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백색검열에 대한 입장문

이 글은 PONG과 크리틱-칼에 동시에 게시된 엄제현 님의 글 <백색검열>에 대한 크리틱-칼 발행인 홍태림의 입장문입니다.

엄제현 님의 글 <19) 망가F타로의 죄와 벌 독해>와 관련하여 저에게 지적해 주신 3가지 측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을 드립니다. 또한 답과 함께 차후 크리틱-칼의 운영계획도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1. 저작권 문제와 관련한 도판 삭제
도판 저작권 문제는 국내 저작권법 상으로는 일부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문제가 안 되지만, 엄제현 님이 사용하려는 도판이 일본 출판물이기 때문에 국내 저작권법 가이드라인이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 사안과 관련하여 의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저작권위원회 측을 통하여 명확한 근거를 확인한 후 엄제현님과 논의를 이어나가지 않은 점은 편집인으로서 안일할 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저작권위원회 상담창구를 통하여 이런 케이스가 저작권법 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2.청소년 관람불가 도판 삭제
저는 엄제현 님의 <19) 망가F타로의 죄와 벌 독해>에 포함될 도판들이 청소년 관람불가에 해당할 정도의 수위라고 판단했습니다. 크리틱-칼 이용자 중에는 소수지만 청소년도 존재합니다. 게다가 크리틱-칼이 워낙 영세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성인인증 기능도 없기 때문에 19금 관람불가라는 경고문을 넣거나 혹은 도판의 링크화를 통하여 도판이 바로 보이지 않게 하더라도 청소년이 도판을 열람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원고에 포함된 도판들을 빼고 글을 게시하는 것을 대안으로 엄제현 님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엄제현 님은 도판이 없으면 본인의 글이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없으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투고를 포기하겠다고 해서 결국 투고가 무산이 되었습니다.

3. 원고 내 몇 가지 표현 순화
당시에 제가 엄제현 님에게 조율을 요청한 단어는 ‘질액’, ‘매춘부’, ‘도끼자국’입니다. 세 가지 중 첫 번째 단어에 대한 순화 요청은 당시 제가 심신이 지쳐있던 차에 판단력이 떨어짐에 따라 조율의 대상으로 고민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율 사항들에 휩쓸려서 문제를 삼은 경우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히 투고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엄제현 님에게 사과를 드리고 싶고 반성하는 바이며 이런 판단을 반복하지 않도록 언제나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전자의 경우와 달리 후자에 해당하는 ‘매춘부’, ‘도끼자국’의 경우는 성평등 관점을 고려하여 조율을 요청한 경우입니다. ‘매춘부’의 경우는 여성이 돈을 받고 자신의 몸을 판다는 의미만이 부각되어 법률 용어로도 사용되는 성매매 여성으로 순화해야 한다는 성평등 운동의 흐름을 고려했으며 ‘도끼자국’은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한 단어라고 생각하여 이 두 단어를 원래의 의미를 보존할 수 있는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것을 엄제현 님에게 요청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는 공권력의 영역은 물론이고 크리틱-칼과 같은 민간 영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에 후자의 요청 역시 엄제현 님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편집자로서 원래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성평등의 흐름에 입각한 언어가 사용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있었기에 저는 엄제현 님에게 후자의 단어들에 대하여 조율 요청을 했습니다. 즉 무엇을 우선 시 해야 하는가라는 갈림길에서 저는 본래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성평등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한 표를 던진 것입니다. 저는 이 지점이 표현의 자유와 성평등과 관련된 사회적 합의의 흐름이 충돌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을 더 고민해보면 이 충돌 지점은 모든 글을 받는다는 크리틱-칼의 기조가 모순에 빠지는 점이기도 합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모든 글을 받지만 성평등이나 차별과 관련하여 고려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율이 이뤄질 수 있다는 보정을 해야 할 것인데, 이러한 보정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크리틱-칼의 실험이 이제 한계점에 왔음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리틱-칼을 8년간 저 혼자서 운영해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적으로 여러 삶의 무게를 감당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 이런 한계점을 혼자서 돌파할 여력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만간 연락이 가능한 후원자분들에게는 연락을 드려 정기후원을 전부 종료한 후 남은 후원금을 새로운 투고자들의 원고료로 모두 소진할 때까지만 크리틱-칼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운영이 종료된 후의 크리틱-칼은 더 이상 새로운 글을 받지 않고 기존에 투고될 글을 열람만 할 수 있는 아카이브 사이트로 계속 유지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신(2021.7.7)
매체가 정기후원 종료 및 운영종료 후 반영구 아카이브 모드로 전환되기로 한 상황에서 기존에 투고가 예약되었던 원고들 외에 후원금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추가로 투고를 받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기존의 계획과 달리 발행이 예약되었던 글 이후로 추가 투고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근래에 정기이체 후원을 해주신 분들 중 연락처가 확인된 분들에게는 2021년 7월 5일에 기존 후원계좌가 해지된 후 잔액이 사후관리용 계좌로 이동되었다는 점과 후원계좌가 해지되었기 때문에 이후로 자동이체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예약된 글들이 모두 발행된 후 남은 후원금이 매년 도메인+호스팅 비용(약 7만원)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과 원하신다면 3개월치의  후원금을 돌려드릴 수 있다는 연락을 드릴 예정입니다.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정기후원을 해주신 분들께서는 redzzongr@naver.com으로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카이브 사이트로 전환된 이후로도 후원금 내역과 후원금 사용내역은 다음의 링크에서 계속 확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