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리포트 : 작가 희키를 만나다

인터뷰를 기념해 희키 작가에게 짤막한 축전을 부탁했다. 그림의 제목은 <숲속 친구들과 참치>이다. 그렇다면 ‘숲속친구들’이란 무엇인가. 희키 작가의 단편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본래 정확한 명칭이 없었지만, 작품이 주는 교훈을 따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어대는 군중’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물론 이는 필명인 ‘숲속의 참치’와는 무관하다. 다만 ‘숲속’이라는 키워드는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모토이기도 했다. 잘 알지 못하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첫 번째였고, 잘 알지 못한다면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글을 쓰자는 다짐이 두 번째였다. 때문에 희키 작가와의 인터뷰는 유난히 각별하게 느껴졌다.

 

마이너리그 리포트 : 작가 희키를 만나다.

인터뷰어 : 김선호 (만화평론가)
인터뷰이 : 희키
인터뷰 날짜 : 2020. 05. 16.

희키 작가는 2016년 디시인사이드의 카툰-연재 갤러리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4개월 동안 7개의 작품을 ‘힛갤(사이트 메인에 게재되므로 명예의 전당과도 같다.)’에 등극시켰다. 그의 초기 단편 중 <우물 밖 개구리>와 <청개구리>편이 크게 히트했으며, 점진적인 인기에 힘입어 ‘탑툰’이라는 웹툰 플랫폼에 정식으로 등단하기에 이른다.

현재 탑툰에 연재된 희키 작가의 작품은 전화가 무료로 풀려있다.
자세한 것은 : https://toptoon.com/weekly/ep_list/heekey

하지만 이후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재가 이루어졌다. 휴재가 이루어진 2017년 11월 이후, 블로그 활동도 뜸해지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마지막으로 남긴 ‘개인사정’이라는 짧은 말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으며, 그렇게 일 년이 좀 지났을 때였다. 2020년 3월, 희키 작가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복귀 소식을 알려왔다. 탑툰이 아닌 블로그에 먼저 올라온 공지는 오랜 침묵을 깸과 동시에,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Q : 아무래도 이 질문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펀딩 사이트를 통해 단행본을 제작한 바가 있습니다. 이후, 2번째 단행본 준비를 위해 탑툰 휴재를 결정하신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탑툰 휴재 이후 어떠한 근황도 올라오지 않아서 독자들이 불안해하기도 했습니다. 예술 분야에서 첫 작품 이후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일은 흔하니까요. 예컨대, 작가님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저희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작가님도 마찬가지였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휴재기간 동안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2번째 단행본 제작에 진전이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A : 사실, 당시 연말을 앞두고 연재처에서 연재중단을 요청할 듯한 그런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딱히 어떤 언질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충 정황상 그럴 것 같아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많았던 작품 두 개 (우물 밖 개구리, 청개구리)를 업로드하고 휴재한 뒤 바로 책 원고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한 달 휴재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 달 뒤 웃프게도 정황이 맞아떨어져 ‘아 그럼 책이나 더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과 더불어 ‘책의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될 때까진 인터넷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걸 너무 무식하게 그대로 이행했던 건데.. 저 나름대로 저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것이었죠. 팬분들이 불안해하셨다는 게 사실이라면.. 당연히 무리도 아니었단 생각이 듭니다. 2달 계획한 새 책의 원고가 생각 외로 너무 오래 걸렸으니까요.. 중간에 ‘지금 내가 책 원고에 힘 쏟고 있다!’ 공지하기에도.. 제 입장에서는 그 말 자체가 설레발로 느껴지니 그냥 잠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겁니다. 책에 대한 부풀려진 기대감도 만들기 싫었고요.

책의 원고는 작가가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작품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보니 당연히 만족스러울 리 없었고, 그런 것들로 고민한 시간이 2년간의 공백이었다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원고 자체가 기술적으로 오래 걸릴 일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단지 날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새롭게 보이니 진척이 한없이 느려진 것입니다. 막상 책이 나오면 ‘이거 하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렸지?’ 하실 테지만.. 그건 저 아니면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래도 진전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활동을 시작했던 거죠. 현재 견본을 출판사 측에 요청한 상황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독자 반응과는 관계없이 이 책이 저 스스로 느끼기에 작가로서 떳떳해질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것 같습니다.

