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헌_쇠퇴와 구원 사이에서

2018년 9월 11일 발행 이양헌 / 미술비평 미술사가 그려왔던 유구한 궤적을 다시 되돌아보자. 그 기원과 약속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으므로 예술이 처음에 주술이었고, 유희였으며, 모방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말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할 것이다. 대신 이미지가 다시 부흥의 순간을 맞이했던 16세기의 어느 시기, 그러니까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예술가들을 위한 위대한 연대기를 써내려간 »

오정은_청년예술가의 어떤 생사를 너머

2018년 9월 4일 발행 1. 어떤 죽음 2011년에 있었던 한 개인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촉망받던 청년 예술인의 가빈과 병사는 이후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출범을 이끌었다. 그러나 재단이 규정한 예술활동증명 요건은 활동실적 증빙이 어려운 예술인을 복지 사각에 내몰며 망자의 넋을 위로하지 못했다. (“최고은법, 최고은은 예술가 아냐”, 노컷뉴스, 2014.04.12) 2016년, 서울시는 청년유니온의 »

이정훈_끝나지 않을 공동체의 시그널 -제롬 벨의 ‘The Show Must Go On’ 리뷰

2018.9.11 발행 이정훈 (B의 유령) 미루고 미뤘던 글을 쓴다. 작년 말부터 공연 예술에 부지런히 관심을 쏟았다. 덕분에 단기간에 수많은 공연을 볼 수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이를 텍스트로 기록하며 소화하고자 한다. 작년 7월 베를린의 폴크스뷰네(Volksbühne)에 전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큐레이터였던 크리스 데르콘(Chris Dercon)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미술계에 몸을 담고 유명 대형 »

익명제보_날조된 수사와 싸구려 향연의 유통기한

2018년 8월 22일 발행 1980년대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혼돈과 저항의 시대였다. 한국에서는 1989년 여행 자율화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 아래 세계화의 반열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1989년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와 함께 민주화의 대한 열망의 폭발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을 둘러싼 민주화 바람은 활발한 서구 문화 유입의 계기가 되어 자본주의의 전환을 더 촉진시켰다. 1980년대부터 발기된 »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4)

2018년 9월 8일 발행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6.문화번역 -전통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가 쓰여 진 것은 1964년이다. 당시는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4ㆍ19와 5ㆍ16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동 이후 ‘근대화’의 기치가 막 내걸렸던 시기였다. 또한 국민/민족 통합을 위해 국민/민족문화의 계승 혹은 개발의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기도 했다. 김수영이 이미 당시에 관제 전통 개발의 »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3)

2018년 8월 20일 발행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4. 근대 -전통 전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상상할 것인가는 근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김수영을 좆아, 억압된 전통을 기억해내고, 그 전통을 부단히 변화하는 장기지속의 흐름으로 인식하며, ‘거대한 뿌리’를 상상하고, 그 뿌리를 내 땅에 박으려 한다면, 이러한 시도는 당연히 통념화된 근대 »

허호정_주현욱의 ‘메모리 네크로맨싱’ – 이중구조를 둘러싼 질문들: 동상, 세기,그리고 얼룩

2018년 8월 19일 발행​ 1. 메모리 네크로맨싱 2017년 겨울과 2018년 봄, 주현욱은 특정한 물리적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 위치하는 동상들을 추적하여, 그중 20세기에 제작된 것을 골라 부분을 스캔하고 3D 프린트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촬영, 편집하여 전시장 한쪽에 1채널로 설치하였다. 돌아가는 원판 위, 색색의 조각. 혹은 투명한 좌대 위에 규칙적으로 »

엄제현_예술과 윤리, 그 불행한 동거

2018년 8월 5일 발행 가끔 그런 예술이 있다. 보고 있자니 화가 나고, 수치스럽고, 모욕적이고, 눈살이 찌푸려지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고, 전시장을 나가버리고 싶거나 아예 전시 자체를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예술들. 그것들을 관람할라치면 먼저는 감수성을 건드려 불쾌감을 자아내더니 곧 이성적으로는 시민적 윤리의 영역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는 듯 보여 무례하다는 인상까지 준다. »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2)

2018년 8월 11일 발행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3. 거대한 뿌리 -전통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는 단언은 전통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와는 다른 접근방식을 요청한다. 비숍의 책을 읽는 도중에 시인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방인 비숍은 구한말 조선의 문화와 관습을 낯설고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 시선은 그간 전통을 대해왔던 시인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이다. »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1)

2018년 8월 2일 발행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1. 들어가며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마음이 무겁다. 어디선가 ‘21세기에 무슨 전통이냐?’는 반발이 곧장 터져 나올 듯싶다. 무슨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한 지루한 공방이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또한 뒤따를 것 같다. 하긴 그간 전통/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논의는 혼란에 혼란을 배가한 채 말을 안 꺼낸 것만 못한 »

홍태림_김이박 개인전 ‘미모사’ 리뷰: 불안과의 동행

2018년 7월 20일 발행 홍태림(미술비평, 크리틱-칼 발행인) 몇 년 전에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을 통해서 히키코모리(引き籠り), 다른 말로 은둔형 외톨이 개념을 널리 알린 사이토 다마키의 『사회적 우울증』을 살펴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사이토 다마키는 신종 우울증을 주로 다루는데, 근래에 두드러진 이 우울증은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뒤섞이며 발생하는 기존의 우울증에 비하여 »

이여로_ 번역 : 자크 데리다의 세 가지 나이 The Three Ages of Jacques Derrida (interview by Kristine Mckenna)

2018년 7월 14일 발행 사람들이 미치광이 프랑스 지식인이자 아는 사람만 아는 슈퍼스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미국의 대중문화잡지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해체주의라는 단어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할 때,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듯 세계 도처의 대학생들이 해체주의의 뜻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았을 때, 이 모든 것이 자크 데리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사반세기 »

엄제현_버닝. 이미지와 서사, 언어의 환유를 통한

2018년 7월 9일 발행 본 글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 대한 비평으로, 영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독자분들께선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 비평은 다른 비평들로부터 명쾌한 대답을 듣지 못해 작성한 것이다. 어쩌면 청년 세대를 겨냥한 영화가 실상 다른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청년 »

허호정_전시-경험의 시세: 낙차를 견주기 그리고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2018년 6월 25일 발행 전시는 경험을 시간적인 것으로 포박한다. 전시는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무언가를 – 이미지를, 소리를, 몸짓을 – 풀어놓는 (혹은 묶어 놓는) 형식 일체인 한편, 특정 기간의 문제를 가시화한다. 달리 말해, 전시-경험은 보거나 듣고 느끼는 일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우선, 물리적 시간의 제약 속에 들어앉아야 하는 일인 것이다. 결국, 일주일, »

전대한_취향입니다, 담론해주시죠.

2018년 4월 3일 발행 전대한(대중음악비평)│jeondaehan@naver.com 몇 번이고 스스로와 주위 동료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지겹지만 또다시 묻는다. 대중음악비평이라는 씬scene은 이제 정말로 폐허인가? 가시적인 지점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 이곳은 폐허이고,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무너진 곳이다. 비평은 아주 조금씩만 생산되며, 그나마 그것을 생산해내는 이들은 비평만으로는 생계를 오롯이 유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평은 갈수록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