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산_지성계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증상으로서의 김지훈

정강산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푸른 것은 삶의 황금 나무라네
-J. W. 괴테

(…)비평가의 주된 임무는 대중의 문화적 해방에 참여하는 것이다(…)
-T. F. 이글턴


무주공산으로서의 미술 혹은 간/탈 학제의 보루

70년대 이후 미술은 간 학제의 원류와도 같았다. 그것은 작품생산에서부터 작품분석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관측되는 것이었다. 요컨대 작가는 이런 저런 영역과 매체들을 횡단하며 박식함을 뽐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비평가 또한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내지 과학, 사회학, 정치학 등을 비롯한 다양한 학제들을 적극 참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소비사회에서 상품미학이 미를 전유함에 따라 미술의 대상이 공백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미술이 스스로의 대상을 확장시켜낸 결과이기도 했고, 미술해석의 체계가 여타의 인식론적 수단들에 비해 느슨했던 만큼 여러 학제가 편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포스트모던 특유의 혼성성과 납작함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미술사학자나 예술학자가 아니더라도 미술에 대해 나름의 소견을 내놓는다거나, 미술의 분과 내에서도 타 학제를 끌어들여 레퍼런스를 삼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학제간의 융합은 일찍이 미술을 넘어 관변의 이데올로기가 될 만큼 닳고 닳은 것이기도 하지만, 유독 미술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미술의 반 체계성과 소프트함을 자조하며, 어떤 체계적 학에 대한 선망을 가진 채 미술을 벗어나거나, 전일적인 조형성과 질료 자체에 대한 모더니즘적 탐구의 위상을 강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이 여타 학제와 마찬가지로 확고한 체계와 방법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차별한 동일성 하에서 미적반영에 대한 몰이해로 나아가는 것이고, 현재의 미술이 처한 객관적인 조건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과거를 희구하는 것은 퇴행이 될 것이다.

외려 우리는 이러한 ‘조건으로서의 개방성’을 이해할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여기서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미술의 개방성과 반 체계성은 외려 미술의 존재론적 급진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새로운 주장이 아니며, 다다를 비롯한 아방가르드의 반 미학에서, 도구적 이성과 동일화하는 사고로부터 벗어나는 예술의 무용성에 대한 아도르노의 찬미에서, 슈퍼플랫에 대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환영에서, 대중성에 관한 최정화의 집착 등에서 보존되어온 것이다. 여타의 학제가 그 자신의 물화된 방법론으로 치달아 역설적으로 실재로부터 멀어질 때, 미술은 그 질료의 무규정성과 미결정성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향해 열려있으며, 변화하는 실재를 즉각 따라잡는 유연함을 보전하면서, 그 자신을 세계에 대한 모종의 ‘주장’으로서 정립하고자 해왔으며, 결정적으로 미술이 포스트모더니티의 다성성과 반 학제라는 합리적 핵심을 내화시킬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와 같은 미술의 존재론적 성질에서 기인한다. 미적 반영이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사생하면서도 세계에 없던 것(내지 충동)을 만들어내는 바, 그 존재 자체로 열려있는 무궁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1)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미술은 더욱더 철저하게 무주공산이 되어야만하며, 간/탈 학제적 방법론에 기대야 하고, 미술 아닌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역사화 되어야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성취하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했던 바의-예술의 지양, 예술의 자기폐지, 세계의 예술화라는 기획이 의미하는 바이기도 한데, 당연하게도 이는 근대의 물화된 분할들을 폐지할 것을 요청하는 바, 미술, 예술을 넘어 세계의 제 분할의 폐지로 나아가는 실천을 암시할 것이다. 요컨대 미술은 그 자체로 모든 근대적(자본주의적) 분업을 비판할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동시대 미술이 학제로 소급되지 않는 실재와 유효하게 관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전제 하에서다.

이와 같은 지평에서, 미술계 언저리를 맴도는 김지훈의 작업에 나름의 의미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필름 이후, 스크린 영사 이후, 극장 이후 등을 아우르는 포스트시네마의 기술적 조건을 탐구하며, 그 종별적 계기로서 무빙이미지에 주목하여 동시대적 이미지 생산과 수용 및 존재론을 규명해왔다. 그가 때로 미술계 근처에서 발언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영상) 설치와 같은 동시대미술의 지배적 방법론에서 ‘무빙이미지’의 측면이 관측된다는 점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바로 앞서 언급한 미술특유의 개방체제에서 연원한다. 김지훈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미술의’ 학제 행사에 꾸준히 스스로를 자천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방성에 그 자신이 적지 않은 수혜를 입었음에도 불구2)하고, 그는 분과학문의 사도를 자처하며 필요에 따라 포스트모더니티의 긍정성을 취사선택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본 글에서 나는 김지훈 및 다른 학제에 있지만 그에 수렴하는 지적 경향들을 살펴보며, 그들을 그람시적 의미에서의 유기적 지식인 모델의 상실 징후이자 퇴행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퇴행을 가능케 하는 객관적인 조건을 비판하려 한다.

이하에서 인용되는 김지훈의 발언에는 그의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제한적 공개로 써놓은 글귀들이 포함된다. 나름대로 수신자를 제한해 둔 그의 의도가 무색하게도, 주장자체가 문제적이라면 얼마든지 공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니와, 김지훈 그 자신이 동시대의 편재하는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적 위상에 대해 공부했던 이상, 이미지로서의 sns 타임라인 피드가 갖는 복제성과 전파력에 대해 충분히 감안한 채 주장을 개진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사료의 적나라함과 내밀함은 기꺼이 감수하기로 한다. 김지훈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김지훈의 인격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김지훈의 “퍼포먼스에 대한 비판”으로서, 부디 이것을 “타자의 인격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하고 그걸 뒷담화로 mis-labeling”3)하지는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지훈의 분열증

Studies in Philosophy and Education에서 이택광이 David R. Cole, Joff P. N. Bradley 등과 공저한 “A Pedagogy of the Parasite”을 두고 김지훈은 다음과 같이 쓴다:

“철학이나 비판이론, 사회비평 등 자기 물에서만 놀라고요. 괜히 영화나 미술 건드리지 말고요. (…)큰 학제에서 자기 학제의 대상과 사유만 건드려도 충분한 거 아닌가. (…)정말 문사철 저 큰 학제들의 영화 및 기타 예술에 대한 패악질은 내가 90년대 후반부터 목격했던 건데 모습은 바뀌어도 나아지는 게 없네(…)”4)

