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한 발씩 명료하게 나아가는 미술창작 대가 제도를 기대하며

홍태림(미술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 민간위원)

“노순택 작가: 예술도 당대의 반영이자 표현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생산자의 노동 가치를 취미나 자발성, 선의 따위의 개인적 차원으로 묶어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미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하는 것만도 아니니까요. (…) 명색이 국공립미술관이란 곳마저 작가를 초대하면서 제작지원은 커녕 작가료(Artist fee) 한 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운송과 설치 기사님에게는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면서, 작가에겐 무료봉사를 요구하는 것이 우리 미술계의 현실입니다. (…) 비정규직도 아닌, 미정규직인 작가들의 노동을 너무 비참하지 않게끔 하는 것, 작가들의 ‘신성하고 순수한, 그래서 공짜여야 할 것 같은 노동을 땀내 나는 현실의 노동으로 바꿔 인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작가료를 지불한 ‘근거’가 없다는 따위의 헛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 입을 창피하게 생각해야 합니다.”1)

2019년 9월에 믹스라이스는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의 개관 50주년 기념전인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에 165일간 참여하게 되더라도 창작에 대한 존중의 의미이며 전시 참여에 대한 보상에 해당하는 작가비를 41,250원(하루 기준 250원) 밖에 받지 못하는 상황을 공론화 한 바 있다. 믹스라이스의 공론화 덕분에 현 미술창작 대가기준(이하 대가기준)에 대한 문제는 2019년 10월 21일에 열린 국감에서 이상헌 국회의원이 지적한 바 있으며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국현과 협의하여 개선안을 내놓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문체부는 국현과 협의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현 대가기준에 대한 미술인들의 요구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문체부는 미술현장에서 현 대가기준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전달했음에도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장소통소위는 믹스라이스의 토론회 제안과 더불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30비전 선포식’에서 제시된 “예술현장을 대표하는 합의제 기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는 것”이라는 문구를 되뇌며 현 대가기준에 대한 미술인의 공론이 다시 발화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그 장에서 도출된 쟁점들을 문체부에 전달하고자 한다.

좌) 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출처   우) 1회 미디어시티서울, 출처

국내에서 대가기준과 관련된 문제의 시발점을 더듬어보려면 적어도 24년 전인 1995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류병학 비평가의 회고2)에 따르면 1995년에 열린 첫 광주비엔날레는 외국작가에게 제작비를 지원한 반면, 국내 작가들에게는 제작비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일부 작가는 작품 운송비까지 작가가 부담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 2000년에 열린 《미디어시티 서울》은 국내외 작가 구분 없이 모두에게 작품 제작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동년에 열린 3회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제작비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가기준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어낼 동력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작가의 창작과 전시에 참여하기 위한 여러 행위들에 녹아있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발생하지 않았던 탓도 클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남겨두고 21세기의 문턱을 막 넘을 즈음인 2003년에는 구본주 작가가 새벽에 밤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뜻밖에도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노동에 대한 문제와 마주쳤다. 왜냐하면 피해보상을 놓고 벌어진 삼성화재와 유가족 사이의 법정공방에서 보험사 측이 구본주의 예술경력과 수입을 인정할 수 없어 무직자 기준으로 보험처리를 해야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3) 만약 창작활동에 내재한 노동과 관련된 충분한 논의와 그와 연계된 제도가 존재했다면 구본주 작가가 예술가라는 지위를 이토록 처참하게 부정당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본주 작가의 사고사에 대한 손배소는 결국 삼성화재가 유족과의 조정과정에서 예술인 경력 5∼9년 인정 및 정년 65살 기준으로 배상금을 지급이라는 원심판결을 따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4)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건 역시 예술가의 신분보장과 노동에 대한 충분한 논의 그리고 그에 따른 제도화를 끌어내진 못했다. 이로부터 4년이 지난 2007년에는 ‘FALU’라고 불리는 ‘한국미술인노동조합’(Fine Artist Labor Union)이 예술행위도 물질적인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임을 분명히 하고 창작이 노동으로 인정받아 미술가의 노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창립되었다.5) 그러나 예술노동에 대한 논의와 제도화가 이로부터 6년이 흐른 뒤에야 본격화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FALU’도 자신들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고 구본주 작가(1967~2003)
한국미술인노동조합결성기념전 도록 표지, 2007

