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태림_한석경이 열어젖힌 분단의 시간

2018년 11월 16 발행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식민지, 전쟁, 분단을 관통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는 한석경의 <진지하다>(2018)는 박 씨 할아버지, 박 씨의 외아들 박만수 그리고 박만수의 외아들 박형민이라는 가상의 인물들이 뒤얽히며 만들어내는 서사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진지하다>의 이러한 서사구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조씨(趙氏) 집안의 삼대가 겪는 갈등을 통해서 억압받는 여성, 대지주, 기독교인, »

성상민_뉴스, 리플리에게,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2018년 11월 7일 발행 성상민(만화-문화평론가, 미디액트 ACT! 편집위원) 올 연말에 쓸 글이 있어서 원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갔었다. 좋은 작품이 없진 않았다. 안건형과 리슨투더시티는 여전히 자신이 선보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근래의 트렌드인 아카이브, 빅데이터 포집, AI를 활용한 작업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이를 모아 큐레이션한 방식은 많은 골치를 만들었다. 나중에 별도의 글에서 »

오정은_쪼랩의 자각 ‘2018 SeMA 예술가 길드 만랩 萬Lab’

2018년 11월 4일 발행 만렙: 하나의 게임에서 캐릭터의 최고의 레벨을 뜻하는 말. 유의어로 만랩, 최대레벨이 있으며 반의어로는 쪼렙이 있다. 올해로 4회차를 맞는 서울시립미술관 SeMA 예술가 길드의 부제는 ‘만랩’이다. 가득 차다라는 뜻의 만(滿)과 레벨(Level)의 합성어로, 온라인 게임 캐릭터 레벨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상황을 이르는 게임 용어 ‘만렙(滿Level)’에서 착안하여 ≪2018 SeMA 예술가 길드≫주제와 »

홍태림_화가 최민화의 민족, 민중, 민주주의

2018년 10월 23일 발행 홍태림(미술비평, 크리틱-칼 발행인) 1980년 5월, 전두환의 계엄군이 민주화를 외친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세대를 초월하여 많은 이들의 가슴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커다란 충격을 남겼다. 최민화1)도 이 충격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80년 7월에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린 서울 현대미술제2)에서 <시민>을 »

황재민_BLACK: 검은색을 통해서 어렴풋이

2018년 10월 9일 발행 황재민 1819년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는 ‘귀머거리의 집 Villa of the Deaf Man’이라 불리던 작은 주택을 구매한다. 고야는 1824년 프랑스 보르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 집에 거주하면서 14점에 이르는 벽화를 그렸는데, 유명한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Saturn Devouring His Son>와 <개 The Dog>와 같은 작품이 바로 »

허호정_광주,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

2018년 10월 1일 발행 허호정(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 《상상된 경계들》은 뿔뿔이 흩어진 전시들을 느슨하게 묶는다. 큰 제목 아래 각 전시는 ‘경계’라는 어휘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와 입장을 선보였다. 이를테면, 일종의 위기 국면을 맞은 인류/애, 사회-역사적 트라우마에 반응하는/반응하지 못하는 결과물로서 증상들과 그 수집, 이 모든 위기에 대한 안일한 대처를 »

흑표범_퍼포먼스 아티스트를 위한 계약서

2018년 9월 26일 발행 안녕하세요, 흑표범입니다. 블록버스터 전시 행사들이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한편 행사 속 개개인들에 대한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작가로 살아온 지난 십오 년간 공기관과 대형 행사들에서 여러 문제들을 경험해왔습니다. 그리고 미술계의 개개인들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특정 개인이나 전시/조직 »

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_하상현의 ‘아이소메트릭’ : 멈춘 몸, 움직이는 사물

2018년 9월 22일 발행 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권태현, 박시내, 이민주) 인간의 몸은 움직이고, 사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의 몸을 멈추기 위해서는 뜻밖에 많은 힘이 필요하고, 사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힘을 주어야 한다. 너무도 자명한 법칙을 상기하며 하상현의 작업 〈아이소메트릭〉을 살펴본다. 그의 작업이 퍼포먼스와 오브제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법칙들을 »

이양헌_쇠퇴와 구원 사이에서

2018년 9월 11일 발행 이양헌 / 미술비평 미술사가 그려왔던 유구한 궤적을 다시 되돌아보자. 그 기원과 약속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으므로 예술이 처음에 주술이었고, 유희였으며, 모방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말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할 것이다. 대신 이미지가 다시 부흥의 순간을 맞이했던 16세기의 어느 시기, 그러니까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예술가들을 위한 위대한 연대기를 써내려간 »

오정은_청년예술가의 어떤 생사를 너머

2018년 9월 4일 발행 1. 어떤 죽음 2011년에 있었던 한 개인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촉망받던 청년 예술인의 가빈과 병사는 이후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출범을 이끌었다. 그러나 재단이 규정한 예술활동증명 요건은 활동실적 증빙이 어려운 예술인을 복지 사각에 내몰며 망자의 넋을 위로하지 못했다. (“최고은법, 최고은은 예술가 아냐”, 노컷뉴스, 2014.04.12) 2016년, 서울시는 청년유니온의 »

이정훈_끝나지 않을 공동체의 시그널 -제롬 벨의 ‘The Show Must Go On’ 리뷰

2018.9.11 발행 이정훈 (B의 유령) 미루고 미뤘던 글을 쓴다. 작년 말부터 공연 예술에 부지런히 관심을 쏟았다. 덕분에 단기간에 수많은 공연을 볼 수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이를 텍스트로 기록하며 소화하고자 한다. 작년 7월 베를린의 폴크스뷰네(Volksbühne)에 전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큐레이터였던 크리스 데르콘(Chris Dercon)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미술계에 몸을 담고 유명 대형 »

익명제보_날조된 수사와 싸구려 향연의 유통기한

2018년 8월 22일 발행 1980년대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혼돈과 저항의 시대였다. 한국에서는 1989년 여행 자율화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 아래 세계화의 반열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1989년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와 함께 민주화의 대한 열망의 폭발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을 둘러싼 민주화 바람은 활발한 서구 문화 유입의 계기가 되어 자본주의의 전환을 더 촉진시켰다. 1980년대부터 발기된 »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4)

2018년 9월 8일 발행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6.문화번역 -전통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가 쓰여 진 것은 1964년이다. 당시는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4ㆍ19와 5ㆍ16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동 이후 ‘근대화’의 기치가 막 내걸렸던 시기였다. 또한 국민/민족 통합을 위해 국민/민족문화의 계승 혹은 개발의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기도 했다. 김수영이 이미 당시에 관제 전통 개발의 »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3)

2018년 8월 20일 발행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4. 근대 -전통 전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상상할 것인가는 근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김수영을 좆아, 억압된 전통을 기억해내고, 그 전통을 부단히 변화하는 장기지속의 흐름으로 인식하며, ‘거대한 뿌리’를 상상하고, 그 뿌리를 내 땅에 박으려 한다면, 이러한 시도는 당연히 통념화된 근대 »

허호정_주현욱의 ‘메모리 네크로맨싱’ – 이중구조를 둘러싼 질문들: 동상, 세기,그리고 얼룩

2018년 8월 19일 발행​ 1. 메모리 네크로맨싱 2017년 겨울과 2018년 봄, 주현욱은 특정한 물리적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 위치하는 동상들을 추적하여, 그중 20세기에 제작된 것을 골라 부분을 스캔하고 3D 프린트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촬영, 편집하여 전시장 한쪽에 1채널로 설치하였다. 돌아가는 원판 위, 색색의 조각. 혹은 투명한 좌대 위에 규칙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