다른 한편 그는 서동진의 평론 “노엘 버치가 “생각했던” 에세이 영화”와 “시네마 이후의 이미지: 자본주의적 추상은 재현 가능한가”를 겨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디스포지티프] 목차 보니 자꾸 에세이영화 건드시는데 이분이 이러시면 안된다는 건 다른 글은 둘째치고 작년 SEMA 타이틀매치전에서 여실히 입증. (…)에세이영화를 자꾸 주제의 차원에서 정치영화로 환원시키는게 rock의 신화화와 다른게 뭔지. 자신이 속할 학제에서 판을 확장하거나 문제삼지 못하는 비평가로서의 한계.”5)

“포스트-시네마 개념의 풍부한 결들을 일부만 제대로 읽지도 않고 저렇게 감각적, 현상학적으로 환원하고 비판적 리얼리즘의 대당으로 허수아비화하는 저런 혹세무민을 적어도 영화미디어학 제대로 하실 분들은 정말로 경계하셔야 합니다. (…) 저는 인격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저런 게 싫은 거에요. 저 분은 자기계발의 테크놀로지나 사변적 실재론에 대한 주석 이런 것만, 즉 잘 하실 것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건 거절했어야죠. 거절 못하는 건 평론가 악습 못버리는 거고. 학자는 자기 학제 아닌건 거절해야 해요.”6)

보다시피 여기서 학제를 수호하고자 하는 김지훈은 간 학제적 관심에서 횡단적 작업을 하는 자들을 향해 증상적이리만치 집요하게 어떤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이택광과 서동진의 접점이 있다면, 그들이 좌파라는 점, 문화비판적 작업을 거점으로 학제를 넓히거나, 혹은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을 축으로 소여의 학제적 분할을 무화시킨다는 점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는 의미심장한 반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지훈이 도마에 올린 이택광의 논문은 교육 철학 내지 페다고지적 측면에서 봉준호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텍스트로서 지니는 함의와 유효성을 논의하는 것이기에, 영화적 학제를 부적절하게 전유하려는 한다는 혐의를 씌우기엔 무리가 있다.7) 서동진의 발표문 또한 포스트시네마, 혹은 보다 넓게는 포스트미디어의 논의들이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으로 편중되는 객관적인 경향을 지적하며, 그러한 매체철학적 사변에서 누락되고 있는 사회적 층위를 상기하고 그러한 ‘필름에서 무빙이미지로의 전환’이 기대고 있는 초월 불가능한 실재가 무엇인지 추궁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세무민”이라기보다는 제임슨적 의미에서의 ‘역사화’에 가깝다.8) 마르크스주의적 문화 ‘비판’의 논의에 리터러시가 없는 이들에게 필시 그와 같은 접근이 혹세무민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지만, 김지훈은 나름대로 열린 학제를 전공한 대학의 교수로서 프랑크푸르트학파 이후 이어져온 변증법적 비판의 기본적인 구도를 섭렵했을 것이라 짐작된다(물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농후해 보이지만 말이다). 김지훈의 주장이 그저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않고 나온 기계적인 반응이 아니라면, 그것은 필시 보다 심원한 층위에서 연원한 증상을 체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소프트한 학제를 전공한 자의 피해의식인가(영화학/영화미디어학의 반 체계성에 대한 자포자기)? 생존을 위해 권역을 지키며 곳곳에 냄새를 묻히는 원초적인 영역동물의 행태로의 퇴행인가(신자유주의적 주목경제 시대의 지적 자원배분에 대한 독점욕)? 혹은 아도르노가 경고한 바의 계몽의 역설이자 탈주술화의 주술화라고 할법한 것인가(학제 내에서 물화된 도구적 이성의 일종)? 그러나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그의 이러한 ‘학제수호의 의지’가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듯한 모습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우선 김지훈 본인이 스스로 학제를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무빙 이미지 미술에 관한 국제컨퍼런스를 MMCA에서 여는 것이 2-3년 전부터 구상한 내 기획이었다. 영화학/미술사학자뿐 아니라 큐레이터까지 초청해서 국내 젊은 큐레이터 대상으로 무빙 이미지/미디어 큐레이팅에 대한 워크숍도 열고. (…)언젠가 MMCA또는 그 급의 외부 기관에서 이와 같은 컨퍼런스를 구성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아웃소싱해주면 2022년 이후 해 볼 수는 있겠으나(…), 별로 그럴리는 없어보이고.”9)

여기서 그는 필시 포스트시네마에서의 영화학이라는 자신의 태생적 분과를 과감하게 횡단하여 ‘무빙이미지’로서 미술계(무려 국립현대미술관이다)와의 교접을 넓히려 하는데, 이는 미술계에서 미니멀리즘 이후 전면화된 설치(installation)의 방법론이 뉴미디어 및 퍼포먼스와 관계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어 온 ‘무빙이미지의 미술적 종별성’의 맥락을 전혀 모른 채 기꺼이 행해진 결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미술의 무주공산적 위상을 긍정한다는 차원에서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지적 윤리의 일관성에 대한 것이다. 일찍이 한 칼럼에서 포스트 시네마적 조건에서 영화 자체의 학제적 모호성을 인정하며 그 유연함을 미덕으로 셈한 바 있던 그가,10) 위와 같이 스스럼없이 미술계와의 교접을 늘리려는 그가, 자신의 ‘학제’에 대해서 만큼은 유독 즉자적인 면역학적 반응을 보이는 까닭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지훈의 분열증을 마주하게 된다.

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진단은 글의 후면으로 넘기되, 1차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그의 지적 불철저함에서 연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지훈은 이런 저런 지면을 통해 동시대 다큐멘터리의 흐름을 선도적으로 추적해 온 에리카 발솜(Erika Balsom)을 추종해 왔는데, 발솜은 물질적 사실성에 대한 천착 및 순진한 과학주의로 소급되는 고전적인 리얼리즘적 다큐멘터리 전통과 이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구성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던한 전제의 신 다큐멘터리 경향 양자를 비판하며, 탈진실 및 진실의 구성성이 모종의 기본 값이 되어버린 동시대에서는 렌즈기반 포착의 객관성에 근거하여 새롭게 사실성을 수립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이를 뒷받침할 작업들을 백업해 온 바 있다.11) 당연하게도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다큐멘터리적 실천을 특정한 방향으로 조건 지은 객관적인 작인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티에 대한 인식이다. 달리 말해 포스트모더니티의 제 조건에 대한 명징한 인식이 없다면, 발솜이 주목하는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양태 또한 도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김지훈은 발솜의 핵심 주장을 철저히 파악하지 못했기에 -발솜이 다큐멘터리의 내적 전환의 중요한 계기로 삼은 바 있는- 포스트모던의 특징이 또한 학문을 학제의 바깥으로 해방시키는 데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학제의 경계 상실 자체는 제임슨이 텍스트화 및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으로서 무려 약 40년 전에 파악했던 계기이기도 하다.12) 옳게도 제임슨은 이들을 후기자본주의의 물화 효과이자 작인으로서 총체화하려 했지만, 그것은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내재화 하고 있는 계기로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13) 이러한 맥락에서, 김지훈이 스스로 독해하는 텍스트를 보다 깊이 읽었더라면 학제의 문제 앞에서의 분열증은 아마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달콤한 ‘무빙이미지’의 존재론

