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형_게임의 정치성을 생각하기: 미술 이야기도 함

글: 안준형

키워드: 게임, 재현, 가상,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 GTA, 콜 오브 듀티, 사이버펑크2077, 강정석, 김희천, 정여름, 블리자드 홍콩사태, 몰입, 능동성

게임 디자이너 ‘로버트 쿠르비츠’는 소설이 더이상 청년을 반항적이게 만들 힘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청년을 반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게임을 만든다고까지 주장한다.1) 그의 말처럼 요즘은 더이상 청년을 반항적이게 만들고, 독자의 의식을 비판적으로 고무시키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정치적 사태를 이끄는 문학을 상상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실은 문학뿐만이 아니라 고전적인 예술 분야 전체가 더이상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역할을 하는 데에 있어서 점점 그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여타의 정치적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예술 분야들을 대신해서 게임이 그 역할을 맡아줄 수 있을까? 아직은 게임의 비판적 역량에 대한 쿠르비츠의 신뢰가 다소 터무니없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제대로 된 비판적 문학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만큼 제대로 된 비판적 게임 역시나 쉽사리 떠올릴 순 없기 때문이다. 정말 어떤 정치적 분란을 일으킬만한 제대로 된 비판적 역량을 가진 게임이 가능할까? 아니면 아직은 이런 생각 자체가 이른 것일까?

