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신생공간 이후의 시간을 위한 제언

홍태림(미술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2/W에서 열린 《호버링Hovering》(2018.1.6~2018.3.18)의 연계 출판물인 『호버링 텍스트』(2019)의 서문에는 신생공간에 가담하지 못한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폐허1)가된 미술계를 가로지르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따라서 『호버링 텍스트』는 서울의 일부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신생공간이 방전된 이후에도 여전히 폐허인 미술계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집적한 결과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호버링 텍스트』에 집적된 고민은 어떻게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안을 써내기 위해서는 우선 신생공간이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에 대해서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생 서울의 작가2)들이 주도적으로 촉발시킨 신생공간의 흐름이 만들어진 결정적인 시작점은 개인적으로 2015년 3월 29일에 교역소3)에서 열린 ‘2015년 미술생산자모임4) 2차 공개토론회’의 자료집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료집에는 신생공간의 흐름에 영향을 준 중요한 글들이 여러 편 실렸는데, 그중에서도 미술소비자모임5)의 「시각예술 관련 신생 독립플랫폼 인터뷰」(이하 플랫폼 인터뷰)와 강정석 작가의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생 독립 플랫폼의 답변들

미술소비자모임의 플랫폼 인터뷰를 살펴보면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하나는 미술소비자모임이 신생독립플랫폼을 미술계에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과 작가들이 주도하는 물리적인 전시 및 프로젝트 공간뿐 아니라 웹진이나 상영회까지 포함했다는 점 그리고 인터뷰할 대상을 서울에 국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때문에 플랫폼 인터뷰에는 문화비평 웹진 크리틱-칼과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독립예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가는 웹진 인디언밥, 당시에는 문화 커뮤니티 단체에 더 가까웠던 아카이브 봄 그리고 부산에 위치한 예술정치공간 힘이 인터뷰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었다.6) 플랫폼 인터뷰에서 또 주목할 점은 공공지원에 대한 각 플랫폼의 입장이다. 이 인터뷰에 참여한 플랫폼들은 월마다 20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 사이의 고정 지출을 감내하며 운영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이러한 플랫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공지원이 지금처럼 확충되었던 때는 아니었기 때문에 공공지원을 활용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플랫폼이 많았다. 그래서 미술소비자모임은 각 플랫폼 측에 공공지원을 활용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답변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인디언밥과 반지하 B½F는 아르코 기금을 이미 활용 중이었다.7) 따라서 이 두 플랫폼은 공공지원에 대하여 애초에 별 거부감을 가지지 않은 곳에 속한다. 한편 800/40, 300/20, 구탁소, 합정지구, 케이크갤러리, 교역소의 경우에는 공공지원을 활용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으로 묶을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후에 반지하 B½F와 더불어 대표적인 신생공간으로 꼽히는 교역소는 “공공지원을 꼭 사용하고 싶다.”는 단호한 답변을 남기며 공공지원 활용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8) 공공지원 활용에 대하여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곳은 공간해방, 공간 사일삼9), 노토일렛, 비디오릴레이탄산을 꼽아볼 수 있다. 이 중에서 비디오릴레이탄산10)의 경우에는 공공지원을 사용할 만큼의 예산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운영자가 아르바이트 통해서 운영비를 충당하는 것을 선택한 경우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디오릴레이탄산은 공공지원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유보적 입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당시에 공공지원을 아예 배제한 플랫폼은 문화비평 웹진 크리틱-칼, 예술공간 자유11), 지금여기, 예술정치공간 힘을 꼽아 볼 수 있다. 그러나 2015년을 기준으로 공공지원을 배제했던 플랫폼들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공공지원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경우가 있다.12)13)

이렇게 살펴보았을 때 미술소비자모임이 인터뷰한 플랫폼들은 대부분 공공지원을 처음부터 원했거나 혹은 공공지원과 거리를 두고자 했더라도 결국은 공공지원을 활용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이 인터뷰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플랫폼은 애초에 공공지원이라는 제도 바깥에 있을 의도가 없었거나 그러한 의도가 있었어도 결국 공공지원을 통해서 제도의 안쪽으로 들어온 경우가 많다.