이와 같은 분열증 속에서, 김지훈은 학제적 분할을 수호하려는 자로서는 용감하게도 ‘미술대학 교수’인 서동진과 ‘미술전공자’인 함양아의 작업을 두고 기꺼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북서울미술관 1층 전시실의 한 작품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기도하고 후지기도 하고)네. 물론 다른 메인 작품도 전작에 비해 큰 도약을 이룬 건 아니지만. 나중에 좀 더 자세히(정식으로 쓸까 말까) (…)하나의 암시: 파로키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왜 탁월한 작품인지를 일깨우는 반면교사.”14)

서동진의 <기억-인터네셔널>(2020)을 겨냥한 “문제적이(기도하고 후지기도하고)네”라는 감상의 근거는 그가 추후 공식 지면을 통해 밝히길 기다려주도록 하되, 함양아의 <정의되지 않는 파노라마 3.0>(2020)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일전에 이미 함양아에 대한 평론을 쓴 적이 있는데, 위의 인용구는 해당 평론과 연동해서 읽어야 한다. 당시 김지훈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작품의 제목과 달리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과 〈주림〉은 미디어로서의 파노라마가 갖추어야 할 360도 조망을 제시하지 않고 간헐적인 형상의 교체와 일부 형상의 미세한 움직임만을 포함한 평면적인 타블로처럼 보인다. (…) 이 두 작품은 기술적, 미학적 한계를 뚜렷이 보인다. 작가가 디지털 합성에 근거한 콜라주 기법을 향후 작업에서 연장하고자 한다면 (…),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15) 이것이- 다만 질료적 기준이 디지털로 전환되었을 뿐, 모종의 원형적이고 이상적인 미학적 존재론을 설정한 채 만듦새의 측면에서, 디지털 콜라주(이미지)의 완성도와 관련하여 이뤄지는 고전적이고 일차원적인 비평이었다는 점은 더 상론하지 않기로 한다.

김지훈의 요지는 한 마디로 함양아의 작업에서 파노라마라는 형식이 충분히 재현되지 못했으며, 요소들의 움직임이 미세하고 정적이기에, 무빙이미지의 지지체가 되는 디지털적 존재론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여기서 디지털 무빙이미지의 활용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함양아의 <주림>과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을 관통하는 주제는 파노라마적 형식의 완벽한 구현과 디지털 무빙이미지의 매체특정적 조건을 실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외려 매체의 존재론적 맥락을 최소한으로 절제한 채, 사회에 대한 지적 탐구의 결과를 다이어그램화시키는 것에 가깝다. 문혜진의 함양아론은 이러한 지점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데, 요컨대 함양아에게 있어 “ (…) 내밀한 감성과 직접적인 감각을 추구하던 (…) 작업은 2002년경 커다란 전환을 겪는다. 자신을 향하던 시선이 밖을 향하게 된 것이다. (…) 2005년 이후의 작업은 각기 다른 사회 체계와 문화의 차이, 이동과 이주 같은 훨씬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쟁점으로 이행한다”16)는 것이다. 함양아의 개인전을 준비했던 양지윤의 소개는 이와 같은 함양아의 이행이 보다 깊은 수준에서 심화되었음을 암시한다: “(…) ‘어디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무엇을 해야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질문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에 닿았고, 함양아는 정치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 질문을 시작했다. 2018년 3월 그것을 스케치로 그려냈다. 스케치는 현재 정치 시스템이 갖는 2차원적 정부 조직도와 이를 위시하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바탕으로 했다. 조직도 안의 인물들과 조직도 밖의 인물들, 성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성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갔다. (…)이를 하나의 화면에 담은 것이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연작이다.”17)

실로 함양아의 작업은 현대 자본주의의 풍속도 혹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조사하며 그것을 이해함직한 것으로 벼려가는 탐정의 수사 보드(Investigation board)로서 이해될 것을 요청하며(이 경우 가능한 비평은 모종의 전체를 재현하고자 하는 충동이 동시대의 세계에서 어떤 지점에서 필연화되는지, 그 미학적 충동은 역사적인 것인지 초월적인 것인지, 혹은 작업을 통해 형상화된 ‘총체’ 속에서 말해지지 않고 있는 것 등을 규명하는 일이 된다), 그의 작업에서 ‘파노라마’는 단지 ‘사태의 전체상’이라는 기의를 가리키는 은유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지훈은 이 점을 살피지 못한 채, 함양아가 ‘파노라마’의 형식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음을 꾸짖고, 이어 “물론 다른 메인 작품도 전작에 비해 큰 도약을 이룬 건 아니”라며- 애초 방향설정이 잘못된 자신의 기존 독해를 고수하고 있다. ‘철저한 사회학적 리서치에 기초한 사태의 다각적인 형상화’라는 함양아 작업의 객관적인 지향과 무관하게,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섬세하게 진행되어온 한 미술가의 작업을 ‘무빙이미지’라는 마법의 열쇠로 난도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역시 이를 두고 ‘김지훈이 자신의 역량도 파악하지 못한 채 타 학제에서 패악을 부린 결과’라 여기는 것은 지양해야 할 독법일 것이다. 여기서 외려 문제가 되는 것은 앞서 지적했듯 학제를 수호하는 동시에 간 학제를 주장하는 그의 분열증이며, 나아가 매체의 존재론이라 할 법한 그의 이론적 노선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기술적 편향은 그의 주저에서부터 마찬가지로 이어져 온 경향이다. 그는 디지털을 축으로 전면화된 사진적 속성, 영화적 속성, 비디오적 속성의 혼성성 혹은- 필름, 사진술, 컴퓨터 알고리즘, LED의 혼합체에 기댄 하이브리드 무빙이미지의 위상을 오늘날 유행하는 포스트 미디어 담론과 연결 지으며, 디지털-무빙이미지-영화의 삼위일체를 마치 종이와 크레파스를 처음 접하는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게, 그러나 안전하게 그려댄다.18) 그 자신의 탐구대상으로서 공언한 무빙이미지의 근간에 자리하는 현실적인 힘들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채로, 그는 무빙이미지를 다만 매체(론)의 변천사 내부에 한정적으로 가두어 모든 논의를 무빙이미지의 즉자적 존재론으로 환원시켜버린다.19) 그리하여 빌 비올라(Bill Viola)에서부터 데이비드 클레어봇(David Claerbout), 제니퍼 웨스트(Jennifer West)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의 작업은 그들 각각이 주목하는 상이한 실재의 쟁점으로부터 분리되어, 전통적인 매체개념/새로운 매체개념, 아날로그 비디오/디지털 비디오, 구상/추상 등등의 이분법적 존재론의 위상에 따라 협소하게 납작해져 버린다(이는 앞서 언급했듯 김지훈이 함양아의 작업의 지향과 맥락을 깔끔하게 소거해버린 데에서도 관측되는 경향이다).

