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내_광장에 대한 단상: 뒷면에 대해 이야기하기

글: 박시내  

  조슈아 웡은 홍콩의 민주화에 대한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무지에 호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따금 1980년의 광주와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언급하곤 한다. (가끔 그 레파토리는 16년도 겨울의 촛불시위까지 나아간다) 더 구체적으로 그가 언급하는 것은 <1987>영화이다. 1987년의 6월 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홍콩 사람들이 이번 시위를 준비하는 데 있어 큰 영감을 주었다고 했다. 모니터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나는 그 인터뷰를 보고 또 한껏 시니컬해지게 되는데, 해당 사건에 대한 주입식 교육과 낭만화와 실제적 고통의 경험을 증언으로서 체득한 한국인으로서, 그 영화에서 덜어진 점과 더해진 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그가 본 것이 하나의 이미지이고 영화적 단면에 불과하다고 투덜댈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 점에서 그와 나는 또 같은 이미지적 경험을 공유한다. 나는 그를 인터뷰 지면으로, 트위터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고 그의 일부를 끊임없이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태원=로이터통신

  우리가 6월 항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사진 이미지이다. 당시의 로이터 사진 기자였던 정태원 기자가,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지는 이한열과 그를 부축하는 이종창을 담아낸 것이다. (이종창은 이한열과 안면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 <1987>에서는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을 보고 ‘한열아!’를 외치며 달려가지만) 당시의 자료는 생각보다 많아서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은 앞뒤의 상황을 담은 사진은 여러 개 존재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는 그것 하나다. 그것이 <1987>에서 일종의 히든카드로서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내세운 이유(아무도 아닌 인물로 묘사하지만 아무도 아닐 수가 없는 인물이라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는)이기도 할 거다.

  정태원 기자는 외신 기자였기 때문에 자신이 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다음날 석간 신문에서야 국내 지면에 실렸다. 그 이후, 그 하나의 이미지가 일으킨 반향에 대해선 모두가 알 것이다. 노동자 최병수는 그 이미지를 가슴에 달기 위해 판화로 제작했다. 그는 서울미술공동체의 청년 미술가들과 교유하고 있었고 미술가로 활동하기 위해서 여러 전시에 참여하며 판화의 기법을 학습하고 있었다.1) 연세대 ‘만화사랑’ 동아리원들은 이 판화를 보고 당시 운동권에서 사용하던 걸개그림으로 다시 제작하자고 작가에게 제안한다. 여러 학생들이 들러붙어 만든 걸개그림은 천에 그린 뒤 얼기설기 기워져 건물 외벽에 걸릴 용도의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졌고 이한열의 부상 이후부터 그의 장례식까지 내내 연세대 도서관 외벽에 걸려 있었다.

  이 이미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50주년을 기리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다시 한번 미술관 로비에 ‘상징적으로’ 소환된다. 걸개그림을 소위 ‘정치 미술’이라고 부르며 그 미적 가치를 폄하했던 미술사적 흐름이 무색하게도 미술관은 역사적 가치에 기대어, 또는 미술관의 개별적 당위에 의거하여 그 이미지를 너무 손쉽게, 새로운 공간으로 주저 없이 불러왔다. <광장>전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순환하는 지를 보여주면서, 이미지가 얼마나 쉽게 아무것도 아닌 이미지가 되는 지를 보여주는 선례로 남았다.

  가로 7.5m, 세로 10m의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과천관 1,2,3 층 전부를 관통하는 중앙홀에 세로로 길게 걸렸다. 그 앞에는 미술 작품 복원가가 복원한 이한열의 운동화가 진열장 안에 있고 옆으로는 박생광 작가의 <전봉준>이 가로로 길게 걸려 있다. 그리고 더 앞으로 나오면 차량 시위대를 연상시키는 택시 한 대까지 볼 수 있다. 한 기자는 이러한 전시 구성을 두고 ‘생활사 박물관인지 미술사 전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모호하고 이질적인 풍경’이라고 말했다.