Q : 작가님은 카툰-연재 갤러리라는 아마추어 리그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이후, 탑툰을 통해 정식으로 등단하셨는데요. 카툰-연재 갤러리와 블로그에서 연재하는 만화들과, 탑툰에서 연재하는 만화의 작업 방식에 차이가 있다면 어느 부분이 그러한지 궁금합니다. 먼저 저희가 알고 있는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블로그에서 밝히신 바에 따르면, 탑툰에서 연재하는 원고들은 클립 스튜디오를 사용하신 것으로 압니다. 이는 단행본을 제작하실 때도 마찬가지였고 말입니다. 이때, 기존에 그림판으로 그렸던 작품을 그림툴로 다시 작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자기 평가를 하거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A : 연재처와 커뮤니티 만화의 작업방식 차이라면, 가장 큰 건 연재처의 경우 당연히 모바일 이용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거겠죠. 도구를 바꾸는 것처럼 폰트와 컷 형식도 바꿔야 했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 이 작업이 상당히 재미없고, 작품의 감성을 해치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죠. 이런 부분 말고는 작업방식에는 딱히 그렇다 할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카연갤 및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저에게 만화 안 보인다는 피드백을 주고 있긴 합니다만. 일적인 면에서 마땅히 타협해야 할 부분과 제가 개인적으로 추구할 것들은 구분이 돼야 한다고 보기에, 만화의 사이즈나 폰트 사이즈 같은 부분은 부정적 반응을 감수하고 기존 스타일을 유지하며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재처도 기존 스타일로 그려와라!’ 하는 의견들도 그런 이유로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결국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거겠죠.

프리저처럼 3단 변화를 거치는 희키 작가의 그림체를 보라. 어쩌면 이 다음에도 최종 형태가 있지 않을까?

Q :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등단이라는 것은 대체로 ‘프로’라는 말과 비슷하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시에,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등단을 원하지만 프로의 무게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등단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등단 이후의 과정입니다. 매년 신춘문예와 같은 공모전에서 신예 작가들이 배출되고는 하나, 그들 중 대다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주체가 된다는 것이고, 동시에 생존경쟁에 뛰어든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점이 작가님의 복귀를 염원했던 독자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아마추어 시절과 프로 시절의 마음가짐 같은, 소소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아마 스스로 프로라고 생각하는 작가님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정식연재를 하면 프로 딱지를 붙여주긴 합니다만.. 그게 이제 말씀하신 구체적 정의가 힘든 그런 말이겠죠. 저도 등단을 목적으로 구애의 춤을 췄고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걸 제외하더라도 앞으로 제가 그릴 만화에 ‘그래서 쟤가 정식연재 뚫음?’ 같은 평가에 얽매이는 것이 싫었던 겁니다. 비단 플랫폼, 포탈 연재뿐만 아니라 출판도 마찬가지겠죠. 계약서가 없으면 작가 취급을 해주지 않는 풍조도 잘못되었다 생각합니다만. 일개 개인이 쉽게 그 풍조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니 등단이 우선이라는 말도 막연히 부정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것은 정말 일종의 간판 따기에 불과한 것이겠죠. 말씀하신 대로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사회적인 메시지가 되었건 아니면 예술적인 비전이 되었건, 혹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열망이 되었건 전부 훌륭한 작품 철학이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이건 누가 정해줘서도 안 되는 것이고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지고 만들어야 할 기준입니다. 그리고 이게 ‘프로의 기준’이라고 봅니다. 저는 아직까지 제가 정한 프로로서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결국 이걸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저는 느리나 빠르나 작품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으며, 결국엔 다시 펜을 잡을 수밖에 없겠죠. 개인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0년을 쉬더라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구나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없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작품활동을 중단한 작가님들도 영구히 떠난 사람들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계기만 있어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분들일 겁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저의 마음가짐 차이는 딱히 없습니다. 저는 그저 할 수 있는 걸 하고, 하기 싫은 것도 이유가 있으면 하고, 이유가 없어도 제가 하고 싶은 건 하고, 그게 다였습니다. 정식연재 이전과 이후 저의 마음가짐에 대한 소소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갑작스런 잠수에도 불구하고 저를 기다려주고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더욱 감사해야겠다 하는.. 낯부끄럽지만 그 정도가 있겠네요. 그 부분 외에는 없는 듯합니다. 아무튼 저는 뭐 작가로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으니 독자분들이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듯합니다. 오히려 제가 남은 팬들마저 떠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거죠.

