2012. p.8.

46) 이강국,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한국경제”, 『경제논집』 53호(2), 2014. pp. 195-203.

47) 한편 이러한 착시는 많은 이론적 소요를 낳기도 한다. 예컨대 정동을 만들어내는 비물질노동을 통해 이미 노동 가치를 초과한 지평에서 생산이 공동으로 수행되는 국면에 이르렀고, 따라서 자본을 순수한 법이자 폭력 내지는 상부구조적 제약으로 간주할 것을 주장하는 네그리식 논의는, 고이윤을 위해 제 1세계로부터 개발도상국으로 제조업 생산을 이전하는 초국적 기업들의 분업과, 이를 가능케 하는 전 지구적 ‘가치사슬’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

48) 당시 미국에서 새로운 소비주체로 등장한 여성과 유색인종의 문제설정, 이들을 대학 내에서 수용하려는 정책적 전략 등 보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데리다를 위시한 당대의 프랑스 철학의 기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으로는 다음을 참고. 프랑수아 퀴세, 『루이비통이 된 푸코?』, 문강형준, 박소영, 유충현 역, 난장, 2012.

49) Jacques Derrida, Of Grammatology, translated by Gayatri Chakravorty Spivak.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Baltimore, 1997(1967). 여기서 이미 우리는 “텍스트의 외부는 없다”(p.158)라는 유명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50) 물론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주목은 바흐친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는 그것이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바르트 등에 의해 재주목 되고, 이어 한 세대를 풍미했던 문화적 우세종으로서 자리할 수 있게 되었던 실재의 조건이다.

51) 한편 생산미학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에 맞서 ‘작품’이 아니라 ‘텍스트’를 열린 방식으로 (혹은 창의적으로) 읽기를 지향하는 수용미학의 대두와,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국가와 그 지루함에 맞섰던 68 혁명의 자유주의적 지향은 동시간대에 다른 공간에서 벌어진, 그러나 하나의 실재에서 비롯된 반응으로 독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52) Fredric Jameson, “Periodizing the 60s”, Social Text, No. 9/10, 1984. p.193, 196, 197. 여기서 제임슨은 60년대 초에 미국의 시인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가 시적 언어를 통해 세계의 어떤 실체(thing)에 대한 상(image)과 관념을 다루는 데에서 나아가 시적 장 내부의 요소들을 대상 자체로서 상대하는 전환을 보여주고 있음을 논증하며, 이를 지시대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기호 논리의 예증으로 제시한다. 본 논문에서 그의 관심은 ‘텍스트’의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쇠퇴와 ‘이론’의 대두, 녹색혁명, 타자의 정치학의 대두, “세대 격차”라는 수사학 등을 60년대를 특징짓는 규정적 작인으로 조명하고, 이들을 자본주의적 물화 과정의 요소이자 필연적인 반응으로 위치 짓는 것이다.

53) 지시대상과 기의로부터 자유로운 기표의 연쇄는, 가치 실체를 담지하고 있는 제조업/서비스업 등의 실물로부터 자유로운 금융자본의 국면에 대한 환유에 가깝다. 한편 하비는 옳게도 “브레튼우즈협정과 미국달러의 금태환 가능성의 붕괴, 그리고 유동적 환율의 지구적 체계로의 전환”에 이은 “재현의 위기”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특징으로 제시하며,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경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화폐로 재현되는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최병두 역, 창비, 2017. pp.204-208.

 

* 크리틱-칼은 여러분의 자유로운 투고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언제나 기다립니다. 크리틱-칼에 한 번이라도 투고해주신 필자에게는 1년에 한 번 5만 원 안에서 책 선물을 드립니다. 투고 문의는 gocritical@gmail.com로 가능합니다.

* 크리틱-칼은 독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크리틱-칼 후원금은 홈페이지 호스팅 및 도메인 유지비 그리고 필진들에게 책 선물&소정의 원고료을 드리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우리은행: 1002-948-262845 예금주: 홍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