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택_베케트와 계단

Samuel Beckett. Photograph: taken from picture library

베케트의 소설에는 약간의 산수가, 혹은 약간의 수학이 필요한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부분은 단편 「추방자」에 나오는 계단 수 부분이다.

“현관 앞 계단은 높지 않았다. 예전에 그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 수가 얼마나 되는지 수없이 세어보았는데도 지금은 그 계단이 총 몇 개였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인도를 딛고 있는 발을 하나로 치고, 첫 번째 계단에 올려놓은 발을 둘 이렇게 쭉 세어가야 할지, 아니면 인도를 딛고 있는 발은 세지 말아야 할지 항상 헷갈렸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난 다음에도 같은 딜레마에 부딪혔다. 반대 방향으로도, 그러니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듯한데, 사정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는, 뭐가 맞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완전히 다른 세 가지 계단 수를 알아냈다. 내가 그 계단이 총 몇 개였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그 세 가지 계단 수 중 어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세 가지 계단 수 중, 기억에 확실히 남아 있는 단 하나의 계단 수만 다시 생각해낸 내가, 그 계단 수에서 나머지 두 가지 계단 수를 끌어낼 수 없다면, 오로지 그 계단 수만 기억해낸 셈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만일 내가 그 세 가지 계단 수 중 두 가지 계단 수를 기억해낸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머지 하나의 계단 수는 기억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그러므로 이 세 가지 계단 수를 다 알려면, 세 가지 계단 수 모두를 기억해내야만 한다.”¹

계단 수 문제는 계단의 개수를 어떻게 셀 것인가, 의 문제 혹은 계단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의 문제다. 그런데 베케트는 하나의 계단에 세 가지의 계단 수가 있다는 것은 잘 지적했는데, 이어지는 부분에서 오류를 범했다. 기초적인 산수를 못 해서 일어난 오류라는 점에서, 당황을 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오류로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게 했다.

디디고 있는 발부터 시작하느냐 마냐의 문제, 그리고 계단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층으로 도착한 발을 세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각각 +1, +0, +1, +0의 개념을 취한다. 그래서 하나의 계단에는 (+1, +1), (+1, +0), (+0, +1), (+0, +0) 의 네 가지의 경우의 수가 생기고, 이 네 가지의 경우의 수는 (+2), (+1), (+0) 의 세 가지 계단 수가 된다. 그런데 이어지는 부분에서, 베케트는 오류를 범한다. 하나의 계단 수만 기억해내면 다른 계단 수를 기억해낼 수 없다는 것은 맞다. 왜냐하면 그 계단 수가 (+2) 인지 (+1)인지 (+0) 인지 알 수 없어 나머지 계단 수를 추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계단 수를 기억해내도 다른 계단 수를 기억해낼 수 없다는 것은 틀리다. 만약 우리가 1씩만 차이나는 두 계단 수를 알고 있으면 그게 {(+2), (+1)} 의 쌍인지, {(+1),(+0)} 의 쌍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 다른 하나의 수를 추론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2가 차이나는 계단 수 두 개를 알고 있으면, 우리는 그 두 계단 수가 {(+2), (+0)}의 쌍임을 알 수 있고 나머지 계단 수를 확증할 수 있다. 계단 수의 세 가지는 (+2), (+1), (+0) 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케트가 왜 이런 오류를 범했는지 알고 싶다.

베케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정을 해보자. 만약 2가 차이 나는 계단 수 두 개를 기억해내면, 우리가 이미 계단 수 셋을 알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라서, 그 경우는 두 개의 계단 수를 기억해낸 경우를 이미 벗어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두 개의 계단 수를 알고 있을 때 나머지 하나를 기억해낼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2)와(+0)의 두 가지 계단 수를 기억해냈을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기억과 관련이 없는 지식의 차원에서이지만 어쨌든, 바로 나머지의 수가(+1)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두 개의 계단 수를 기억해낸 경우를 벗어나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시간의 순서가 물리적인 순서가 아니라 다른 기준에 따라 재배치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런 가정을 통해서 바라보는 관점을 불가능의 관점이라고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두 가지 계단 수를 알고 있을 때, 의 경우가 이미 우리가 두 가지 계단 수밖에 알 수 없을 때와 논리적으로 등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불가능의 관점이다. 그래서 위 인용문에 있는 베케트의 문장 “만일 내가 그 세 가지 계단 수 중 두 가지 계단 수를 기억해낸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머지 하나의 계단 수는 기억해낼 수 없을 것이다.”를이 관점에 따라 고쳐 쓰면, “만일 내가 그 세 가지 계단 수 중 두 가지 계단 수밖에 기억해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머지 하나의 계단 수는 기억해낼 수 없을 것이다.”가 된다.

