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주_‘먹방(Mukbang)’에서 충동과 욕망의 문제

이미지 출처: Kane’s Donuts

이민주

먹을 것은 늘 가장 큰 화두다. ‘맛집’따라 정해지는 행선지와 요리법, 먹는 방법 등 식사에 관한 예절로 인간의 행동양식이 규격화되는 정황을 보면, 인간에게 음식은 단지 영양 공급의 수단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가치, 혹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굶주리고 있다는 건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며, 인간의 경제적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밥 먹기 위해 돈을 번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다. 밥으로 ‘밥을 벌어먹는’ 시장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먹방(Mukbang)’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본 글은 정신분석을 배경으로 ‘먹방’ 이미지의 문제와 ‘먹방’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충동(drive)’과 ‘욕망(desire)’의 문제를 이해하고자 한다.

먹방은 분명히 문제적이다. 음식이 욕망의 대상이 되기보다 충동의 대상으로 섭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문제를 헤아리기에 앞서 이 컨텐츠를 둘러싼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먹방 문화는 인터넷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2009년부터 관심을 끌기 시작했으며, 해외에서도 ‘Mukbang’이라는 말이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여전하다. 남이 먹는 모습을 왜 보고 앉아 있느냐-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혼밥’을 하면서 함께 식사하는 기분을 내고 싶을 때, 혹은 다이어트 중 대리만족을 위해서 등 각기 다른 이유로 답한다. 하지만 이러한 답변에 천착하는 것은 피상적인 차원에서 먹방의 문제를 이해하게 한다.

‘한끼줍쇼’, ‘맛있는 녀석들’ 각종 예능부터 ‘ASMR’, ‘먹방 브이로그’가 난무하는 유투브(Youtube)의 컨텐츠까지 수없이 증식하는 먹는 방송 컨텐츠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문화연구의 영역에서도 부지런히 연구되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프로그램과 먹는 모습에 대한 시각적 포화에 따라 다양한 논란 또한 파생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 보건복지부의 ‘국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2018-2022)’ 발표를 들 수 있다. ‘먹방 규제’에 대한 것이다. 먹방 가이드라인 제정과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먹방을 ‘폭식 조장 미디어’로 규정한 방침을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지나친 정부의 규제와 개입이라고 반발하거나, ‘먹방’으로 다이어트를 했다며 먹방 규제가 비만율을 감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밴쯔’, ‘입짧은 햇님’ 등 먹방 크리에이터들은 방송에서 자신의 방송을 보고 위로받는다는 애청자의 메시지 내용을 직접 공개하며, 먹방의 순기능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애청자가 말하는 ‘위로’의 근원이 음식을 섭취하는 이미지에 있을까? ‘입짧은 햇님’ 같은 유투버는 (물론 대식가이긴 하지만) 끼니를 챙기며 삶을 나누자는 식의 컨셉을 표방하며 ‘대화형’ 방송을 진행한다. 저들이 말하는 ‘위로’는 나 대신 먹어주는 방송인 때문이 아니라, 영상 속의 식사를 매개로 함께 소통하는 시간에 기인할 것이다. 1인 가구 증가로 혼밥이 편리해진 시대에 먹방 컨텐츠의 양적 증식은 자연스러운 환경 변화처럼 보인다. 먹방과 혼밥의 관계, 이에 대한 근원적인 사회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개입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먹방 컨텐츠를 말할 수 있겠으나, 이는 다른 지면을 할애하기로 하자. 이 글에서는 먹는 모습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방식으로 충동과 욕망의 문제를 건드리는지 살피기로 한다.