‘FALU’가 출범한 이후 다시 정체기에 빠진 예술노동에 대한 논의와 제도화는 2013년부터 미술생산자모임의 활동 덕분에 다시 미술계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인 2014년에 4가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수면 위로 떠오른 예술노동은 큰 파동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는 제4회 공장미술제에 참여한 90여 명의 작가에게 주최 측이 작품 재생산 비용과 작가비를 지급하지 않은 문제를 비판한 글6)의 발표였고 두 번째는 CJ E&M이 기획하고 Story on 채널에서 방영한 ‘아트스타 코리아’가 작가들에게 출연료를 책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작가가 ‘아트스타 코리아’에서 제작한 작품의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박탈 및 독점한 사건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JTBC 뉴스가 김창겸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시각예술 관련 기관들이 작가들에게 부족한 재료비만 겨우 제공할 뿐 작가의 인건비를 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도한 것이고 네 번째는 제6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이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열린 것이다.

2013년 12월에 열린 미술생산자모임 공개토크 포스터, 출처
좌) ‘공개 토론회: 한국 미술계와 작가의 권익-공장미술제 사례와 함께’ 광경 우) 아트스타코리아 포스터
좌) JTBC 뉴스와 작가의 창작환경에 관하여 인터뷰 하는 김창겸 작가 우) 제6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이 ‘노동하는 예술가, 예술환경의 조건’ 광경

이러한 연쇄를 통해서 2013년 이후부터 다시 발화된 예술노동 논의는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예술은 노동이 아니다’이고 두 번째는 ‘예술은 노동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노동은 예술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입장이다.7) 물론, 이 세 가지 입장이 동시에 드러나는 와중에 어떤 것(들)이 일종의 공리로써 수렴될 수 있는 가를 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4년에 대통령 지시사항인 ‘현장 예술가들이 반복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정책과 대안을 개발할 것’이 반영된 ‘2014-2018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을 근거로 문체부가 미술분야 표준계약서와 창작대가 연구를 시작함으로써 적어도 제도의 영역에서는 ‘예술은 노동이다’와 ‘노동은 예술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입장이 정면에 나서게 된다.

이처럼 예술노동에 대한 논의가 연쇄된 가운데 생각보다 이른 시기인 2014년 겨울에 미술인의 창작활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 문제가 제도화의 길에 올랐으며 이제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안과 관련하여 항상 불안했던 것은 미술분야 표준계약서 및 대가기준 제도가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어느 순간 이 사안이 다각도의 무관심 속에서 크게 후퇴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한 불씨를 어떻게든 계속 유지한 덕분에 문재인 정부가 ‘예술인의 창조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 강화’를 내세웠으며 이와 결부되어 ‘2018-2022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의 추진과제로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에 대한 정당한 창작 대가 체계 및 표준계약서의 공공영역 도입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예술인 고용보험의 연계 강화가 도입될 수 있었다.8)

2018년 6월에 열렸던 ‘미술창작대가기준 도입을 위한 공개토론회’, 출처
2018년 11월 15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개최한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도입을 위한 공개토론회’, 출처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수립하고 연구와 공론화가 진행되는 과정에는 반복되는 문제도 많았다. 대가기준 제도는 2015부터 국내 국공립미술관과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전시, 비엔날레에서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2017년 중순까지도 특별한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7년 9월 초에 언론을 통해서 문체부가 대가기준 제도를 국·공립 미술관 5곳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이 갑자기 흘러나왔다. 대다수의 미술인은 이 기사를 보고 도대체 대가기준 제도가 어떤 기준과 규모로 돌아가는지에 대하여 물음표를 떠올리며 큰 불만을 드러냈다. 사실 본인은 이러한 문제가 예전부터 충분히 예상되었기에 2014년부터 문체부 측에 누구나 미술분야 표준계약서와 대가기준 제도 개발 상황을 볼 수 있고 의견도 개진할 수 있는 온라인 창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문체부 측은 관행대로 중간보고회 등을 통해서 예술인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겠다는 대답만을 되풀이했으며 이조차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9) 이처럼 창작대가 제도의 진행 과정은 사실상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정책의 당사자인 미술인을 배제해온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와중에 2018년 11월 15일에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도입을 위한 공개 토론회’가 열리며 10종의 미술분야 표준계약서와 대가기준안이 발표되었다. 이 중에서 특히 대가기준안에 대해서는 미술생산자모임이 작가비, 사례비의 산출식이 가진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으며 그중에는 현 대가안을 적용하여 작가가 구작으로 전시에 참여할 경우 작가비가 최대 5만 원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도 포함되었다.10) 그러나 문체부는 이러한 우려 섞인 의견들을 무시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토론회에 발단이 된 국현 50주년 전시의 작가비 41,250원이다.