이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해볼 점은 기존의 대안공간과 비교하여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와 대안공간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각 플랫폼의 답변이다. 그런데 여기서 전자의 질문은 사실 유의미한 답변이 나오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왜냐하면 이 플랫폼들은 20대 개새끼론, 88만원 세대론, 용산참사, 홍대 두리반 투쟁, 이상봉 열정페이, 극작가 최고은의 사망, 박근혜의 귀환, 공장미술제 아티스트피 논쟁, 아트스타코리아의 노예계약서 폭로 등이 누적됨에 따라 적체된 스트레스에 대한 모종의 반사작용이기도 하기에 자신들에 대한 정확한 입장이나 좌표를 가지지 않거나 혹은 불필요해 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질문에 대하서는 다수의 플랫폼이 영점이 맞지 않는 대답들을 하거나 혹은 애초에 대안공간과 차별성을 두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대안공간의 문제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답변을 추려볼 수 있었다. 먼저 반지하 B½F는 대안공간의 문제가 청년예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라고 답했다. 다음으로 비디오릴레이탄산은 기존 대안공간이 운영비가 없는데도 운영비를 초과한 일을 하기 위해 아래 세대의 노동력을 저렴하게 이용하는 경우를 지적했다. 그리고 크리틱-칼은 대안공간이 예술과 대안을 내세우며 함께하는 이들의 삶을 갉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비디오릴레이탄산의 지적과 맥락을 공유한다.14)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가 직면한 현실

세 플랫폼의 지적을 종합하면 기존 대안공간들은 젊은 미술생산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종종 이들을 의미가 불분명한 대안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는 이야기가 된다.15) 후자의 문제는 소위 열정페이로 이해할 수 있지만, 반지하 B½F가 언급한 젊음 미술생산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젊음 미술생산자가 마주한 문제란 무엇일까.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가 마주하고 문제는 미학적 담론의 정체보다는 경제적 생존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생존이 뒤얽힌 문제와 많이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작가의 경우 자신의 창작물이 어떻게 화랑, 경매, 아트페어 같은 민간영역이나 미술은행, 미술관 같은 공공영역에서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미술시장은 민간영역의 규모가 공공영역의 약 4배 정도다.16) 민간영역에서 규모나 역할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은 두말할 것 없이 화랑이다. 화랑이 역할은 작가 발굴과 연구 그리고 작품의 시장화다. 원론적으로 화랑은 이 세 가지에 대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러나 화랑이 이윤추구에 매몰되지 않고 작가 발굴과 연구를 균형감 있게 수행하는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다. 한국의 화랑계는 대형화랑의 경매겸업 및 시장 독과점, 장기적인 안목이 부재한 맹목적 이윤추구 그리고 거듭되는 윤리의식의 후퇴 속에서 위작의 생산 및 유통을 반복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21세기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화랑이나 경매에서 유통되는 작품의 유형은 회화가 70~80%17)를 차지하며 화랑이 주로 취급하는 100여명의 작가들의 작품과 위작만이 미술시장에서 계속 맴돌 뿐인 상황이다. 박영택의 견해에 따르면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대략 10만 명이며 이 중에서 시장에 노출되는 작가는 1만 5천 명 정도다.18) 이 수치가 큰 오차가 없는 것이라면 작가로서 시장에서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김창열, 이강소, 김종학, 하종현 등과 같이 자주 작품이 거래되는 생존한 작가가 되려면 정말 희박한 확률을 뚫어야 한다. 2019년 기준으로 근거가 불분명한 고액의 차등 등록금을 시간제 노동과 학자금대출로 감당하기도 해야 하는 순수미술 계열 대학 입학자는 740명19)인데 이들 중에서 졸업 후에도 작가로 살아가고자 마음을 먹은 이들이 있다면 이처럼 너무나 협소하고 단편화된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물론, 