먹방의 이미지와 칼로리

유투브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예측할 수 없는 유투브의 알고리듬은 한 개인의 관심사를 종합하고 안내한다. ‘먹방’을 두어 번 검색한 이후로 각양각색의 컨텐츠가 피드를 채웠다. 마치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음식이 냄새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처럼 알고리듬의 추천은 음식으로 가득 메운 섬네일(Thumbnail)이 이미지로 접속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습게도, 피드는 ‘ASMR 먹방’부터 ‘다이어트 브이로그’까지 섭식과 절식을 오가는 사람들의 영상으로 구성된다. 물론 그중에서는 ‘ASMR’ 영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다. 과학적이거나 연구로서 검증된 근거는 미비하나 이는 심리 안정과 집중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 등 환경소음으로 쾌락적 반응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런 사전적 정의를 보고나니 ‘먹방ASMR’이라는 조어가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이는 먹방의 포르노적인 성격과 ASMR이라는 심리 안정적 감각 경험의 조합이 모순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먹방이 포르노의 일종이라는 표현에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Mukbang’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로 자리 잡기 전에 ‘Food Porn’이라는 명칭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조어의 쓰임새보다 그것을 포르노라고 묘사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는 온라인에서 그들 자신을 전시하는 모습 때문이다. ‘먹방 크리에이터(라고 불리는 방송인)’는 어떻게 음식을 섭취하는가? ‘먹방ASMR’이 보는 이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주장은 반박의 여지가 다분하다.

2014년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시작해 현재 유투브 구독자 383만 명을 거느린 먹방 유투버 ‘떵개떵’의 영상을 묘사해보자. 전경에 맵고 달고 짜고 신 각종 음식이 스펙타클 하게 차려져 있고 인물은 배경처럼 자리한다. 이 주객전도의 장면에서 그는 경건한 자세로 음식을 먹으며 만족스러운 듯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딱 봐도 성인 남성의 하루 권장 칼로리를 훌쩍 넘는 음식을 제한 없이 입 구멍에 쑤셔 넣는다. 약 15분에서 20분 사이를 웃도는 영상이 끝나갈 무렵의 인물은 맛의 음미를 애초에 포기한 듯 영상의 화면에서 음식을 제거하기 위해 바삐 입을 움직인다. 덩치가 큰 남성이기에 이 많은 음식의 양을 감당할 수 있는 걸까? 여성 먹방 유투버 ‘복희’와 ‘쯔양’을 보면 체구와 음식량의 관계는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먹방의 방법론(?) 중에서 ASMR을 주력으로 하는 ‘복희’는, ‘한입만’ 컨텐츠로 유명세를 얻은 인물로 한입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의심될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목구멍으로 쑤셔 넣는다. 쩍 벌린 입과 부푼 침샘은 몸의 기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음식을 마중한다. 그렇게 먹방 이미지는 질척한 욕망을 개시한다. ASMR 영상 특유의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음식과 음식 앞에 선 인물의 관계는 어떤 베일도 걸치지 못한 채 전시된다. 대상(음식)과 일말의 거리도 확보하지 못한 채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은 분명히 포르노적이다. 물론 먹방은 시각적 포만감을 제공한다. 유투버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시청자는 그에게 만족을 요구하고 이를 대리 실현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포르노적인 이미지의 소화 문제다. 영상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먹는 모습만 방송되고 비워진 음식과 아쉬운 듯한 인물의 얼굴로 마무리된다. 빈틈없이 팽팽해졌을 섭취자의 위는 영상의 끝과 함께 그대로 정지되며 운동하지 않는다. 편집과 지속 시간 외 장면의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영상으로 인해 ‘먹토(먹고 토하기)’와 ‘먹뱉(먹고 뱉기)’ 논란의 중심에 선 유투버의 수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소화불량이 과연 음식을 섭취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 시청자는 고칼로리의 이미지로 얻은 시각적 포만감을 어떻게 소화하는가? 소화의 문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소화되지 못한 채 끝나버린 영상의 이미지가 보는 자의 불안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너의 충동, 나의 욕망

인간은 모두 어떤 유형의 욕망을 가지고 산다. 특히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이 상징계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타자와 주체가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믿는 대상(a)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이로써 타자와 분리된 주체는 결핍을 안고 살아가며 그 결여를 채우기 위해 욕망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욕망을 수렴시키는데 그 기준이 바로 ‘남근(Phallus)’이다. 욕망은 (상징적)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런 이유로 우리는 어린 시절 유형화된 욕망을 끊임없이 변주하며 산다.