최소한 명백한 것은 게임이 이미 많은 정치적 문제에 연루되고 있는 매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더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게임은 요즘 그 어떤 예술 분야들보다도, 예술 매체들보다도 더욱 정치적인 것이 되었을지 모른다. 게임이 야기하는 폭력성이란 화두는 비록 지지부진하고 속 터지는 말들만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오랜 기간 정치 행정적 논의들을 발생시켰으며, 또한 근래 몇 년간 한국의 동시대 미술계 안에서도 게임적 체험을 다루는 전시 및 작업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며, 게임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문제와 연루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국면들이 있겠지만, 우선 재현이라는 문제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 화두가 미술 전공자들에게는 특별히 익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게임적 재현과 그를 통해 구현된 특정한 가상공간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 다시 한번 신선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 게임 매체에서의 재현과 가상공간의 문제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는 출시 이전 공개된 몇 가지의 정보에 의하면 게임 내 공간(맵)이 되는 지구-게임 속 공간은 한계 용량 및 개발 노동력과 같은 기술적 문제에 의해 특정한 도시나 지역 단위로 제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본 게임의 배경은 무려 지구인데, 이는 클라우드 기술의 도입과 같은 근래 게임 개발의 기술적 변화에 의해 가능했다.-를 보다 사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현실의 지상을 스캔한 위성 데이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또한 게임 내 날씨를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현실의 실제 기상 데이터를 반영하기로 하였다.2) 그에 따라 구현된 게임의 공간은 전적으로 추상화된 데이터에 기반하여 실시간으로 현실과 연동된다. 게임의 시공간과 현실의 시공간은 리얼타임으로 동기화된다. 이같은 게임의 특정한 사실성에 관해 리뷰어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에서 우리 집 상공을 날아다닐 수 있으며, 내 방 창밖으로 실제로 관찰 할 수 있는 것과 게임의 풍경은 정확히 일치한다. 실생활에 폭풍이 닥치거나 어딘가에 비가 오는 경우, 그것을 시뮬레이션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실제 기상 상황을 반영하는 게임의 기능을 시험하는 도중 스튜디오는 지난 9월 바하마를 초토화시킨 괴물 허리케인 ‘도리안‘의 모습이 게임 속에서도 나타나는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흔히 그래픽이 뛰어나다는 표현은 게임의 사실적 재현 정도를 지시한다. 게임의 사실성이 뛰어날수록 플레이어(관객)의 시각적 환영은 짙게 조장되며, 게임에 더욱 빠져들고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의 재현 방식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실제 현실과의 실시간 동기화를 기반으로 한 특정한 재현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문제는 이같은 방식으로 특정하게 구현된 게임 속 가상공간이 단순히 게임에 재미난 사실적 몰입감을 더해주는 것뿐 아니라, 이를 초과하여 몇 가지의 정치적, 법적 문제들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게임에 대한 몇 번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몇 가지의 민감한 질문들이 던져진 바 있다.3) 논점을 대략 두 가지로 일별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실의 지상 데이터에 기반하여 게임 내의 가상공간을 구현하기에는 공개될 수 없는 현실의 기밀구역이 있으며, 예컨대 군사시설이나 비밀 외계인 연구시설이 그렇다. 또 이보다 더 민감한 사안은 따로 있는데, 국경과 영토분쟁에 관련된 지역들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 게임으로 하여금 정말이지 민감한 정치적 문제들을 상대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현실을 게임에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것인데, 게임 속 가상공간이 원활히 구현되려면 현실의 실제 정치적 문제는 적절히 억압되거나, 최소한 게임이 그러한 정치적 문제를 진지하게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는 앞서 제기된 두 가지의 정치적 문제들을 상대하기 위해 어떤 기술적, 정치적 방안을 구상했을까? 우선 게임 내에 구현되어선 안 될 기밀구역은 겸허히 게임 내에 구현하길 포기하기로 하였다. 달리 말해서 해당하는 공간만은 위성 데이터에 기반한 재현적 피드백을 받지 않는다. 현실과 연동되지 않은 채 생겨날 이 검은 공간은 대신 가상의 모델링으로 대체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현실의 데이터에 기반하여 가상공간을 구현하는 작업보다는 외려 전통적이고 진정으로 게임적인 공간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타의 게임들에서 기밀에 붙여진 현실의 제한 지역이 구현된 경우는 없지 않다.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여 방대한 규모의 맵과 자유도를 자랑하는 GTA시리즈의 ’산안드레스‘편 안에는 미국의 군사기밀지역이자,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 외계인 연구시설로 유명한 51구역이 부분적으로나마 재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에서처럼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상대하지는 않았으며, 순전히 가상적이고 게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영토분쟁 문제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떨까? 앞서 게임이 겸허히 기밀구역을 구현하길 포기했던 것처럼 게임 속 지구에서 영토분쟁 지역만을 역시나 가상의 모델링으로 대체하게 되었을까? 원리상 대체되어야 하는 기밀(구역)과는 다르게 분쟁 중인 영토는 가상적 대체와 공백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의 공간이 전지구의 국가와 영토를 사실적으로 반영토록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데, 특정한 공간의 공백이나 비 사실성은, 모든 것이 실제적인데 그곳만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어떤 정치적인 맥락을 불러일으킨다. 마찬가지로 게임 내에 분쟁 중인 영토 지역을 순전히 분쟁 중인 것으로 진솔하게 표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국경 문제에 있어서 분쟁국들은 대게 해당 영토가 분쟁 중인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차라리 게임이 탁월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특정한 국가에 영토를 할당하는 일은 가능할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직은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특기할 만한 점은 기밀구역 문제와 달리 영토분쟁 문제에 관해서는 스튜디오에서 뚜렷이 어떻게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여기서 최소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과도한 정치성이 게임 속 가상공간을 구현하는 작업, 게임이 현실을 재현하는 문제에 있어서 골칫거리가 된다는 점이다.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게임이 어떻게 현실의 정치적 문제들을 상대하는지 몇 가지의 방법들을 볼 수는 있었지만, 썩 훌륭한 사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게임 안에서 정치적 문제를 상대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우회되고 억압되는지를 보여준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예술 작품이 현실의 정치적 문제를 있는 그대로 상대하는 일도 드믈다는 점을 상기해두어야 할 것 같다. 예술 작품은 대체로 픽션에 기반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현실과 사실성을 상대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장르와 사회 참여적 형식의 예술 작업들 또한, 히토 슈타이얼이 지적한 것처럼 일말의 작가적 가공이 첨가되지 않고는 예술 작품은 창작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술은 픽션과 가상이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에 내기를 걸어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은 가상이라는 측면을 단순히 현실의 정치적 문제를 우회하는 수사적 수준으로 사용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이 현실의 과도한 정치성을 우회하기 위해 날아간 가상이라는 공간이 상정된 것만큼 천진난만한 비정치적 공간이 맞을까?