Q : 작가님이 등단 소식을 알리며 블로그에 쓰셨던 글을 보았습니다. 정식 연재를 위해 그동안 그림판으로 그렸던 만화를 다시 작업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작업이 갖는 함의는 다음의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는, 등단을 위해서라면 그림체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는, 작가님에게 그림판이란 어디까지나 선택지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예컨대 작가님께서 그림판을 작업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등단을 위해 ‘외모(=그림체)’에 공을 들이곤 합니다만, 작가님은 그림판 작업을 더 편하게 여기시는 듯합니다. 하루에 한 편씩을 그리는 작가님의 작업 속도와도 무관하지 않겠지요. 혹은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작가님이 웹툰 공모전에 참가할 만큼 등단에 열의가 있으셨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부분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지망생과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그림체는 어떤 신념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림판이라는 도구가 작가님의 신념과 관계가 있다면, 그림판 작업이 작가님께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A : 상당히 잘 짚어주셨습니다. 일단 클립스튜디오 원고 얘기를 해보자면 클립스튜디오를 사용한 건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해상도 문제입니다. 출판 시 그림판으로는 해상도가 깨져 나온다고 알고 있어 눈물을 머금고 클립스튜디오를 썼습니다.. 다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제 그림은 크게 상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로 당시 독자들에게 소장가치 있는 책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돈 주고 사는 입장에서 그래도 뭔가 그림이라도 좀 다른 걸 받는 것이 만족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림판 만화는 카연갤에도 있으니까요. 당시엔 연재처가 없었으니 ‘이 원고는 이 책에만 들어가겠지’ 했던 겁니다.

셋째로 웹툰 플랫폼에 대한 구애였습니다. ‘나 좀 데려가라 이 정도면 되지 않음?ㅎㅎ’ 하는 눈물의 춤이었던 겁니다. 그 후 얼마 안 가 연락이 와 연재처를 찾게 되었지만.. 재밌는 점은 정작 연재처는 제가 단행본 원고를 이렇게 그렸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연재처는 그림판 만화를 원하지 않았으며 클립스튜디오 원고를 원했었죠. 여기에 대한 제 솔직한 생각을 말해보자면, 이건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과 질타를 피하기 위한 위장술 정도로 평가합니다. 그림의 고도화라고 말씀 주셨는데 제 기준에서 이건 고도화가 아니었습니다. 제 만화에 한해서는 작품적으로 클립스튜디오 원고가 그림판 원고보다 나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측은 노이즈 마케팅을 할 생각이 아닌 이상 ‘이딴 그림으로 만화 그려 돈 버는구나’ 같은 부정적인 반응은 (아마) 최대한 피해야만 했던 겁니다. 카연갤 무상연재와 다르게, 돈이 걸린 문제라면 어떤 이들은 뿔을 세우고 고깝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거기다 웹툰의 질적 하락이 도마 위에 올라가 있던 판국에 제가 거기다 찬물과 기름을 뿌리는 작가가 된다면 회사 입장에서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요. 최대한 그런 반응은 피해 가야 했을 겁니다. 저만의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정식연재에 있어서 그림판 원고를 포기하는 건 현실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그림판 원고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만화를 준비할 돈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작가로서 무언가 하길 위해서는 적어도 스스로 1년 안에 만화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고.. 그것도 못 하면 내가 이걸 하겠다고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제 능력이 닿는 선에서 아주 열심히 만화를 그려 내야 했습니다. 다작을 해야 했고,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아야 했으며, 눈에 띄어야 했죠. 거기에 알맞았던 스타일과 도구가 있었던 거고 그게 지금 제 만화의 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있고 잃은 것이 있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억지로 어울리지 않는 틀에 맞춰봤자 역효과만 날 게 분명했다고 봅니다.