  글쎄, 우리가 여기서 문제시 해야 할 지점이 미술관에는 생활사적 소품이 진열될 수 없다라는 명제일까? <광장>전의 가장 문제적인 점은, 걸개그림이라는 소품을 미술관에 걸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걸개그림을 미술관으로 불러온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광장>전에 등장하는 모든 ‘물건’들에 해당할 수 있는 서술이다. 김환기가 그린 청자 그림 앞에 실제의 청자를 가져다 둔다거나,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던 길 위의 물건들을 작업이라는 말할 수 있다는 명목 하나로 미술관에 들여온 것은 큐레토리얼적 기획이라기보다는 아이러니에 가깝다. <광장>전은 우리의 인식에 변동을 일으킨 특정한 사회사적 사건과 그 당시의 예술 작업과 소품들을 순차적으로 엮어 두지만 그 고리는 피상적이며 외형적인 반영에 불과하다. 역사와 미술관이 선택한 이미지의 연관성은 그 두 가지가 같은 시간대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걸개그림은 왜 다시 미술관에 걸려야 하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생활사 박물관과 미술관의 차이나 당위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폄하된 ‘정치’이후의 단어를 고민하는 ‘정치의 너머’이다. 예술은 본디부터 도래하지 않은 너머의 것들을 계속해서 상상하고 꿈꿀 수 있게 하는 원동력에 대한 것이었다. 걸개그림은 그 이미지가 프로파간다적 사실을 전달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공간과 시간 속에서 특정한 힘을 대중에게 발휘하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정치적이었으며, 동시에 예술이었다.