이를 통해 그는 필시 영화의 제 조건 전체를 다루고 있다고 믿을 테지만, 그의 작업은 영화의 전체가 아니며, 다만 영화의 특수하고도 지엽적인 기술적 편린만을 스치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 대한 그 자신의 입장이 객관적으로 정초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김지훈은 자각하고 있는가? 김지훈의 논의에서 완전히 공백이 되고 있는 부분은 무빙이미지와 다른 실재의 층위들 사이의 관계이며, 따라서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무빙이미지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그가 묘사하는 무빙이미지는 지엽적이지만 구체적이지 않으며, 특수하지만 개별적이지 않다. 요컨대 동시대 디지털적 경험의 기초로서의 인터넷은 군사적 DB를 안전하게 구축시키려는 목적에서 미 국방부 산하의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에 의해 고안된 네트워크를 그 전신으로 두며, 디지털 프로그래밍의 원형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기 위한 연산기계로서의 튜링의 봄브(Bombe)에 기대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나는 무빙이미지의 물적 토대를 구성하는 지지체의 연대기적 시간성과 기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무빙이미지 스스로가 초월할 수 없는- 혹은 무빙이미지 자체를 규정하는 객관적인 장력들에 대한 인식 여부를 묻고 있다. 이 질문이 부담스럽다면, 디지털기술의 강력한 추동력이자 결과로서의 생산의 자동화와 시장의 세계화 및 금융화는 어떤가? 여기서 무빙이미지는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말하는 포스트모던적 시공간 압축의 경험과 관계할 것이다.20) 또는 ‘무빙이미지’로 구성된 인터페이스들을 통해 24시간 가동되는 배달앱과 주식그래프, 노무관리 시스템은 어떤가? 이때 무빙이미지는 조너선 크레리(Jonathan Crary)가 지적한 후기 자본주의적 시간 지배의 파생물로서의 심화된 스펙터클을 나타낼 것이다.21) 정제된 무빙이미지의 천국이라 할 법한 유튜브와 비메오,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플랫폼은? 그들은 무빙이미지가 어떻게 플랫폼 자본주의 하에서 디지털 지대(digital ground rent)의 축적 수단으로 전화되는지를 예증한다. 쿠키 기록을 추적하여 끈질기게 따라 붙는, 무빙이미지로서의 맞춤형 광고창과 팝업창은 또 어떤가? 그것은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가 말한 감시자본주의적 디지털 대타자의 응시가 현현하고 빙의하는 접신의 촉매가 아닌가?22) 김지훈은 무빙이미지의 매체-기술적 존재론이라는 안전하지만 협소한 풀장에서 물장구를 치는 와중에, 현실의 첨예한 파도가 넘실대는 그것의 사회적 존재론에 대해 완벽히 침묵한다. 그로써 그는 무빙이미지의 타율성에 대해 눈감은 채, 무빙이미지의 자율성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영화라는 전체를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그것은 플라톤의 동굴 속에서의 자위에 그칠 것이다.

왜 그는 질료 자체를 조직하는 사회적 지평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항상 작업의 질료에 탐닉하는가?23) 맑스의 표현을 빌자면, 왜 그는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지 못하는가? 가장 유력한 이유는, 사회적 지평에는 정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작품을 규정하는 사회 자체의 매개를 찾는 시도는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으며, 학제라는 자폐성을 넘어 텍스트 외부-실재로 나아가도록 되어있다. 마치 ‘순수 학문적 목적에 대해 항상 물의를 빚을 수밖에 없는’ 벤야민의 상황적 화용론을 가리켜 제임슨이 주장했듯이 말이다.24) 반면 세계와 분리된 자폐적인 영역 속에서 학제적 특권을 주장하기 유리한 대상은 실상 질료 자체로서, 이는 적나라하고 즉자적인 존재론으로 도피처를 마련해준다. 일찍이 뷔르거(Peter Bürger)가 지적했던 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자기비판이 유미주의의 자폐적인 자기지시성을 비판하는 것이었음은 우연이 아니다. 김지훈이 학제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자신의 학적 경향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의 귀결은 실재에 대한 철저한 인식론적 오류이다. 예컨대 포이어바흐식의 기계적 유물론에서 필연적으로 제 2인터네셔널의 숙명론적 공황론이 대두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빙이미지를 논함에 있어 순수 질료의 물질성만을 보며 사회적 관계의 물질성을 보지 못한 김지훈의 한계는 결국 서동진의 주장에 대한 오독과 함양아의 작업에 대한 오판으로 나아갔던 것이다.25) 즉자적인 매체에 대한 관심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구조로서의 역사 내에서, 다른 층위의 실재들과의 관련 속에서 구체적으로 맥락화 되는 한에서이다. 미적 생산/매체 자체 내에서의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변증법적 관계 문제를 지적한 아도르노의 주장과, 때로 매체에 대한 사변적 명상에서 비롯된 미학 개념으로 오인되곤 하는 ‘아우라의 상실’이라는 기술복제 시대 예술의 조건조차 신적 총체성의 상실 이후의 역사적인 증상에 대한 비전과 관련지어 철저히 사회적인 지평으로 자리매김 시키는 벤야민의 주장은, 포스트 미디어 시대를 무빙이미지의 확장성과 모호성에 대한 근거로서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김지훈 식의 주장에 대한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어 줄 것이다.