물론 단순하게 제가 그림판 특유의 감성을 좋아하는 것도 있습니다. 아마 이 감성을 느껴 줄 사람들도 점차 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허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제가 이걸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날 것의 느낌, 단순함의 극치. 뭐 어떻게 포장하건 제가 좋은 건 좋은 거라 어쩔 수가 없는 거겠죠. 네이버 파괘왕 공모전에 도전했을 때, 저는 ‘그림판으로도 네이버 연재를 할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으나 그 타이틀은 다른 작가님께 빼앗겼으며*,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저의 그림판 사랑에 가슴 아픈 추억이 되었습니다. (*해당 타이틀은 임총 작가의 [공감.jpg]이 가져갔다.)

다작에 대한 이야기도 더 곁들여보겠습니다. 전 제가 생각한 내용을 누군가 먼저 그린다면 너무 배 아플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 안 나온 소재가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전개와 이야기 그 자체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그마저도 뺏길 수는 없으니 빨리 그려 제 이름을 박아야 하는 것이죠. 약간 그런 강박이 있습니다. 그림 퀄리티는 마음에 안 들면 나중에라도 리메이크하면 되는 일 아닐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떠나가면 잡을 수 없습니다. 남의 것이 돼버립니다. 제가 1년간 그림 연습하는 도중 누군가 먼저 제가 구상한 원고와 소재, 전개까지 똑같은 만화를 그려 올릴지 누가 아나요. 제 단편 하나하나는 일종의 기록이 되는 것이고, 유치하지만 ‘희키가 만든 적 있음.’ 같은 효과를 지니는 겁니다. 2년간 책 원고 하는 도중에도 이걸 못한다는 게 가장 괴로웠습니다. 이래서 그 잠수기간 2년이 저에게는 엄격하고 무식한 잣대가 돼버린 것이지요.

Q : 그림판 특유의 거칠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는 작가님의 작품에 욕설과 비속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해 보입니다. 실제로, 작가님의 작품 중에 널리 알려진 것들에는 꼭 비속어가 등장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우물 개구리>와 <청개구리>는 풍자의 날카로움만큼이나 거친 욕설이 등장합니다. 이 부분이 시원하다고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는 반면, 보기에 너무 거북하다고 비판하는 독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백색감옥>, <주인공 이야기>, <금붕어>, <삶의 무게>, <번데기>처럼 욕설과 비속어가 사용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 점은 작가님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작품을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물론 지금의 ‘희키’는 그림판과 비속어라는 조합으로 독자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하면, 더는 희키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에 입성하고 대중을 만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절차입니다. 반대로 보면, 그림판과 비속어로 남는다는 것은 언제나 아마추어 리그에 머무르기를 희망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작가님이 품은 어떤 딜레마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은 거친 작품과 순한 작품을 번갈아 가며 그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희키 개인의 어떤 실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에겐 있습니다. 두 가지 스타일의 작품을 그릴 때 작업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A : 일종의 실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답변을 드리자면 실험이라기보다 ‘난 이런 생각도 하고 이런 만화도 그린다.’라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걸 떠나서라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제가 욕하고 싶은 건 욕하고 싶고 슬픈 감정은 진지하게 말하고 싶으며 장난을 치고 싶다면 장난스러운 말을 하겠죠. 이건 작품도 그렇고 제가 그리는 캐릭터들도 마찬가집니다. 따라서 작업할 때는 ‘내가 그 캐릭터라면 기분이 어떨까?’ 같은 생각을 하며 대사를 쓰게 되고 표정을 그리게 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욕설이 나오는 만화와 나오지 않는 만화가 작업 방식에서 차이를 가진다고 봅니다. 그림만 같을 뿐이지 제가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다르니 당연한 것이지만요.