이들도 자신들이 미술시장에 접근할 가능성 자체가 희박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사각지대를 떠받치는 민간 및 공공의 각종 지원 제도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20) 그러나 이러한 지원제도도 적게는 몇 십대 일, 많게는 백대 일이 우습게 넘는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러니 시장이 아우르지 못한 영역을 그나마 챙기고 있는 민간 및 공공 제도 앞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이 벌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사실 대안공간들은 오래전부터 공공지원에 기대어 생존하기에 바빴기에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시점에 마주할 문제들에 대하여 애초에 관심이 없었거나 혹은 관심이 있더라도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므로 미술소비자모임이 각 플랫폼 측에 대안공간의 문제점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미술계에 적체된 문제를 폭탄 돌리기를 한 꼴인 앞세대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휘발성’이 휘발해버릴 때

미술소비자모임의 플랫폼 인터뷰 다음으로 살펴볼 글은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이하 서울 인던)이다. 서울 인던은 신생독립플랫폼 대신 신생공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신생공간이 서울에 위치한 반지하 B½F, 교역소, 공간 사일삼, 개방회로, 800/40, 구탁소, 케이크 갤러리, 아카이브 봄, 지금여기, 공간해방 등이라고 거명했으나 전시공간이 아니거나 물리적 공간이 아닌 경우를 신생공간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을 내놨다.21) 그래서 서울 인던은 미술소비자모임과 달리 신생공간의 범위를 서울에 위치했으며 젊은 미술생산자들이 연 물리적인 전시 및 프로젝트 공간으로 일단 정의한다.22) 서울 인던은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신생공간을 아이폰 3GS 발매, SNS, 인스턴스 던전, 휘발성 같은 요소를 경유하여 매우 예리하고 흥미로운 두 가지 분석을 내놓는다. 하나는 신생공간이 기존 미술계와 연결되어 있으나, 더 유명하고 큰 곳으로 가기위한 하부구조로 작용하는 곳이 아닌 독립된 레이어로 기능한다는 분석23)이며 다른 하나는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신생공간이 전시 서문이나 보도자료 같은 읽을거리를 포기하거나 축소함으로써 전시가 휘발되기 쉽게 했기 때문에 젊은 미술생산자에게 기묘만 쾌감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분명 신생공간은 기존의 미술계, 즉 신진 작가가 기성세대가 만든 인준체계로부터 인준받기 위하여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장과 독립된 장을 만들고 그 위에서 곧 휘발해버릴 현재를 즐기는 해방적 공간으로 나아가던 때가 있었다.24) 그리고 신생공간이 그렇게 기성세대가 구축해놓은 인준체계의 반대편에서 휘발성에 주목한 것은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속은 곪을 대로 곪은 미술계에 순간적으로 큰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서울 인던이 예리하게 포착한 휘발성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우선 신생공간에서의 전시나 프로젝트가 어느 순간 기존 미술계에 진입할 때 자연스럽게 이력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후원을 바탕으로 흩어져 있던 신생공간을 일시적으로 링크한 《굿-즈》(2015)가 ‘(故)굿-즈’ 뱃지를 만들고 결산보고회의 제목을 ‘After Dark: (故)굿-즈에 대하여’로 잡을 만큼 성취감, 우울, 냉소, 낭만25)이 묘하게 뒤섞인 휘발성을 천명26)했으나 휘발된 흔적이 사라지기도 전에 연옥에 있던 《굿-즈》의 영혼을 오픈베타 굿즈(현 취미가)가 현세로 불러내고27) 더불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여러 신생공간이 참여한 《서울바벨》(2016)이 소비적으로 개최됨에 따라서 휘발성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28) 따라서 결과만을 따지자면 신생공간은 기존의 미술계와 독립된 레이어가 아니라 기존의 미술계에 진입하기 위한 작업과 이력을 만들기 위한 유예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신생공간도 결국 “미술의 장의 특수한 자산 곧 미술적 권위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려고 경쟁하고 투쟁하는 영역”29)에 속한다고 봐야 할까.