근래 게임적 체험을 다룬 몇 가지의 미술 작업들을 참조하는 일은 게임 자체가 발휘하기 어려운 정치성을 보충적으로 사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미술작가인 정여름은 그의 작업 「ραῖαι – A Stationed idea」(2019)에서 현실의 가상적 성격과 실재적 측면이 맺는 변증법적 관계에 관해서 탁월하게 사유한 바 있다. 앞서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이 마주쳤던 문제와 같이 「ραῖαι – A Stationed idea」(2019)은 위성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지도 서비스 등에서 공개되지 않는 기밀구역이 존재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동시에 그러한 기밀 공간을 우회적으로 비춰주는 매개체로서 게임인 포켓몬GO의 어떤 기능에 대해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증강현실 게임일터인 포켓몬GO에는 포켓스탑이라고 하는 일종의 거점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포켓스탑이란 게임의 도움말에 따르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주요 재화를 제공해주는 기능을 하며, 현실의 기념비나 랜드마크 등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게임 안에서 포켓스탑의 수요가 막대한 이유로 어련히 눈에 띄는 장소들 중 적당히 상징적인 지점에 설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더불어서 이것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의 이미지는 해당 포켓스탑의 대표 이미지가 되어 게임 내에 표시된다. 작가는 GPS조작 어플을 이용하여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도, 볼 수도 없는 장소인 용산의 미군 기지에 들어가 본다. 미군 기지 내에 설치되어 있는 포켓스탑의 이미지를 통하여 이 기밀구역을 어렴풋이나마 살펴본다. 군사기지가 가진 특정한 장소적 성격에 따라 이 안의 포켓스탑들은 군사적, 역사적 상징성이 강한 기물들을 비춰 보인다. 작가는 이를 계기로 용산미군기지 내부의 장소성을 타고 올라가 상징과 가상, 실재의 관계에 관해 생각한다.

 

게임 매체에서의 행위, 플레이어의 능동성과 몰입

게임과 다른 예술 매체들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게임은 작품의 서사가 진행되는 과정 안에서 많은 선택들을 플레이어(독자)가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조작하도록 이끈다. 아니, 게임은 플레이어들의 조작 행위 없이는 완전히 작동할 수 없는 매체이며, 이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행위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나 미술 작품을 보는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시 말해 게임은 다른 예술 매체들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참여자의 능동적 행위와 몰입을 요구한다. 예컨대 기존의 예술 장르들이 보는 이와 참여자들의 반성적 사유를 이끌기 위해 도입했던 작품과의 거리두기 혹은 알레고리와 같은 방법론은 게임이라는 매체에 적용되기 까다로우며, 사실 이같은 작품과의 거리두기의 불가능성이라는 요소가 게임이라는 매체의 어떤 정치적의 조건을 특징짓는 한편, 정치성의 계기를 제한하기도 한다. 게임 매체가 요구하는 이 특정한 능동성과 몰입은 (게임 매체에서의)서사와 재현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관된다. 게임은 다른 예술 매체들과 비교해서 유독 반사회적 영향에 대한 도덕적 시비가 자주 제기된다는 점을 우선 떠올려보자.4) 어쨌거나, 이는 같은 반사회적 서사를 가진 소설이나 영화와 비교해서 게임은 서사 속의 반사회적 행위를 참여자가 직접 조작해야만 한다는 매체적 조건과 긴밀하게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에서의 윤리, 게임에서 어린이는 죽일 수 없다.

흔히 게임에서 가능한 행동의 제한은 정치적이거나 도덕적 판단을 따르기보다는 순전히 기술적 구현이나 특정한 게임의 규칙 혹은 게임의 재미를 위한 편의성 정도의 문제로 여겨진다. 예컨대 살인과 테러, 총기 난사 등이 제약 없이 허용되는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게임에서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없으며, 오직 게임 내 행동의 제약은 순전히 게임 개발과 기술의 문제일 따름이지, 게임 속 가상공간에 어떤 도덕적 금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군의 반사회적 범죄 게임들에도 공통적인 도덕적 금기들이 더러 있는데, 가장 극적인 나타나는 사례 중 하나는 도저히 어린이들을 죽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GTA5