ⓒ 김석구, 경향신문

  우리가 재고해야 할 것은 걸개그림이 놓이는 방식과 그 위치이다.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광장에 있는 것과 미술관에 있는 위치의 차이는 어떠한 힘의 차이를 불러일으키는가? 걸개그림은 본디 불교의 불화에서 영향을 받아 일종의 제의적 맥락을 갖고 발전해온 장르 중 하나로, 초기엔 ‘전통의 발명’이라는 당위에서 출발한 고전적 형식을 차용하는 미술장르 중 하나였다. 처음엔 몇 가지 불교적 도상에 실제의 인물을 덧씌운 방식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차 그 내적 형식은 사라지고 벽에 거는 그림이라는 기능적 형식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능이라는 측면은 꽤 강력하여 어느 곳이든지 걸개그림이 등장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공간은 일종의 제의의 장소로 변모시켰다.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걸려있던 이한열의 장례식이 그러하다. 도서관의 외벽에 걸려 있는 걸개그림 밑으로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장례식의 중간에는 실제의 굿판이 벌어졌다. 나이든 목사의 울부짖음과 함께 비명처럼 끝나는 이 기이한 광경은 일종의 제의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군중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순간이, 아무 곳도, 아무 시간도 아닌 그저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 다음날이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갈 것임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섬광처럼 번뜩이는 제의의 장소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1987>의 에필로그에서 문익환 목사의 음성 뒤로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오버랩 한 것은 그 제의적 형태를 신파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한 일종의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한열이 죽었기 때문에 광장으로 나왔다. 따라서 장례식 때 펼쳐진 퍼포먼스의 일련은 생 자체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걸개그림은 그러한 광장의 순간에 존재했기에 정치적인 것이었고 힘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실제의 이한열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불가능의 구호를 가장 전면에 내세운 데에서도 그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장례식의 행렬 중에는 눈을 부릅뜬 일종의 ‘좀비’ 이한열의 그림이 가로로 긴 천에 그려져 함께 행진하고 있었다. 프랑스 공산당 당원이었던 가브리엘 페리가 나치에 의해 총살된 뒤, 루이 아라공이 그를 자유의 화신으로 만들기 위해 쓴 시2)에서 “가브리엘 페리는 살해당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진술하는 것과, “이한열을 살려내라”라는 불가능의 맹목적 울부짖음 사이에는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너무도 구태하지만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그 소설은 광장의 이상과 고결함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광장, 즉 광장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광장은 자유라는 공간성을 제공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끊임없이 억압하고 배반하는 공간이다. 그 곳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담지한다고 말할 수 있는 동시에, 알지 못하는 거대한 힘으로부터 끊임없이 통제 당하는 장소이다. <광장>전은 ‘미술관은 광장이 될 수 있다’라는 불가능한 명제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됐다. 미술관은 광장이 될 수 없다. 광장은 지속되는 공간이 아니라 순간에 대한 장소일 뿐이며, 혁명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기획을 둘러싼 권력과 현실 정치에 대한 시각은 그 불가능성을 더 전면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한열의 운동화를 이어 붙여 다시 실제의 운동화처럼 보이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그때 그 운동화가 아니듯이, 걸개그림의 정치성을 복원하는 것은 현재의 미술관이라는 공간 위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술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가? 그럼에도 미술관은 여전히 가능성에 대해 제시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죽음으로 돌아가는 장소에서 힘은 순간적으로 밖에 발휘될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잠들어 있기에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걸개그림의 뒷면을 본 적이 있는가? <광장>전은 매우 드물게도 그 경험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의 장례식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전시에서 걸개그림의 뒷면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기획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필연적인 결과였다. 과천관의 중앙홀의 천장에서 밑으로 떨어지도록 걸개그림을 걸어두었기 때문에, 전시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의 뒷면을 자연스레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걸개그림의 뒷면을 아주 유심히 볼 수 있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뒷면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그렸을 붓 자국을 따라 신문지들이 그대로 붙어있다. 넓은 공간에 신문지를 깔아 천을 펼친 뒤에 다 같이 그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완성한 뒤 이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함께 따라온 것들일 테다. 당시의 긴박함과 여유 없음을 짐작할 수 있듯, 붓이 닿은 모든 곳마다 신문지가 다 붙어 있어 그것은 뒷면 자체로도 이한열과 이종창의 형상을 만든다. 조각조각 떨어져 나온 신문지들은 그 시대의 것으로, 붓의 움직임과 그 붓을 움직이는 팔들의 움직임, 그리고 그 팔을 움직이게 하는 울부짖음과 분노와 열망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지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을 마주하게 되어서야 그것을 그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어떤 신문의 이미지는 하루만 지나면 유통을 멈추고 무쓸모한 조각들이 되지만, 어떤 신문지들은 어느 어두운 동아리 방에서 울음을 삼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발판이 된다. 그 무쓸모한 이미지들은 갈기갈기 조각난 후 우연히 모두 다시 만나, 이한열과 이종창을 뒷모습을 그대로 짐작할 수 있게끔 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되었다. 그 걸개그림의 뒷면은 최태원이 찍은 한 장의 사진만큼, 그 어두운 순간과 도래할 미래에 대한 상상을 동시에 담아낸 이미지였다.

  이미지는 너무도 쉽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며 때때로 그 원동력을 모두 잃은 것처럼 보인다. 범람하는 미디어와 SNS는 그것의 무게를 더 가벼이 만들었고 더 이상 우리는 그로부터 어떠한 감동도 받지 못한다고 비관에 빠지기도 쉽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것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제공한다. 우리를 다시 도모하게 만들고, 계획하게 만들고, 소리치도록 만든다. 이미지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에는 항상 뒷면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단면이 아니라 언제나 양면이다. 그러니 우리는 불가능의 진단 위에서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서 계속 말해야 한다.

 

*참고한 것들

조슈아웡 인터뷰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313

정태원 기자 인터뷰 – https://www.yna.co.kr/view/AKR20170606059700004

이종창씨 인터뷰 – https://www.yna.co.kr/view/AKR20170604063400004

문익환 목사의 이한열 조사 – https://www.youtube.com/watch?v=XAq5GkQQwrk

<1987> 영화의 엔딩 – https://www.youtube.com/watch?v=GIvyqhywCvg

서유리, 1980년대의 걸개그림 연구 – 수행성, 장소, 주체의 변이, 한국근현대미술사학, 37, 135-168.


1) 서유리, 1980년대의 걸개그림 연구-수행성, 장소, 주체의 변이, p.154.

2) https://web.archive.org/web/20051016192015/http://partisans.ifrance.com/partisans/per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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