결국 그는 다만 현재 사회 자체의 증상으로서 발화하고 있을 뿐, 그 스스로 자신의 제 조건에 대한 대자적인 자기의식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편향이 발생하는가? 그 원인은 물론 김지훈 개인이 아니라 실재 자체에 있다. 우리가 공동으로 당면한 세계가 불투명해질 때에, 작품이 세계와 관계 맺는 규정성에 대한 고려는 밀려나고, 김지훈의 접근이 보여주듯 가능한 작품의 분석과 서술은 필연적으로 초월적인 질료에 대한 명상 혹은 그에 조응하는 형식주의로 나타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러한 조건에서 매체에 대한 사변과 형식주의는 매개 없이 그 자신의 존립지반을 망각하게 된다. 물론 전혀 다른 영역에서도 이는 형태를 달리하여 마찬가지로 현상한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적나라한 ‘즉자 자체’를 모종의 외부 없는 전체이자 유일한 앎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신 유물론의 경향은 이러한 ‘사회적 실재’의 불가지성에 대한 웅변적인 예증이며, 그러한 불가지성은 미술사에서 랑시에르식 미학주의로의 전환, 제임슨의 ‘깊이감의 상실’ 및 ‘인식론적 심층모델의 붕괴’, 바디우의 ‘세계-없음’ 등을 아우르며, 이와 같은 개념적 파악을 가능케 하는 실체이다. 김지훈의 작업 지평이 놓인 곳은 바로 이곳이다. 즉 문제는 신자유주의라는 기표로도 온전히 파악해내기 힘들었던 동시대 자본주의의 복잡다단한 역동 그 자체이며, 그 어느 때보다 빈틈없는 총체로서 작동하지만 그만큼 총체화하기 버거운 실재의 위상에서 비롯되는 인지적 격차에 놓인 것이다(어항이 거대하고 그 표면이 균질할수록, 어항 속 물고기는 자신이 처한 조건을 자연 그 자체로 인식한다). 여기서 우리는 일찍이 전혀 다른 학제에서 펼쳐졌던, 김지훈의 사회학적 버전이라 할 법한 김경만식 주장으로의 시차적 전환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경만의 클론으로서의 김지훈 혹은 김경만이라는 김지훈의 거울상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경만은 일찍이 자신의 주저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에서 그 나름의 증상을 체현하여 드러낸 바 있다.26) 여기서 그의 논증은 탈식민담론을 비롯하여 ‘한국적’ 사회과학 이론을 정립하려 했던 시도들의 오류와 한계, 사회적 실천에 대한 이론의 호환 불가능성, 글로벌 지식장 내 상징투쟁의 유효성을 지적하는 데에 할애되고 있다. 달리 말해 이미 선 발전된 서구의 이론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비판함이 없이, 그것을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청산해버리는 한 제대로 된 극복이 될 수 없으며, 비판적 사회(과학)이론은 사회적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복무하는 데에 무력했으니- 유효한 선택지는 글로벌 학문장의 제한 내에서의 서구이론과의 엄밀한 지적 대화와 부대낌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제 우리도 미디어, 사회, 사회운동과 유리된 글로벌 지식장의 하비투스를 체화한 연구집단을 발전시키고 그 안에서 투쟁을 통해 단련된 지식장의 지배자를 배출할 때다.”27)

이는 김지훈과는 전연 다른 동기에서 출발한 작업이지만, 결국 김지훈이 ‘학제’에 대해 취하는 태도와 일맥상통하며 그와 같은 상호동일성을 생산하는 실재의 보편성을 암시한다. 물론 김경만의 주장대로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것은 그 자체 사회적 규정을 받는 것이기에, 이미 서구적 근대화가 공기와도 같은 것이 된 상황에서 한국적 학문의 시원을 발굴하고 확장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작업에 가까웠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탈식민적 경향의 이론적 논의들이 제기한 생산적인 문제계- 지식생산의 구조적 경로 의존성과 종속성이라는 쟁점은 ‘글로벌 지식장 내 상징투쟁’을 초과하는 지평에 놓여 쉽게 청산하기 어렵다. 종속의 문제는 국가/민족 간 체계의 모순과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이라는 쟁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론의 무력함에 대한 인식은 그의 초기 저작에서부터 지속되어온 경향이다.28) 비판이론이라는 것이 애초 그 시류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작업에서 나타나듯, 소비에트 블록의 열화와 퇴색을 비롯한 전간기(interwar period)의 문명적 파국에 따른 실천적 회의에서 비롯된 지적과잉을 그 자신의 조건으로 삼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김경만이 사회적 변화에 대한 비판(사회)이론의 무력함을 지적하는 것은 일견 합당하다. 비판이론이란 그 태생에서부터 위와 같은 조건 내에서- 왜 변화가 불가능하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김경만과 같이 이행에 대한 이론의 복무 가능성을 전적으로 차단한 채 학문의 분과적 자폐성을 긍정하는 데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비판이론의 탈을 쓴 평범한 부르주아적(혹은 칸트적) 인식론일 뿐이다. 최소한 비판이론은 (활동가들 앞에서의 에릭 홉스봄의 주눅에서 드러나듯, 혹은 ‘더 낫게 실패하라’는 지젝의 강박적인 주문처럼) 실천으로부터의 분리를 무의식적 원죄로 삼으며, 가능한 실천으로의 도약을 위한 지적 분투였기 때문이다(예컨대 비판이론가들이 공유했던 스탈린주의에 대한 회의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대한 경악은 그들로 하여금 소련의 영향권 내에 있었던 실정적 운동조직들과의 거리를 두게 했지만 당대의 정세에서 그것은 귀류법에 근거한 고도로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결단이었다).

특기할 것은 90년대 중후반 IMF 직전까지 삼성 이건희와 대우 김우중을 비롯한 국내 재벌들이 논했던 ‘세계경영- 세계초일류’ 담론과 김경만의 ‘글로벌 지식장에서의 상징투쟁’이 완전히 포개어진다는 사실이다. 재벌의 세계경영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체계 내에서 초국적자본의 대열에 들고자 했던 이데올로기적 시도라면, 김경만의 상징투쟁은 한참 뒤늦게 도착한 학문장에서의 그 열화된 버전의 소극일 것이다.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수익률 이외에 모든 것을 불문에 부치듯, 김경만에게서 지식의 내용은 불문이다. 일단 미국 주도의 제1세계적 학문장 내지 영어권 내에서 소화될 언어를 생산하며, 그 체제에서 권장하는 SCI, SSCI, SCIE, A&HCI, SCOPUS 등의 이런저런 정량적 지표를 충족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나이브한 탈식민주의 및 지적 고립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라면 충분히 이해할만하지만, 외려 민족주의적 서사에 환멸을 느껴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나아가는 것이 결코 옳은 방향이 아니듯, 김경만의 방향 또한 나이브한 반동심리에 의한 오류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하여 김경만은 사회과학과 실재/실천의 거리를 벌림으로써 (사회적)투쟁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상징)투쟁을 주장하는 아이러니를 전 장에 걸쳐 반복한다. 마치 김지훈이 학제의 열림을 주장하는 동시에 학제의 폐쇄성을 주장하듯이 말이다.

