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진_자소서를 쓰지 않는 주체

안세진

도쿄 분교의 `고양이 빌딩`에 있는 다카시 서가, 사진출처

(1)

  지난달 친구 K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넌 너무 과거를 기록하려고 해.” 나는 몇 주 전부터 올해도 어김없이 늦기 전에 연말 결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방금 델로이 에드워드와 프로미스나인 중 어떤 걸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가 문득 K의 말이 기억나 연말 결산을 아슬아슬하게 정지했다.

  K는 아마 나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하여간 나는 과거에 대해서 천착하는 버릇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를 완전히 정리하기 전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버릇이 있다. 내가 지나간 길 위에 혹시 내가 챙기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2)

  과거를 기록한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연말 결산 또한 그중 하나일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내가 뭘 했는지 완벽하게 리스트업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이 주는 만족감은 상당하다. 떠올려보면 단순 기록이란 얼마나 간단한 것인가. 별다른 내러티브나 패러프레이징 없이 단지 일 년 동안의 행적을 빠짐없이 적어 내리는 것만으로 망각되기 전에 뭔가를 기록했다는 안도감과 사적 아카이브를 조금 더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주어진다.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자기 기록과 가공되지 않은 정보의 범람. 연말 결산은 매년 반복되고 당신의 과거는 매년 쌓여갈 것이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책, 올해의 소비… 당신의 취향은 중첩되고 제련될 것이다. 당신의 책은 방 한구석에 쌓여갈 것이다. 당신의 소비는.json으로 파싱돼 통신사 클라우드에 저장될 것이다.

  절망은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정리되지 않은 아카이브가 과적(過積)될 때. 망각되는 데 실패한 당신의 과거가 창고 한 구석에서 쌓여갈 때. 활자의 형태로 살아 숨 쉬는 당신의 모든 흔적이 당신을 응시할 때. 완벽해지고 싶을 때. 그러나 통제를 벗어날 때. 규모가 커질 때. 감당할 수 없을 때. 정리할 수 없을 때. 압도될 때. 내버려 둘 때. 그리고 포기할 때. 역설적이지만, 아카이브가 쌓이면 쌓여갈수록 아키비스트는 절망하고, 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글의 완성은 지연된다.

(3)

  요컨대 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울음 사이에 어떤 강력한 유비를 설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1. 잔뜩 주문한 신간 도서 박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사서.
  2. 자소서에 스펙만 나열했는데 500자 제한을 넘겨 울며 겨자 먹기로 스펙을 하나씩 지우는 취준생.
  3. 리좀 총서 옆에 꽂아놓기 위해 12만 원 내고 울면서 <<에크리>>를 구매한 대학원생.
  4. 청소하기 싫어서 우는 자취생.

  취향의 과적, 스펙의 과적, 이론의 과적, 음식물 쓰레기의 과적. 중요한 건 이 모든 울음이 포기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사서는 도서 박스 안에 담긴 책을 전부 읽지 못할 것이고 취준생은 스펙만 있지 내용이 없어 서류 심사에서 탈락할 것이고 대학원생은 에크리를 읽을 수 없을 것이고 자취생은 방을 치우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적과 포기의 경험 속에서 새로운 주체가 도래한다.

  당신은 “스펙이 너무 많아 자소서를 쓰지 않기로 결정한 주체”의 형상을 믿을 수 있는가?

  푸코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기업가적 주체를 양성하는 모습에 우려를 표했지만 내가 보기 에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시장 경쟁에서 자연스레 도태돼 상장 폐지된 주체가 일체의 자기 PR과 경제생활을 포기하고 사서와 수집가의 정체성으로 침잠하는 희극적 모습이다. 사회에 자신을 기입하려는 모든 큐레이션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도피해 자폐적인 아카이빙의 세계에 만족하고 머무르는 주체가 탄생한다. 그들은 스펙을 쌓지만 취업을 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지만 시험을 보지는 않는다. 서지 목록을 만들지만 논문을 쓰지는 않는다. 책을 읽지만 글을 쓰지는 않는다. 일기를 쓰지만 자서전을 쓰지는 않는다. 대화 내용을 녹음하지만 녹음을 듣지는 않는다. 매일 가계부를 쓰지만 카드값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모으지만 정리하지 않는다. 만들지만 판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소서를 쓰라는 요구는 차라리 모욕인 것이다.

  창고에 가득 쌓인 먼지 쌓인 골동품은 매대에 전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절망한 주체는 큐레이션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가끔 골동품 중 몇 개가 개인 블로그라는 최악의 방식으로 소집단 내부 이웃에게 판매된다. 주체의 죽음과 동시에 과적된 아카이브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아무도, 심지어 그것을 만든 자기 자신조차도 다시 펼쳐보지 않은 아카이브가 문밖으로 흘러넘친다. 그리고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헌책방 주인은 책을 트럭에 실어 헐값에 팔아넘긴다.

  이런 “(자소서를) 쓰지 않는 주체”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작동해야 한다. 조금 게으르지만 조용한, 이 지극히 한심하고 겸손한 주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 어쩌면 마법같은 단어들을 소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안-학계, 공동체, 패트론, 지원금.

(4)

  늦기 전에 나는 K의 말을 듣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연말 결산에 매달리기보다는 앞으로 내가 뭘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 년 동안 뭘 했는지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내가 202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세미나를 하다가 수술을 하고 수혈을 받고 재수술을 하고 연애를 새로 시작했는데 이내 휴학해서 군대에 갔고 총을 쏘다가 관창을 잡고 오기로 소방서에 잔뜩 쌓아놓은 과적된 데리다 책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크리스마스 날 복귀해서 지금은 당직 근무 중 책을 읽다가 결국 포기하고 상황실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정말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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