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호_영화 기생충 리뷰: 침팬지를 그린거죠? 아뇨 자화상이에요.

김은호

이제 와서 다시 영화 기생충에 대해 글을 쓰려는 이유는 오히려 필자가 이 영화를 관람했던 때보다 지금 더 이 영화에 대한 말들이 많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다시 비평하기에 앞서 참고해야 할 여러 요소들이 있다. 이 영화가 최근에 각종 영화제에서 이룬 쾌거와 국내 코로나 사태를 비유적으로 풍자하는 현상이 그것에 속하겠지만, 필자는 최대한 그것들을 배제한 채 이 영화의 서사 자체만 놓고 비평을 다시 해 보겠다. 상이야 받으면 좋은 거고 심사위원의 속내를 정확히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모르는 것에 대해서 추측성 비판 혹은 비난은 자제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기생충을 얼마 전에 다시 보았다. 딱히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니고 IPTV에서 할인을 하길래 다시 보았는데 이 영화에서 서사 전개상 가장 도드라지는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두 가지는 단순한 플롯과 작위적인 상징물이다. 먼저 첫 번째 결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자가 삼는 문제의식은 ‘관객이 기대하는 내용을 예상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부잣집의 영어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 주인공에게 미술 선생이 필요하다는 아이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주인공의 여동생이 과외 선생으로 들어갈 것을 예상한다. 그리고 그 작전이 성공하는 순간 반지하 집 식구들이 모두 다 그 부잣집의 하인들로 고용될 것을 예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언급한 급전과 발견 없이 오직 주인공의 행위만이 전개되는 단순한 플롯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1)

위 논의를 지속해 나가보자. 부잣집 식구들이 캠핑을 가는 날 반지하 식구들은 이때다 하고 찬장의 술을 전부 꺼내 마시며 곤드레만드레 취한다. 이 장면을 두고 관객들을 다음에 올 상황이 집주인 식구들이 예정보다 일찍 집에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집주인 가족들이 캠핑을 간 것은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인디언 놀이에 푹 빠진 아들을 위했기 때문이다. 반지하 식구들이 난관에 부딪혀도 관객들은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야기가 전개되기 위해서라면 이 가족들은 어찌 되었든 난관에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도가 뻔한 시퀀스의 문제는 둘이다. 세부 서사가 내포하고 있는 주제가 없고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첫째로 세부 주제가 없다는 의미는 해당 시퀀스를 빼도 전체 서사 진행에 있어서는 흔들림이 없다. 앞서 지적한 모티프는 가족들이 난관에 봉착한다는 이야기와 해고된 가정부가 찾아오며 집을 둘러싸고 있는 새로운 이야기, 즉 지하실의 존재와 그것을 둘러 싼 갈등이 순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사실 이 영화가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은 부잣집의 지하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즉 영화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는 하이라이트가 해당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굳이 반지하 가족들이 술을 마시며 난장판을 저지르다가 몰래 탈출하는 이야기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다. 둘째로 이것이 작위적이라는 의미는 앞서 언급한 단순히 긴박한 분위기를 연출할 목적으로 캐릭터들의 특성을 붕괴시켰다는 것이다. 반지하 식구들은 부잣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합심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기민한 이들이지만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도 주인네 식구들이 돌아올 것을 조금도 우려하지 않는다.

이제 상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징이라는 단어를 배우의 입을 빌려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자신을 과외 선생으로 소개시켜준 친구에게 받은 수석을 보고 송강호는 상징적인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모님에게 미술 선생을 소개 시켜주기 전 아이의 낙서를 보고 주인공은 상징적인 그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언급된 대표적인 두 상징물들인 수석과 그림은 실제로 영화 안에서 의미를 담고 있었어도 문제고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어도 문제다. 첫째로 만약 이 상징들이 그저 관객들에게 해석하려는 능동적인 태도를 요구하기 위해 사용한 요소들이었다면 이는 주제와 상관없을뿐더러 지나치게 노골적인 언급으로 맥거핀으로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둘째로 수석과 그림이 실제로 의미를 담고 있는 은유적 상징물이라 할지라도 이것들은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란 ‘알려진 것들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것을 대체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려진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필자가 찾아본 결과 봉준호 감독은 수석과 그림을 은유적인 상징물로 여겼다고 했다. 수석과 인디언을 박제로 비유하며 죽어있는 것들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2)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은유를 빗대어 보면 봉준호의 은유는 사실 자의적인 해석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이 상징들을 해석하지 않으려고 해도 서사 이해에 어려움이 없고 영화 관람 후에 집에 돌아가 상징물들의 의미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영화의 감동이 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있으나 마나 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억압자에 해당하는 이들이 결국에는 굴종을 통해서 해방감을 느낀다는 현재 정치적 올바름의 맥락 아래 통용되는 경향들과 전혀 상반되는 이야기를 담은 점에서 이 영화는 최근 타 영화들과 다른 특징(루이스 부뉴엘의 비리디아나와 이야기가 매우 흡사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차치해두겠다.)을 갖고 또 많은 흥미를 사는 지점이다. 다만 필자가 아쉬운 부분은 이러한 논쟁적인 주장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거대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고 또 아직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영화 속 상류층의 허영심을 보여주는 짜파구리가 이제는 누구나 손쉽고 저렴하게 상류층의 기분을 낼 수 있는 음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존재 자체가 참 상징적이다.

 


1)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10장
2) 문화 일보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기생충 속 상징과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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