신생공간 이후의 시간

신생공간과 관련하여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 15인에 대한 인터뷰를 분석한 신혜영의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2016)을 살펴보면 인터뷰 대상자들이 어떻게 미술계 안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인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다양한 공모에 수없이 지원하며 경쟁과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외부의 선택에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회의를 느껴서 무언가 다른 탈출구를 필요로 했다. 여기서의 탈출구는 국가와 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창작을 지속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업을 이어나가며 기성세대가 만든 인준체계 안에서 생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기성세대가 만든 인준체계 밖에서 사명감이나 대안에 얽매이지 않고 어떻게 동료세대들 간에 즐거움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분화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신생공간과 연결시키자면 전자의 문제는 기존의 미술계에 진입하기 위한 작업과 이력을 만들기 위한 유예공간으로서의 말기 신생공간과 관련이 있으며 후자의 문제는 자립성과 자족성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휘발성을 머금은 초기 신생공간과 관련지을 수 있겠다.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은 신생공간의 주체들 대부분이 큰 성공보다는 동료의 인정과 연대로써 현재를 즐기며, 외부의 선택과 원조를 기다리기보다는 삶과 예술을 병행하며 홀로 서는 편을 택하는 자기충족적 면모에 주목하면서도 이들이 열악한 미술생산장의 구조와 공모30)함으로써 장 내 진입과 ‘위치 취하기’에 있어 유리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다. 이 결론은 신생공간이 외부의 지원을 부차적으로 여기거나 배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크게 외부화하지 않으며 홀로서기, 자기 충족성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으로부터 비롯되는 상징투쟁에 무게를 두지만, 한편으로 열악한 미술생산장의 구조와 공모(共謀)한다는 표현을 통해서 신생공간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짚어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만약 후자의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면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도 신생공간이 유예공간으로 귀결될 것임을 잠정적으로나마 언급한 셈이다. 서울 인던이 제시한 예리한 분석을 벗어난 말기 신생공간의 양상과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에 어른거리는 잠정적 결론 일부를 되뇌며 유예공간이라는 결론을 입에 올리는 것은 신생공간이 짧은 시간동안 벼려낸 미적 맥락에 대한 논의를 덮어버리고 평평하게 만드는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적 맥락이 순수하고 자율적인 미술이라는 개념에만 기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신생공간을 유예공간으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도 미적 맥락은 추동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생공간을 유예공간으로 판단하는 일은 단순히 실패했고 한계가 있다는 판결을 내리며 냉소적 패배주의에 빠지기 위함이 아니라 신생공간이 남긴 의미와 한계를 지역, 세대, 장르를 가로지르는 미래로 연결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생공간이 가지고 있던 해방적 에너지가 유예공간으로 귀결된 측면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 결과를 더 비판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굿-즈》와 《서울바벨》이 끝나고 서울의 미술계에는 신생공간 이후의 시간이 열렸지만, 그 시간은 신생공간 이전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고름이 넘실거리는 폐허에서의 무한경쟁과 생존31)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니 신생공간의 에너지가 방전된 이후의 시간을 마주한 서울의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폐허를 다시 입에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들과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자주 거론하는 폐허의 질감은 일면 상이하다.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는 미술계가 그럴듯한 겉모습만 키우며 폐허를 은폐해왔음을 어느 정도 몸으로 체험할 시간이 있었으며 덕분에 신생공간이라는 나름의 반사작용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는 폐허를 바로 앞세대가 굴절시킨 에너지를 통해서 경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폐허에 대한 문제의식이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보다 더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호버링 텍스트』에서 권시우가 1990년대생인 자신도 신생공간 직전의 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제도가 작가 및 작업을 소비하는 방식, 기본적인 것에 대한 명확한 규준과 합의가 없는 상황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지각하지 못했다32)고 말했다고 말했을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가 이러한 추상성에 완전 매몰되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황재민이 ‘내가 올해의 《취미관》에서 응원하고 싶은 것들 +《취미관》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대해서’라는 글에서 신생공간의 시간과 신생공간 이후의 시간을 미적 맥락만이 아니라 미적 맥락과 연결된 제도33)의 차원에서도 바라볼 필요성에 주목한 경우처럼 일부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한 나름의 고민을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도에 대한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의 시야와 태도는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한정적이고 소극적이다.