비속어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만화적 상황에 따라 충분히 욕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할 땐 해야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위해서라면 욕설이고 비속어고 전부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욕설 때문에 양지로 못 간다? 욕설이 안 나오는 더 재밌고 좋은 만화로 증명하면 됩니다. 그것도 못 하면서 양지로 못 간다고 한다면 졸렬한 핑계일 뿐이겠지요. 독자분이 욕설이 거북하다면 그저 저와 코드가 안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그저 제가 감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부모님이 책을 반송하는 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분들 눈에는 그저 유해도서겠죠. 저도 물론 아마추어 리그에만 머무르고 싶진 않지만 양지적인 감성이 부족하다 보니 속된 말로 깡통을 차는 것입니다. 비단 욕설의 문제는 아니고 만화의 전반적인 문제겠지요. 문제라고 적었지만 그 문제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 겁니다. 물론 이런 것이 일적인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커리어와 생계를 위해 일단 포기’를 외칠 준비가 늘 되어있습니다. 그 뒤 연재종료가 되거나 여유가 생기면 다시 아마추어 리그로 돌아오는 것이고 작품적 성장을 위한 책을 만들고 그렇게 또 순환하는 것입니다. 무식한 소리로 들리실 수 있겠지만 저는 무식합니다.

정식 연재를 하려면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많은 독자를 만나려면 전체이용가가 되어야 한다

Q :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드리려 합니다. 아마 독자분들이 더 궁금해하실 질문입니다. 블로그에 있는 장편 작품 중, <콩나무와 >은 1화를 끝으로 더는 연재되고 있지 않습니다. 댓글을 보면 언젠가는 2화를 그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제가 멍청하게도 ‘두달이면 책 원고 뚝딱!’이라고 했으나 현실은 2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러니 콩나무와 잭은 죽기 전에 뚝딱 하겠습니다. 그저 면목이 없습니다.

Q : <콩나무와 >도 그렇지만, <동물의 왕국>에서 잠깐 실사체 그림이 나온 바가 있습니다. 또한 간간히 올리시는 크리쳐 디자인을 보면, 평소의 그림이 너무 간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힘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힘이 너무 들어가기에 해당 그림풍을 지양하시는 것인가요?

A : <동물의 왕국>도.. 실사체 그림이라기엔 좀 뭐하지만.. 아무튼 공이 들어간 그림은 실력의 문제로 일종의 가성비가 안 맞습니다. 제가 무라타 유스케 뺨치는 실력이 있다면 액션물을 구상하고 그렸을지도 모르죠. 다만 그러기엔 제 손이 미숙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아직까진 다작으로 기반을 다지고 이야기 짜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연습 제대로 하려면 최소 3년은 잡아야 할 텐데 그럴 시간도 돈도 없습니다. 힘을 숨긴다는 표현은 글쎄요. 어차피 빠른 시간 내에 높은 그림 퀄리티를 못 내는 게 저인지라 힘을 숨기는 건 아닌 듯합니다. 말씀대로 제가 그린 낙서들이 블로그에 다 올라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도 딱히 숨기는 건 아니구요. 다만 독자 여러분 대부분이 만화로만 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딱히 제 그림 쪽에는 관심이 없는 거겠지요. 무엇보다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글과 그림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제가 내용을 담아내기에 괜찮은 그릇을 찾은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니 깡통으로 드리블을 하는 거겠죠.

Q : 인터뷰가 이루어진 날을 기준으로, 작가님의 만화에는 개구리가 총 8번 등장합니다. 그 외에 후기 만화 등을 포함하면 6번 정도를 더하게 됩니다. 게다가, 외주 작업을 한 게임에는 튜토리얼 캐릭터로 직접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개구리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A : 제가 좋아한다기보다 독자분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만화의 내용과 더불어 디자인이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오너캐로도 쓰이고 튜토리얼 캐릭터로도 쓰이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하마고, 마당에 하마랑 펠리컨 풀어놓고 키우는 게 꿈입니다. 크기가 크고 기묘하게 생긴 동물을 좋아합니다. 물론 개구리도 좋아합니다. 청개구리를 두 번 정도 키워본 적이 있어요. 둘 다 야생에서 저희 집으로 찾아온지라 각각 1년 정도 키우며 살찌운 뒤 다시 방생했습니다

