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주_젊음을 포르노그라피화 하는 트로트 예능

유미주

근래의 트로트 예능들의 역함이 도를 지나쳐서 견딜 수가 없다. 이 유행의 시작이었던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은 나았다. 이 기획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기에, 기존에 유명세를 얻지 못했던 트로트 가수들이 참여했고 그 결과로 실제로 빛을 보지 못했던 가수들이 대거 미디어의 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대우 받기 마땅한 이들이 대우 받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스트롯의 너무나 큰 성공으로 인해 트로트 시장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그러나 더욱 열화되고 악한 버전의 ‘Show Me The Money’가 되었다. 빈곤한 음악인들이 도박수 삼아 몸을 위탁한다는 점은 같지만, 트로트 예능의 음악은 참가자들이 듣고 자라온 음악이 아니라는 것, 평가단과 참가자의 세대 차이가 극심하다는 것, 그리고 트로트 예능에 트로트의 존재성은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이 차이들은 이내 젊음을 포르노그라피화 하는 기제를 표상한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을 기점으로 산발적으로 폭발하는 트로트 예능들의 주 소재는 트로트가 아니고 젊음이다. 권위를 잃고 권력만 남은 늙음이 구매력과 시장을 빌미로 젊음을 포르노그라피화한다. 이는 너무 노골적인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들은 외려 TV를 보지 않는 탓이다.

트로트 예능의 주 소재가 트로트가 아니라는 가장 큰 증거는 트로트 예능에 트로트가 없다는 점이다. 쇼미더머니 시즌 3를 기억하는 자라면 당시 한 참가자가 락 사운드가 가미된 무대를 했을 때 받았던 야유 또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트롯엔 그런 최소한의 장르적 비판조차 없다. 미스터트롯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인 임영웅을 유튜브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최고 조회수 영상은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시 부른 것이며, 그 다음은 이선희, 신성우, 스탠딩에그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영상이다. 유튜브가 젊은 세대의 취향을 많이 반영한다는 빈약한 변호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이미 전세대 매체가 되었고, 그 온라인 공간 속에서 세대 간의 구분이 명확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또한 실제 젊은 세대들의 사용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멜론 차트에서는 이들의 음원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 또한 어린 세대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 아님을 보인다. (뉴시스의 본 기사는 트롯 예능 공연의 인터파크 예매자 연령대가 20대에 집중되어 있다며 트롯 예능이 전연령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라고 말했지만 이는 명백한 환상이다. 온라인으로 짧은 시간 안에 예매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는 자녀 세대가 자신의 부모 세대를 위해 대신 예매를 해주었음은 시청자 연령대 비교나 음원 성적 비교 등의 정량적 비교에서도 명확히 보인다.)

“트로트, 전 연령대의 장르”···’미스터트롯’ 콘서트 예매 20대 43% (2020.02.21. 뉴시스)

트로트는 절대 장르적 경계가 느슨하지 않다. 요나누끼 음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한국 대중음악사의 전체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른 것이지, 그 본질들은 아직도 명백하다. 5음계 위주의 사용, 강렬한 2박, 특유의 소리를 꺽는 창법을 사용하는 게 트로트이며 이는 설령 트로트를 듣지 않는 이들에게도 너무 익숙한 장르적 요소들이다. 티아라 등의 아이돌 그룹 곡에서 한국인이 ‘뽕끼’를 느낄 수 있는 것은 트로트가 가진 이 형식적 요소들과 그 자장이 너무 강렬한 탓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노래들이 트로트 예능에서 충분히 ‘트로트화’되었는가? 아니다. 이 곡들은 포크, 발라드, 락 등이다. 무정부르스의 사례는 어떠한가? 오래된 곡이긴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블루스임을 전시하는 이 곡은 무정부르스는 트로트예능에서 벌써 수 차례 불렸다. 장르적 변주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트로트 예능의 청중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트로트가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권력 앞에서 보여주는 재롱이다. 트로트 예능에서 주목받은 ‘장년’이 매우 드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스터트롯의 TOP 7의 평균 연령이 28세이며, 6위의 43세 참가자가 그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 세대의 음악을 하는 자기 세대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세대의 음악을 하는 후 세대들에게만 열광한다. 그들의 노래가 아닌, 그들의 젊음과 아양을 탐한다.

미스터트롯 TOP7, 장민호 씨가 이들 중 최고령자이고, 정동원 씨는 13 세로 최연소자다.   (사진=미스터트롯 홈페이지).