제도와 미적 맥락을 연결할 때

『호버링 텍스트』에서 권시우는 기존의 씬과 유사한 것을 형성하려 하기 보다는 제도를 우회, 설득하거나 제도 안에 사각지대를 만드는 식으로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를 제도 자체에 대응시켜야 하는 순간이 언젠간 오게 되지 않을까34)라는 의견을 제시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처럼 제도적인 오작동을 몸소 경해본 적이 없으며 제도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대하여 부담감이 있어서인지 신생공간 이후의 시간에 내재된 미적 맥락과 뒤엉킨 제도를 본격적으로 마주하는 일을 여전히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에 대한 이러한 거리두기는 『호버링 텍스트』에 실린 황재민의 다른 글에서도 드러난다. 황재민은 신생공간이 미술계의 다양한 공모, 심사, 경쟁 같은 제도의 착취 구조를 잠시 벗어난 곳 같았다고 평가35)한 바 있는데, 이러한 평가에는 신생공간이 제도로부터 독립될 수 있다는 인식이 녹아있다. 물론, 이러한 독립은 이상적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가능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장구한 역사를 들춰볼 것도 없이 대안공간과 신생공간만 보더라도 우리는 예술이 제도로부터 독립되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제도를 분리할 수 있다는 인식은 제도에 대한 막연한 냉소나 거부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장난 신자유주의의 가속이 폐허를 종횡으로 확장하는 가운데 제도에 대한 막연한 냉소나 거부는 결과적으로 폐허의 근원에 종속되며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다. 다시 말해서 예술 역시 제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데, 이러한 측면은 사실 『호버링 텍스트』의 탄생 과정에도 내재되어 있다. 『호버링 텍스트』의 제작비 8백만 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초예술분야 크라우드펀딩 매칭지원사업 2018’과 맞물려 마련되었다. 여기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크라우드펀딩 사업은 텀블벅에 개설된 프로젝트의 목표액이 800만 원 이상일 경우 목표액의 25%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따라서 『호버링 텍스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제도로부터 200만 원의 지원을 받은 셈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호버링 텍스트』의 글들이 전반적으로 제도를 막연히 경계하거나 유보하면서도 종종 제도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불가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버링 텍스트』의 탄생과정에서도 드러나는 이러한 애매한 태도와 그 태도 뒤에 드리워지는 막연한 냉소와 거부는 장기적으로 폐허를 가로지르고자 하는 의지까지도 통째로 삼키기 마련이다. 제도는 냉소와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시민이자 예술가로서 개입해야 할 대상이다. 시민이자 예술가인 우리가 그러지 못할 때 제도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망각하고 폐허를 위해 봉사한다. 따라서 신생공간 이후의 시간을 고민하는 이들이 폐허 위에서 냉소적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20세기 제도비판 미술이 예술제도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고자 했던 것 이상으로 미적 맥락과 함께 다양한 제도의 내부로 침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신생공간 이후의 시간을 고민하는 젊은 미술생산자들에게 제도와 맞닥뜨리는 일은 맨몸으로 지각을 뚫고 마그마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제도에 대한 개입은 예술의 언어와 너무나 상이한 언어와의 지저분한 분투이며 그 분투의 결말이 기존의 정치, 경제, 문화체제에 대한 탈주가 아니라 기존의 체제를 옹호로 이어질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체제를 탈주하는 예술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상 사라져버린 오늘날에 우리의 선택지가 제도에 대한 막연한 냉소와 거부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적 맥락에 대한 고민을 껴안고 제도에 뛰어드는 것이 중단기 차원에서 더 미래지향적이다. 고장 난 신자유주의의 가속은 우리의 유능성을 추동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 확장과 적자생존이라는 단일 논리로 줄 세워 우리의 사회를 폐허로 이끌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제도를 하나의 방어선으로 끊임없이 재편해나갈 필요가 있다. 가령 미술계에서 다룰 수 있는 제도의 전선은 초중고 및 대학의 교육권 확충, 공공 및 민간 차원의 예술 지원사업 개선, 민간 미술시장의 독과점 및 미술시장과 국공립 미술관을 가리지 않고 판치며 미술사를 파괴하는 위작 유통 개선, 공정한 창작대가 기준 수립, 예술가를 아우르는 사회보장 체계 확보 등이 있겠다. 예술가는 일상적인 소비활동 속에 녹아든 간접세와 각종 소득세를 납부하는 시민이며 동시에 미적 맥락을 탐구하고 실천하는 존재다. 이러한 정체성을 되새기며 우리가 제도와 미적 맥락을 연결할 수 있을 때 폐허에 대한 논함은 냉소적 패배주의가 아니라 폐허를 탈주하기 위한 잠재력으로 전환될 것이다.