정신분석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욕망의 유형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전자는 쾌락의 위치를 표지하는 것으로, 리비도(Libido)가 집중되는 곳을 기억한다. 말하자면 충동은 부모와의 관계에 의해 특정한 기관에 집중되는데 그걸 기억해 반복시키는 것이 쾌락원칙이라 정리할 수 있다. 반면 후자는 쾌락원칙의 작용에 관여하는 것으로 쾌를 넘어서는 불쾌의 감각을 지연시키고 존재가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탈을 막아준다. 의식은 흥분의 과잉으로 유발된 불쾌를 피해 쾌를 일정 상태로 유지하는 것에 주력한다. 그러나 마치 음식과 사투를 벌이듯이 위장의 부피보다 비대해 보이는 음식더미를 해치우는 일부 먹방 유투버의 식이 장면은, 쾌락의 항상성을 조절하기에 실패한 것처럼, 여전히 유아기 시절의 구강충동에 휩싸인 채 상실된 대상을 끊임없이 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욕망과 불안은 어떤 관계를 가지며 먹방 이미지는 우리의 불안에 어떻게 가담하는가?

임상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불안이라는 정동은,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 현상이면서 모든 심리 질환에 공통적인 병리 현상이기도 하다. 이 문제적인 불안을 라캉(Jacques Lacan)은 여타의 감정과 대별하여 특정한 정동으로 분류한다. 분노, 공포, 기쁨 등의 감정이 언어의 체계에서 하나의 시니피앙으로서 표상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라면, 불안은 실재의 영역에서 상징화에 저항하는 정동이다. 타자의 ‘알 수 없는’ 욕망, 그것에 대한 무지로부터 주체는 불안에 휩싸인다. 물론 이 정동을 마냥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불안이 마치 전조 현상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증상 혹은 위험에 대해 알림(또는 경고)의 역할을 자처하며, 알 수 없는 타자 앞에서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어내고자 욕망의 주체로 거듭나는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방 이미지가 풍기는 불안이 무엇을 경고하는지, 무엇에 관해 알리려 하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음식 위에 음식이 놓여있는 전경, 숟가락과 젓가락 대신 손과 집게를 사용하는 상황. 이곳에는 섭취에 방해가 될 만한 식기와 도구는 불필요하며, 어떤 제동도 억압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떻게 먹는지보다 무엇을, 그리고 얼마나 먹을지에 집중된 먹방의 이미지는 먹는 사람을 충동의 대상으로 삼게끔 한다. 시청자는 충동에 휩싸인 이들의 이미지에 노출되며 흥분을 쌓는다. 억압에 실패한 충동의 몸이 상실된 대상 자체만을 탐닉하고, 주체는 쾌락원칙에 의해 표지된 주이상스(Jouissance)의 노예가 된다. 그렇게 충동의 주체는 불안에 휩싸인다. 물론 욕망의 주체 또한 불안을 값으로 치러야만 한다. 하지만 전자가 불안에 휘둘린다면, 후자는 그것을 감당한다. 욕망과 그에 수반되는 불안을 감당하는 것이 상징계 내 주체의 책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지는 자주 파괴적이다. 그리고 ‘먹방’ 이미지는 산을 이루는 음식들이 마치 평화롭게 소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환각적 경험을 제공하면서 주체의 충동을 자극한다. 그 파괴적인 이미지의 불안 앞에서 우리는 그것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발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먹방 이미지 앞에서 먹는 행위조차 유예하는 우리에게 그런 운동성을 기대하는 일이 가능한 걸까? 다소 회의적인 질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먹는 이미지를 전시하는 문화 산업의 팽창과 과잉 앞에서 결여된 주체로서 존재 값을 유지하며, 흥분을 다른 무언가에 매개해 해결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 충동을 억압하는 욕망의 기제는 운동성을 발현하며, 이 운동과 역동으로 하여금 만성 소화불량 상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한 것
1.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열린책들, 2017
2.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 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 『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 2010
3.자크 라캉, 『세미나 제10권: 불안』(영역본) 1962-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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