Q : 최근 휴재기간 사이에 크리쳐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단편 영상을 작업하셨습니다. 굉장히 실험적인데,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 린치의 초기 단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개인적인 취미인지 아니면 앞으로의 행보와 관련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A : 헤리의 저녁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도 이걸 보고서 비슷한 감상을 말해줬던 것 같습니다. 헤리의 저녁은 물론 개인적인 취미에 가깝습니다. 보시면 아시다시피 이것도 워낙 마이너한 요소들로 점철된 영상인지라.. 이걸로 뭔가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건 너무도 높은 꿈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제 만화도 별다를 게 없지만 이쪽은 더 심각한 수준인 거죠. 나중에 잘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나 가능성은 희박한 겁니다. 머릿속에 구상한 것은 일단 표현하고 뱉어야 합니다. 헤리의 저녁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Q : 휴재기간에 『2018 신춘문예(와 무관한) 시집』에 필자로 참여하셨습니다. 이때 책에 쓰신 개인 프로필이 굉장히 인상 깊은데요. 순서대로라면 2019년도에는 어떤 프로필이 자리하게 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A : 2019년도는 제가 만화적으로 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력은 현재와 똑같습니다.

<2019 : ???>

Q : 이번에는 작품 속 캐릭터에 관해 질문드리려 합니다. 작가님의 만화는 크게 세 부류의 캐릭터가 나오는데, 각각 초현실적 주체, 인간 주체, 동물들입니다. 동물을 다룬 작품으로는 <동물공작협회>, <동물의 >, <꼬리를 찾아서>, <악어새 소동>등이 있습니다. 초현실적 주체를 다룬 작품으로는 <세상의 기원>, <은하제일 웅변대회>, <향수병>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두는 인간 주체를 다룬 작품입니다.

 셋 중에 가장 특이한 것은 초현실적 주체가 나오는 작품입니다. 위에 언급한 세 작품 모두 우주와 관련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코스믹 호러 장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들 만화에서는 우주의 신, 종족이 나타나 지구를 관장합니다. 작가님의 다른 만화에서 개인과 집단에 대한 지적이 주로 이루어지는 걸 생각해 볼 때, 지구 전체에 대한 통찰은 다소 뭉툭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마 이것이 작가님 개인의 취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정말인가요? 크리쳐 디자인을 보고 와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A : 지구 전체에 대한 통찰 같은.. 그런 무거운 말과 저는 억만 광년 떨어진 듯합니다. 그 통찰은 이제 지구를 관장하는 우주적 존재들이 해야겠지요. 제대로 하질 않고 있으니 저에게는 코스믹 호러인 것입니다. 따라서 저도 거기에 관해 단 한치도 믿는 구석이 없구요. 크리쳐는 만화들과 상관이 없겠다만.. 코스믹 호러를 그리고 싶다거나 우주적 존재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면 크리쳐를 그릴 때 감성도 묻어 나오는 것일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인지..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 모든 만화들은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 취향이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세 가지 만화를 꼽아주셨는데 일종의 작은 시리즈물로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세상의 기원만을 구상했지만 일회성으로 그 캐릭터들을 버리기 싫었습니다. 우주적 존재에 대한 만화를 그리는 한 이 캐릭터들은 가능한 자주 등장시킬 예정입니다.

Q : 동물들을 다룬 작품은 아무래도 이솝우화를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여우와 신 포도 우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동물을 주인공을 세운 여러 작품을 보면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이나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떠오릅니다. 이들은 모두 인간 사회를 동물에 빗대어 풍자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다양한 종이 나온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같은 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동물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실 때, 주로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개와 돼지를 동일 단어로 사용되는 욕설에 반응하는 동물로 그리시는 면이 그렇습니다.

A :  동물을 소재로 할 때는 동물의 특성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징적인 특성이 될 수도 있고 생물적인 특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당연한 거기도 하구요.. 이걸 무시한 채 동물을 소재로 써버린다면 우화는 아무 메리트가 없는 것이겠죠. 다만 저도 동물 전문가는 아니기에 그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여 동물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 부분인 거죠.