폐허가 된 세계를 가로지르기 위해

나는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폐허가 미적 맥락과 뒤엉킨 제도와 관련이 있음을 충분히 감지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뒤엉킴을 감지했음에도 뒤엉킴을 풀어내는 처절한 과정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절박함 속에서 끌어낸 소중한 미적 맥락도 결국 공허한 언어로 전락할 것이다. 만약 신생공간이 제도에 대한 개입의 단초를 만들어냈던 미술생산자모임과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미술인들의 모임과 지속력 있는 연대를 해냈다면 199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마주한 폐허는 지금보다 훨씬 미래가 깃든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1980년대생 미술생산자들이 주도한 신생공간의 흐름은 폐허에 대한 순간적인 반응을 만들어냈음에도 결국 폐허와 공모한 제도에 대부분 귀속되었다. 물론 미술계의 시간이 이렇게 사방으로 계속 닫혀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방으로 닫힌 미술계의 시간을 다시 여는 일은 결국 신생공간 이후의 시간을 마주한 이들에게 넘겨졌다. 그러니 1990년대생 이후의 미술생산자들이 신생공간의 궤적부터 타산지석으로 삼고 미적 맥락과 함께 제도의 안과 밖을 가로지를 수 있다면 우리의 미술이 단순히 폐허가 된 서울의 미술을 가로지르는 상상에 그치지 않고 장르와 지역,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폐허가 된 이 세계를 실제로 가로지를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월간 아트인컬쳐 2020년 8월호 특집 ‘NEW VISION 3040 동시대+미술+평론+10’에 실린 글입니다. ‘NEW VISION 3040 동시대+미술+평론+10’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이 링크를 참고. 


1) 가령 강정석 작가가 월간 『미술세계』와의 신생공간 특집 대담에서 2008년 즈음에 겪었던 미술시장의 붕괴, 이명박 정권과 한예종의 힘겨루기, 미술활동에 대한 무보수의 만연 등을 언급하며 이전의 좋았던 시대의 이야기가 모두 종결된 상황이라고 말한 것도 참고해 볼 수 있다. 강정석, 권시우, 윤원화, 이제, 임다운, 장영주, 홍태림, 「20161025 좌담회」, 『미술세계』, 2016. 12, p.66
2) 서울의 신생공간 흐름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큰 틀에서 보면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미술생산자라는 용어로 아우를 수 있지만, 신생공간의 상승세가 한동안 이어질 수 있도록 한 에너지의 대부분은 비평가, 미술사가, 전시기획자, 예술행정가보다는 작가들로부터 나왔다.
3) 김영수, 정시우, 황아람이 상봉동에서 2014년 10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운영한 공간으로 후에 대표적인 신생공간 중 한 곳으로 꼽히게 된다.
4) 미술생산자모임은 2012년 5.1총파업 퍼레이드에 미술가-디자이너 그룹으로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미술을 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문제, 미술제도 내의 불합리한 구조에 부딪히는 문제, 국가예술정책의 비정상성 등을 함께 얘기하고 활동하면서 미술환경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했다. 미술생산자 모임은 2013년에 첫 번째 자료지 발간을 겸하여 시청각에서 첫 공개 토론회를 열었고 2014년에는  CARFAC(캐나다미술가협회)의 그랜트 맥코넬을 초대하여 캐나다의 아티스트 피 시스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5년에 교역소에서 열린 두 번째 자료집과 공개토론회는 이 인터뷰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015년 기준으로 홈페이지와 자료집에 미술생산자 동인으로 거명된 이들은 리슨투더시티(박은선), 옥인콜렉티브(김화용, 고 진시우, 고 이정민), 파트타임스위트(이미연, 박재영), 강정석, 오용석, 이수성, 정윤석, 미술소비자모임(권기예, 박지혜, 이세준, 조혜진), 더북소사이어티(구정연)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미술생산자모임 홈페이지 링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artworkersgathering.wixsite.com/arts
5) 미술소비자모임의 동인은 권기예, 조혜진, 박지혜, 이세준이다. 미술소비자모임은 미술 소비자가 생산자고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미술계의 상황에 주목하며 2014년에 결성되었다. 미술소비자모임은 동세대 미술을 소개하고 미술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 및 제안하는 일들이 미술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2015년 미술생산자모임 2차 공개 토론회를 통해서 「시각예술 관련 신생독립플랫폼 인터뷰」를 발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러나 이들은 미술생산자모임 2차 공개 토론회 후에 활동이 없는 상황이다.
