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_이재석 작가 비평 : 조립된 현실의 이질감과 상흔의 도상

오정은

이재석(b.1989)의 회화를 보고 우리 몸 안에 분절되고 접합되어 있는 생리 구조를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특별히 매번 의식하지는 않고 살아가는 인체 역학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도록 한다. 군대에서 사고로 발목을 다쳤던 작가는 조각난 뼈에 보철물을 삽입하고 나사로 박는 수술을 했던 경험, 당시 겪었던 신체 내부의 이질감, 통치적인 사회구조 안에서 소위 ‘부품화’되며 인간 유일의 특성과 자존을 잃는 사건, 그것을 함축한 시각적 도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의 그림에 출연하는 뼛조각과 혈액, 살덩어리 등의 신체 요소는 나사와 볼트 같은 공산 부품의 이미지를 띄고 등장하는 것들이다. 뼈가 보이는 인체 해부도와 제품 조립 설명서를 착안한 도면이 서로 등가 하듯 화면 선상에 나란히 위치하고, 어떤 기기의 부속인 듯한 쇳조각이 절단된 신체 일부와 함께 덩어리로 뭉쳐져 제시된다. 신체와 기계적 사물, 상호 이질적인 것이 분해돼 나열되고 서로를 모방 및 대체하며 하이브리드(hybrid)된 그로테스크한 이들 조합은 때로 추상적인 3차원 도형으로 형상화되어 현실을 이탈하거나 초월한 풍경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좌) 이재석, <나열된 부품들>, 130x97cm, acrylic on canvas, 2018, 사진: 작가제공 우) 이재석, <부품들의 정렬>, 227.3×181.8cm, acrylic on canvas, 2020, 사진: 작가제공

총의 부품 조립 설명서 도안을 연상시키는 <나열된 부품들>(2018)은 총열과 총열 덮개, 총몸뭉치, 개머리판, 그리고 잘린 손과 살덩이로 보이는 낱개의 도상이 풀숲 바탕 위에 부감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부품들의 정렬>(2020)은 전작처럼 풍경 앞에 부품을 나열하되, 총을 받들고 있는 왼쪽 손과 포연을 마치 부품의 종류처럼 그려 넣었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경계선 위의 부품들>(2021), <조립 설명서1>, <조립 설명서2>(2021) 등의 작업을 했다. 그림에는 바위나 수풀, 황무지 같은 자연물이 배경으로 드러나지만, 이들은 자연적이거나 목가적이라기 보다는 빈 사격 훈련장 같이 무미건조하며 또는 어딘지 모르게 언캐니(uncanny)한 느낌을 주는 것에 가깝다.

좌) 이재석, <하얀 파이프>, 53×45.5cm, acrylic on canvas, 2019, 사진: 작가제공 우) 이재석, <빨간 파이프> 53×45.5cm, acrylic on canvas, 2019, 사진: 작가제공
이재석, <원뿔들>, 72.7×60.6cm, acrylic on canvas, 2020, 사진: 작가제공
이재석, <수직,수평,정렬>, 193.9×130.3cm, acrylic on canvas, 사진: 작가제공

각각 흰색과 붉은색의 파이프가 대각선 방향으로 허공을 부유하는 전면의 이미지 뒤로 풀이 난 흙바닥과 맑은 하늘 풍경이 보이는 <하얀 파이프>(2019), <빨간 파이프>(2019)는 신체나 부품 도상을 재현한 실제 묘사보다 그것이 추상화되어 화면 안에 조형적으로 배치된 모습을 보여준다. <무질서의 정렬>(2019), <불안한 구조물>(2019), <원뿔들>(2020), <수직, 수행, 정렬>(2020)을 통해 작가는 색면 분할과 반복적 패턴 사용을 통한 매체 실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이런 화면에 공간감을 갖고 등장하는 3차원 도형은 앞서 도상으로 언급됐던 이미지에 대한 회화로서의 조각적 표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한 <101123>(2020), 그리고 <포격>(2020)은 각각 평면 회화 및 평면을 넘어선 입체감 있는 회화로 연평도 섬과 그곳에 피어올랐을 재해 순간의 잔해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포격>에서 소품 크기의 캔버스 두 개를 겹쳐서 쌓고 입체로 구현한 흰색의 연포를 탑처럼 만들어 높이를 형성해 올려두었다. <101123>과 <포격>은 작가의 개인전 《INVENTORY》(2021.6.3.-6.27, SeMA창고)에서 대형 이젤 판넬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설치되어 서로 조응하듯 전시됐다. 작가는 구 질병관리본부 시약창고의 흔적이 역력한 세마창고 전시장 특유의 장소감각을 평소 작업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제품 나열과 정렬의 요소를 부각할 수 있는 요소로 삼고, 격자무늬 선반 등 전시장 본래의 건축 구조물을 작품 안으로 적극 차용하려고도 했다.

《INVENTORY》전시 전경, 사진촬영: 임장활
《INVENTORY》전시 전경, 사진촬영: 임장활

최근 작업인 <퐁당퐁당>(2021), <기체의 형태2>(2021)는 바다에 떨어지는 포탄의 이미지가 패턴 디자인처럼 분한 모습이고, <사정거리>(2021)는 위에서 내려다본 그리드(grid)로 구획된 지형에 포탄 투하지점이 여러 빨간 삼각형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위를 포연이 가로지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부품과 호환 가능한 신체에 이어 그리드의 평면 안으로 들어오는 전시적 현실을 작가는 냉정하리만큼 차분한 태도로 그려내고 있다. 2019년 이재석의 평문을 썼던 김주원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 온 근대적 시스템의 모순을 작가는 냉소적이지 않고 중성적으로, 비참한 현실이지만 아름답고 숭고한 초현실/비현실적 환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작가는 더 많은 현실을 관찰하고 발견해 내면서 일상에 자행되는 무기력에 대항하며 지금도 비판을 수행 중이다.

《INVENTORY》전시 전경, 사진촬영: 임장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