현재 다수의 미술인들은 예술현장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문체부에 분노와 피로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동안 이 제도의 수립 과정에 참여한 여러 예술인들은 문체부에게 현실성 있는 예산확보, 사례비 지급과 관련한 경력 등급화 반대, 창작대가와 고용보험의 연계, 창작대가의 하한선 및 상한선 설정, 공공의 예술지원 사업에서의 사업 신청자 인건비 책정, 창작대가 제도 관리 및 갱신 전담기구 문제11) 등에 대한 의견을 분명히 전달했지만, 그럼에도 이 토론회를 통해서 그간의 논의를 다시 호출하고 보충하고자 한다. 그러니 문체부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미술현장의 엄중한 목소리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반영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19년 12월 19일에 예술가의 집에서 열리는 <미술창작 대가기준 개선 토론회> 발제문입니다.

 


1) 현지연, 「“개입하는 자, 질문의 형식을 고민하는 자, 예술가”: 노순택 작가 인터뷰」,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예술가로 살기』8호, 2011, pp.29-31.

2) 조관용, 임대식, 임민영, 김가영, 김민경, 심미선, 류병학, ‘라운드테이블 1부: 대한민국은 비엔날레 천국!’, <미술과 담론>, 2014, http://www.artnd.net/index.php?mid=board_VheX64&category=287&document_srl=404

3) 김준기, 「예술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물음」, 『미술세계』8월호, 2005, p.51. 참고

4) 노형석, ‘조각가 구본주씨 사고사 손배소 종결’, <한겨레>, 2005.10.31,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5763.html

5) 한국미술인노동조합결성기념전 도록, 2007.3.20~3.28 참고

6) 홍태림, ‘제4회 공장미술제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하여’, <크리틱-칼>, 2014, http://www.critic-al.org/?p=4135

7)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예술노동 뒤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문화과학: 예술노동』, 겨울호, 2015, pp.129-152 참고.

8) 미술로 행복한 삶: 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2022]』, 문화체육관광부, 2018.4, pp.7-9

9) 예를 들어 2015년 11월 25일에 열렸던 작가보수 제도 정책토론회에 대한 공지는 문체부(주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주관) 홈페이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아르코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작가보수제도 정책 토론회 공지가 행사가 열리기 이틀 전에 소리도 없이 올라가 있었다. 이 정책토론회의 부실함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행사장인 이음센터 입구와 1층 내부에는 정책토론회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하나도 없었고 야외에 있어야 할 입식 홍보판은 5층 토론장 입구에 있었다. 또한 정책토론회 주최 측은 미술인 보수지급제도에 대한 연구에 적극적이었던 미술생산자모임에게조차 토론회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결국 작가보수제도 정책토론회에는 관계자를 제외하면 10명 정도만이 참여한 행사가 되었다.

10) 미술생산자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2018.11.16, https://www.facebook.com/search/top/?q=%EB%AF%B8%EC%88%A0%EC%83%9D%EC%82%B0%EC%9E%90%EB%AA%A8%EC%9E%84&epa=SEARCH_BOX

11) 2015년까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인복지재단, 국립현대미술관 3곳이 전담기구로 연동되는 방안이 논의된 바 있으나 2016년 이후로는 미술진흥법 제정과 한국미술진흥재단 설립 문제로 미술분야 표준계약서 및 대가기준이 흘러 들어간 상황이다. 장르별 진흥법 제정과 재단의 설립이 타당한 것인가부터 시작하여 미술분야 표준계약서 및 대가기준 관리를 장르별로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문체부에서 장르를 초월하여 관리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