6) 이러한 측면은 2015년 이후에 회자된 신생공간의 흐름이 일반적으로 서울의 1980년대생 작가들과 서울에 위치한 이들의 작업실 및 전시, 프로젝트 공간으로 한정된 것과 대조된다.
7) 물론 이런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플랫폼 운영 여건이 근본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8) 교역소는 2년 후에 미술세계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의 열망이 제도로 수렴되거나 사회적 맥락에 대한 각을 세우기보다는 예술활동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미감을 실험해보고 싶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러한 진술은 공공지원이라는 제도는 괜찮지만, 교역소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교역소를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제도로 삼을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인다. 편집부, 「신생공간에 묻다」, 『미술세계』 2016.12, p.80
9) 그러나 현재 공간 사일삼은 공공지원이 장기적으로 예술생태계의 자생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지원 활용에 대하여 꽤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릴릴, 차지량, 심소미, 양지윤, 서다솜, 더 스크랩, PACK, 「기금을 듣다」, 『미술세계』 2019.4, pp.72-73을 참고할 것.
10) 강정석 작가가 2012년 8월부터 운영한 작가가 작가를 비디오가 비디오를 소개하는 플랫폼이다.
11) 다만 기업과의 협력관계에서 비롯된 지원에 대한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12) 크리틱-칼의 경우 2019년에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시각예술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그간의 기조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이는 독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만으로는 결국 필자들에게 제공할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과 필자가 크리틱-칼을 통해서 단발적이지만 좋은 여건에서 집필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크리틱-칼은 자발적 후원금이 가지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2020년 3월부터 정기후원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필요에 따라서 공공지원 활용도 고려할 예정이다.
13) 예술정치공간 힘도 2016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산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통해서 공간을 운영했기 때문에 공공지원을 배제하는 입장이 바뀐 것으로 봐야 한다.
14) 이에 대해서는 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인 안소현도 “대안공간들이 영세함을 이유로 정당한 노동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많은 1세대 대안공간들의 치명적 문제로 지적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안소현, 「대안공간의/이라는 이념」, 『비영리 전시공간 다시보기』, 2018, p.24
15)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미술생산자모임의 1차 자료집에서 강정석 작가의 만화 <인터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미술생산자모임, 『미술생산자모임 1차 자료집』, 2013, pp.36-37
16) 예술경영지원센터, 『2018 미술시장 실태조사』, 2018, p.37
17) 앞의 책, p.48
18) 박영택, ‘국내 화랑들, 정부 지원 바라기 전에…’, <경향비즈>, 2017.8.2,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08021134001&code=990100
19) 교육통계서비스, https://kess.kedi.re.kr/mobile/stats/school?menuCd=0102&cd=4187&survSeq=2019&itemCode=01&menuId=m_01020803&uppCd1=01020803&uppCd2=01020803&flag=A
20) 이에 대한 측면은 심소미의 “시장이 부재하기에 발생하는 부족한 부분을 제도가 채우려고 하니까 시장 안에서 자율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도 어려워졌다.”라는 발언과도 연결점이 있다. 릴릴, 차지량, 심소미, 양지윤, 서다솜, 더 스크랩, PACK, 「기금을 듣다」, 『미술세계』 2019.4, P.76
21) 미술생산자모임, 『미술생산자모임 1차 자료집』, 2013, p.183
22) 이러한 범주화는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 발표 이후 암묵적으로 일반화되었다. 그래서 월간 『미술세계』가 2015년 2월호 특집으로 신생공간을 다룰 때도 신생공간은 서울에만 한정되었다. 다만 물리적인 전시 및 프로젝트 공간뿐 아니라 웹진이나 웹플랫폼, 상영회 같은 비물질적 공간도 포함되긴 했다.