<동물의 왕국 중 한 장면. 위는 손으로 그린 작업물이고, 아래는 그림판으로 그린 작업물이다. >

Q : 이 질문은 좀 깁니다. 인간 주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들은 우화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막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거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법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번데기 날갯짓>의 경우는 번데기를 통해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지적합니다. 어느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현재가 아니라, 나비가 될 미래와 여태까지 살아온 과거를 묘사합니다. 이 부분은 작중에서 ‘벌레도 곤충도 아닌, 유충도 성충도 아닌’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동시에, ‘아름답지만 혐오스러운’이라는 수사가 덧붙여집니다. 쉽게 말해 번데기는 삶의 중간 단계이면서도 중간자적 지위는 갖지 못합니다. 현재를 통해 미래와 과거를 지적한다는 점이 이도 저도 못 하는 삶의 고민을 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동시에, <번데기 날갯짓>에서처럼 관찰자를 상위의 존재로 두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끝까지 관찰당하는 주인공과 관찰하는 의사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주인공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죽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따라서 이는 무척 희망적입니다. 그런데 <번데기 날갯짓>에서 관찰당하는 위치에 있는 번데기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묘사됩니다. 지난 과거를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기록사관 역할의 의사와는 달리,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품은 번데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은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현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주인공과 번데기가 비슷한데, 전자라면 몰라도 후자는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데기는 일종의 ‘고치’이니까요.

어쩌면 번데기가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병상에 누운 주인공과 가만히 웅크린 번데기를 가능성이라기보다 영원성으로 본다면 그렇습니다. 이에 따르자면 작가님의 관심은 어떤 가능성을 엿보기보다 ‘순간과 영원’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백색 감옥>과 <금붕어 전기>와 같은 작품에서도 은유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세월 낚시> 같은 작품을 보면 그런 영원성에 대한 불안감이 보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작가님이나 독자들의 연령대를 고려해볼 때 영원한 청춘에 대한 고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력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거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청춘의 단골 고민이니까요. 이게 작가님이 특별히 의도하신 바인지 궁금합니다.

A : 말씀하신 대로 저도 끝없이 고민하고 알아 가야 할 게 많은 사람. 속된 말로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사람’인지라 고민할 거리도 많고 걱정스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의 청춘·단골·고민은 제가 젊은 시기에 뿌려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소재이기도 합니다. 크게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오는 것이죠.

<번데기 날갯짓>에서 번데기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려졌다기보다는 그렇게 돼버린 존재로 그려졌다고 해야 적절할 듯합니다. 비록 번데기였으나 날개는 달려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날지 못하는 미래를 만들었죠. 그렇기에 주인공은 그걸 부정하고 싶었던 겁니다. 날고 싶었으나 날지 못한, 이도 저도 아닌 존재가 세상에 있지 않았으면 했던 겁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그것이 전부 어렸을 적의 꿈이었을지 모른다며 번데기를 그저 잊고 싶은 기억으로 남겨둡니다. 허나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착각이나 꿈이었는지 아니면 현실이었는지, 아니면 주인공이 번데기와 다를 바 없는 상태라 그 상황을 단지 비유하는 건지 모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번데기가 주인공이라는 말도 맞다고 봐요. 커버린 아이 역시 번데기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이유가 그 번데기와 자신이 닮아 가고 있기에 그런지도 모르는 거구요. 아무튼 중요한 메시지는 결국, ‘그런 애틋한 일이 세상에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생각에 관한 감정이 <번데기 날갯짓>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이야기>는 사실 그다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일 것이란 메시지보다는, ‘저런 거면 주인공인 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회의적인 생각에 더 힘이 쏠린 듯합니다. 다만, 말씀하신대로 주인공이 비극의 주인공인 점에서 ‘차라리 60억 인구 속에 있으나 마나하게 살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저 주인공보다 낫지 않나? 그럼 그게 주인공이지 뭐 별다를 게 있나?’라며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도 있는 거겠고, 결국에는 질문하신 내용 역시 틀린 말이 없다는 겁니다. 세상은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간부들이 그토록 원하던 포지션은 아무 상관 없는 의사가 차지했는데, 이 의사가 미래를 만들어나갔다는 해석은 조금 다를 수도 있는 게 이 만화의 우주적 존재는 작가인 저였으며, 어쨌든 만화는 끝났고 60억 중 제대로 그려진 사람은 둘뿐이었으며 기록은 끝났습니다. 이건 캐릭터들 입장에선 코스믹 호러이며 저 나름의 코미디였습니다.