앞에서 잠깐 언급하기도 했던 범죄 게임 GTA 시리즈는 플레이어의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특징으로 게임사에서는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게임의 현실성과 자유도는 배경이 되는 현대의 미국을 더욱 실제처럼 구현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성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게임 내에 등장하는 인간들 즉, NPC들의 다양성인데, 이는 전통적으로 게임 개발의 중요한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더욱 생동감 있는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거니는 NPC들 각자의 개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게임의 플레이 타임 동안에 마주치게 될 NPC들 수백 수천 명의 모델링을 일일이 제작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때문에 게임 속 거리를 거니는 NPC들은 기묘하게도 몇몇 동일인들의 복제품들이거나 복장만 조금 다른 정도이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최신작품인 GTA5에서는 발전한 기술적 술수를 통해 최대한으로 다양해진 NPC들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여, 다양한 인종과 세대, 장애인들까지 무수히 많은 정체성을 가진 NPC들이 구현되어 있다. 그만큼 실제 현실과 같은 인간들(NPC)의 다양성은 현실성을 지향하는 게임의 개발에서 중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에 결코 구현되어 있지 않은 특정한 정체성 개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어린이들이다. 높은 자유도를 보장하는 장르의 특징상 GTA에 구현되어 있는 모든 NPC들은 플레이어가 끔찍하게 도륙을 내버릴 수가 있다. 어린이들이라고 예외일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새삼스럽게도 어린이들을 도륙내버리는 행위만큼은 본 게임에서 제한되었다. 애초에 어린이 NPC를 등장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설령 이것이 현실적인 거리의 재현을 제한하고 게임의 몰입감을 저해더라도 말이다. GTA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높은 자유도를 자랑하는 판타지 RPG 게임 시리즈인 ‘엘더스크롤’에서도 어린이는 죽일 수 없다. 시리즈의 최신작인 ‘스카이림’에는 비록 어린이 NPC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죽일 수는 없다. 아무리 플레이어가 어린이들에게 난도질을 해대는 등의 공격 행위를 하여도 어린이 NPC들은 데미지를 입지 않고 마치 홀로 다른 차원 속에 있는 양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 없이 멀뚱멀뚱 가만히 있는다. 이는 게임의 몰입감과 재미를 떨어뜨리는 명백한 비현실적 재현임에도 불구 게임은 그렇게 한다. 마치 게임에서 가장 현실적이지 못하고 비일관적인 것이 가장 깊이 현실에 대한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콜 오브 듀티, 노러시안

가장 유명한 전쟁 게임 시리즈 중 하나인 콜 오브 듀티는 게임계의 가장 유명한 (사회적)이슈메이커이기도 할 것이다. 그중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사회,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단연 모던워페어 2편의 미션 중 하나인 노 러시안에서 벌어졌다. 해당 미션은 플레이어가 테러리스트가 되어 공항 안의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내어야만 한다. 이는 새삼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테러리스트의 민간인을 향한 총기난사라는 서사 자체보다도 그것을 직접 플레이어가 행위 해야 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적은 특정한 반사회적 서사 자체가 게임 안에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플레이어들의 능동적 행위가 더불었을 때 비로소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서사 자체만 놓고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정교한 게임비평 따위는 필요 없이 기존의 서사 비평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적은 소설이나 영화에서의 서사와는 달리 특정하게 게임에서만 제한되는 서사가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서,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요구되는 플레이어의 능동성은 특정한 서사와 재현을 제한한다.

