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혁_구조로서의 기호

조남혁

싫어함의 욕구는 자유에 대한 지향이다. 좋아함의 욕구는 내가 좋아하는 대상 역시 나를 좋아하길 바라는 욕구를 수반한다. 즉 상호적으로 귀결되고 해소된다. 반면 싫어함의 욕구는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나의 주체적 행위로 해소된다. 그 틈에 대상의 의지는 배제되어 있다. 싫어하다는 대개 나와 타자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타자가 가진 나와의 차이점을 검토해 증오하는 과정이다. 배제된 이방인은 배제한 주체에게 결여된 모든 점의 집합이다. 나와 차이 있는 타자에 대한 능동성의 발휘, 증오는 가장 강렬한 주체성의 표현이다. 이 때문의 증오할 자유는 가장 주요한 자유가 된다. 증오할 자유는 곧 주체적일 자유다. 증오를 통하여 개인은 특수성을 점유한다. 증오할 자유의 보장은 개인의 야생성을 적절히 해소하는 사회 체계다.

그러나 현대는 개인의 증오를 억제한다. 증오의 억제는 갈등을 최소화하므로 효율적이다. 집단이나 사회의 원활한 구동을 위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현대의 개인에게 보장된 유일한 자유는 ‘좋아요’의 자유다. ‘좋아요’하거나 ‘좋아요’하지 않을 자유만 잔존한다. 강박적 긍정성은 억압으로 작용한다. 긍정의 취향을 강요받는 현대인은 이에 신물을 느낀다. 주체성이 억압되었고, 이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증오의 배설이 간절하게 된 것이다. ‘좋아요’하지 않을 자유 이상의, 싫은 대상이 싫다고 표현할 자유, 이 자유의 지향은 소수자를 향한다. ‘나’보다 입지가 약한 소수자는 ‘나’의 주체성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대상이다. 소수자에게 끊임없이 배설해도 내게 반환되는 피해가 적다. 나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위해를 가하는 상사와 달리, 소수자는 주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이는 소수자의 주체성이 사회에 의해 철저히 침식되었기 때문이다.

다수자의 개인적 충동에 의해 퇴적된 증오는 혐오가 된다. 혐오는 감정이 아니다. 이 지점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혐오는 감정이 아닌 구조다. 감정에 그쳤던 증오와 달리, 혐오는 견고한 구조로 구동된다. 혐오를 감정으로 이해하는 이견에 의해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혐오의 문제는 기이한 논점으로 흐른다.

의정부고가 지난 2020년 8월 3일에 공개한 졸업 사진 중 인종 차별 논란이 인 관짝소년단 패러디 사진, 사진출처

얼굴이라는 기호

2020년 의정부고의 ‘관짝 밈’ 패러디는 뒤틀린 논점으로 흘렀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 사진을 코스프레/패러디 후 촬영하는 해당 학교의 문화는, 2020년 ‘관짝 밈’ 패러디에 이른다. 고인을 슬프지 않게 보내고자 관을 들고 춤을 추는 문화가 인터넷 사회에서 밈으로 변한 것이 ‘관짝 밈’이다. 이 영상 형태의 밈은, 게임에서 스트리머·유튜버가 죽은 상황 등 뭔가 어긋난 상황에 이어서 나타나는 방식으로 쓰인다. 문제는 의정부고의 학생들이 이를 패러디할 때 얼굴을 검게 칠한 탓에 발생한다. 이에 관해 혐오의 문제가 발생한다. 얼굴을 검게 칠하는 행위는 인종의 문제에서 흑인을 희화하하는 연극에 근간을 둔다. 그러나 기이한 논점은 학생들의 행위는 단순한 패러디이며, 차별의 소지와 악의가 없었고, 여기에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되레 폭력이라는 이견을 보인다.

혐오는 악의에 기반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억압 구조에 편승하는 행위다. 흑인에 대한 기존의 인종차별적인 증오가 축적되어 혐오로 구조화된다. 이후의 개인은 사회를 답습하며 개인적 증오 없이 이 구조에 포함된다. 즉 의정부고의 사례는 악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철저히 혐오 구조에 기반한다. 여기서의 혐오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혐오를 부인할 수 없다. 반영된 혐오와 무지에 대한 설명은 이 짧은 논의로도 충분하다.

