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균_이지부스트(easy-boost)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화가

작가 이현호에 대한 비평과 그의 2019년 개인전에 부치는 글

글: 김동균(작가)

그림 이지부스트 350v2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별명인 ‘yeezy’. 이 별칭에 예수를 뜻하는 ‘jesus’를 섞어 ‘yeezus’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던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전세계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뮤지션이자 셀러브리티이다.

2009년, 그는 나이키(nike)와 협업해 만든 이지 에어(yeezy air)라는 스니커즈 시리즈를 출시한다. 이 이름 아래 출시된 아이템들은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로얄티 지급 조건이나 디자인 참여 비중 등의 요소가 엇갈리면서 칸예 웨스트와 나이키의 재계약은 불발되고 만다.

이후 칸예 웨스트에게 손을 내밀어온 브랜드는 나이키의 라이벌이자 업계 2인자인 아디다스(adidas)였다. 천문학적인 계약금과 본인이 제시한 몇몇 조건의 긍정적 수용이라는 만족스러운 환경을 거머쥔 칸예 웨스트는 아디다스를 빌어 이지(yeezy)시리즈를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2015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이 이지부스트 350(yeezy boost 350)이다.

흔히들 신발의 밑창, 혹은 쿠션이라고 부르는 미드솔/아웃솔에 운동화제조사들은 모든 첨단의 기술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각각의 브랜드가 자신들이 개발한 이 보행/질주의 촉매제에 나름의 이름을 붙인다. 나이키는 에어, 리액트, 줌, 루나 같은 이름을, 아디다스는 바운스, 클라우드폼, 부스트 같은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생산품을 어필한다.

‘이지부스트’는 칸예 웨스트가 아디다스와 함께 만든 운동화 중 ‘부스트’쿠션을 사용한 것들을 이르는 명칭이다. 이것은 스티로폼을 연상시키는 벌집모양의 쫀쫀한 가공폴레우레탄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 이지 시리즈의 부스트 쿠션 신발이라는 뜻이다.

제품의 구분을 위해 이름 뒤에 숫자표기를 붙인다. 부스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냥 ‘이지’라고 부른다.

이지부스트를 신은 칸예 웨스트의 모습
칸예 웨스트의 과감한 시도와 실험, 그리고 음악적 정수를 담은 정규앨범

아디다스의 이지 시리즈는 yeezy boost350, yeezy boost350 v2, yeezy boost750, yeezy 950 boots, yeezy boost 700, yeezy boost 700 v2, yeezy 500 가 출시되어 있고, 소량만 발매하는 까닭에, 입고된 물량이 소진되는 것은 순식간이고, 이후 소위 ‘리셀(re-sell)’이라고 부르는 중고거래에서는 적게는 7, 8만원, 많게는 20, 30만원 씩 웃돈이 붙는다.

출시된 라인업 모두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고, 이 신발을 갖고자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거리에 널려 있다. 이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모델은 ‘350’라인이다. 최초 출시 모델인 ‘350’과 디테일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v2라는 표기를 붙인 차기 출시모델 ‘350 v2’ 모두 컬렉터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는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 신발을 구입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이식한 국가라면 어디에나 비슷하게 존재하는 중심번화가의 상점 앞 긴 줄에 합류해 발을 동동 구르며 인내심을 발휘한다.

우리의 젊은 작가, 현대의 화가 ‘h’도 이 대열에 합류해 있다. 저명한 사립대학교 예술학부에서 미술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모두 취득하고, 미술계의 쟁쟁한 공모에 잇따라 선정되며 존재를 알리고 창작의 기반을 마련한 그는, 대학에서의 수학과정을 마친 후 수년간 아동미술교육기관과 미술대학의 강사비, 그리고 작품판매비로 수입을 마련하고, 창작레지던시, 작가지원공모, 초대 단체전과 개인전 등을 이어오며 진득하니,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모든 것들이 간편하게, 편의적으로 부상하고 달아올랐다가 이내 거품이 꺼지듯 사그라드는 무심한 이지부스트(easy-boost)의 세계 속에서, 편리와 속됨(easy)이 신의 경지(easus)에 다다라 맹위를 떨치는 현실 속에서, 작가는 이지부스트를 구입하기 위한 지루하고 긴 줄에 기꺼이 동참하듯 자신의 지난한 창작을 견지한다.

소유욕을 자극하는 한정판 신발을 구입하기 위해 추운 겨울 아침 일찍 일어나 명동 한복판에서 칼바람에 노출된 채 수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그에겐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작품 한 점을 얻어 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많은 번거로움과 다난함의 중첩, 그 와중에도 잡힐 듯 말 듯 아리송해지고 마는 창작의 미궁을 오가길 영원처럼 반복하는 작가에게, 몇 시간의 대기는 그저 찰나에 불과하다.

그는 최근 작업공간을 제공받고, 작가로서의 이력과 역량에 유익한 나이테를 더해줄 명망 있는 어느 레지던시 공모에 아쉽게도 탈락했다.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godot)가 존재하는 세계 같다. 어떻게 해야 고도가 오는지, 언제 고도가 오는지, 고도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공모’라는 ‘기묘하고 아연한 기회의 장치’에 걸려있는 자물쇠를 어떻게 하면 성글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짓궂은 장치에는 매뉴얼도, 힌트도 없다. 그저 이 안으로 들어간 이들의 면면과 행보를 액자 속 그림을 보듯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방주 밖에 있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수단과 행위는 하잘 없이 소소하다. 하지만 그는 아주 운이 나쁜 편은 아니어서, 올해에도 한 건의 공모에 선정되었다. 이를 통해 그는 재료를 넉넉히 구입할 수 있었고, 개인전도 치러낼 수 있게 되었다.