한 가지 계단 수만 기억해냈을 때는 모든 경우에 바로 한 가지 계단 수밖에 기억해낼 수 없을 때와 같기 때문에 두 가지 계단 수를 알고 있을 때 생기는 오류, 혹은 분열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관점이라면, 세 가지 계단 수를 기억해냈을 때는 세 가지 계단 수를 모두 기억해냈을 때, 세 가지 계단 수까지 기억해냈을 때, 라고도 볼 수 있지만, 세 가지 계단 수밖에 기억해낼 수 없을 때, 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경우에도 오류, 혹은 분열이 없이 논리적으로 사실이다.

떠올릴 수 없는 것은 떠올릴 수 없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 말은 A는 A다 의 구조로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다. 떠올릴 수 없는 것은 떠올릴 수 없다. 떠올릴 수 없는 것은 하나도 떠올릴 수 없다니. 이 말은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떠올릴 수 있다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오히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일 뿐이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방점이 ‘모든’에 찍혀야 할 것 같다. 이 말은 ‘떠올릴 수 없는 것’의 성질을 보여주는 것 같은 말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모든’의 성질을 보여주는 말로 어느새 변모해 있는 말 같다. A는 A다 의 구조의 문장에서, A의 성질로 인해, A의 성질을 경유해서, ‘-는 -다’의 성질을 보여주게 된 것과 같다. 세 가지 계단 수를 알려면 세 가지 계단 수를 모두 기억해내야 한다는 말도 생각해보자. 이 말은 분명 지식의 획득과 관련된 말인데, 우리가 지식을 얻을 것이라는 말처럼은 왜 조금도 들리지 않고, 우리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처럼 들릴까. 우리의 지식이 우리의 무지를 기반해서만 있다는 말처럼 들릴까. 나는 이 말을 떠올리면 한쪽 주머니에서 빼내서 다른 쪽 주머니에 옮겨 넣는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우리의 기억이 우리의 망각에 우선 기반한다는, 그러니까, 망각이 기억보다 먼저라는 말로도 들린다. 이것이 아까 말한 물리적 시간이 아닌 다른 기준에 따른 시간의 재배치에서 그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떠올릴’ 수 없는 것은 ‘떠올릴’ 수 없다는 말”이 우리가 기억을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면, “떠올릴 수 ‘없는’ 것은 떠올릴 수 ‘없다’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다. 이 말 또한 사실이다. 베케트는 계단 수의 문제를 경유해서, 기억의 문제를 경유해서, 우리가 이런 사실에 기반해서 말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뿐이라고.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들과 관련해서는 이런 식으로 밖에는 말할 수 없다고. 나는 그래서, 베케트가 기억해낼 수 없는 것들과 관련해서 기억해낼 수 없다고 말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들과 관련해서 말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단지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단 수의 문제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나는 말할 수 없는 것들과 관련해서 베케트의 허무와 무기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느낀다.

베케트는 위에서 인용한 부분의 바로 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놈의 기억이라는 게 사람 잡네. 그러니까 당신들은 뭔가를, 그게 당신들한테 중요한 것일지라도, 생각하지 마세요. 아냐 생각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놈의 기억들을 기억해낼 수 있으니까. 실은 매일,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잠깐, 한동안, 넘을 수 없는 끈끈하고 질펀한 진흙 층이 그 기억들을 다시 덮어버릴 때까지, 그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게 순서니까요.”²

그러므로 나는 말할 수 없는 것들과 관련해서 베케트의 허무와 무기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느끼지만 그리고 또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과 관련해서는 베케트의 허무와 무기력을 느낀다.

 


1) 사무엘 베케트, 『첫사랑』, 전승화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55-56쪽.

2) 앞의 책,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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