게임이 요구하는 특정한 성격의 능동성은 비단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정말이지 미묘한 상황을 도출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벌어진 하나의 웃기는 상황은 게임의 매체적 특징을 가늠해보기 위해서 언급해둘 가치가 있다.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

이제는 하나의 인터넷 밈이 돼버린 이 유명한 ’ⓧ키를 눌러서 조의를 표하십시오’라는 명령어는 게임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의 장면 중 하나로, 플레이어가 죽은 동료에게 조의를 표하는 장면이다. 도대체 이게 왜 문제가 됐을까? 여기서는 서사의 중대함을 따라가는 데에 있어서 플레이어의 행동이 너무 가볍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여기서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미술사를 한번 참조해보자. 오늘날 예술 작품들에서 관객, 참여자들의 능동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거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고전적인 예술 분야에서는 작품과 관객과의 분리가 원천적이었으며, 작품과 관객 사이의 거리는 예술이 발휘할 수 있는 비판의 원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예술작품 사이의 분리는 어느새 극복되어야 할 것이 되었으며, 이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서 마치 게임적 유희와 참여를 주요하게 참조한 듯한 관객참여형식의 예술 작업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대신에 관객의 참여와 능동성이 특권화되어 있는데, 마치 관객들의 참여 행위 자체가 어떤 윤리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래도 콜 오브 듀티의 제작자들도 게임 속 조문 행위에 플레이어들을 직접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면 더욱이 이 엄숙한 순간에 윤리적인 무게감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정말이지 정치적이지 않은 예술로 여겨진다. 블리자드 홍콩 사태는 뭐였을까?

게임의 정치성에 관해서 생각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게임이 정말이지 다른 무엇보다도 비정치적인 예술로 여겨지는 점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게임적 가상과 재현에 관한 문제에서 게임 속 가상세계는 순전히 현실과 유리된 가짜 세계라는 흔해빠진 생각에서부터, 많은 이들이 게임에서, 게임을 통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게임은 오직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며 그 이상의 어려운 이야기는 불필요하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이다. 이 같은 의식이 역설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최근 블리자드 홍콩사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보면 블리자드 홍콩사태는 근래 게임계의 제도권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적 제스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거지 같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우선 블리자드 홍콩사태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지난 10월 7일 게임 하스스톤 대회에 출전한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 ‘블리츠 청’ 선수는 인터뷰 도중 당시 격화되어 가던 홍콩 시위의 지지 구호 중 하나인 ‘광복홍콩 시대혁명’를 외쳤던 일로 인하여 게임사인 블리자드 측으로부터 명백히 과도할 정도의 중징계를 받았으며, 이 사건을 통해 촉발된 일련의 사태들을 블리자드 홍콩사태라고 가르킨다. 이는 이례적일 정도로 게이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 언론들로부터 거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비판의 논조는, 게임 시장의 무시할 수 없는 큰 손이 되어버린 중국 자본이 게임의 예술적 자율성을 억압한다고 하는 게임 생산 조건의 정치 경제적 분석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블리자드가 게임을 통해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인 정치적 올바름이나 자유에 대한 강조의 염치없는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식으로 협소하나마 게임비평의 영역에까지 이어졌다. 더욱 주목받아야 할 부분은 그러한 비판의 논조를 넘어 무수히 많은 게이머들이 블리자드에 대한 분노를 타고 홍콩 시위에 대한 강한 지지를 표현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이 사태에 관심을 두었던 일군의 게이머들은 블리자드 게임인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중국인 캐릭터인 메이를 홍콩 시위의 아이콘으로 전용한다거나 블리자드 게임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정말 게이머스러운 방식으로 나름의 정치적 표현을 시도했다. 이는 순간이나마 너무나 명예로운 일들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머라는 정체성은 힙한 시네필이나 멋진 독서가처럼 예술을 소비하는 많은 정체성들 중에서 유독 멋이 없고, 더욱이 사회적인 기능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은 대체로 반지성주의적이며 즉각적인 유희만을 추구하고, 깊이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명예로운 정치적 행위를 자신들의 독창적인 형식을 도출하면서까지 전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열기는 허무할 정도로 금방 소강되었다. 원인은 그들의 불만이 역시나 게임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게이머들은 블리츠 청 선수가 블리자드로부터 중징계 되었던 명목적인 계기 이전에도 이미 블리자드에 대한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실상 이 사태를 계기로 홍콩 시위를 향해 관대한 지지를 보낸 무수한 게이머들의 운동을 추동한 실제 불만의 핵심은 홍콩사태 자체가 아니라 따로 있었으며, 그 실제 불만이란 그들이 사랑하는 블리자드의 게임인 디아블로를 멋진 pc판이 아니라 대뜸 초라한 모바일로 출시할 예정임을 밝힌 것에 다름 아니었다.(이외에도 블리자드는 근래 게임 운영에 있어서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실제로 블리자드가 자사의 중대 소식을 전하는 연례행사인 블리즈컨에서 그들의 불만이 얼추 수습될 수 있도록 훌륭한 PC게임인 디아블로4를 발표하자 마술처럼 홍콩시위대에 대한 게이머들의 열띤 지지는 사그라지고, 홍콩사태는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벌써부터 게이머들에게는 어떤 밈적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게이머들의 불만이 아직 종식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러니까 아직은 게이머들이 홍콩 시위에 대한 열띤 지지를 표하고 있던 시점에서 한 게임웹진이 다음 블리즈컨을 예상하며 써내려간 내용은 게이머들에 대한 깊은 모욕으로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았을까?. “홍콩사태는 블리즈컨에 영향을 주긴 할테지만 새로운 게임은 여전히 ​​큰 환호를 받을 것이다: 블리자드의 홍콩 시위에 대한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정치적 이슈의 무게는 올해 블리즈컨에 스며들게 될테지만, 실제로 그리 무겁진 않을 것입니다. 블리자드의 언론 인터뷰는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울 것입니다. 중계방송의 채팅은 엄격하게 필터링 될 것입니다. 그리고 블리자드의 경영진은 무대에 올라와 감정적으로 호소할 것입니다. 그 말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대다수의 팬들은 디아블로4와 오버워치2의 예고편을 볼 때 홍콩에 대한 블리자드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게임을 살 수 있다고 결정할 것입니다. 회사로서 블리자드의 빛이 퇴색되었더라도, 새로운 게임 광고는 항상 승리할 것입니다.“5)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사이버펑크2077