이현호작가의 작업 1

국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자기 또래 작가들 혹은 미술대학의 학생들, 그리고 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초년작가들의 부러움이나 동경의 시선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현대의 화가는, 그 자신조차도 고개를 들다 못해 목이 뻐근해지게 만드는 수많은 성공한 작가들에게 위축되거나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창작을 위한 당장의 지원이나 기회에 목말라 있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고 추구하는 창작을 통해 양질의 작품들을 만들고, 값진 업적을 넉넉히 쌓아온 그이지만, 그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천천히, 꾸준히, 치열하게, 모호함 속에, 미지 속에, 성실하게, 복합다단하게, 구축-누적해야 할 창작의 일대기에 대해 한없이 매정한 이지부스트(easy-boost)의 세계다. 수많은 이들이 손쉽게 자신을 자극하고 각성시켜줄 얄팍한 매체와 물질에 자신을 이입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허위의 세계.

온갖 마약과, 유튜브와, 가짜뉴스와, 선동과, 쇼핑의 세계. 하드(hard)한 이 세상 속에 이지(easy)함을 원하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부스트(boost)들의 속성은 대개 자극적이고, 일회적이고, 중독성과 후유증이 크다. 그래서 그 굴레에 빠져들어 좀처럼 헤어 나오질 못한다.

그림을 그리는 현대의 화가 h는 정확히 이들의 대척점에 서있다. 현대의 화가는 하드한 이 세상 속에서 더욱 하드한 것들을 추구한다. 늘상 보고 지나치지만 누구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굴해 다단한 공정을 거친 표현언어로 자아내 사람들에게 다른 시선과 생각을 안겨주고 그들과 세계 사이에 부드러운 틈, 혹은 생소한 행간을 만든다.

수많은 이들이 자본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응집시킬 때, 재정적 가치를 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는 불확실한 개체의 구현을 위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강도 높은 노동을 지속한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현실적 생존과 번영을 신념으로 삼다가 또한 이 잣대가 일상 속에서 예측불가능한 범주 속에 무작위하게 발발하는 당혹스런 이벤트 속에 수도 없이 흔들리고 이양되어 변종적인 메타신념으로 응고되는 와중에도 화가는 무모하리만치 종교적인 아집과 믿음으로 자신이 현실 속에 기어코 길어 내놓고자 하는 어떤 형상을 짓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 고로 현대의 화가는 하드부스트(hard-boost)의 세계를 살아가며, 자신이 쫓는 미학의 편린을 하나라도 잡아채 끝끝내 현재에 붙들어내기 위한 순전히 필사적인 모색과 분투를 관철한다.

‘하드부스트의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의 화가와 ‘이지부스트의 세계’를 살아가는 불특정하지만 다수인 누구나가 서로 만나는 역설적인 욕망의 지점이 바로 ‘이지(yeezy)’다. 자신을 신이라 칭하며 가스펠까지 지어 부르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가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최정상의 스포츠브랜드와 협업해 만들어낸 이 창작물은 국가, 세대, 계층, 분야와 같은 온갖 경계를 넘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칸예 웨스트의 앨범 제목에서 비춰지듯 그의 별명엔 이제 ‘신, 혹은 신적인 어떤 것’이라는 의미가 추가되었다. 이렇듯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런 이들에게 삶을 지탱하는 부스트란 허탈하리만치 가벼운 것도, 번번이 좌절하게 만드는 어려운 것도 아닐 것이다. 혹은 그 모든 것일 것이다. 일탈을 범하면서까지 쉬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든, 현실이 어떻건 기어코 어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든, 전능함이 응집되어 농축된 산물에 열광하는 것은 동일하다. 이지부스트 운동화는 무엇에 관해서건 ‘전능하리만치 천문학적인’ 예술가와 기업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정예의 결과물이다. 초월적인 열광의 근저엔 이같은 배경이 있는 것 아닐까.

현대의 화가는 이 운동화를 향한 대열에 합류하며 손에 붓을 쥐지 않는 이들에 섞여 잠시 동체가 된다. 대개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행복에 대한 욕구가 그에게도 똑같이 존재한다. 이 행렬에 동참하는 것이 그에 대한 반증이다. 하지만 그는 많은 이들이 ‘안전’을 명목으로, ‘평범함’을 명목으로 택하는 길로부터는 벗어나 있다. 보편적인 욕구에 발을 걸치고 손가락을 빨지만 다른 이들이 걷는 길에 전적으로 귀속되진 않는다. 머뭇머뭇 쭈뼛쭈뼛 꿈뻑꿈뻑 거리며 그는 더듬더듬 좁고 낯선 길로 들어선다. 그 길은 불확실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걷다 보면 중간에, 혹은 끝에, 서푼 손길이나 발길질로 어딘가에 묻혀있던 빛나는 보석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행렬의 일원이 아닌 행렬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그 자신이 운동화를 기다렸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서게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이지부스트가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슈퍼스타가 될 수도 있는 이 시대에 그것은 그리 유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서 얘기하지 않았는가. 이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길이 다르면 다른 모양이 되고 다른 숫자가 붙는다. 모두가 ‘이지(yeezy)’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모두 각기 고유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대의 화가는 그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영광 중 ‘특별한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미지의 길을 걷는 것이다.

로얄사이즈의 검은색 이지부스트 v2를 거머쥐는데 성공한 우리의 현대의 화가 h는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실로 향한다. 장지 위를 수놓을 붓놀림이 한결 신명날 것 같다.

이현호작가의 작업 2

 

* 엮인 글 링크

1. 이지부스트(easy-boost)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화가

2. 배너(banner), 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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