또한 사회과학자의 작업이 객관적 실재를 드러내는지 보장할 수 없으며, 사회적 실천을 행하는 데에 적합한지 알 수 없기에 상징투쟁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에서 설명되고 있지 않은 것은 상징투쟁의 유효성 자체이다. 즉 우리는 김경만이 사회참여적 이론가들에게 그들 작업의 유효성을 묻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김경만에게 되물을 수 있다: 글로벌한 차원의 상징투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완료되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혹은, 사회의 복잡화와 분화에 따른 사회과학적 논의의 뒤떨어짐 자체가 김경만식 상징투쟁의 유효성을 곧바로 입증하는가? 나아가 학문장을 지탱하는 국가 간 자본 규모의 구조적 위상차 속에서, 대관절 상징 투쟁이란 가능한가? 김경만의 행위가 제1세계의 지적 헤게모니로의 상징적 융화인지, 로컬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유효한 투쟁인지는 확실히 구분될 수 있는가? 오히려 우리는 글로벌 지식장 내부 투쟁의 불가능성을 논해야 하지 않는가? 그에게 있어 이 작업의 주체는 미조직된 개인 지식인이며, 그 수단은 해외 학계에의 논문 제출 및 컨퍼런스 참여, 목표는 인정욕구의 충족(과 그에 따라오는 국내 학업 역량 증진) 정도에 그친다. 더군다나 그 결실은 김경만 자신의 논문들이 증명하듯 대게 전부 영어권에서 소화될 뿐, 국내의 지식 재생산에 하등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대관절 여기에 투쟁이라 할 법한 요소가 있는가? 오히려 그러한 상징투쟁은 제1세계적 헤게모니로의 융화를 보여준다는 것이 솔직한 진단이 아닌가? 김경만은 마치 주류 유학파 철학교수들이 앵글로 색슨적 분석철학 일색이고, 주류 유학파 사회학 교수들이 양방과 통계 중심의 기술적 사회학 일색이며, 주류 유학파 정치학 교수들이 조야한 경험주의적 정치이론의 선두주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TRUMP IS SYMPTOM, CAPITALISM IS DISEASE, 도판 출처

그러나 글로벌 지식장이 전제하는 사회적 힘과 지식장 자체의 내용과 그 실체는 전연 다른 시차적 풍경을 보여준다. 요컨대 제 1세계가 지식생산에서의 우위를 지탱하는 힘은 불균등발전에서 비롯된 (혹은 자국 노동자들과 식민지 민중의 고혈로 기반을 다진) 선진적인 생산력과 군사력에 있으며, 그 대표적인 장치는 김지훈이 2020년 수혜를 받았던 풀브라이트 장학재단과 같은 재단들 및 싱크탱크라 할 것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첨병으로서의 달러 본위의 워싱턴 컨센서스의 상부구조적 대응물이다. 닉슨이 풀브라이트를 비롯한 미국의 재단들을 문화제국주의적 수단으로 인식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애초 풀브라이트 재단의 해외 교류 프로그램과 장학금은 미국의 외교, 군사적 패권을 관철시키려는 기획의 연장에서 조직된 것이다.29) ‘미국인과 타국인 간의 상호 이해 증진’이라는 명목이 무색하게도, 풀브라이트 재단의 객관적인 작동은 미국 친화적(혹은 매판적) 지식인의 전 세계적 배양을 겨냥한다. 이것을 다만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너무나도 순진한 일이 될 것이나, 안전한 학제 속 상징투쟁이라는 구도 속에서는 그러한 물적 조건을 이해할 개념이 부재한다. 그리하여 김지훈과 같은 이들은 김경만과 마찬가지로 영미 시장을 겨냥한 논문의 생산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그것을 자부심으로 여기거나(예컨대 그의 국내 논문량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Academia에서의 논문 업로드 양을 보라), 지난 2021년 5월 13-14일에 개최된 부산국제트랜스미디어 포럼 중 한영 동시통역이 준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 사회자에게 영어로 코멘트를 하는 등의 뒤떨어진 오만함을 드러내거나, 심지어 2018년의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오픈 렉쳐에서 보듯 대중강연 성격을 지닌 강의에서 영어로 된 ppt를 사용한다. 여기서 언어란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문화적 권력과 하비투스의 과시를 위한 부질없는 수단이 된다(풀 브라이트여 영원하라!). 이곳이 바로 글로벌 지식장의 로도스 섬이다. 결국 그들은 이 로도스에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은 제 1세계 지식장의 기름진 헤게모니에 기생하는 회충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지향 및 지평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내적 귀결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지평 자체가 스스로를 배반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 수 없다. 그들은 마치 근대화 초기에 선진 문물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는 가엾은 개화론자들처럼, 참된 앎이란 외부(‘로컬’을 초과하는 ‘글로벌’)에 있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조에서 선진성이란 애초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자 신기루이다. 지식 생산의 격차를 구조적으로 생산해내는- 불균등발전이라는 자본주의의 동학에 대한 비판과 그것의 현실적인 지양이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연장에서 라캉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선 그들이 이뤄야 할 것은 상징적 지평의 횡단에 있다. ‘글로벌’과 ‘학제’라는 팔루스적 언어가 그들의 욕망을 전유해왔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직시한 채로, 그들이 처한 세계의 지평을 구성하는 언어들로부터 그들은 스스로를 절단해야만 한다. 그로써 그들은 전적으로 다른 세계의 지평을 구성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현재의 세계를 세속적으로 총체화 해내어 비판하는 작업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그들의 시야에서는 아직 혼돈과 미분의 상태로 남아 있는 세계를 말이다.