따라서 번데기 날갯짓과 주인공 이야기 두 만화는 개인적으로 관찰자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비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형식에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아무튼 모든 만화들은 다 제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소스들이 묻어 나올 것이며, 특별히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거나 공감을 나누려는 의도가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말씀해주신 것 중에는 <번데기 날갯짓>, <백색 감옥>, <세월 낚시> 정도인듯합니다. <금붕어 전기>를 보자면 그 경우는 비극을 맞은 천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제 또래와 그 금붕어의 공통점이라면 큰 관점에서는 둘 다 세상에 비해 너무도 작은 존재라는 것이며,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말씀하신 것처럼 각 단편들 사이에서도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이죠. 제가 그린 대부분의 만화가 그럴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생각이에요. ‘가능성을 엿보기보다 순간과 영원을 포착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대답은 ‘딱히 그러려고 하진 않았는데 그리고 싶은 걸 그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제 관심은 떠오른 생각을 알맞게 표현하는 데 있고, 형식이나 목적은 모나지 않은 방식이라면 굳이 제한을 두지 않으려 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황에 따라선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고 영원과 순간을 포착하는 데 집중할 수도 있겠죠. 제가 그걸 뚜렷하게 신경 쓰며 의도하지는 않을 테지만 초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여담을 붙여보자면 <세월 낚시>의 경우 저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자!’라는 말을 하며 만든 저에 대한 채찍 같은 만화기도 합니다. 허나 그 만화 이후 ‘앰생도살’ ‘병신 저격’ 이런 칭호가 붙은 것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건 마치 제가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싶어 만든 만화 같았으니까요.

희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큰 의미부여를 하는 것을 경계한다. 수잔 손택도 같은 말을 한 바가 있다. 『해석에 반대한다』가 바로 그것이다.

Q : 긴 질문을 드렸으니 약간의 반성을 해두고 싶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평소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표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냥 그렇다’ 정도의 개인 의견이었지만, 작가님의 작품 다수가 독자를 생각하게 만들기에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되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간추리자면 적당히 모호하고, 적당히 날카롭습니다. 혹은, 동시대에 필요한 물음을 대신 던져주었기에 많은 대화가 오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수잔 손택이 말하듯이, 해석이란 사랑의 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저는 작가님의 작품을 두고 오가는 설전이 독자들의 강한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작가님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게 사실입니다. 양수에는 늘 음수가 뒤따르기 마련이니까요. 이 부분이 인간 개인으로서 불쾌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본래 연재하시던 카툰-연재 갤러리를 떠난 것에 그런 점이 일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복귀를 하셨고, 휴재기간 사이 작가님의 가치관에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휴재기간 동안 작가님 개인에게 찾아온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상이든 작품이든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탑툰 복귀 날짜도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A : 일단 오해를 풀고 싶은 게 저는 카연갤을 떠난 적이 없고 위에 언급했던 이유가 있어서 인터넷 활동 자체를 안 한 것뿐입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예쁘지 않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분들 때문에 제가 잠수 타는데 일조했다는 건 너무 잘못 짚은 듯합니다. 그랬으면 만화 시작하고 한 달이 안돼서 그곳을 떠났을 겁니다. 하다못해 카연갤에서 비추 한 5만 개 받아도 제가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알아줄 사람은 알아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화 해석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만 사진 속 저 말은 해석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 만화가 해석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제 만화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면 그냥 감성으로 느끼면 됩니다. 그것도 안 느껴진다면 저와 코드가 안 맞는 것입니다. 혹시 코드가 맞을지도 모르니 만화를 무슨 생각으로 그렸느냐 묻는다면 저는 거기에 답을 합니다.

다만 카연갤 같은 곳의 경우, 독자분의 해석이 제 생각과 다르다고 할 때 빈정 상해 등 돌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그 사람을 조롱하며 우스갯거리로 만들기도 하기에 되도록 방명록이나 블로그로 하는 비공개 댓글 위주로 답을 드립니다. 정말 궁금하다면 그 정도는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연재처 복귀 날짜는 사측에서 ‘오 그래도 다시 데려올 깜이 되는데?’ 라고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분들이 자원봉사자도 아닌데요. 저는 어디서든 부르면 일단 합니다. 안 부를 뿐이죠.

Q : 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A :  저에 관한 막연한 환상이나 막연한 부정적 감정이 있으신 분들에게 확실하게 말하자면, 저는 그저 흔하디흔한 병신이니 그 감정 전부 뒤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감정이 아깝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니 어떤 방법이라도 저를 지지해주신다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F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