장년 세대는 자본과 권력은 있지만 권위는 없다. 부머와 부머의 이전 세대들은 시대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우리 모두가 그것이 그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의 운이었음을 안다. 때문에 그들에겐 권위가 없다. 그들은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정당화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 무능이 ‘트로트‘ 예능을 지지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된다. 권력과 자본만 있는 이들이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시장이 생긴 것이다. 이 곳에서 젊음들은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과장된 춤사위를 보이고, 때로는 황민우 군의 무대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미취학 아동 동생까지 무대에 올려 ’예쁨‘ 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 본, 타 장르의 무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성세대들이 스스로 그 무대들을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조차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은 트로트의 전문가로 불려왔지만, 정작 앞에서 펼쳐지는 것은 트로트와는 거리가 너무 먼 것들인 탓이다. 그러나 다시, 그런 것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보이스트롯에서 ‘샛별’이라 명명된 10대 참가자들. 중학교를 갓 졸업한 황민우 군을 제외하면 전원 10대 초반의 여아들로 구성되어 있다. 황민우 군을 제외한 학생들은 팀 미션에서 ‘샛별’이라는 팀을 꾸리게 되어 김용임의 “오늘이 젊은날”을 불렀다. 사진출처

자기 세대들의 권위욕을 채우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시장에서 자신들만 이 포르노그라피를 소비하고, 젊은 세대들이 재롱부리는 방송을 젊은 층들은 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세대들에게서 이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 이는 하나의 완전한 사육이다. 보이스트롯에서 전원 초등학교 여학생으로 구성되어 ‘샛별’이라 명명된 팀이 “오늘이 젊은 날”이란 곡을 소리를 꺽어가며 부르는 장면은 하나의 그로테스크다. 10대 초반의 어린이들이 “지난 일은 지난 밤에 묻어요”라며 “내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고 노래하는 것은 절대 그들의 노래라고 볼 수 없다. 트롯 예능의 평가단과 시청자는 참가자들이 무슨 노래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재롱부리기만을 바란다. 초등학생 김다현 양이 “님이여”라는 25년 전 노래를 창법이라는 미명 하에 목이 상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부르게 하는 것을 보라.

부머 세대라고 불리는 중장년층이 새로운 매체 문화 속에서 경시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소외감이 너무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들이 젊은 세대를 다시 착취하는 것을 새로운 세대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최근에 우연히 TV 채널을 넘기다가 Z세대에 대해 논하는 강연 프로그램을 보았다. 50대로 보이는 교수가 3-40대 청중에게 Z세대는 자기 호불호와 의사 표현에는 능숙하지만 타인의 말은 듣지 못한다는 내용을 길게 길게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강연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었던 것은 누구인가? 마이크를 쥐고 자기의 의사표명을 할 기회는커녕, 강연을 듣고 질문 하나라도 던질 기회조차 받지 못한 것은 어떤 세대였는가. 비단 Z세대뿐만 아니라 이들을 포함하는 젊은 세대들은 경시된다고 표현되는 부머와 그 윗세대들보다 아직도 너무 많이 경시되고 있다. 경시받는 이들이 스스로 광대, 포르노그라피의 피사체가 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왜곡된 젊음 포르노의 범람 옆에서, 본보기 삼을만한 하나의 어른을 둔 것 같다. 나훈아는 코로나블루 해소에 기여하기 위해 언택트 공연을 기획하고,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그 영상을 추석 연휴에 공영 방송사로 송출한다고 한다. 나훈아의 늙음은 얼마나 현명하며 건강한가. 이 기획은 다른 부머세대의 예능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바람직하다. 늙음을 늙음으로 알면서도 그것을 비껴가지 않은 채 있고, 방송을 하지 않다가 코로나 시대가 와서 자기 세대에 기여하겠다는 정직은 얼마나 보기 드문 가치인가. 그러므로 노년의 매체는 자신의 늙음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동시에, 그러나 너무 또렷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크리틱-칼은 여러분의 자유로운 투고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언제나 기다립니다. 크리틱-칼에 한 번이라도 투고해주신 필자에게는 5만 원을 고료로 드립니다. 투고 문의는 gocritical@gmail.com로 가능합니다.

* 2020년 3월부터 정기후원자 1000명 모집 프로젝트를 시작함에 따라서 1년에 한 번 5만 원 책 선물을 필자에게 드리는 방식을 글을 투고할 때마다 5만 원의 고료를 필자에게 드리는 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단 현 후원금의 규모 상 한달에 크리틱-칼에 게시 글은 2~3편으로 제한) 또한 정기후원 규모가 확장되는 것과 비례하여 글을 투고할 때마다 드리는 고료의 규모도 조금씩 상향될 예정입니다.

* 크리틱-칼은 독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크리틱-칼 후원금은 홈페이지 호스팅 및 도메인 유지비 그리고 필진들에게 책 선물&소정의 원고료을 드리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 우리은행 1005-303-874628 (예금주: 크리틱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