앎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학문’을 세계를 변화시키는 바의 대자적인 실천의 수단이 아니라, 한갓 자폐적인 직군으로서 인식하는 자들의 즉자적인 소외된 의식을 보여준다. 사회의 제 부문과 유기적으로 교통하며 협소한 학제적 분할을 거부했던 ‘지식인’이 죽은 사회에서, 전문가로서 포지셔닝되는 테크노크라트로서의 ‘학자’의 등장을 그들은 새삼스레 알리는 것이다. 이때 학자는 수직적으로 계열화된 담론의 전제왕정에 복무하며, 세계에 대한 대자적 상을 그려내 실재의 부정을 가속화하는 인민과 함께 전위에 서고자 하기보다, 코딩 프로그래머, 보험 및 금융 상품을 설계하는 수학자, 펀드매니저, 군사학 전문가 등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관리를 위한 기능요구를 충족시키는 부분으로 설정된다. 김지훈이 원용해 마지 않는 ‘지식인’들에 기대 말하건대, 들뢰즈가 그토록 혐오했던 유기체주의, 랑시에르가 비판해 마지 않았던 아르케 정치란 바로 이 지점에서 현현한다. 공허한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각 부분들이 철저하고 가혹하게 소급되어 모종의 목적성에 복무하게 되는, 사회의 제 분할이 소여이자 자연으로서 합리화 되는 논리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 지평에서 앎이란 최종적으로 세계를 가리키기보단 정체불명의 헤게모니를 취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학제 수호에의 의지에서 웅변적으로 나타난다(그런 점에서 김지훈과 김경만이라는 증상은 앎과 권력의 공모관계에 대한 푸코의 작업의 현시라 해도 좋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앎에 대한 나이브함은 인류학적으로 훌륭한 케이스 샘플이 된다. 어차피 실천적으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면 학문장에서 서로의 영역에 대한 침범 없이 각자의 공부나 열심히 하자는 것인데, 이는 아마 비운동권으로서 그들이 운동권 학생들에게 가졌던 소외감과 경외감을 극복하는- 때늦은 상징적 제스쳐인 동시에, 실천을 통한 실재의 변용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무지를 보여준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이데올로기’라 불러온 바 있는) 세계의 물질적 논리는 개별인간의 지적작업에 앞서며, 훨씬 강력하다. 이것이 바로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의 논리를 바꾸는 유일한 것은 그러한 ‘인지적 작업들’로 무장한 바의- 학제를 초과하는 실천이다. 조야한 경험주의적 지평에서는 감지하기 쉽지 않지만, 지난 20세기가 혁명의 시대일 수 있었던 까닭은 마르크스의 작업을 비롯하여, 자본주의의 발생 이후 그것을 끊임없이 대자적으로 가지화시키는 시도들 덕분이었다. 나아가 실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데올로기적 타협과 수긍, 안빈낙도를 위함인가? 혹은 무의미한 지적유희를 위함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안빈낙도와 건조한 유희 속에 (상징)투쟁의 공간은 어디 있는가? 변화시킬 실재가 없다면, 파악 가능한 물질적 현실이 희뿌옇다면 투쟁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학제를 물신화시킨 나머지 지식과 실재의 양자 간 교통가능성을 부인함으로써 헤겔 이전의 칸트적 독단(고착된 대상에 대한 정태적 파악을 이성의 한계로 설정했던)으로 퇴행해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지훈 등으로 하여금 학문장 내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상징투쟁이나 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실재에 무지한 스칼라쉽을 애무하고 있도록 방치하는 것이 좋은가? 물론 그것은 손쉬운 방편이 되겠으나, 그보다 나는 그들이 처한 지평을 스스로 역사화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징후로서 발화하며, 그들의 증상자체를 대자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바디우 식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미분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을 뿐, 세계에 대한 분별에 가닿지 못한 것일 따름이다. 우리가 이들의 지적 동반자로서 동시대의 자본주의를 총체화해야만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자기 자신의 증상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들 ‘학자’들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나타내는 그 자체의 지표로서 유효하다. 영미권에 대한 강력한 동일시, 학제에 대한 고착과 집착, 학문과 사회적 삶-실천의 분리, 이 모든 것이 제1세계의 담론적 헤게모니를 붙잡은 채- 그러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세계자본주의의 강한 고리로서의 대한민국에서 학문이 처한 증상들을 예증한다. 그러나 나는 딱히 척화비를 세우고 ‘민족적인 것’을 찾거나, 어설픈 ‘실천’들을 치열한 지적 분투보다 우위에 두거나, 모든 학제적 방법론을 깡그리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지적 윤리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지식인은 자신의 역할과 조건을 물화시키는 모든 기예들을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 스칼라쉽은 엄밀함으로 대체되어야 하고, 인용지수는 헤게모니로 이해되어야 하며, 분과적 학제는 실재의 역동에 의해 무너지거나, 최소한 그 역동 앞에 겸손해야 한다. 유기적 지식인이 사라지고 학자만 남은 세계에서 다시금 실재, 나아가 삶 자체에 참된 학을 되돌려 줄 것은 결국 실재의 모순에 대한 앎의 실천적 복무이다. 이러한 지평에서 실재는 학제를 가리지 않는 보편이다.


1) 이러한 소여의 것과 새로운 것의 발본적인 동시성은 본질적인 수준에서 음악, 미술, 문학을 비롯한 범 예술의 장르들에서도 참인데, 이는 언어에 매개되면서도 언어로 완전히 소급되지 않는 미적 잉여에 의한 것이다.
2) 예컨대 김지훈은 자신의 주저를 통해- 디지털 이후의 미학적 제 조건을 집약하는 Jim Campbell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매체적 혼성성과 모호성을 지적하며, 여러 학제와 대상을 아우르는 광범한 하이브리드 무빙이미지를 자신의 탐구대상으로 정립하는 데에 대한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Kim, Jihhoon. Between Film, Video, and the Digital: Hybrid Moving Images in the Post-Media Age, New York: Bloomsbury, 2018. Print. pp. 1-4.
3)
L’entre_images [@Entre_images]. “불행히도 한국사회는 타자의 퍼포먼스에 대한 비판을 타자의 인격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하고 그걸 뒷담화로 mis-labeling하는 성향이 아주 강합니다. 이 둘의 구분이 확실하고 전자를 같이 나눌 수 있었던 측근들과 함께 했던 20대가 있었는데…” (protected tweet. 2021, 5. 14). Twitter.
4)
L’entre_images [@Entre_images]. (protected tweet. 2021, 3. 19). Twitter.
5)
L’entre_images [@Entre_images]. (protected tweet. 2021, 5. 13). Twitter.
6)
L’entre_images [@Entre_images]. (protected tweet. 2021, 5. 14). Twitter.
7)
Cole, David R., Bradley, Joff P. N., Lee, Alex Taek-Gwang. “A Pedagogy of the Parasite.” Studies in Philosophy and Education (2021): Web. 여기엔 영화의 존재론에 대한 과격한 단언이 등장하는 대목은 한 군데도 없으며, 다만 논문의 서두에서 밝힌 3가지 층위-‘1. 탈영토화하는 서구자본주의의 첨단으로서의 한국 사회에 대한 맥락, 2. 숙주와의 관계에 있어 고착과 불안, 종속 등의 독특한 기생적 시간 개념, 3. 적절한 숙주를 선택하는 기생충의 윤리’-에 부합되게 텍스트로서의 ‘기생충’에 대한 문화비평적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8)
한편 디지털적 전환과 주로 관련하여 논의되는 포스트 시네마 담론과 그 요소로서 무빙이미지의 존재론은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대응물을 지니는데, 요컨대 그것은 디지털 이미지의 제 조건을 다루는 작업들을 ‘레이어, 납작함, 스마트폰 세대’ 등 기술적 담론으로 독해하는 논의와 궤를 같이 하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비판적 언급으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정강산.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 진보평론 84.2 (2020): 168-225. 인쇄저널.