사이버펑크2077, 기술의 유비쿼터스적 성격

게임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대체로 반지성주의적이며 즉각적인 유희만을 추구하고, 깊이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게임계 내부에서 게임의 정치적 역량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인 ‘사이버펑크2077’의 (원)작가 ‘마이크 폰드스미스’는 게임에 관한 인터뷰에서 대뜸 진중한 사회 비평을 시도한다. 그는 현대사회의 가장 인상적인 점이 기술의 유비쿼터스적 성질이며, 식료품이 더이상 싸지 않거나 주거주택이 싸지 않더라도 기술은 저렴하고 실제로 오늘날 휴대 전화가 없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민주화된 것이 특기할 만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멋진 사회비평은 그가 준비중인 게임 사이버펑크2077에 대한 코멘트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사이버펑크2077은 제목처럼 컴퓨터 기술에 의해 지배당하는 억압적인 미래 사회인 사이버펑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폰드스미스는 게임에 대한 언급을 덧붙여서 이렇게도 말한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처음에는 게임 안의 빛나는 무기와 사이버네틱 기술에 매료될 것이지만 점점 더 깊은 사회 경제적, 정치적 주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사이버펑크2077는 해킹, 기계적인 신체 개조 및 기타 최첨단 기술에 대한 매력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기업과 갱단이 지배하는 어둡고 편집증적인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기도 하다.”6)

