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헌_쇠퇴와 구원 사이에서

  이양헌 / 미술비평 미술사가 그려왔던 유구한 궤적을 다시 되돌아보자. 그 기원과 약속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으므로 예술이 처음에 주술이었고, 유희였으며, 모방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말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할 것이다. 대신 이미지가 다시 부흥의 순간을 맞이했던 16세기의 어느 시기, 그러니까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예술가들을 위한 위대한 연대기를 써내려간 시점부터 미술사는 순수한 » 1,262 views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4)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6.문화번역 -전통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가 쓰여 진 것은 1964년이다. 당시는 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4ㆍ19와 5ㆍ16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동 이후 ‘근대화’의 기치가 막 내걸렸던 시기였다. 또한 국민/민족 통합을 위해 국민/민족문화의 계승 혹은 개발의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기도 했다. 김수영이 이미 당시에 관제 전통 개발의 허위성을 인식하고 전통 이해의 새로운 » 1,375 views

오정은_청년예술가의 어떤 생사를 너머

1. 어떤 죽음 2011년에 있었던 한 개인의 죽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촉망받던 청년 예술인의 가빈과 병사는 이후 예술인복지법 제정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출범을 이끌었다. 그러나 재단이 규정한 예술활동증명 요건은 활동실적 증빙이 어려운 예술인을 복지 사각에 내몰며 망자의 넋을 위로하지 못했다. (“최고은법, 최고은은 예술가 아냐”, 노컷뉴스, 2014.04.12) 2016년, 서울시는 청년유니온의 제안을 수용하여 청년의 자활을 » 873 views

이정훈_끝나지 않을 공동체의 시그널 -제롬 벨의 ‘The Show Must Go On’ 리뷰

이정훈 (B의 유령) 미루고 미뤘던 글을 쓴다. 작년 말부터 공연 예술에 부지런히 관심을 쏟았다. 덕분에 단기간에 수많은 공연을 볼 수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이를 텍스트로 기록하며 소화하고자 한다. 작년 7월 베를린의 폴크스뷰네(Volksbühne)에 전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큐레이터였던 크리스 데르콘(Chris Dercon)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미술계에 몸을 담고 유명 대형 기관의 큐레이터를 » 834 views

익명제보_날조된 수사와 싸구려 향연의 유통기한

1980년대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혼돈과 저항의 시대였다. 한국에서는 1989년 여행 자율화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 아래 세계화의 반열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1989년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와 함께 민주화의 대한 열망의 폭발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을 둘러싼 민주화 바람은 활발한 서구 문화 유입의 계기가 되어 자본주의의 전환을 더 촉진시켰다. 1980년대부터 발기된 아시아의 역사성, 현재성, 세계 » 1,001 views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3)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4.근대 -전통 전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상상할 것인가는 근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김수영을 좆아, 억압된 전통을 기억해내고, 그 전통을 부단히 변화하는 장기지속의 흐름으로 인식하며, ‘거대한 뿌리’를 상상하고, 그 뿌리를 내 땅에 박으려 한다면, 이러한 시도는 당연히 통념화된 근대 개념의 자장 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다. 흔히 » 1,041 views

허호정_주현욱의 ‘메모리 네크로맨싱’ – 이중구조를 둘러싼 질문들: 동상, 세기,그리고 얼룩

허호정 1.메모리 네크로맨싱 2017년 겨울과 2018년 봄, 주현욱은 특정한 물리적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 위치하는 동상들을 추적하여, 그중 20세기에 제작된 것을 골라 부분을 스캔하고 3D 프린트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촬영, 편집하여 전시장 한쪽에 1채널로 설치하였다. 돌아가는 원판 위, 색색의 조각. 혹은 투명한 좌대 위에 규칙적으로 나열된 백색의 조각. 그것은 » 1,042 views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2)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3. 거대한 뿌리 -전통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는 단언은 전통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와는 다른 접근방식을 요청한다. 비숍의 책을 읽는 도중에 시인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방인 비숍은 구한말 조선의 문화와 관습을 낯설고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 시선은 그간 전통을 대해왔던 시인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이다. 식민의 상처 때문에 그 » 991 views

엄제현_예술과 윤리, 그 불행한 동거

가끔 그런 예술이 있다. 보고 있자니 화가 나고, 수치스럽고, 모욕적이고, 눈살이 찌푸려지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고, 전시장을 나가버리고 싶거나 아예 전시 자체를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예술들. 그것들을 관람할라치면 먼저는 감수성을 건드려 불쾌감을 자아내더니 곧 이성적으로는 시민적 윤리의 영역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는 듯 보여 무례하다는 인상까지 준다. 사회적 격률로부터의 탈선이 어느 » 2,345 views

이영욱, 박찬경_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1)

이영욱(미술평론가), 박찬경(작가) 1. 들어가며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마음이 무겁다. 어디선가 ‘21세기에 무슨 전통이냐?’는 반발이 곧장 터져 나올 듯싶다. 무슨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한 지루한 공방이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 또한 뒤따를 것 같다. 하긴 그간 전통/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논의는 혼란에 혼란을 배가한 채 말을 안 꺼낸 것만 못한 상태로 종결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 3,347 views

홍태림_김이박 개인전 ‘미모사’ 리뷰: 불안과의 동행

홍태림(미술비평, 크리틱-칼 발행인) 몇 년 전에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을 통해서 히키코모리(引き籠り), 다른 말로 은둔형 외톨이 개념을 널리 알린 사이토 다마키의 『사회적 우울증』을 살펴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사이토 다마키는 신종 우울증을 주로 다루는데, 근래에 두드러진 이 우울증은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뒤섞이며 발생하는 기존의 우울증에 비하여 훨씬 가벼운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 1,370 views

이여로_ 번역 : 자크 데리다의 세 가지 나이 The Three Ages of Jacques Derrida (interview by Kristine Mckenna)

사람들이 미치광이 프랑스 지식인이자 아는 사람만 아는 슈퍼스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미국의 대중문화잡지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해체주의라는 단어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해할 때,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듯 세계 도처의 대학생들이 해체주의의 뜻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았을 때, 이 모든 것이 자크 데리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지식인으로서 지배적인 인물 » 1,174 views