9) L’entre_images [@Entre_images]. (protected tweet. 2020, 7. 10). Twitter.
10) 김지훈. “‘영화미디어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지성 (2020. 1. 12). 웹사이트. 2021. 6. 15. 여기서 김지훈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이와 같은 이론들의 정립과 이들 간의 상호 논쟁 과정에서도 영화학이라는 학제를 뒷받침하는 연구의 대상, 즉 영화라는 미적 대상과 이를 구성하는 매체의 정의에 대한 보편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는 영화의 특수성에 근거한다. (…)오늘날 ‘영화적’이라 불릴 만한 무빙 이미지의 생태계는 영화관을 넘어 유튜브에, 갤러리의 미디어 설치 작품에, 대형 빌딩의 전광판까지도 포괄하게 되었다.”
11) 다음을 참고하라. Balsom, Erika. “The Reality-Based Community.” e-flux journal 83 (2017). Web; “To Narrate or Describe? Experimental Documentary Beyond Docufiction.” Deep Mediations: Thinking Space in Cinema and Digital Cultures. Eds Jeff Scheible and Karen Redrob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20: 180-196. Print.
12)
Jameson, Fredric. “Periodizing the 60s.” Social Text No. 9/10 (1984): 178-209. Print. pp.186-193을 참고하라. 여기서 제임슨은 상징계의 부상(emergence) 이후 이뤄진 텍스트화의 영향으로, 대상의 개념적 서술은 더 이상 전통적인 철학이 아니라 언어 자체의 조작을 의미하는 ‘이론(theory)’으로 소급되며(여기에는 주로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 포함된다), 이는 학제로서의 철학의 소멸과 체계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따라서 그는 그 직전의 시퀀스를 표지한 사르트르를 두고 “전통적 철학의 최후의 위대한 체계 구축자”라 평한다).
13)
그러나 발솜이 라투르에 기대어 탈진실과 구성주의적 사실, 반실재론에 대한 해답으로 내놓은 다큐멘터리적 실천은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접근은 심원한 실재의 증상으로서의 탈진실을,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을 통해 조작하고 개입할 수 있는 매우 협소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탈진실이란 이런저런 개별적인 다큐멘터리적 실천을 한참 초과하며, 그것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외려 탈진실의 진실성이라는 것을 숙고해야만 한다. 즉 탈진실은 근대성의 특정한 성과에서 비롯된 계몽과 과학으로부터의 퇴행을 가리키는 수준에서 피상적으로 이해되어선 안 되며, 외려 실재의 모순이 개별적인 사실 자체에 앞선다는 것을 예증하는 사례로 셈해져야 한다. 그리고 세계를 세속적으로 총체화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역사적 국면에서, 탈진실은 필연적으로 지배적인 에토스가 된다. 그렇다면 탈진실에 유의미하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적인 사회관계에 대한 세속적이고도 규정적인 비판이며, 그러한 사회관계를 집단적이고도 정치적인 실천을 통해 이행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4) L’entre_images [@Entre_images]. (protected tweet. 2021, 2. 14). Twitter.
15)
김지훈, “몽타주와 콜라주.” 월간미술 418.11 (2019): 118-123. 인쇄저널.

16) 문혜진, “경계인의 시선과 함양아의 초기 비디오 작업.” 월간미술 409.2 (2019): 160-162. 인쇄저널.
17) 양지윤, “함양아_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LOOP (2019. 9. 20). 웹사이트. 2021. 6. 15.
18) 특히 다음을 보라. Kim, Jihhoon. op. cit., pp. 3-6, 10-12, 34-39.
19) ibid.
20)
예컨대 다음을 보라. 데이비드 하비.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구동회, 박영민 역. 파주: 한울. 2009. 인쇄도서.

2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조너선 크레리. 『24/7 잠의 종말』. 김성호 역. 파주: 문학동네. 2014. 인쇄도서.
22) 쇼샤나 주보프. “행동잉여의 발견: 온라인 행동이 남기는 부수적인 흔적들.” 『감시자본주의 시대』. 김보영 역, 노동욱 감수. 서울: 문학사상사. 2021. 인쇄도서.
23) 이때 질료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뜻 그대로, 단일한 실체에 그치지 않으며, 특정한 형상이 나타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다양한 성분을 아우르는 유/무형의 유물론적 기체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김지훈이 노엘 캐롤(Noël Carroll) 등에 기대어 정의하는 무빙이미지의 특징-근간의 다양한 물적 실체, 복합적 미디어 등 -은 정확히 질료에 관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24) Jameson, Fredric. The Benjamin Files, London: Verso, 2020. Print. p.79.
25)
때로 드물게 그가 협소한 매체의 존재론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할 경우에조차, 그것은 다만 그의 전체 기획에 비해 외삽적이고 수사적인 파편에 불과할 뿐이다. 즉 그는 그러한 작업을 통해 즉자적 앎에 머물 뿐 대자적인 반성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김지훈은 학제 간 분할이 지니는 불충분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학제적 프로젝트/연구집단을 표방한 포렌식 아키텍쳐(Forensic Architecture)의 기획을 두고 ‘대항시각성의 발명’으로까지 찬사를 바친 바 있음에도 불구, 마찬가지의 다학제성을 띠는 문화연구의 포괄성에 대해서는 “패악질”이라 평하고, 영화라는 성역을 공고히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러한 측면은 김지훈에게 있어 사회에 대한 발화가 명증하게 표현되는 작업이 단순히 상징자본을 취하기 위한 레토릭으로 동원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김지훈. “포렌식 아키텍처와 디지털 시대 다큐멘터리 작업: 하이브리드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불확정성, 대항시각성.” 현대미술학 논문집 23.2 (2019): 175-207. 인쇄저널.

26) 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파주: 문학동네. 2015. 인쇄도서.
27) 김경만. 위의 책. 253쪽.
28) 다음을 보라. 김경만. 『담론과 해방』. 파주: 궁리. 2005. 인쇄도서.
29)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Reivich, Lois. “The Fourth Face of U.S. Imperialism.” NACLA Report. (2007. 9. 25). Web; Bettie, Molly Lenore. The Fulbright Program and American Public Diplomacy. Thesis for Doctor of Philosophy. The University of Leeds. 2014. p.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