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제현_질환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시각적 안내문

2006년 출간된 정치 서적⟪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객관성과 전문성의 결손을 이유로 학계로부터 처형을 당하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치세력의 투쟁사에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좌파의 맹공은 해당 서적을 역사적 징후로 읽는 메타적 접근에서부터 통계 데이터의 오류를 짚어내는 수리적 분석, 역사 인식에 대한 이념적 반박까지 총체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견고했던 근대사를 유동적인 것으로 » 750 views

홍태림_한석경이 열어젖힌 분단의 시간

홍태림(미술비평가, 크리틱-칼 발행인) 식민지, 전쟁, 분단을 관통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는 한석경의 <진지하다>(2018)는 박 씨 할아버지, 박 씨의 외아들 박만수 그리고 박만수의 외아들 박형민이라는 가상의 인물들이 뒤얽히며 만들어내는 서사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진지하다>의 이러한 서사구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조씨(趙氏) 집안의 삼대가 겪는 갈등을 통해서 억압받는 여성, 대지주, 기독교인, 사회주의자 등의 생태를 복합적으로 » 910 views

성상민_‘뉴스, 리플리에게’,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성상민(만화-문화평론가, 미디액트 ACT! 편집위원)     올 연말에 쓸 글이 있어서 원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갔었다. 좋은 작품이 없진 않았다. 안건형과 리슨투더시티는 여전히 자신이 선보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근래의 트렌드인 아카이브, 빅데이터 포집, AI를 활용한 작업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이를 모아 큐레이션한 방식은 많은 골치를 만들었다. 나중에 별도의 글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 1,156 views

오정은_쪼랩의 자각 ‘2018 SeMA 예술가 길드 만랩 萬Lab’

만렙: 하나의 게임에서 캐릭터의 최고의 레벨을 뜻하는 말. 유의어로 만랩, 최대레벨이 있으며 반의어로는 쪼렙이 있다. 올해로 4회차를 맞는 서울시립미술관 SeMA 예술가 길드의 부제는 ‘만랩’이다. 가득 차다라는 뜻의 만(滿)과 레벨(Level)의 합성어로, 온라인 게임 캐릭터 레벨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상황을 이르는 게임 용어 ‘만렙(滿Level)’에서 착안하여 ≪2018 SeMA 예술가 길드≫주제와 부합하도록 부제를 정했다 한다. » 759 views

홍태림_화가 최민화의 민족, 민중, 민주주의

홍태림(미술비평, 크리틱-칼 발행인) 1980년 5월, 전두환의 계엄군이 민주화를 외친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세대를 초월하여 많은 이들의 가슴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커다란 충격을 남겼다. 최민화1)도 이 충격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80년 7월에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린 서울 현대미술제2)에서 <시민>을 출품하기에 이른다.3) <시민>은 전두환의 » 1,133 views

황재민_BLACK: 검은색을 통해서 어렴풋이

황재민 1819년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는 ‘귀머거리의 집 Villa of the Deaf Man’이라 불리던 작은 주택을 구매한다. 고야는 1824년 프랑스 보르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이 집에 거주하면서 14점에 이르는 벽화를 그렸는데, 유명한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Saturn Devouring His Son>와 <개 The Dog>와 같은 작품이 바로 이 벽화 중 일부이다. » 787 views

허호정_광주,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

허호정(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 《상상된 경계들》은 뿔뿔이 흩어진 전시들을 느슨하게 묶는다. 큰 제목 아래 각 전시는 ‘경계’라는 어휘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와 입장을 선보였다. 이를테면, 일종의 위기 국면을 맞은 인류/애, 사회-역사적 트라우마에 반응하는/반응하지 못하는 결과물로서 증상들과 그 수집, 이 모든 위기에 대한 안일한 대처를 제공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 1,469 views

흑표범_퍼포먼스 아티스트를 위한 계약서

안녕하세요, 흑표범입니다. 블록버스터 전시 행사들이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한편 행사 속 개개인들에 대한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작가로 살아온 지난 십오 년간 공기관과 대형 행사들에서 여러 문제들을 경험해왔습니다. 그리고 미술계의 개개인들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특정 개인이나 전시/조직 등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4,689 views

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_하상현의 ‘아이소메트릭’ : 멈춘 몸, 움직이는 사물

이미지 연구 공동체 반짝(권태현, 박시내, 이민주) 인간의 몸은 움직이고, 사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인간의 몸을 멈추기 위해서는 뜻밖에 많은 힘이 필요하고, 사물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힘을 주어야 한다. 너무도 자명한 법칙을 상기하며 하상현의 작업 〈아이소메트릭〉을 살펴본다. 그의 작업이 퍼포먼스와 오브제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법칙들을 뒤섞어 놓기 때문이다. 흔히 » 1,466 views

조재연_세계여, 이것은 당신을 위한 종말_이윤희, 손배영, 최은: 골목유랑기

“모든 이들이 깊은 마음 속에선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1Q84」 1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을 잡으며 물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그리고 과거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결점들 그리고 오점들을, 인정하고 삼킬 것을 각오하고 선언했다. “내가 잘할게.” 당신의 오래고 먼 연락을 기다릴 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없는 변덕에 » 632 views

이정훈_독일 미대생 인터뷰: 정여원

독일 미대생 인터뷰 06. 정여원(Burg Giebichenstein Kunsthochschule Halle) 짧은 기간을 두고 자주 바뀌는 한국의 입시제도. 특히나 학교 공부와 실기를 병행해야 하는 미술 계열 학생은 매번 달라지는 입시 방향을 쫓아가기 배로 바쁘다. 힘든 입시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바라던 학교, 학과에 입학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매 학기 버겁기만 한 학비와 재료비는 학생들이 창작활동과 » 1,009 views

조태위_‘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 또 다른 시작’

빛나는 별이나 몽환적인 점묘법처럼 감성적인 관점이 아니라, 튜브형 물감 제조라는 기술결정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19세기 인상파를 보고도 A.T. (Art & Technology)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무엇을 A.T.라고 해야 할까? 인간의 예술활동 중 자연법칙의 장악과 통제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간에서 A.T.라고 불리는 것은, 기술과 예술의 » 819 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