유튜브와 영상 매체에서의 밈은 짧은 클립이다. 크리에이터가 제작한 상황과 밈의 맥락이 맞아떨어질 때 유머가 생긴다. 밈에서 밈에 등장한 대상은 크리에이터적 주체성보다 맥락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밈은 기호다. 개인적 맥락을 포함한 미시적인 기호다. 반면 스킨 컬러는 단순한 색 이상으로 박해받은 인종의 역사를 함의한다. 역사적 맥락을 포함한 거시적 기호다. ‘나’와 다른 얼굴의 색은 강력한 타자성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일종의 상태다. 백인과 황인이 보고 있는 흑인의 얼굴은 백인과 황인이 대상화해온 피해의 역사를 발화하는 얼굴이다. 흑인이 보는 백인과 황인의 얼굴은 대상화 받아온 가해의 역사를 감추지 못하는 몽타주다. 마찬가지로 백인과 흑인이 보는 황인의, 황인이 보는 백인과 흑인의 얼굴도 맥락이 같다. 즉 의정부고의 분장은 이 끔찍한 혐오를 간과한 바다.

패러디는 그 대상에게서 리얼리티를 추출해내는 행위다. 여기서의 리얼리티, 실재성은 편집된 이후의 남은 것만을 뜻한다. 편집된 특징을 잡아서 흉내내는 것이 패러디의 모방이다. 이때의 특징은 대상에 관해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정의한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대상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 사회가 기호성을 의도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패러디는 보다 행동스러운 방식의 은유다. 은유 작업이 발생하면, 본래 기의(패러디·은유 행위의 대상)와 기표 1(기의가 가진 기존 프레임이자 기호성―예를 들어 물을 프레임화하는 ‘물’), 기표 2(은유 작업자가 의도적으로 부여한 기호성―이때의 기호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함)가 공존하게 된다. 기표 1은 기의를 잃어 무용한 기호가 되고, 기표 2는 본 역할을 떠나 다른 쪽으로 취업한다. 또한 기의는 특징화·속단·잘라내기의 폭력을 받는다. 즉 은유 작업이 물론 대상의 온전한 이해를 표방하고 있지만, 대상의 다면성을 획일화하는 폭력임은 외면할 수 없다. 비폭력적 은유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밈과 얼굴의 논의로 돌아온다. 해당 사건의 ‘관짝 밈’은 기의(영상의 실제 인물) / 기표 1 (관짝을 들고 추는 춤) / 기표 2 (밈)을 포함한다. 블랙페이스는 기의(생물학의 피부 색) / 기표 1(흑인이라는 주체의 정체성) / 기표 2(희화화된 연극)을 포함한다. 전자는 물론 언어적 폭력성을 갖고 있지만 밈인 반면, 후자는 실제 폭력이다. 이는 전자가 기표 1을 기표 2로 치환한 작업인 반면에 후자는 기의를 기표 2로 치환했기 때문이다. 패러디는 기표 2의 밈에서 특징을 가져와 이루어져야 한다. 기표 1이나 기표 2, 다시 말해 행위나 밈 자체를 모방해야 옳다. 그러나 의정부고의 패러디는 기의, 실제 인물을 획일화하는 폭력 작업이다. 춤을 춘 실제 인물에게서 그들이 추출한 특징은 눈의 모양도, 성격도, 몸짓도, 버릇도 아닌 피부 색이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2020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몸이라는 기호

 2020년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은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출근했다. 몸에 편한 옷을 고른 이 행위가 비판받는 기이한 사태가 발생한다. 비판은 국회의원으로서의 복장 예절에서 시작되어 ‘유흥 접객원의 옷’이라는 여성혐오로 오염됐다. 2020년 한국 사회는 철저히 혐오 구조에 편승한다.