23) 강정석의 이러한 입장은 후에 『호버링 텍스트』에서 “자신을 어떻게 가시화해서 미술계에 진입해 경력을 유효하게 만드느냐, 이런 목표가 신생공간에는 없었어요.”라는 발언을 통해서 반복되기도 했다. 권시우, 김효재, 오연진, 윤태웅, 황재민 편, 『호버링 텍스트』, 2018, p.269
24) 한편 한 기성 미술평론가가 신생공간의 흐름이 분출되기 직전이었던 시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서울의)청년작가가 연쇄 개인전을 열기 위한 적당한 크기의 프로젝트 공간과 이와 연계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제안의 근간은 대안공간과 상업화랑의 능력상실로 인하여 미술관이 순기능을 행하지 않으면 미술장계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배타적인 세대론에 입각한 이 제안은 우여곡절 끝에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으로 수렴되었다.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은 신생공간을 주도한 이들과 연대하지 않았고 신생공간을 주도한 이들도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과 연대하지 않았다.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이 발족된 이후 급작스럽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의 게릴라 전시 [미술관의 탄생]이 착하고 아기자기한 수준에 그치게 되면서 순식간에 무의미하게 휘발되었다.
25) 공간 사일삼의 김윤익 작가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발언은 한 바 있기도 하다, “결국 지원금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단체 개인들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당장 올해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되는 것인지가 중요한 부분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의 장기적 발전을 고려해서 지원금을 준다면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 수행한 사람들이 에너지가 남도록 고려하여 인건비를 포함한 지원금을 줘야 하는데, 프로젝트 수행자들이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규모의 지원금을 준다…그러다 보니 기금을 받아도 사실 마이너스인 것이다. 전시와 관련하여 참여한 큐레이터, 기획자, 심지어 못을 박고 망치질한 사람들에게까지 남는 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가 남고 독립성이 생기는 것이다.” 릴릴, 차지량, 심소미, 양지윤, 서다솜, 더 스크랩, PACK, 「기금을 듣다」, 『미술세계』 2019.4, pp.72-73
26) 수개월을 준비한 《굿-즈》는 관객이 5천 명 넘게 오고 1억이 넘는 총수익을 냈지만 총수익과 판매에 참여한 작가 수를 나눠보면 그렇게 많은 수익을 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서 받은 지원금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획에 참여한 기획진과 작가에게 지원금도 충분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굿-즈》가 ‘(故)굿-즈’가 된 것은 많은 이들의 자발적 희생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발언이었다.
27) 권순우는 현재의 미술을 관람하고 좋아하는 시민-관객이 소비자이자 작가의 후원자로 미술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굿-즈》의 성공 지점으로 평가했다. 그래서 이러한 성공 지점이 그대로 흩어져버리는 것이 아까웠던 것도 오픈베타 굿즈(현 취미가)를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강정석, 권순우, 김윤익, 김익현, 유지원, 이수경, 정홍식, ‘대화_ 굿-즈(GOODS) 2주기(週期)’, <피아☆방과후>, 2018.7.17, https://pia-after.com/?p=609
28) 현 취미가가 《굿-즈》를 물리적이고 반영속적 공간을 통해서 이어나갔다면 ‘더 스크랩’과 ‘PACK’은 작가장터라는 행사를 통해서 《굿-즈》의 이후를 만들어나갔다.
29) 이영욱, 「미술의 장, 좀 더 솔직하고 고도화된 자기구분의 논리 가져야」, 『문화예술』 1999년 12월호, http://www.arko.or.kr/zine/artspaper99_12/index9912.htm
30) 맥락상 공모(共謀)를 뜻하는 것인데, 공모의 의미는 단순히 둘 이상이 같이 일을 꾀함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둘 이상이 음모를 꾸미거나 나쁜 일 등을 은밀하게 추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글에서도 문맥상으로 보았을 때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31) 일부 신생공간 이후의 신생공간 사이에서 높은 대관료 문제가 붉어지며 서울 인던에서 주창되었던 휘발성과 해방성은 더욱 빛이 바라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도 신생공간 이후의 신생공간이 제도에 의존하며 생존을 우선하는 경향이 심화되며 나타난 것이다.
32) 권시우, 김효재, 오연진, 윤태웅, 황재민 편, 『호버링 텍스트』, 2019, 미디어버스, p.271
33) 이는 집단오찬에 올라온 ‘내가 올해의 《취미관》에서 응원하고 싶은 것들 +《취미관》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MAGAZINE beta 1』에서 논의된 ‘제도의 게임’에 주목한 것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34) 앞의 책, p.273
35) 앞의 책,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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