—————————————————————-

사실 내가 투쟁과 저항, 해방을 좋아하는 좌파인 연유로 본 글에서의 정치의 의미를 불공평하게 비판적 의미에서만 전제하며 썼다. 그렇지만 좌파정치가 있는 만큼이나 우파정치도 있고 저항과 비판의 정치가 있는 만큼 억압와 지배의 정치도 있다. 당연하게도 게임의 정치성 자체를 놓고 보자면, 바람직하지 못한 지배와 억압의 정치와도 연류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물론 지배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당연한 것으로 현상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극히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쿠르비츠의 표현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수정되어야 했었던 건 아닐까? 청년을 반항적으로 만들 힘을 가진 게임은 아직 요원해 보이지만 청년을 순응적이게 만들 힘을 가진 게임은 이미 도래해있다고 말이다. 예컨대 게임이라는 매체가 발본적으로 요구하는 특징 중 하나인 (게임적) ‘몰입’과 ‘유희’는 일찍이 사회학자 서동진이 분석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시공의 훌륭한 훈육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또한 게임은 문화 연구자 마크 피셔가 좋지 못한 오늘날의 징후적인 정서 상태로 지적한 ‘우울증적 쾌락’을 곧바로 관통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마크 피셔는 자신의 책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동시대 자본주의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로서 ’우울증적 쾌락‘이라는 정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을 특징짓는 것은 무쾌락 상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상태는 쾌락을 얻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은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느끼지만 오직 쾌락원칙 너머에서만 이 누락된 불가사의한 향락에 접근할 수 있음을 감지하지는 못한다.” 오늘날 접근 가능한 실재의 부재로부터 초래되는 일종의 이 착란적 감각에 대한 마크 피셔의 비판적 묘사는 얼핏 들으면 게임중독에 빠져 밤새 게임이나 해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부모님들의 잔소리와 크게 다를 것 없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특별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울증적 쾌락은 오늘날 게임적 체험을 다루는 미술 작업들에서 집요하게 되풀이되는 증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서 근래 게임적 체험을 다루는 미술 작업들의 주요한 경향 중 하나는 우울증적 쾌락의 정서를 관통하는 조건들을 일종의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원천적인 특징들로서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의 미술작가로 강정석과 김희천은 언급해둘 만하다.

강정석의 작업 「GAME I: Speedrun Any % PB」(2016)은 작가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게임을 스스로 플레이하는 과정을 트위치나 아프리카TV와 같은 개인 스트리밍 형식을 빌려 상연한다. 여기서 우선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스트리밍 형식으로 제작한 영상을 여전히 게임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이다. 강정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 게임 플레이가 이전에 키보드, 마우스,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방식에서 인터넷 게임방송을 보는 것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정석은 게임의 새로운 관람 환경이라고 할 법한 것을 대뜸 게임 자체를 다시금 규정하는 조건의 연장선으로 삼는다. 우수한 연구자 정강산은 「GAME I: Speedrun Any % PB」에서 제시된 스트리밍 형식이 도출하는 속도감은 핵심적이라고 지적한다. 플레이어(관객)와 게임(작품) 사이의 즉각적인 소통과, 그에 따른 속도감은 스피드런 도전 방식으로 스스로의 게임을 신속히 클리어하면서 나타나는 속도에 대한 강조와 맞닿아 있다. 여기서 이 속도감의 정체가 매우 중요하다. 정강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노초 단위로 변화하는 주식시장 및 환율 그래프가 전 세계로 동시에 발신되고 동시에 적시 전자결제를 통해 다시 시장으로 피드백되는 과정의 속도감과 같으며, 그에 결정적으로 기대고 있다.“7) 여기서 내가 추가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같은 속도감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특정한 상태의 적응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게임적) 몰입감은 크게 도움이 된다. 이 몰입감이라는 상태는 스포츠 선수들, 특히나 레이싱 선수들과 같이 경기 도중 수많은 자극들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이들이 종종 경험하곤 하는 무아지경 상태이다. 그러나 이 게임적 몰입은 보다 특징적으로 정의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몰입을 특징짓는 것은 집중 상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상태는 집중을 통한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 즉각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마크 피셔는 우울증적 쾌락의 신체적인 결과이자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너무 자극받아 집중할 수 없는 문자 문화 이후의 새로운 육체와 퇴조하고 있는 훈육 체계의 제한과 집중 논리가 이루는 부조화다. 따분하다는 것은 문자메세지, 유튜브, 패스트푸드 등으로 구성된 소통의 감각-자극 매트릭스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것, 언제든 달콤한 만족감을 주는 부단한 흐름에서 차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소통 감각-자극의 매트릭스는 앞서 강정석이 통찰했던 게임적 세계와 포개어진다. 그는 게임적 체험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압도하여 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무너지고 실제 현실 자체가 게임처럼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게임적 몰입을 요구하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플레이어의 반성적인 거리감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 자체가 되어버린 게임, 소통의 감각-자극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는 일을 전제하지 않는다.