몸은 얼굴보다 빈번하게 대상화된다. 얼굴에 들이미는 폭력적 이분 기준은 ‘잘생김’과 못생김‘이다. 그러나 몸에 들이미는 기준은 ’뚱뚱한‘과 ’마른‘ / ’작은‘과 ’큰‘ / ’넓은‘과 ’좁은‘ 등 무수하다. 이는 물론 얼굴이 포함하는 기관과 몸이 포함하는 기관 수의 차이 때문일 수 있지만, 인간의 신체가 진화/번식의 측면에서 억압받음을 시사한다. 앞서 말한 신체의 척도들은 타자에 대한 인간의 성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개인적 욕망이 사회로 확장되어 억압적 기준으로 작동한다. 특히 여성의 신체는 여성혐오 구조로 인해 철저히 대상화된다. 이 억압에 의해 복장이 몸을 대상화하게 된다. 자기 발화의 수단인 의복이 억압의 표상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의복으로서 표현하고, 의복으로서 기준에 맞추며, 의복으로서 특징화된다. 이 역시 여성의 의복은 그 경우가 더하다. 류호정 의원에게 가해진 모멸 중 ‘유흥 접객원의 옷’이라는 잣대는 여성의 의복을 대상화한 저급한 시각이다. 입은 복장에 부여된 저급한 시각에 의해 여성의 신체와 여성 본인은 판단 받는다.

편한 원피스를 고른 개인 취향이 국회의 권위를 해체하고자 하는 혁명적 시도로 수용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가 얼마나 팽배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기의(원피스를 입은 행위)는 기표 1(권위를 해체하는 시도)를 거쳐 기표 2(여성혐오의 시각)르 치환된다. 이 폭력성 역시 기표 1보다 기의에 먼저 폭력을 가한 결과다. 한국 사회가 기호 1에 먼저 집중했다면 권위에 대한 유효한 논의가 생겼을 것이다. 이는 블랙페이스의 폭력성이 생기는 과정과 같다.

류호정 의원에게 가해진 폭력성은 일상 선택의 미시성(기의)에 거시적인 잣대(기호 2)가 가해진 일이다. 또한 행위가 포함한 정치적 맥락(기호 1)에 여성 의원의 무지라는 미시 잣대가 억압으로 작용한 일이다. 의정부고의 학생들이 행한 폭력은 미시적 맥락(춤을 추는 실제 인물의 개인성)에서 거시적 속성(피부 색)만을 추출해낸 일이다. 그들을 옹호한 한국의 사람들이 행한 혐오는 거시적 맥락(인종의 역사)을 미시적 맥락(밈)으로 바꾼 일이다. 뒤바뀐 거시와 미시의 치환 방향, 이 이중잣대는 한국 사회의 혐오가 구성되는 과정이다.

소수자의 일상과 개인성은 ‘소수자를 소수자로 구조화하는’ 특수성으로 바뀐다. 미시적 개인으로서의 인물은 소수자라는 사회가 부여한 거시 논리에 억압당한다. 이것이 1차 혐오가 구성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구성된 거시적 1차 혐오에 사회와 집단은 유연성을 부여한다. 별 게 아닌 일·일상·유머라는 미시 논리가 1차 혐오의 범죄성을 희미하게 하고 면죄부를 준다. 사회 ⇒ 소수자의 기호는 유지하면서 소수자 ⇒ 사회의 기호는 부수는 교묘한 2차 혐오다.

싫어할 자유에 대한 취향은 이 혐오 역시 취향의 논리로 접근하도록 유도한다. ‘나는 싫어할 자유를 가졌음’이라는 인식이 소수자에게 적용되며, ‘나는 언제든지 싫어할 수 있지만 지금은 싫어하지 않으므로 무결함’으로 설계된다, 자유는 평등의 선행 다음으로 보호받을 요소다, 절대적 가치일 수 없다. 구조의 영향이 있을 때 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타자에 대한 침해로 완성된다. 이때의 모든 자유는 곧 억압할 자유다. 나는 타자에 대한 가해성으로 존재한다. 타자는 윤리적 자극이 아니라 폭력을 받아내는 도구로써 나의 주체성을 만든다. 기호정치의 시기에 각 개인은 타자에게, 다시 말해 타자는 각 개인에게 기호로 표상된다. 이 기호는 곧 도구다. 나에 대한 타자의 이용가치, 타자에 대한 나의 이용 권한을 기호가 만든다.

배제된 소수자는 배제한 사회에게 부족한 모든 점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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