강정석과 마찬가지로 소통의 감각-자극 매트릭스를 작업의 중요한 전제로 삼는 미술작가 김희천 또한 속도감을 종종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작업 「썰매」(2016)는 서울의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단 여기서 서울은 앞선 강정석 통찰을 주석으로 삼듯, 유명한 레이싱 게임인 그란투리스모4에 등장하는 맵이자 게임적 공간으로서의 서울로 나타난다. 여기서도 게임은 앞서 이야기한 징후적인 속도감을 관통하는 매체로서 제시되며, 게임적-세계에 대한 특유의 적응 감각을 요구하는 것으로나 인용된다.

위에서 나는 플라이트시뮬레이터2020의 재현 문제를 언급하면서 미술 작업들이 게임 자체가 발휘하기 힘든 정치적 역량을 보충적으로 사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게임 자체가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조건 자체를 자양분으로 삼는 경우는 예외일 것이다. 여기서 게임적 체험을 다룬다는 미술 작업들은 일종의 자조적인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현재와 반성적 거리를 둘 수 없다는 이유로 현재의 좆됨 밖에는 다룰 수 없게 된 독특한 현재주의, 정강산이 “부유감에 대한 예찬이자 무의미의 축제”라고 일갈했던 제대로 망해버린 현재주의를 다룬다.

게임적 공간은 대체로 창백하고 닫힌 세계로 인용되는 것 같다. 이곳은 정치성이 소거된 도피적 가상공간이자 저해상도로 그려진 노스텔지어적 공간으로 묘사된다. 선명한 실재성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게임 개발의 기술적 발전은 점점 더 선명하고 실제 현실과 같은 재현을 그려낸다. 그렇지만 끝내 현실의 과도한 정치성은 골칫거리가 된다. 그래서 게임의 현실에 대한 재현 단계에서 특정한 수준은 게임 매체 내부적으로 또는 외부적으로 제한된다. 이같은 국면에서 게임 매체의 정치성을 찾기 위한 시도들 또한 잦아지고 있으며, 나는 오히려 그런 시도들에 내기를 걸고 싶다. 게임은 사회적으로도 예술적으로 오명을 많이 뒤집어썼다. 그것이 부분적으로 정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어떤 불능적인 게임적 체험이 현실에 대한 체험을 압도했다든가 게임이 사회적으로 폭력성을 유발한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를 본 글에선 조금 거리를 두었지만, 사실은 가끔 저 말들이 되게 멋지게 들리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물론 아직은 터무니없이 들리기도 하겠지만, 내일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게임을 통해 폭력적 역량을 훈련하고, 저항에 대한 기운을 고취시키자.

 


1) Disco Elysium’s writer wants to “lead the youth astray,” so he made a videogame <https://www.pcgamesn.com/no-truce-with-the-furies/disco-elysium-novel>

2) Microsoft Flight Simulator will use live, real-world data for in-game weather <https://www.rockpapershotgun.com/2019/10/25/microsoft-flight-simulator-will-use-live-real-world-data-for-in-game-weather/>

3) Microsoft Flight Simulator isn’t “legally problematic,” despite depicting the entire world <https://www.pcgamesn.com/microsoft-flight-simulator/world-map>

4) 미술 전공자로서 이같은 게임 매체의 영향력을 조금은 선망하게 된다.

5) Our biggest predictions for BlizzCon 2019 <https://www.pcgamer.com/blizzcon-2019-predictions/>

6) Mike Pondsmith: “If you want to get somebody to see your point of view, don’t preach“ <https://www.gamesindustry.biz/articles/2019-11-27-mike-pondsmith-on-reinventing-cyberpunk-and-the-power-of-fandom>

7) 정강산,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 크리틱-칼은 여러분의 자유로운 투고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언제나 기다립니다. 크리틱-칼에 한 번이라도 투고해주신 필자에게는 1년에 한 번 5만 원 안에서 책 선물을 드립니다. 투고 문의는 gocritical@gmail.com로 가능합니다.

* 크리틱-칼은 독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크리틱-칼 후원금은 홈페이지 호스팅 및 도메인 유지비 그리고 필진들에게 책 선물&소정의 원고료을 드리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우리은행: 1002-948-262845 예금주: 홍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